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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매화꽃산행] 조계산 송광사

by 한국의산천 2006. 3. 8.

조계산 송광사 선암사 

♣ 심신을 푸근히 감싸 안는 순천의 壯山 조계산  
선암사와 송광사라는 두 거찰을 끼고 있는 조계산(884.3m)은 전남 순천시 승주읍과 송광면에 위치하고 있다. 조계산은 비교적 낮은 산으로 산세가 부드럽고 아늑하다. 선암사 둘레에는 월출봉, 장군봉, 깃대봉, 일월석 등이 줄지어 솟아있다.  조계산(884m)을 중심으로 선암사(仙巖寺)·송광사(松廣寺) 등을 포함하며, 1979년 12월 26일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98년 12월에는 사적 및 명승 제8호로 지정되었다.

산세가 수려하고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겨울에도 따뜻하다. 관광의 중심인 송광사는 승보사찰(僧寶寺刹)로 유명하며 가람의 규모도 국내 유수이고, 뛰어난 문화재가 많아 문화재의 보고를 이룬다. 송광사의 개산 당시에는 송광산이라 하였는데 그 후의 개창(開創)과 더불어 조계종(曹溪宗)의 중흥 도장(道場)으로 삼으면서 조계산으로 바뀐 것이다.
정상에서 남해를 바라보는 맛이 그만이다. 좌우의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소장군봉(우측) 연산봉(좌측) 등 조계산 도립공원 전체가 발 아래에 펼쳐진다. 송광사와 선암사의 유명세 탓에 절을 찾는 관광객이 사시사철 끊일새 없을 뿐더러 등산을 목적으로 조계산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  

조계산 산행은 송광사나 선암사 어느 쪽에서 시작해도 비슷한 시간에  다양한 코스를 즐길 수 있다. 산세가 험하지 않고 평탄한 길이 많아 가족단위 소풍코스로도 알맞다.
산 동쪽에는 선암사, 서쪽으로는 송광사가 있다. 산속의 깊은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흐르며, 만수봉과 모후산이 송광사 일대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선암사 계곡의 맑은 물은 죽학천과 합류하여 이사천으로 흘러간다. 선암사 둘레에는 월출봉, 장군봉, 깃대봉, 일월석 등이 줄지어 솟아있다. 송광사와 선암사는 유명한 절로 관광객이 사시사철 끊일새 없고 등산을 목적으로 조계산을 찾는 사람도 많다. 조계산 산행은 선암사와 송광사 두 사찰을 들머리로 잡을 경우 모두 회귀산행이 가능하다.
 
산행코스 
 ▶ 조계산 등산로의 4대 중심 ( 동서 대찰,정상과 보리밥집)
조계산 등산로 또한 조계산 주능선 동서 양쪽에 각각 자리한 선암사와 송광사를 2대 기점으로 삼고 있다. 이 두 사찰에서 시작된 등산로는 방사상으로 뻗어 호남정맥 줄기를 이루는 장군봉~깃대봉간 남북 주능선에서 서로 만난다. 조계산행은 이들 등산로를 조합, 동서 횡단하거나 원점회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중 가장 왕래가 잦은 것은 선암사 - 선암사굴목재 - 송광굴목재 - 송광사로 이어지는 동서 횡단로다. 최고봉을 장군봉을 지나지 않은 이 변두리 횡단 코스의 인기가 최고인 것은 역시 이 산을 찾는 이들의 성향 때문이다.
급경사 길에서의 긴장감이나 숨가쁨 등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애동초 이 조계산은 관심 대상이 되기 어렵다. 담소하며 쉬엄쉬엄 산보하듯 오르노라면 어느새 고갯마루이고, 조금 숨이 가빠질라치면 사방이 탁 트이는 산정에 이르는 그런 두루뭉실한 산이 조계산이며, 또 그런 줄 알고 이 산을 찾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런 특징이 가장 뚜렷한 변두리 횡단코스의 인기가 가장 높은 것이다.
남쪽 외곽으로 경사가 낮은 고개 두 개만 슬쩍 넘으면 되고, 양쪽에 사계절 두고 풍치가 달라지는 대찰이 있다는 점 외, 이 동서 변두리 횡단 코스가 인기인 데는 중간의 보리밥집의 존재를 거론치 않을 수 없다. 선암사굴목재와 송광굴목재 사이의 아늑한 장박골 가에 자리잡은 보리밥집에서 보리밥 한 그릇 먹고 가볍게 낮잠도 한숨 즐기는 맛이란 비길 데 없는 것이어서, 평일에도 이 동서 횡단로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정상과 더불어 보리밥집이 산행의 정점이 되고 있는 유일한 산이 바로 조계산이다.

