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핑이 최고의 특산물… ‘뉴 양양’에 가보셨나요?
[아무튼, 주말]
동해대로 달리며 즐기는
강원 양양 新舊여행
한은형 소설가 입력 2021.05.22 03:00
7번 국도를 달리고 있으면 내 옆에 바다가 따라온다는 기분이 든다. 내가 빠른가 바다가 빠른가 내기하는 듯도 싶은데, 속도를 낮추면 다른 감각이 밀려온다. 오래된 연인처럼 같은 곳을 보며 나란히 가고 있다는 생각. 그래서 7번 국도 달리는 것을 좋아한다. 이제는 ‘동해대로'로 이름이 바뀐 그 길을 말이다.
오른쪽으로는 바다가 펼쳐지고, 앞으로는 점점 산이 다가온다. 산의 능선이 길어지고 깊어지고, 그런 산으로 첩첩이 둘러싸인 느낌을 받는 그 순간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할까. ‘호가호위'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여우가 호랑이 기운을 빌려 호기를 부리는 것처럼 나도 산 기운을 빌려 호기를 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음이 부풀고, 어깨가 펴질 때가 바로 그때다. 산으로 둘러싸인, 그래서 더 안온한 기분이 드는 바다에 진입한 것이다.
이 위풍당당한 느낌! 내가 보는 강원 양양의 매력은 바로 이것이다. 바다만 있지 아니한 것.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 산이 그냥 산도 아니고 심산유곡이다. 그런데 어디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 물의 이랑을 보여주는 바다만 있나? 여기는 ‘송어와 연어의 고장, 양양’ 아닌가. 또, 서핑하는 사람들이 몰려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어 가고 있는 ‘뉴 신(scene)’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계절이 바뀔 때 이곳에 온다.
이국적 정취 물씬한 서피비치에는 사진을 멋지게 찍을 수 있는 다양한 ‘포토 스폿'이 있다.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바다가 펼쳐지고, 산은 점점 다가오고
영동고속도로의 끝인 강릉까지 와야 한다. 강릉에 닿기 전, 갑자기 자욱해지는 안개와, 차 엔진이 유난히 부릉대는 것을 느낄 때 표지판을 보면 대관령이다. 대관령을 넘고 있는 것이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영동 지방의 관문이다. 그렇게 긴 터널을 지난다. 이제는 고개를 넘는 게 아니라 터널을 통과할 뿐인데 대관령의 이물감은 강렬하다. 귀가 먹먹하고, 정신도 멍해지면서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느낌.
강릉으로 나와서 7번 국도를 탄다. 그러면 지도에 누워 있던 한국의 영토가 몸을 일으켜 입체감을 띠는 기분이 든다. 영동고속도의 끝인 강릉까지 달리면 국토의 옆구리를 가로지른다는 생각이 드는데, 다시 바다를 옆에 둔 채로 북상하면 수직으로 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횡단과 종단이 이런 것이라는, 종횡의 감각이 아로새겨진달까.
강릉에서 30분을 북쪽으로 달리면 양양이다. 양양에서 또 30분 위로 달리면 속초, 속초에서 또 30분 가면 고성이다. 강릉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동해, 동해에서 아래로 가면 삼척. 그러니까 삼척에서 고성까지, 바다를 오른쪽으로 두고 위로 올라가는 길을 ‘낭만 가도'라고 부른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양양은 속초와 강릉이라는 영동에서 가장 큰 도시 사이에 있어 두 도시 어디로든 가기도 좋은데, 양양에만 있어도 할 것이 많다.
