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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이매창. 개암사 가는 길

by 한국의산천 2005. 7. 3.

 

 

개암사

답사코스  [ 답사일 2005.7월2~3일   한국의산천   ]

서울 - 서해안고속도로 - 줄포IC - 반계 유형원 유적지 - 우동리 선계폭포 - 개암사 - 서림공원 - 매창공원 - 부안IC - 서울 ( 620km)     

 

 

 

내소사는 많은 관광객으로 늘 번잡하지만 이곳 개암사는 그리 크지않은 절에 항상 고요함을 유지한다. 울금바위 앞에 앉아있는 개암사. 다녀오면 그 조용함과 깨끗함이 잔상으로 오래남는 곳이다. 

 

개암사는 부안에서 보안을 향해 내려가다, 봉은 큰 길가에서 개암저수지를 휘돌아 올라가면 울금바위 아래 자리잡고 있다. 그녀가 안가본곳이 어디있겠냐만은 이곳 개암사는 수시로 찾았다고 전한다.


이 절은 백제무왕 35년(634년)에 묘련왕사가 변한에 있는 궁전을 절로 고쳐 지을 때 묘암의 궁전을 묘암사, 개암의 궁전을 개암사라 부른데서 비롯되었다.
40 여년 후인 통일신라 문무왕 16년(676년)에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이곳에 들어와 절을 다시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고려 충숙왕(1313년)때에는 원감국사가 순천 송광사에서 이곳으로 들어와 중창하면서 황금전, 청련각, 청허루등 30여동을 지어 큰 사찰이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대웅보전, 응진전, 월성대, 요사채가 있어 한적한 편이다. 대웅전 오른쪽 새로 지은 요사를 둘러싼 대나무가지 울타리와 갈대는 입구의 단풍길과 함께 개암사의 고요한 멋을 더해준다. 보물 제292호로 지정된 대웅전은 정면 3간, 측면3간의 팔작지붕으로 조선시대 초기의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 줄포IC에서 나와서... 비가 와도 너무 온다... 답사를 예정대로 할 수 있을런지... 

 

부안읍은 아름다운 변산반도의 관문이다.
바다와 산을 끼고 70 km 의 변산일주도로를 달려본 사람이라면 다시 그곳에 오기를 꿈꾸는 그런 아름다운 곳이다. 채석강 , 적벽강, 수차가 돌아가는 줄포염전 전나무 숲의 내소사 개암사등...
 

부안에는 향기롭고 조금 쓸쓸한 인물이 살다 갔다 .400 년전의 여인이다 . 거문고를 잘타고 글 솜씨가 뛰어나 개성의 황진이와 쌍벽을 이룬다는 기생 매창이다 .

성황당 기슭, 산책하기 좋은 서림공원에 매창(梅窓,1573 -1610)의 넋을 기린 비가 있으며 부안읍내에는 그가 잠들어있는 매창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매창은 부안에서 태어나 아전의 딸로 태어나 기생이 되었다 . 지금 우리는 백호 임제가 지나다 들러 서러워 했다는 황해도 장단의 황진이 무덤에는 갈 수는 없어도 , 다행히 매창의 무덤에는 갈 수 있다. 매창은 살아서 몇 명의 문사와 벼슬아치의 연인이었지만 , 죽어서는 뭇 사람의 연인이 되었다. 외진 고을의 일개 기생으로 그녀가 당대의 문사들과 어울릴 수 있는 감각과 시재를 가졌다는 것이 놀랍다 . 집안도 잊혀지고 후손도 없는 그녀의 무덤이 부안 성황당산 아래 오늘까지 보존된 것은  그 때문이다 .

매창이 지은 시는 몇백수는 되었다는데 직접 문집을 남기지는 못했다. 그녀가 죽고난 58 년이 지난 1668년 개암사에서 목판으로 "매창집"을 엮어냈다. 매창의 시를 보면 변산을 두루 돌아다녔음을 알 수 있다. 서해의 낙조를 가장 잘 볼 수 있다는 월명암 낙조대에도 올랐다 . 그녀가 월명암에 올라 쓴 시가 있다  

      
                   하늘에 올라 절간을 지었기에
                   풍경소리 맑게 울려 하늘을 꿰뚫네
                   나그네 마음도 도솔천에나 올라온 듯
                   황정경을 읽고 나서 적송자를 뵈오리라

황정경은 도가의 경전이고 적송자는 중국 고대 신농씨 시대에 비를 다스리던 신선이다. 외로움과 시름으로 가득 찬 애절한 시편들을 남긴 그녀지만 ,기생이라는 신분때문에 오히려 누릴 수 있던 자유로움이 엿보이기도 한다 .

누군들 이루지 못한 사랑의 기억이 없으랴 . 비내리는 개심사에 선 나그네는 그저 옛사람의 못이룬 사랑으로 인하여 가슴이 져밀뿐이다
.  

