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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융건릉7

두 바퀴에 스치는 바람 16. 삼남길 지지대고개 서호 축만제 항미정 융건릉 용주사 정조 두 바퀴에 스치는 바람 열여섯번째 이야기 [2016 · 1 · 22 · 정말 추운 금요일 · 한국의산천] 경기지방 삼남길 구간 라이딩 날이 춥다. 라이딩 코스 지지대고개~ 서호(축만제)~ 항미정~ 수인선 철교~ 융건릉~ 용주사 (오산 독산성까지 왕복하려 했으나 너무 추워서 용주사에서 반환. 왕복 54km ) ※ 삼남길과 정조의 능행길이 일치하는것은 아니지만 수원하면 역사적으로는 화성과 정조의 이야기를 빼놓고 말할수 없는곳이기에 함께 기록한다. 경기 삼남길 수원·화성·오산~평택 잇는 길 정조 孝心 따라 뚜벅 다시 태어난 ‘삼남길’ 어머니 혜경궁 홍씨 모시고 사도세자 융륭 찾아가던 길 한양~삼남~해남 땅끝 이어져 삼남길 남태령을 지나 경기도를 거쳐 충청도, 전라도(해남), 경상도(통영)를 연결하는 삼남길은 .. 2016. 1. 22.
수원의 걷기길 역사탐방로 그대 가슴이 떨릴 때 여행을 떠나라 여행이란 가슴이 떨릴 때 떠나는것이지 다리가 떨릴 때 떠나는것이 아니다. [Study]의왕시 경계 지지대에서 서호와 수원 화성을 거쳐서 융건릉까지 '정조의 도시' 수원에 걷기길인 역사탐방로가 생겼다. 영조(재위 1724~1776년 52년간)와 정조(재위 1776~1800.. 2012. 10. 25.
당성 제부도 당성(唐城 사적 217호) 과 제부도 매바위 둘러보기 [2007. 9. 23(추분).일요일 날씨: 구름이 많이 끼고 흐림 한국의산천 ]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우물쭈물 살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영국의 극작가(1856∼1950), 소설가, 영국의 근대극을.. 2007. 9. 23.
융건릉 융건릉 답사 : 용주사 - 융건릉 - 독산성 2007. 4. 15. 1776년 3월 정조는 즉위 당일 빈전 문밖에서 대신들을 소견하면서 12년 넘게 가슴속에 담아 두었던 한마디를 꺼냈다. " 과인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아들이다" 라고 선포한 뒤 사도세자 추숭작업에 나섰다. 융릉(隆陵),건릉(建陵) 사적 206호 (위치: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 1-1) ▲ 신성한 지역임을 표시하는 홍살문 ⓒ 2007. 한국의산천 홍살문 궁전, 관아, 능, 묘, 원,사당 등의 앞에 세우던 붉은색을 칠한 나무문으로 홍살문, 홍전문, 홍문이라고도 한다. 양쪽에 둥근기둥 두 개를 세우고 위에는 지붕이 없이 화살 모양의 나무를 나란히 박아 놓고, 가운데에는 세가지 색깔의 태극 문양이 있다. 홍살문은 곧 신성한 구역임을 나타내는 표.. 2007. 4. 15.
용주사 용주사 ▲ 용주사 입구의 표석 ⓒ 2007. 한국의산천 ▲ 용주사 ⓒ 2007. 한국의산천 신라 문성왕 16년 (854년)에 창건된 갈양사로써 청정하고 이름 높은 도량이었으나, 병자호란 때 소실된 후 폐사되었다가 조선시대 제22대 임금인 정조(正祖)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으로 옮기면서 사도세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절을 다시 일으켜 원찰로 삼았다. 28세의 젊은 나이에 부왕에 의해 뒤주에 갇힌 채 8일만에 숨을 거둔 사도세자의 영혼이 구천을 맴도는 것 같아 괴로워 하던 정조는 보경스님으로부터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설법을 듣게되고 이에 크게 감동, 부친의 넋을 위호하기 위해 절을 세울 것을 결심하면서 경기도 양주 배봉산에 있던 부친의 묘를 천하제일의 복지(福地)라 하는 이곳 화산으로 옮겨와 현릉원.. 2007. 4. 15.
경기 화성 융릉, 건릉 융릉(隆陵),건릉(建陵) 사적 206호 (위치: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 1-1)[오산 물향기 수목원, 수원 융건릉 답사 2006. 5. 5.] 세월은 흘러도 아픔은 남아 2006년 5월 5일 (어린이날, 석가탄신일) 어린이날이기에 입장객중 어린이들에게는 두꺼운 노트한권과 샤프펜슬을 선물로 주었다. ⓒ2006 한국의산천. 융릉정조대왕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장헌세자)와 그의 비 혜경궁 홍씨(헌경왕후)를 모신 능은 융릉(隆陵)이고, 정조대왕과 그의 비 효의왕후 김씨를 모신 능은 건릉(健陵)이다. 헌경왕후는 영의정 홍봉한의 딸로서 1744년(영조20년)에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다. 장조가 세상을 떠난 뒤 혜빈, 정조 즉위년에 궁호를 혜경으로 올렸고, 뒤에 사도세자가 장조로 추존되면서 헌경왕후에 추존되었다. 남편의 참.. 2006. 5. 5.
융건릉 융,건릉 사도세자(장헌세자)와 그의 비 혜경궁 홍씨(현경왕후)를 모신 능은 융릉(隆陵)이고, 정조대왕과 그의 비 효의왕후 김씨를 모신 능은 건릉(健陵)이다. 누가 떠나고 누가 남는가 위대한 사람들의 무덤을 바라볼 때 마음속 시기심은 모두 사라져 버린다. 미인들의 묘비명을 읽을 때 무절제한 욕망은 덧없어진다. 아이들 비석에 새겨진 부모들의 슬픔을 읽을 때 내 마음은 연민으로 가득해진다. 하지만 그 옆에 있는 부모들 자신의 무덤을 볼 때 곧 따라가 만나게 될 사람을 슬퍼하는 것이 얼마나 헛된 일인가를 깨닫는다. 쫓겨난 왕들이 그들을 쫓아낸 사람들 옆에 묻혀있는것을 볼 때 또 온갖 논리와 주장으로 세상을 갈라놓던 학자와 논객들이 나란히 묻힌것을 볼 때 인간의 하잘것없는 다툼, 싸움, 논쟁에 대해 나는 슬픔과 .. 2005. 6.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