처음 조계산을 찾는 이라면 어찌 정상을 버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양쪽의 대찰과 보리밥집, 그리고 정상까지 엮은 동서 횡단이 최고의 산행로라 할 수 있다. 이번 취재시 두루 답사해본 결과 계곡길로는 연산봉 사거리로 이어지는 피아골이, 능선으로는 역시 호남정맥 줄기를 이루며 매바위라는 멋진 조망처를 가진 장군봉 남북능선, 그리고 산비탈을 가로지르는 호젓한 산길로는 작은굴목재 - 비로암 - 대각암 길이 최고였다.
그러므로 선암사 - 선암사굴목재 - 보리밥집 - 배바위 - 장군봉(정상) - 장박골 삼거리 - 연산봉 사거리 - 피아골 - 송광사, 그리고 송광사 - 홍골 - 송광사굴목재 - 보리밥집 - 선암사굴목재 - 작은굴목재 - 정상 - 비로암 - 대각암 - 선암사 코스가 자연스레 발길을 이어주는 한편 볼 것 다 보는 동서횡단로로 권하고 싶다.

택시를 대절해서 돌아가는 산행을 하고 싶지 않다면 원점회귀형 산행로를 택한다. 사실 조계산의 여러 등산로는 조금 과장해 말하면 능선길, 계곡길 단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하다. 다시 말해, 한 가닥의 능선과 한 가닥의 계곡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선암사나 송광사 어느 한쪽을 기점 삼은 원점회귀형 산행을 한 뒤 차를 몰고 돌아가 다른 절을 보면 된다.
원점회귀형으로 엮을 경우 선암사 기점이면 선암사 - 대각암 - 정상 - 배바위 - 작은굴목재 - 보리밥집 - 선암사굴목재 - 선암사 방향이 추천할 만하다.  
아침 산행 시작이 오전 11시경으로 크게 늦어졌다면 모를까 선암사 - 보리밥집 간은 2.5km에 1시간30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아서 보리밥집 방향으로 먼저 가면 점심식사가 너무 일러진다.
송광사 기점 코스라면 송광사 - 피아골 - 연산봉 사거리 - 장박골 삼거리 - 장군봉 - 작은굴목재 - 선암사굴목재 - 보리밥집 - 송광사굴목재 - 홍골 - 송광사가 최상이다. 이 코스는 선암사를 기점으로 할 때보다 한결 길어서 큼직한 장산의 멋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다.

요즈음 단체 산행객들이 선호하는 기점 중 하나가 조계산 북쪽 저 위의 접치다. 이곳에서는 문화재관람료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호남정맥 줄기를 따라 길게 내리 걸어 정상 - 선암사굴목재를 지나 보리밥집에 들렀다가 선암사나 송광사로 내려가는 이 길은 주로 내리막이면서도 조계산의 장대한 멋, 보리밥 맛, 대찰 등을 고루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날로 인기가 높아가고 있다.
조계산에는 그외 탐방객이 많은 만큼 수많은 갈래길이 있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등산로 이외엔 안내판이 설치돼 있지 않으므로 섣불리 들어서지 않는 것이 좋다. 급경사의 낭떠러지 같은 것은 거의 없는 산이지만, 덩치가 워낙 커서 길을 잘못 들면 주등산로로 빠져나오기까지 오랜 시간 고생해야 한다.


