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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백화산 철제난간 논란

by 한국의산천 2024. 2. 9.

“멋진 암릉 다 망쳐” vs “산 잘타야 즐기나”...백화산 철제난간 논란
[월간산]
[등산안전시설물 논란] (1) 백화산 르포
2022년 사고 우려로 20억 들여 철제 난간 시공... 찬반 갈려

서현우 월간산 기자
사진(제공) : 주민욱 입력 2024.02.09. 15:00

회색빛 암릉 위로 주황색 철난간이 줄지어 박혀 있다.

“산을 완전히 망쳐놨어요.”

어느 날 사무실로 걸려온 전화 속 목소리는 성이 잔뜩 나 있었다. 잠시 진정하기를 기다리자 그제야 어떤 이야기인지 전모가 드러났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이야기는 백화산 칼바위 능선에 지자체가 시설물을 설치했는데, 그것이 정말 보기 흉하다는 것이었다.

”거기가 정말 암릉이 아름다워서 사람들이 많이 찾던 곳이거든요. 그래서 아는 사람들은 주봉인 한성봉보다 더 좋아하는 곳이었어요. 직접 보시면 제가 왜 이렇게 화가 났는지 알 수 있으실 겁니다.”

알고 있었다. 백화산 칼바위 능선은 정말 화려하고 멋있다. 본지도 최근에 노디지털 백패킹으로, 또 갈 만한 산으로 거듭 소개해 온 바 있다. 그리고 늘 백화산을 소개하면서 꼭 주행봉舟行峰(871m)을 거칠 것을 추천하고 있다. 그 이유는 안타까움 때문. 

백화산은 플러스 100대 명산에 속해 등정 인증을 위해 찾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러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주행봉의 존재를 잘 모르고 주봉인 한성봉만 최단거리로 오르내리는 경우가 많다. 백화산의 백미가 주행봉에서 한성봉으로 이어지는 칼바위 능선인 것도 모른 채.

드론으로 살펴본 칼바위 능선 위 철난간.


1시간에 1km밖에 전진 못 하는

그런 칼바위 능선을 “망쳤다”고 얘기한 까닭은 무엇일까? 전화를 끊으며 “사진을 몇 장 보내달라”고 청했다. 몇 분 뒤 도착한 사진을 보니 아리송했다. 낙엽으로 노랗게 물든 암릉 사이에 분명 삐죽빼죽 주황색 난간이 보이긴 했지만 그것을 심하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북한산 백운대 정상부에도 유사한 시설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안전을 위해서 필요한 것 같은데요.“

”그런데 이게 2km나 깔려 있습니다.

“”2km요?”

즉각 담당부서를 찾았다. 백화산은 경북 상주시와 충북 영동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어 어느 지자체 소관인지 먼저 파악해야 했다. 마침 조달청에서 상주시가 백화산에 용역을 발주한 내역이 보이기에 먼저 연락했다. 한참 전화가 돌고, 기다리고, 담당자를 찾고, 하루 뒤 연락한 끝에 해당 구간은 상주시의 관할이 아니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영동군청 산림과에 연락하자 이번엔 담당자와 바로 연결됐다. 그에게 칼바위 능선을 같이 오르자고 요청했으나 시간이 맞지 않아 대신 영동군 숲길체험지도사인 류지동(72)씨를 소개해 줬다. 류씨는 “천태산만 2,400번 오르내렸다”고 자부하는 자타공인 천태산 지킴이다. 그 정도로 고향 산에 대한 사랑이 깊다.

추락할 위험이 높은 절벽 구간에선 철난간이 매우 요긴했다.

“백화산이요? 물론 잘 아는 산이긴 한데 저도 마지막으로 오른 게 10년 전이네요. 거기에 시설물을 설치했다는 얘기는 얼핏 들었는데 어디 한 번 같이 가봅시다.”

산행들머리는 반야교다. 백화산의 대표적인 당일산행 코스는 반야교에서 산림욕장 방면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주행봉에 오른 뒤 백화산맥을 따라 주봉인 한성봉까지 간 후 남릉을 따라 반야교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다. 류씨에게 산림욕장으로 오르겠다고 얘기하자 즉각 고개를 가로젓는다. 