 

 

 

개암사 입구의 가로수 

 

 

 

 

 

큰 도로에서 개암사로 들어가는 길 옆의 호수  

 

 

 

▲절같이(?) 조용한 능가산 개암사

변산은 능가산, 영주산, 봉래산 등의 이름도 가졌다. 대로변에서 개암사까지 약 3km.그 흔한 음식점,가게 하나없는 조용한 곳이다.  백제 부흥운동을 벌이며 최후의 격전을 벌인 주류성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울금산(우금산) 그 아래 개암사가 자리하고 있다.  

 

 

 

▲ 개암사 올라 가는 아름다운 길. 

 

 

 

▲ 울금바위앞에 정좌하고 있는 대웅전은 현재 보수중이다. 

 

 

 

▲ 개암사는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에 있는 사찰로, 변산팔경에 '개암고적'에 해당한다.내소사 대웅보전과 아주 흡사한 대웅전(보물 제292호)이 있는 이 일대는 예전에 유서 깊은 왕궁터였다.

지금의 개암사는 백제 무왕 35년(634) 묘련왕사(妙蓮王師)에 의해 변한의 궁전을 고쳐서 개암사와 묘암사를 지은 데서 비롯되었는데, 백제 멸망 후 원효와 의상이 이 곳에 와서 개암사를 다시 지었다고 전한다. 그 후 고려 충숙왕 때(1314년) 원감국사(圓鑑國師)가 송광사에 있다가 이곳으로 들어와 삼창을 하며 황금전(黃金殿)을 중심으로 동에는 청련각(靑蓮閣), 남에는 청허루(淸虛樓), 북에는 팔상전(八相殿), 서쪽에는 응진당(應眞堂)과 명부전(冥府殿) 등 30여동의 건물을 지어 대가람을 이루었다고 한다. 원감은 이곳에서 능가경을 강의하여 많은 사람들을 교화하였는데 이로부터 변산을 능가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다시 조선시대에 태종 14년(1414)에 선탄선사(禪坦禪師)가 이 곳에 와서 도솔사라 이름하고 외도솔과 내도솔을 지었는데, 외도솔은 백학봉에 있었고 내도솔이 지금의 개암사라고 한다. 외도솔은 1874년에 불에 타 없어졌고, 이후 개암사의 많은 건물들은 임진왜란 때 다 불탔는데 다행히 황금전이었던 대웅전이 남아 몇 차례의 중수를 해오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보물 제292호로 지정된 이절의 대웅전은 정면3간, 측면3간의 팔작지붕으로 조선시대 초기의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내소사에 있는 대웅보전과 쌍둥이 건물이 아닐까 싶을정도로 아주 닮아있다

 

 

▲ 울금바위는 아직도 산 운무속에.. 

울금바위를 중심으로 뻗은 울금산성(주류성)에서 백제유민들이 나당 연합군을 맞이해 최후의 항전을 벌였다고 하니, 그 숙연함도 괜한 것은 아닌 듯 싶다.

울금바위에는 세 개의 굴이 있는데 가장 큰 굴은 백제말기 신라군과 전투할 때 백제군 복신장군의 지휘소였다 하여 복신굴이라고도 하고 또 원효대사의 수도처였다고 하여 원효방이라고도 불린다. 안쪽에는 옥천이라 불리는 석간수가 흐른다. 뒤쪽으로 기어올라 바위 정상에 오르면 맑은 날이면 호남평야와 서해바다가 한 눈에 바라보인다.
 

 

 

 

 

 

 

 

 

 

나그네는 그저 못다이룬 사랑의 기억만 가지고 가라  

 

 

 

 

변산반도 

전북 부안군에 있는 국립공원으로, 면적이 157 ㎢에 달하고, 변산면9邊山面), 하서면9下西面), 상서면9上西面), 진서면9鎭西面)에 걸쳐 있다. 변산반도 서부의 변산산괴9邊山山塊)를 중심으로 1971년 12월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88년 6월 11일에 국립공원으로 승격하였다. 

변산의 경치는 일찍이 한국 8경의 하나로 꼽혀 왔고, 10승지(勝地)의 하나인 반도 중앙의 변산(邊山)을 중심으로 내륙쪽의 내변산9內邊山)과 바다쪽의 외변산으로 나누어진다. 즉 산의 변산과 바다의 변산으로 나누어지는 셈이다. 변산은 능가산, 영주산, 봉래산 등의 이름도 가졌다. 

 

내변산은 300∼400 m의 산지가 이루는 울창한 수림의 산악미·계곡미가 일품으로, 실상사지(實相寺址) 등 유적과 울금바위, 선계폭포9仙溪瀑布), 가마쏘(釜棲) 등 경승지가 있다. 