승보종찰 송광사
지금 남아 있는 기록에 의하면 송광사는 신라말 혜린(慧璘)선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창건 당시의 이름은 송광산 길상사(吉祥寺)였으며 100여 칸쯤 되는 절로 30, 40명의 스님들이 살 수 있는 그리 크지않은 규모의 절이었다고 한다. 그 뒤 고려 인종때 석조(釋照)대사께서 절을 크게 확장하려는 원을 세우고 준비하던 중 타계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후 50여년 동안 버려지고 페허화된 길상사가 중창되고 한국불교의 중심으로 각광받게 된 것은 불일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정혜결사가 이곳으로 옮겨지면서 부터이다.
지눌스님은 9년 동안의(명종 27년1197년 ~ 희종 원년) 중창불사로 절의 면모를 일신하고 정혜결사운동에 동참하는 수많은 대중을 지도하여 한국불교의 새로운 전통을 확립하였다. 이 때부터 송광사가 한국불교의 중심으로 각광받기 시작하였다. 그 동안 정유재란, 6.25사변 등 숱한 재난을 겪었으나 지속적인 중창불사로 지금의 위용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송광사는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에 있는 조계산 자락에 새둥지처럼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다.
송광(松廣)이라는 이름에는 몇가지 전설이 있다.
그 첫째는 18명의 큰스님들이 나셔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펼 절이라는 뜻이다.
곧 '송(松)'은 '十八(木)+公'을 가리키는 글자로 18명의 큰스님을 뜻하고, '광(廣)'은 불법을 널리 펴는 것을 가리켜서 18명의 큰스님들이 나서 불법을 크게 펼 절이라는 것이다.
둘째로 보조 국사 지눌스님과 연관된 전설이다. 곧 스님께서 정혜결사를 옮기기 위해 터를 잡으실 때 모후산에서 나무로 깍은 솔개를 날렸더니 지금의 국사전 뒷등에 떨어져 앉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뒷등의 이름을 치락대(솔개가 내려앉은 대)라 불렀다한다. 이 전설을 토대로 육당 최남선은 송광의 뜻을 솔갱이(솔개의 사투리)라 하여 송광사를 솔갱이 절이라 풀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일찍부터 산에 소나무(솔갱이)가 많아 '솔메'라 불렀고 그에 유래해서 송광산이라 했으며 산 이름이 절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 승보사찰
부처님, 가르침, 승가야말로 불교를 받치는 세 기둥이요 불교를 불교이게 하는 세가지 요소이다. 그래서 한국 불교에는 일찍부터 세 가지 보배를 가리키는 삼대 사찰이 있고 이를 삼보사찰(三寶寺刹)이라고 한다. 곧 경남 양산의 통도사, 경남 합천의 해인사 그리고 전남 순천의 송광사이다.
통도사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있기 때문에 불보사찰(佛寶寺刹), 해인사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팔만대장경의 경판이 모셔져있기 때문에 법보사찰(法寶寺刹), 그리고 송광사는 한국불교의 승맥(僧脈)을 잇고 있기 때문에 승보사찰(僧寶寺刹)이라고 한다 
그것은 두 가지 사실에 연유한다. 첫째는 지금으로부터 800여 년전 고려 때 보조 국사(普照國師 知訥)스님께서 정혜결사를 통해 당시 타락한 고려 불교를 바로잡아 한국 불교의 새로운 전통을 확립하였는데 그 근본도량(根本道場)이 바로 송광사였다.

다른 하나는 지눌 스님의 뒤를 이어 송광사에서 열다섯명의 국사들이 출현하여 지눌과 함께 모두 열여섯명의 국사(十六國師)가 나와 한국 불교의 전통을 면면히 계승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송광사야말로 한국 불교 전통의 산실이요 또 그 전통을 잇고 있는 중요한 사찰이다.