사진도 찍고 취재하는 걸 고려하면 바로 치고 오르는 단축 코스로 가야 해가 지기 전에 내려올 수 있다는 설명이다.

”난이도가 높은 코스인 건 아는데 그 정도로 길이 험합니까?“

”일반적인 등산처럼 1시간에 2km 갈 수 있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여긴 1시간에 1km도 아슬아슬해요.”

반야교에 설치된 등산안내도에 적힌 소요시간을 보니 실제 그랬다. 2.2km에 118분, 2.8km에 113분, 3.7km에 130분 등 범상치 않았다.

지형을 그대로 따라서 철난간이 구불구불 휘어져 있다.


암릉에 폐놀이동산 모노레일 깐 듯

류씨의 말대로 바로 주행봉으로 치고 오르는 등산로에 붙자마자 그가 고개를 가로저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시작부터 끝도 없이 숨 가쁜 오르막이다. 울창한 잣나무 숲에서 한 번 숨을 힘껏 빨아들인 뒤 고도를 부쩍부쩍 높인다. 

석천계곡이 갈라놓은 맞은편 만경봉과 현수봉에 널찍한 등판에 가려져 시야는 도통 시원하지 않다. 한 번 힘줘 오르자 주변 숲은 굴참나무로 바뀌고 길에는 낙엽이 자욱하다. 

비좁은 아파트 통로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답답하지만 내려다보이는 반야사로 눈을 달래본다. 류씨는 “반야사 뒤편에 호랑이 한 마리가 산다”고 말한다. 그가 보여준 사진을 보니 절 뒤편에 바위가 쌓인 모양이 마치 허리를 쭉 내밀고 기지개를 펴는 호랑이 같다.

거의 구불거리지도 않고 그저 우직하게 직진하는 등산로에 점점 바위가 튀어나온다. 맞은편 만경봉과 어깨를 나란히 둘 때쯤 로프를 잡고 오르는 구간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로프가 없어도 충분히 주변 바위를 잘 붙잡고 등산화의 접지력을 잘 믿으면 거뜬히 오를 수 있는 구간이다. 그런데 앞서 가던 류씨가 헛기침을 한다.

”로프를 이렇게 고정시켜두면 어떡해.”

영문도 모른 채 로프를 붙잡고 바위 틈바구니를 비집고 오르자 아찔했다. 막대기처럼 얇은 어린 나무에 로프를 묶어뒀다. 이 로프를 믿고 체중을 실었을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로 당혹스러웠을 터다.

“이건 제가 말해서 최대한 빨리 교체할 수 있도록 할게요. 사실 이거 설치한 기간제 근로자들도 잘 아는 사이거든요. 이거 작업하느라 정말 고생 많았다고 들었는데 참 아쉽네요.”

”왜 이렇게 해뒀을까요?“

”모든 근로자들이 등산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니까 벌어진 일이죠. 그러니 공사할 때 전문가가 옆에서 잘 지도를 해줬어야 되는데 그냥 현장에 맡겨버렸나 봅니다.”

철난간이 설치되기 전인 2021년 칼바위 능선

칼바위 능선도 그랬던 걸까? 서둘러 확인하고자 내친걸음으로 주행봉에 오른다. 

한국지명유래집에 따르면 주행봉이란 이름은 배가 떠나가는 형세를 띠고 있어서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정상은 무덤 한 기가 들어서 있을 정도로 넓다.

‘이제 여기서부터 주봉인 한성봉까지 스릴 넘치는 암릉 산행이 가능한 대망의 칼바위 능선. 험한 절벽이 연달아 나타나며 양쪽으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이어진다. 조망도 사방팔방이 뻥 뚫려 있어 시원하다. 연신 꿈틀거리며 뻗은 자태가 마치 산수화 같아 걸을 때면 그 걸작 속으로 몸을 던지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 메모를 남긴 후 주행봉에서 몇 걸음 내딛는 순간, 다시 수첩을 열고 줄을 쫙쫙 그어 지워버릴 수밖에 없었다. 자연 그대로였으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을 암릉 위로 툭 불거져 튀어나온 난간이 어지럽다. 

