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 남연군의 묘, 보덕사 [답사 2006. 4. 30. 한국의산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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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연군묘
충청남도지정 기념물 제 80 호
위치: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산 5-28
ⓒ2006 한국의산천
가야산 석문봉 등산코스는 이곳에서 우측길로 간다음 옥양봉을 거쳐 석문봉에 오른다음 왼쪽으로 보이는 길로 하산을 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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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등산동호인들이 옥양봉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정면에는 쉰길바위가 있는 옥양봉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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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연군의 묘
흥선대원군의 부친인 남연군의 묘로 이 남연군묘가 위치한 자리는 본래 가야산 일대에서 제일 큰 절인 가야사(伽倻寺)는 99개의 암자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큰절이었던 가야사를 불사르게 하고 금탑을 허물게 하여 이 묘자리를 차지하였다. 풍수지리설의 좌청룡, 우백호가 웅장하게 뻗어있던 “이대천자지지”즉 2대에 걸쳐 왕위에 오를수 있는 곳이라 하여 흥선대원군이 자신의 부친인 남연군 이구(李球)의 묘를 경기도 연천 남송정에 있던 것을 1846년 이곳으로 이장하였다. 왕권에 야심을 품고 안동 김씨들로부터 갖은 수모를 겪어 오던 터라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이 묘자리에는 뒷날의 도굴을 염려하여 철 수만근을 붓고 강회로 비벼 언덕에 반구형 봉분이 크게 자리잡고 있으며 앞으로 석조물 2조의 석양과 2기의 석주를 묘의 좌우에 세우고 있으며 묘 앞에 석등이 위치하고 있다.
이장 후 예언대로 철종 뒤를 이어 12세로 고종이 왕위에 오르고, 순종이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다.
남연군 묘 앞 길건너에는 돌아서있는 미륵불이 있다. 대원군이 가야사를 불사르고 금탑을 깨부순 데 대해 괘씸하다며 항의조로 돌아서버렸다는 설과 풍수지리설상으로 기운을 조화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라는 설이 있다. 문화재 자료 제182호. 일반적으로 미륵불로 불리나 학명으론 관세음보살이다.
남연군묘 도굴사건
역사적으로는 1868년 흥선 대원군 시절 유태계 독일인인 오페르트(Oppert)가 차이나호를 이끌고 서해대교 중간에 있는 섬 행담도에 북독일 연방의 기를 게양, 정박하고 상륙한 다음 여기서 그들은 그레타호를 옮겨타고 삽교천을 거슬러 올라가 현 예산군 덕산면 구만포에 상륙하여 러시아군병을 자칭하며 가야산 자락 아래 덕산 가동에있는 남연군묘를 도굴하여 통상문제를 흥정하려고 하였으나 덕산 군수와 주민들의 저항으로 도굴이 실패로 끝나고 퇴각하였다.
이러한 비행은 국내외의 비난을 받았으며 이 일로 말미암아 흥선대원국의 쇄국 정책은 더욱 강화되었다. 그후 전주 이씨가 멸망한 후 묘소는 황폐화 되었으나, 왕실묘라 하여 후세 사람들이 잘 보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보덕사 극락전
충청남도지정 유형문화재 제 145 호
위치: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277
규모 : 정면 3칸 측면 2칸
ⓒ2006 한국의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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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왕산(象王山) 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극락전을 중심으로 그앞에 ㄴ자형 선원과 그 오른쪽에 붙어있는 2층의 고방과 함께 전체적인
평면구조를 튼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정면 3칸과 측면 2칸의 평면을 가진 이 건물은 내부를 통칸으로 하여 중앙 후단칸에 불단(佛壇)을
조성하였다. 구조는 가공이 잘된 장대석으로 기단을 쌓은 후 원형 초석을 놓고 그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웠는데 기단석과 초석은 부근 사찰에서 옮겨와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건축양식은 전형적인 무출목이익공계(無出目二翼工系)계통인데 익공의 형상이 마치 궁궐의 침전(寢殿)에서나 볼수 있는
형태이다. 기둥칸 사이에는 운궁(雲宮)이 결구되어 있는 장화전(長花殿)을 2구씩 배치하여 주심도리 장혀를 받고 있다. 무고주(無高柱) 5량집으로
종양(宗樑) 하단(下端)에 우물 천장이 가설되어 있으며 지붕은 겹처마 맞배지붕을 이루고 있는데 익공계 건물로는 흔하지 않은 건물이다.