 

 

 

[관련기사 문화일보] 절집으로 떠나는 여행은 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굳이 종교를 갖고 있지 않더라도 오래 묵은 절집 을 둘러보노라면 전후좌우 둘러볼 여유없이 살아온 삶을 자연스레 돌아보게 되는 까닭이다. 고색이 창연한 절집의 돌담벽을 따 라 고요히 산책을 하노라면 내가 무엇을 바라며 살고 있는지, 혹시 어긋난 길에 서 있지는 않는지, 안락한 도회지 생활에서 가끔 엄습하는 상실감은 과연 무엇 때문인지 곰곰이 생각할 시간을 얻을 수 있다.

 

절집에서조차 삶을 되돌아보지 못한다면 도대체 어디서 나를 들 여다 볼 수 있을까. 봄꽃소식이 이제 막 남도 쯤에 발끝을 걸치고 있는 이른 봄, 선암사와 송광사로 떠나는 여행으로 길을 안내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렇게 마음을 씻는 여행지를 찾아 나선 길에서 ‘세닢의 엽전’을 만났다. 다리 아래 동그마니 걸려 있는 엽전은 모든 것을 ‘환산가치’로만 평가하는 자본만능의 세상에서 한가닥 위안을 던져준다. 세 닢의 엽전은 내 것이 아닌 것은 미련없이 걸어두고 간 누군가의 마음일 터. 이 엽전은 가진 것은 없지만 그래도 욕심 내지 않고 살아온 소시민들을 위안한다.

# 마음을 일깨우는 송광사의 범종소리 그리고 내 삶의 그릇 조계산 자락의 송광사는 이제 너무 유명한 절집이다. 절집 규모 도 규모려니와 그 위치가 절묘해 전남 보성이며 벌교며 순천이며 , 혹은 전남 광양이며 이름난 남도 땅을 여행하다보면 꼭 한번쯤 은 들르게 되는 곳이다. 절의 건축미와 분위기, 산재한 문화재들도 좋지만 송광사가 좋은 것은 무엇보다 맑은 기운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송광사로 들어가는 우화각 앞에서 만난 현봉스님은 “여기서부터 는 정신을 벗어서 헹구고 들어가는 길”이라며 “다리 아래 걸린 엽전에서 욕심을 버리는 법을 배우라”고 했다. 현봉스님은 “이렇듯 오래된 절집에는 문고리나 툇마루에도 다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송광사에서 상주하고 있는 도우미로부터 안내를 청해보자.

송광사에는 빼놓지 말아야 할 세 가지 명물이 있는데, 쌀 7가마 인 4000명분의 밥을 담을 수 있다는 ‘비사리구시’와 어느 순서 로 포개어도 포개어지는 신기한 수공예품 그릇 ‘능견난사’ 그리고 천연기념물 88호로 높이가 무려 12m에 800년된 두 그루의 향나무 ‘쌍향수’가 그것이다.
쌍향수를 보려면 송광사에서 나와 차로 10분거리인 천자암을 찾아가야 한다. 20분 정도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 수고를 감수해야 하는데, 용처럼 뒤틀려 신비감마저 풍기는 향나무를 만나는 값치고는 저렴한 편이다.

 

# 선암사의 승선교 그리고 흐트러짐없는 절집 선암사의 승선교 아래에 엽전이 매달려있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 었다. 이른 매화를 만나기 위해 우연히 들렀던 낙안의 금둔사 지 허스님에게서 엽전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지허스님은 “선암사 승선교에도 엽전이 달려 있는데, 다른 스님 들이 팻말을 세워놓자고 한 것을 내가 나서서 말렸다”고 했다.