 

복잡한 암릉 지형에 맞춰 이리저리 휘어진 모습은 볼썽사납다. 동행한 사진기자는 이걸 도대체 어떻게 찍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무슨 폐허가 된 놀이동산 모노레일 같다”며 “이건 무조건 철거해야 한다”고 혼잣말을 한다. 하지만 류씨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철난간이 설치된 2023년 칼바위 능선. 안전해졌지만 아름다움은 반감됐다. 암릉에 철기둥이 무수히 박혔다.

”등산 실력이 좋은 사람들은 분명 이런 난간이 없어도 쉽게 지나갈 겁니다. 하지만 이 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모두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서 문제예요. 

일반 산악회 사람들은 버스에서 술 먹고 와서 산행하기 일쑤고, 연령대도 고령화됐어요. 지금껏 사고가 정말 빈번했습니다. 영동군청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조치를 한 거죠. 문경 천주산이나 북한산 백운대도 이런 시설물들이 즐비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군청 입장도 헤아려줘야 됩니다.“

”그래도 이건 조금 과한 것 같아요. 등산은 어느 정도 자기책임으로 해야 하는 것 같은데요.“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지자체 입장에선 시민들이 계속 다치고 죽는다는데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이상 손 놓고 있을 순 없잖아요. 

사실은 제가 백화산을 10년 동안 안 찾은 것도 마지막으로 왔을 때 친구가 여기서 발을 헛디뎌서 50m나 추락한 사고 때문이었어요. 배낭이 나무에 걸려서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꽤 크게 다쳤죠. 천만다행으로 장애나 후유증은 안 남았지만 그때의 충격이 너무 커서 그간 안 왔어요. 그 정도로 위험한 곳입니다.”

실제로 걸어보니 류씨의 말에 수긍이 갔다. 멀리서 볼 땐 흉물이었지만, 가까이서 붙잡으니 영물이다. 확실히 몇몇 구간은 안전 난간이 매우 필요했다. 

양쪽으로 추락 위험이 너무 큰 곳도 있었고, 난간을 붙잡지 않으면 클라이밍에 가까운 기술과 힘이 있어야 오를 수 있는 곳도 더러 나왔다. 이 시설물이 있기 전에는 설치된 고정 로프를 통해 오르내렸다고 한다.

하지만 세 가지 안타까움은 해소되지 않았다. 첫 번째는 추락 위험이 전혀, 혹은 거의 없는 일반적인 길에도 난간이 쭉 이어지곤 한다는 것. 두 번째는 암릉 중에서도 가장 돌출된 지형을 따라 박은 탓에 경관 훼손이 몹시 심하다는 점이다. 

유독 돋보이는 주황색으로 칠해둔 탓에 암릉의 정수리가 너저분하다. 조금이라도 이를 피해 아래쪽으로 설치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세 번째는 추락 위험이 있는 방향뿐만 아니라 양쪽을 모두 막은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과거엔 앉아서 조망을 바라보며 쉬었을 바위 앞을 을씨년스러운 추락위험 경고문구와 난간이 가로막는다.

’암릉 위험하다’는 민원에 따라 설치

영동군청 산림녹지과에 따르면 칼바위 능선이 산행하기에 위험하다는 민원이 많았고, 이에 총 20억 원을 들여 이 시설물을 만들었다고 한다. 다른 산처럼 데크 계단을 두지 않은 것은 관리도 어렵고, 시공하기엔 능선이 너무 협소해서 지금의 설계를 따르게 됐다. 

참고한 것은 통영 사량도 지리산의 칼바위 능선 시설물. 그곳에도 이와 유사하게 은색의 난간이 쭉 이어져 있다. 다만 색깔은 안전을 위해 더 눈에 띄게 하려고 일부러 꽃의 색을 따서 칠한 것이라고 했다.

군청이 바란 대로 안전 확보라는 목표는 완벽하게 달성했다. 

이에 과거엔 힘들고 무서웠던 구간이 안전해져 만족스럽다는 여론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더 들어보니 반대로 철거해 달라는 민원도 접수되고 있다고 한다. 양쪽의 첨예한 입장 사이에서 거듭 민원을 받고 있는 그의 처지에 동정이 갔다.