외변산은 주로 암석해안의 해식애(海蝕崖)와 모래 해안의 백사청송9白砂靑松) 등 해안 경치가 일품이다. 층암절벽의 채석강과 적벽강. 내소사, 개암사, 유천 도요지 등의 명소를 들를 만하다. 부안(扶安)은 백제 때는 개화현(皆火縣)이었다. 신라 35대 경덕왕 16년(697)에 부령(扶寧) 또는 계발현(戒發縣)으로 고쳐 고부군(古阜郡)에 넣었다. 

 

'택리지'에 따르면, '변산의 바깥은 소금 굽고 고기잡이에 알맞고, 산중에는 기름진 밭이 많아 농사를 짓기에 알맞다'고 적혀 있다. ·격포진(格浦鎭) 터 변산면 격포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진(鎭)터. 별장(別將)을 두었다가 헌종 8년(1873)에 혁파. 고종 10년(1873)에 다시 진 설치. ·닭이봉(계봉.鷄峰) 격포항 서쪽에 있는 봉우리. 바로 밑에는 퇴적암의 절벽이 마치 책을 겹겹이 포개 놓은 듯. 금계포란형(金鷄包卵形)이 있다고 전한다. ·

 

계화도(界火島)간척지

변산반도 북쪽 부분. 예부터 인근 어민들의 생활 터전. 한눈에 조망이 가능한 전망대인 계화정(界火亭)이 있다. ·위도(蝟島) 띄뱃놀이로 유명. 곰소에서 건너는 섬. 민속굿인 위도 띄뱃굿 전승. 풍어 기원의 대동(大同)굿. ·

 

개암사(開岩寺) 

상서면 감교리(甘橋里) 소재하는데, 고려 숙종(肅宗) 때에 창건한 절이다. 조선 초기에 건립된 대웅전(大雄殿:보물 292), 동종(지방유형문화재 126) 등이 있다. 북동쪽 산봉우리의 울금바위 유명하다. 울금바위 안엔 3개의 굴이 있다. '원효방'이라고 이름붙은 가장 큰 굴 안에는 석간수(옥천)가 흘러나오는데, 여기서 원효대사가 수도했다고 한다. ·

내소사(來蘇寺) 

변산면 석포리(石浦里)에 있는, 단아하고 고적한 절이다. 대웅전과 삼층석탑 등 중후한 건조물. 신라 27대 선덕여왕 때 창건. 중국 당나라 고종 때 무장이던 소정방이 신라와 연합으로 백제를 공격하면서 이 곳에 들러 '소래사(蘇來寺)'로 했던 것을 '내소사(來蘇寺)'로 고쳤다고 한다. 

대웅보전(大雄寶殿:보물 291), 고려동종(高麗銅鐘:보물 277), 법화경절본사본(法華經折本寫本:보물 278), 내소사 삼층석탑(지방유형문화재 124), 내소사 선실당과 요사(지방유형문화재 125) 등이 있다. 진입로와 경내의 전나무숲이 훌륭하다. 근처에 직소폭포가 있다. ·

직소폭포(直沼瀑布) 

변산팔경의 하나. 직소폭포와 중계계곡의 선경(仙境)을 보지 않고, 변산을 말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변산에서 첫째로 꼽는 명소. ·

월명암(月明庵) 

변산면 중계리(中溪里)의 낙조대(落照臺) 정상부에 가까운 동사면에 6.25전쟁 때 병화를 입은 것을 중건한 신라시대 창건의 월명암(月明庵)이 있다. 그 뒷산인 낙조대(448 m)는 황해로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는 경관이 훌륭하다. ·

하도 (하섬.荷島) 

3만여 평의 작은 섬. 주민 10여 명. 달마다 사리 때 육지와 연결되는데, 조개껍데기 백사장으로 유명하다. 2벽여 종의 각종 식물이 서식한다. ·고사포 해수욕장과 변산 해수욕장 하섬으로 건너는 나루. 그 앞에 원불교(원광대) 임해 수련장이 있다. 

백사장 뒤로는 소나무 숲이 울창하다. 주위에 변산, 상록, 격포 해수욕장 등이 있다. 변산 해수욕장은 호남에서 가장 오랜 해수욕장이다. 근처에 적벽강, 채석강 등의 절경이 있다.

채석강(彩石江)과 적벽강(赤壁江) 

'채석강'은 중국의 이태백이 술에 취해 시를 남고 물 속의 달을 따려다가 물에 빠져 죽은 채석강과 흡사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 해안의 층암절벽이 마치 수만 권의 책을 쌓아 놓은 듯. 바닷물이 썰물에 밀려 나가고 난 뒤의 암반층이 볼 만하다. 적벽강은 지방 기념물 제29호. 붉은색 암반과 절벽. 중국 송나라 때 시인인 소동파가 노닐었다는 '적벽강'에서 따온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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