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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이숙번 묘, 물왕리풍경

by 한국의산천 2006. 5. 19.

물왕저수지 

 

총면적은 58만㎡, 저수지를 이용하는 논의 면적은 866만 5000㎡, 담수량은 189만 4000톤, 만수 때 수심은 7.2m이다. 

공식 명칭은 시흥군의 '흥(興)' 자와 부천군의 '부(富)'를 합한 흥부저수지인데, 이는 1946년 준공 당시에 몽리면적(저수지를 이용하는 논의 면적)이 시흥군과 부천군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시흥시 최대의 담수호이자 대표적인 휴식처이며, 농업기반공사 수화흥안 지부에서 관리하고 있다.

 

서울·안양·안산 등 수도권 가까이에 자리잡고 주위를 관무산(일명 성인봉)·마하산·운흥산이 둘러싸고 있어, 조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낚시터로서 명성이 높아졌다. 1950년대 후반에는 대통령 이승만이 전용 낚시터를 만들어놓고 자주 들러 더 유명해졌다.

 

주변에 조선 초기의 문신 이숙번(李叔蕃)의 묘와 동요 '따오기'를 작사한 한정동(韓晶東)의 묘 및 동요비가 있으며 가까이에 우리나라 최초의 연꽃 전래지인 관곡지가 있다.

 

2003년 포동폐염전~물왕저수지 간 자전거도로가 조성되었으며, 수인산업도로가 가까이 있어 교통이 편리하고 편의시설이 풍부하다. 

 

이숙번 묘

 

 

▲ 안성 부원군 이숙번 묘소 입구 ⓒ2006 한국의산천

 

조선시대 최초로 치러진 과거시험은 1393년(태조2년) 3월에 실시된 식년문과 시험으로 33인의 급제자가 배출되었는데 여기에 태종 이방원의 핵심측근인 이숙번이 그중 한명이다.


약관의 나이로 무과가 아닌 문과로 급제하였으나 다른 무신보다 더 장수기질이 농후하여 이방원과 같이 두 번의 왕자의 난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강한 리더쉽으로 이방원 정권이 들어선 이후 핵심인물로 승승장구하였으나....

 

안성부원군 이숙번(李叔蕃)
생몰년: 1373(공민왕 22)∼1440(세종 22)
본 관: 안성(安城) 이(李)
저서·작품: 《고려사(高麗史)》
시 대 :조선 전기
성 격: 문신 

 

1373(공민왕 22)∼1440(세종 22). 본관은 안성(安城), 이경(李坰)의 아들이다.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新門路 : 당시는 서부(西部) 돈의문(敦義門) 안) 지역에 거주하였다.


태조 2년(1393)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좌습유(左拾遺)가 되었다가 지안산군사(知安山郡事)로 전임하였다. 태조 7년(1398) 정도전(鄭道傳) · 남은(南誾) · 심효생(沈孝生) 등이 세자 방석(芳碩)의 지위를 튼튼히 하기 위해 이복왕자들을 제거하려 하자 이방원(李芳遠 : 후일 태종)의 명으로 사병(私兵)을 동원하여 이들을 주살하였다. 이 때의 공으로 우부승지(右副承旨)에 제수되고, 정사공신(定社功臣) 2등에 책록되었으며 안성군(安城君)에 봉해졌다가 곧 좌부승지로 자리를 옮겼다. 

 

정종 2년(1400) 박포(朴苞)가 방원과 사이가 좋지 않던 이방간(李芳幹)을 충동하여 군사를 일으켰을 때도 사병을 동원, 이들을 제거함으로써 방원의 지위를 확고하게 만들었다. 이를 계기로 태종 1년(1401)에는 다시 좌명공신(佐命功臣) 1등에 책록되어 좌군총제(左軍摠制) · 상 만호(上萬戶)를 지내고, 이듬해 삼군 도총제(三軍都摠制)가 설치되면서 내갑사(內甲士)의 좌번(左番)을 관장하였다. 이어 지승추부사(知承樞府事)를 거쳐 도진무(都鎭撫)가 되어 안변 부사 조사의(趙思義)의 반란을 진압하기도 하였다. 그 뒤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와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를 차례로 역임하고, 1405년에는 지공거(知貢擧)를 맡기도 하였다. 이 해 다시 참찬의정부사에 임명된 이래 여러 차례 이 직책을 수행하였을 뿐 아니라 중군 총제(中軍摠制) · 판의용순금사사(判義勇巡禁司事) · 중군 도총제 · 지의흥부사(知義興府事) 등을 차례로 겸직하였다.
그 사이 1409년에는 잠시 동북면절제사(東北面節制使)를 지냈고, 1412년 종1품(從一品)의 숭정대부(崇政大夫)로 승진하였다. 이듬해 병조 판서로 기용되었으나 곧 체직되어 참찬의정부사 · 의정부 찬성사 · 동판의정부사(同判議政府事) · 의정부 좌참찬 등을 지내다가 태종 15년(1415) 관제개편에 따라 의정부의 찬성(贊成)이 되었다.

그러나 이 해 공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직책을 맡기지 말아야 한다는 태종의 뜻에 따라 관직을 물러나 안성부원군(安城府院君)에 진봉(進封)되었다. 

 

이 후 공신임을 빙자해 불충하고 무례한 행동을 자행함으로써 대간(臺諫)의 탄핵을 받아 이듬해 연안부(延安府)로 축출되고 공신 녹권(功臣錄券)과 직첩(職牒)을 회수당했으며, 1417년 다시 대간의 탄핵을 받고 함양(咸陽)에 유배되었다. 세종 21년(1439) 왕의 은총으로 경기도 안산(安山)으로 옮겨 살았고 이듬해 타계하였다. 

1414년에는 의정부의 좌참찬으로서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가 되어 《고려사(高麗史)》의 개수(改修)에 참여하였다.


 

참고문헌: 太祖實錄, 定宗實錄, 太宗實錄, 世宗實錄, 燃藜室記述
[서울 600년사 참고] 

 

 

▲ 안성 부원군 이숙번 유택과 좌측에 보이는 물왕저수지. ⓒ2006 한국의산천

 

 

퇴근길에 카페풍경 (이숙번 묘소 앞 저수지)  

※ 아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컴 화면 크기로 확대됩니다.

 

 

▲ 시흥 물왕리 저수지 야경 ⓒ2006 한국의산천

 

ⓒ2006 한국의산천

ⓒ2006 한국의산천

ⓒ2006 한국의산천

 

ⓒ2006 한국의산천. f11 . 8sec. LC-1

 

▲ 물왕리 흥부저수지 ⓒ2006 한국의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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