상가리 미륵불
충청남도지정 문화재자료 제 182 호
위치: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25
시대: 고려시대
규모 : 약 2.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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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골짜기 사이에 작게 보이는 미륵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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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사가 있던 현 남연군묘에서 보면 북쪽 방향 산을 향해 등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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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연군묘에서 북동쪽으로 약 200m정도 떨어진 산 골짝이에 위치해 북쪽을 바라보고 서있는 불상이다. 전해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월래는 남연군 묘가 있는 가야사를 향해 있었으나 대원군이 가야사를 없애고 남연군의 묘를 쓰자 미륵불이 돌아섰다는 설과, 북쪽 계곡으로부터 쳐들어오는 병마를 위해 북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설이 전해내려온다.
코를 갈아 마시면 아이를 가질수있다는 속설에 미륵불의 코가 많이 훼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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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불 오른쪽으로 남연군의 묘가 보이고 묘 뒤로는 가야산 정상인 가사봉이다.
일반적으로 미륵불로 불리우나 학명으로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다. 전체적으로 돌기둥 형태를 이루는 입상(立像)으로서 머리에는 초화문(草花文)장식의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중앙에는 변화한 부처님을 상징하는 작은 화불(化佛)이 조각되어 있고 양옆의 머리띠 매듭은 어깨까지 내려와 있다. 얼굴은 길쭉하지만 양볼이 두툼한 편이며 눈은 지그시 감았고 오똑한 코 끝은 훼손되었다. 법의는 우견 편단으로 선간 되었으며, 왼쪽 어깨에는 오른쪽으로 자연스럽게 흘러 내려 있다. 양팔은 몸에 붙인채 오른손 가슴까지 돌며 왼손은 손바닥을 배에 붙이고 있다. 이러한 불상양식은 고려시대 유행한 것으로 충청도 지방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투박한듯하며 거칠게 만들어진것같으나 나름대로 볼륨있고 생동감이 넘치는 미륵불이다.
가야산 석문봉 등산로
충남 예산 가야산
충남 예산의 가야산(677.6m)은 칠갑산에서 북진하는 금북정맥 상에 솟아
있다. 금북정맥은 홍성을 지나 삼준산을 빚어 놓은 다음, 노적봉 - 가야산(일명 가사봉) - 석문봉 - 옥양봉을 들어올리고는 두 가닥으로
나뉘어져 북서쪽으로 가지를 친 능선은 일락산을 들어올린 후 서산 앞바다로 가라앉고, 옥양봉에서 북동으로 달아나는 산릉은 상왕산을 빚어 놓고, 그
여맥을 당진 평야에다 묻는다.
가야산은 예산군과 당진군, 서산군 등 3개 군에 걸쳐 들판에 우뚝 솟아 산세가 당당하고 곳곳에 사찰이
자리하고 있어 은은한 풍경을 자아낸다.
가야산 정상인 가사봉은 출입금지 구역이다. 그래서 가사봉 북쪽 2km 거리인 석문봉(653m)을
오르는 데 그친다. 그러나 예부터 이곳 주민들은 석문봉을 주봉으로 해서 생각해 왔다.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와 가야사터에 맥을 대고 있는
봉이 바로 석문봉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야산 산행은 남연군 묘가 있는 상가리에서 옥녀폭포가 있는 일조암계곡을 경유하여 석문봉을 오르내리는
코스가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다.
그리고 산행코스에 변화를 주기 위하여 일조암계곡으로 석문봉에 오른 다음에는 서산 들판이 시원하게 터지는
북동릉을 타고 옥양봉에 이른 다음, 쉰길바위 능선을 경유하여 다시 남연군묘 앞으로 내려서기도 한다.
정상 돌탑에서 남쪽 능선을 타고
내려가면 물이 맑고 계곡이 좋은 용현 계곡으로 하산 할 수 있다 (현재 용현자연휴양림 조성)
주변에 개심사, 일락사, 보덕사, 원효암등
백제초기부터 들어서기 시작한 사찰들과 해미읍의 명소로 이름난 해미읍성, 홍성 면천읍성이 있다.
등산로
1코스 :남연군묘 - 관음전 - 옥양봉 - 등산로 - 석문봉 - 상가리저수지 - 남연군묘(왕복 2시간30분)
2코스: 남연군묘 - 관음전 - 옥양봉 - 등산로 - 석문봉 - 등산로 - 원효봉 - 상가리저수지 - 남연군묘(왕복 3시간30분)
3코스: 남연군묘 - 옥양폭포 - 등산로 - 석문봉 - 옥양폭포 - 남연군묘(왕복 2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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