정종 때 처음 세워진 하조대 정자 주변을 소나무와 암석이 둘러싸고 있다.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경포대, 죽서루가 부럽지 않은 이곳
아침 일찍이라면 양양에서 가장 동쪽으로 뻗어 있는 하조대를 권한다. 비 오는 날, 아무도 없는 하조대에 갔다가 나는 바로 이런 걸 가리켜 절경이라 한다는 걸 알았다. 하늘과 산, 바다와 소나무, 안개와 모래, 비와 풀 사이에 기암괴석이 있었다. 하조대에 세운 정자는 그다지 근사하지 않다. 색이 충분히 바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선 정종 때 처음 세운 것이 계속 훼철됐다가 1998년에야 복원되어서인지 시간의 유장함이 부족하다. 그러나 정자를 둘러싸고 있는 이 모든 것, 특히 화강암으로 된 기암괴석과 동해안에서 가장 오른쪽으로 솟아 나온 듯한 지리적 특성 덕분에 광경이 현란하다. 이곳에서 보는 바다의 윤슬은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여기에 서서 감탄하고 있다 보면 왜 관동팔경에 들지 않았느냐는 의문을 갖게 된다. 삼척 죽서루와 강릉 경포대에 미치지 못할 게 무언가라고 말이다. 안내판을 읽다 알았다. 하륜과 조준이라는 사람이 만난 곳이라 두 사람의 성인 ‘하’와 ‘조’를 따서 ‘하조대’가 된 것인데, 둘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관동팔경에 대한 예찬이 나오는 정철의 관동별곡은 조선 선조 때 글이지만, 관동의 비경을 꼽아 칭송하는 ‘관동팔경’은 이미 고려 시대 이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내려오던 것이 아닌가.
하륜과 조준이 더 일찍 만났다면 하조대가 관동팔경에 들지 않았을 리 없다 생각하며 나는 한 발만 내디디면 바로 절벽인 그곳에 서 있었다. 남해의 강진만 땅끝이 아니라 여기도 땅끝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하조대 인근 나무 덱으로 조성된 둘레길을 걸으면 바다 위에 떠 있는 기분이 든다.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정자만 있는 게 아니다. 옆에는 하조대 등대가 있고, 하조대 전망대까지 내려오면 나무로 새로 조성한 하조대 둘레길이 있다. 1km가 안 되는 짧은 길이지만 둘레길을 따라 걸으니 바다에 떠 있는 기분이 든다.
◇양양의 특산물, 서핑도 맛보셨나요?
하조대와 송이와 연어만 있는 게 아니다. 송이와 연어에 이은 양양의 특산물, 서핑이 있다. 양양은 서핑하는 사람은 물론 서핑을 하지 않아도 서핑이라는 특색의 혜택을 누리기 좋은 곳이다.
서핑을 하는 사람들은 한국의 계절을 세 가지로 구분한다고 한다. 물속이 물 밖보다 따뜻한 계절, 물속이 물 밖보다 추운 계절, 그리고 서핑을 위한 계절이라고 할 수 있는 여름. 바닷물은 땅보다 늦게 데워지고, 늦게 식는다. 바닷물과 땅의 온도는 다른 것이다. 그래서 의외로 한겨울에도 서핑을 즐기는 사람이 꽤나 많다. 그렇다면 바닷물은 언제가 가장 차가울까? 봄이다. 3월에 가장 차갑다고 한다. 이때 서핑하기란 상당히 난감한 일이다. 4월 말에 서핑 시즌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양양에 가고 싶었다. 하나둘 뛰쳐나왔을 서퍼들을 보려고 말이다.
서피비치에서는 수영도 금지, 튜브도 금지다. 오로지 서핑만을 위한 해변이다.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일단 서피비치가 있다. 서피비치는 서핑 초심자들을 위한 입문용 해변이다. 하조대IC로 나와 10분 안에 닿아 접근성도 좋다. 강릉에서 동해대로를 타고 온다면 하조대 해수욕장으로 들어와 중광정 해수욕장을 지나면 바로 서피비치다. 서피비치 앞에는 아직 정비되지 않은 광활한 공터가 있는데 주차는 거기에 하면 된다.
서피비치는 이름 그대로 서핑을 위한 비치다. 그래서 여기서는 튜브도 금지, 수영도 금지. 오로지 서핑만 허용한다. 그렇다고 서퍼만 가는 곳은 아니다. 서핑하는 사람들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 관상용 해변이랄까.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나 같은 사람이 아주 많고, 그래서 다른 해변과는 다른 독특한 풍경이 생겼다. 그래서 올 때마다 바라보게 되는데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건다. “줄 선 건가요? 사진 찍으려고?” 내가 바라보고 있던 곳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포토 스폿이었고, 그분은 내가 대기 중이라고 생각한 거다. 재빨리 아니라고 안심시켜 드린다. 그렇다. 이곳은 수년째 ‘인스타그래머블’하다.