여러모로 씁쓸한 감정을 품은 채 부들재로 진행한다. 하지만 오후 6시에 예보돼 있던 비가 3시간 일찍 내리기 시작해 758m봉에서 골짜기를 따라 내려서는 길로 탈출하기로 했다. 

이정표에는 주차장까지 2.2km라고 쓰여 있지만 실제론 1km 정도 더 길었다. 멀리서 들리는 천둥소리에 급경사 비탈길에 내려간다기보다는 넘어지지 않으려 버티며 아등바등 거리는 것에 가까운 몸짓으로 하산을 서두른다. 8부 능선까지 내려오자 아예 길의 흔적 자체가 희미해진 너덜이라 류씨의 등만을 꼬박 좇는다.

어느덧 칼바위 능선은 보이지 않는다. 분명 머리로는 설치의 취지를 이해하고 있지만, 마음으로는 잊어버리고 싶은 모습이라 굳이 시선을 올려 찾아보려 하지 않고 고개를 휙 돌려 내려섰다.

묘 한 기가 자리잡은 주행봉 정상은 널찍하다.

 

산행길잡이

주행봉 산행은 반야교에서 시작한다. 반야사까지 들어가면 안 된다. 반야교를 건너면 등산안내도 앞에 차를 몇 대 세울 수 있는 공간이 있긴 하지만 가급적이면 반야교에서 200m 전에 대형 버스 5대, 일반차량 30여 대 댈 수 있는 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등산안내도를 바라봤을 때를 기준으로 왼쪽 산림욕장으로 이어진 길을 따르는 것이 정석이다. 주행봉까지 암릉이나 경관이 몹시 빼어나다. 안내도 오른쪽에 바로 주행봉으로 치고 오르는 길은 산림욕장으로 가는 길에 비해 더 짧은 대신 전망이 하나도 없고 오직 오르막이라 피곤하다. 시간이 부족할 때만 선택하는 것이 좋다.

안전시설물 덕에 전반적인 칼바위 능선은 매우 수월해졌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험하다. 게다가 설치된 난간과 로프에 완전히 체중을 싣는 것도 위험 부담이 높다. 따라서 충분히 시간 여유를 갖고 체력과 경력을 쌓은 후 도전하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주행봉을 오른 후 백화산 정상인 한성봉까지 북진한 후 원점회귀하는 10km 코스를 선호한다.

대중교통(지역번호 043)
황간역이 들머리에서 가까워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경부선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서울역에서 단 4회(05:53, 13:03, 17:27, 18:08) 운행하고, 오전 출발은 5시 53분 차량 딱 한 대 뿐이라 당일 산행을 하려면 이를 탈 수 있어야 한다. 불가능하다면 새마을호와 무궁화호가 30분~1시간의 배차간격으로 운행하는 영동역으로 가면 된다. 

영동역에서 바로 택시를 탈 경우 25분, 3만 원선에 들머리로 갈 수 있다. 

택시비가 부담스럽다면 영동역에서 544, 624, 637, 640, 642번 버스를 타고 황간역까지 간 뒤 여기서 택시를 타도 좋다. 10분, 1만 원 정도다. 문의 황간 택시(742-4157, 742-9962, 742-4242).

맛집(지역번호 043)
황간에 왔으면 올뱅이를 먹어야 한다. 올뱅이는 황간 지역에서 올갱이, 즉 다슬기를 부르는 말이다. 안성식당(742-4203)은 현지인들뿐만 아니라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이 높은 맛집이다. 

과거에는 허름하고 정겨운 식당이었는데 이젠 리모델링을 거쳐 식당 내부는 깔끔하고 주차장은 널찍하다. 

올뱅이국밥(1만 원, 특 1만3,000원), 올뱅이비빔밥(1만 원), 능이버섯 올뱅이국밥(2만5,000원), 자연산잡버섯 올뱅이국밥(1만5,000원). 시원하고 얼큰한 국물에 다슬기의 식감과 향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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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족불욕(知足不辱)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지지불태(知止不殆)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가이장구(可以長久) 오래도록 편안할 것이다.  - 노자 도덕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