지난 2004년말까지 선암사 주지일을 했던 지허스님은 숙종때인 1 713년에 호암스님이 다리를 지으며 엽전을 달아맸다고 했다.
지허스님은 “호암스님은 승선교 외에 벌교의 홍교와 북한산성을 쌓았는데 청빈하기 이를데 없는 분이었다”며 “다리 앞에 팻말 을 세우는 것을 말린 것은 오히려 호암스님의 정신을 욕되게 하 는 것같아서…”라고 했다.
지허스님의 말대로 승선교 아래에는 엽전이 매달려 있었다. 승선교의 반달형 다리를 통해 바라보이는 강선루의 조화는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다리가 까마득히 높아서 쉽게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돌로 쪼아 만든 용의 여의주에 매달린 것은 분명 엽전이었다. 그런데 엽전은 한닢뿐이었다. 손이 닿지 않는 곳이어서 다른 사람 손을 탔을리는 만무한데, 나머지 두 닢은 어디로 갔을까. 선암사 주지 금용스님은 “왜 한닢만 남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며 “다만 호암스님의 뜻이 엽전을 승선교를 세우는데 외에는 쓰지 말라고 했으니, 다리를 보수하면서 사용했을 수는 있겠다”고 했다.

 

# 남도로 봄꽃 매화를 찾아떠나는 여행.
선암사는 과거 원형 그대로 절집 풍모를 갖추고 있다. 스님들도 집 모양이 흐트러질까봐서 개축은 물론, 못 하나도 박지 않았다고 했다.
지허스님은 주지시절, 노스님들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화장실을 집 안으로 내고 싶기도 했고, 이러저러한 가구도 들여놓고 싶었지만 집 모양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그때의 경험 때문에 지허스님은 금둔사에서 은거하면서도 작은 장롱 하나 없이 방한구석에 봇짐만 쌓아놓고 있었다.

선암사에서는 또 이맘때쯤 흐드러진 매화를 만날 수 있다. 칠전 선원 앞의 늙은 매화나무에서는 꽃이 폭죽처럼 터진다. 곳곳에 심어진 매화까지도 합세해 절 전체가 화사한 봄으로 가득 찬다.
선암사 앞뒤쪽의 야생차밭도 여행객의 마음을 정갈하게 씻어주는 공간이다. 이제 막 새잎들이 연초록으로 돋아나는 차밭은 규칙적으로 줄을 맞춰 다듬어놓은 보성의 차밭과는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매화라면 금둔사도 빼놓을 수 없다. 지허스님이 낙안읍에 있던 오래된 매화나무에서 씨를 받아다가 심은 매화가 일찌감치 꽃망울을 터뜨렸다.
금둔사에 있는 매화는 이른바 ‘납월매’라고 불리는 종류다. 매화 중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워 올리는데 다른 매화와는 달리 한 꺼번에 꽃을 피우지 않고 간격을 두고 꽃이 핀다. 또 진한 꽃향 기를 풍기는 것도 색다르다.
이렇게 절집을 찾아 마음을 씻고 돌아나오는 길에는 자신이 가진 삶의 그릇을 가늠해보자. 여행으로 그릇은 좀 더 채워졌을까, 아니면 더 비워내야 하는 것일까.

◈송광사·선암사 가는 길
비행기, 고속버스, 기차를 이용해 광주나 순천까지 간다. 광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송광사행 시외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있고, 순천에서도 송광사나 선암사행 버스가 수시로 있다.
승용차로는 호남고속도로를 달리다 송광사IC로 빠져나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송광사와 선암사는 같은 조계산 기슭에 있어 조계산을 넘는 등산코스를 택하면 걸어서 두 곳의 절 집을 모두 볼 수 있다.
송광사~마당재~정상~선암사의 10.5㎞ 코스를 택하는게 일반적인데 산세가 험하지 않고 평탄한 길이 많아 가족끼리도 큰 부담없이 등산을 즐길 수 있다.

 

◈숙박
송광사나 선암사 인근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민박집이나 여관이 많다. 좀더 편한 잠자리를 원한다면 순천 시내의 관광호텔, 장급 여관을 이용한다. 내친 김에 낙안읍성도 들러볼 요량이면 벌교까지 나오면 되는데 새로 지은 여관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 참고 봄꽃 산행지 클릭 ■☞ 매화, 진달래, 철쭉 산수유 산행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