“약간 이국적이네.” 내 옆을 지나가는 젊은 남자가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다. 그의 말에 답이 있다. “이국적인 청정 해변에서 즐기는 짜릿한 설렘”이라며 서피비치 측에서 내세운 셀링 포인트에 사람들이 응답한 거다. 흰색과 베이지색으로 단순화된 빈백과 해먹이 모래 위에 있는 풍경은 그 자체로 마음을 순하게 한다. 여기에 서핑 강습을 받는 이들의 조용한 열기와 이 모든 걸 보러 온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활기가 더해진다. 낮에는 간단한 차와 음식을 파는 카페테리아였다가 밤에는 맥주와 칵테일을 파는 라운지 펍으로 바뀐다.
서피비치에서는 수영도 금지, 튜브도 금지다. 오로지 서핑만을 위한 해변이다.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서피비치에서 강릉 방면으로 차를 타고 10분 정도 내려오면 인구해변과 죽도해변이 있다. 여기에 서핑하러 양양에 왔다 서핑과 양양에 빠져 눌러앉게 된 사람들이 만들어낸 ‘뉴 양양’이 있다.
좀 더 넓게 잡으면 동산해변까지 이어지는데, 인구해변부터 동산해변까지가 대략 2km 정도다. 이 길에는 햄버거 집, 피자 집, 태국 식당과 인도네시아 식당, 브루어리 펍, 카페, 라운지바가 있고, 서핑 학교와 게스트하우스와 서핑 카페가 있다. 작은 해방촌 같기도 하고 작은 망원동 같기도 한 이 거리를 ‘양리단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길을 만든 건 서핑 슈트를 입고 걸어다니는 사람들과 젖은 머리가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가꾸고 있는 한국에는 없던 라이프스타일이다. 맨발에 모래를 묻힌 채 걷는 게 더 자연스러운 곳이다.
해변 인근 카페테리아 ‘선셋바'에선 낮에는 차와 음식을, 밤에는 맥주와 칵테일을 즐길 수 있다.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5일장 둘러보고 노포서 회냉면 한 그릇 어때요?
양양 5일장도 상당히 볼만하다. 4일과 9일에 열리는데, 양양 구시가에 활기가 돌면서 모든 점포와 좌판의 문이 활짝 열린다. 건어물, 해산물, 산나물, 꿀과 말린 지 얼마 안 된 신선한 약재를 구경하다 보면 계속 사게 된다. 특히 송이 철인 9월에 가면, 어느새 송이 값을 흥정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시내에 있는 단양면옥은 양양에 올 때마다 간다. 여기서 가자미 무침을 올린 회냉면을 먹으면 그렇게 된다. 비빔냉면의 결과 가자미무침의 양념이 이보다 잘 어울릴 수 없다는 생각에 다른 건 먹어볼 생각을 못 했다. 막국수와 수육도 있다. (033-671-2227)
양양 시내에 있는 ‘단양면옥'의 회냉면. 가자미 무침의 양념과 비빔냉면의 결이 입속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동산해변에 있는 햄버거집 파마씨도 자주 간다. 분홍색 문이 있고, 잘 꾸민 정원 때문에(게다가 바다 풍경) 외관에 치중하느라 맛은 소홀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나의 편협한 생각이라는 걸 햄버거가 나오자마자 알 수 있었다.
‘맛있게 보이는 음식이 맛있다’는 게 나의 지론인데, 이 집 음식도 그랬다. 스리라차 소스를 햄버거에 주사기처럼 꽂아놓아 매운 맛을 조절할 수 있게 해놓은 섬세함에 웃음 짓게 된다. (070-8810-6486)
인구면사무소 옆에 있는 하이타이드는 태국과 서핑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양양에 연 태국 식당으로 보인다. 이곳을 추천하는 이야기만 듣다가 처음 가보았는데 진작 가지 못한 것이 애석할 정도로 충만하고 기분 좋은 식사였다.
바질 돼지고기 덮밥이 특히 맛있다. 바질을 피시 소스와 볶으면 이런 맛이 난다는 걸 느낀 각성의 순간이기도 했다. 창, 싱하, 레오 맥주 같은 다양한 마실거리도 음식의 흥을 돋운다. (0507-1409-0781)
강원도 양양 여행지. /그래픽=김현국
지족불욕(知足不辱)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지지불태(知止不殆)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가이장구(可以長久) 오래도록 편안할 것이다. - 노자 도덕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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