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전 치열했던 최전선… ‘국가숲길 1호’를 걸어보세요
강원 양구
정성원 기자 입력 2021.05.28 03:00
지난 26일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DMZ 펀치볼 둘레길’. 소나무 두 그루가 나란히 정답게 서 있는 ‘부부 소나무’ 전망대에 올라서자 화채 그릇처럼 움푹 팬 해안면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을을 감싼 산자락 너머로 백두대간 향로봉이 웅장한 자태를 뽐냈다. 가칠봉 능선에 외로이 서 있는 을지전망대가 눈에 들어왔다. 마음대로 오갈 수 없는 북녘 금강산 자락도 눈앞에 펼쳐졌다. 박진용(69) 숲길등산지도사는 “해안면 DMZ 펀치볼 둘레길에선 자연의 아름다움과 분단의 아픔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DMZ 펀치볼’은 가칠봉과 대암산, 도솔산 등 1200m 안팎의 봉우리가 왕관처럼 둘러싼 분지다. 소나무 두 그루가 나란히 서 있는‘부부 소나무’전망대에선 화채 그릇처럼 움푹 팬 펀치볼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최근 국내 첫‘국가숲길’로 지정된 DMZ 펀치볼 둘레길에선 잘 보존된 자연생태의 포근함과 분단 현장의 긴장감을 함께 체험할 수 있다. /남강호 기자
2011년 조성된 DMZ 펀치볼 둘레길은 남한 최북단 둘레길이다. 평화의 숲길, 오유밭길, 만대벌판길, 먼멧재길 등 4코스로 총 73.22km에 이른다. 민간인 출입 통제선 안쪽에 자리해 둘레길을 조성하기 전에는 일반인 출입이 제한됐다. 산림청은 지난 1일 DMZ 펀치볼 둘레길을 국내 첫 ‘국가숲길’로 지정했다. 생태적 가치와 함께 분단의 현장이라는 역사·문화적 가치를 높게 평가한 것이다.
◇국내 첫 국가숲길
박 지도사를 따라 오유밭길을 걸었다. 총 21.1km로, 방문자 센터를 출발해 오유리 마을과 대우산, 도솔산 자락을 지나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코스다. 마을길에선 새하얀 감자꽃이 탐방객에게 여름이 왔음을 알렸다.
한적한 마을길을 따라 1시간 남짓 걷자 초록 숲으로 향하는 ‘비밀의 문’이 나타났다. 철조망으로 가로막힌 입구에 ‘입산 금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박 지도사는 “단독 산행 등을 막으려 철조망을 설치했다”면서 “숲길등산지도사만 철조망을 열고 닫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곳곳에서 분단의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탐방로를 따라 길게 늘어선 철제 철조망엔 지뢰 위험을 알리는 경고 문구가 선명했다. 하지만 맑은 하늘 아래 푸른 오솔길을 걷다 보면 마음이 평안해졌다.
졸방제비꽃과 금방울꽃, 쪽두리꽃 등 수줍게 핀 야생화, 청아한 계곡물 소리가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이날 남편과 함께 둘레길을 찾은 박하늘(34)씨는 “수십 년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서인지 탐방로에서 다양한 야생화 군락을 만났다”며 “숲길등산지도사에게 설명을 들으며 걸을 수 있어 참 좋다”고 말했다.
DMZ 펀치볼 둘레길에서 볼 수 있는 지뢰 경고 문구. 탐방객은 숲길등산지도사와 동행해야 한다. /남강호 기자
◇천혜의 자연과 분단의 상징을 함께 만나
해안면은 가칠봉과 대암산, 도솔산, 대우산 등 해발 1100~1300m 봉우리가 왕관처럼 둘러싼 분지다. 면적은 61.76㎢로, 서울 여의도(2.9㎢)의 20배가 넘는다. 광복 후 북한 통치를 받았지만, 6·25 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로 꼽히며 남한 땅이 됐다.
도솔산 전투, 대우산 전투, 가칠봉 전투 등 치열한 고지전(高地戰)이 이어지며 국군 수천 명이 산화했다. 쏟아지는 포탄에 폐허가 됐지만, 해안면 산하는 전쟁의 상흔을 딛고 거대한 숲을 스스로 일궈냈다. 강효정 민북지역국유림관리소 주무관은 “70년 넘게 사람 손이 닿지 않은 곳이라, 둘레길 곳곳에서 천혜의 자연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곳을 재건촌(再建村)으로 조성하려 1956년 160가구(946명), 1972년 100가구(500여명) 등 두 차례에 걸쳐 외지인을 이주시켰다. 민간인 출입 통제선 안에 자리한 탓에 1990년대 초까지 마을 주민들이 통행증을 이용해 외부 출입을 해야 했다.
평화의 숲길은 군사분계선과 직선으로 약 2km거리에 있다. 군사분계선 상징물인 벙커와 교통호, 월북 방지판, 철책 등을 만날 수 있다. 만대벌판길을 걷다 보면 성황당을 지키는 졸참나무 보호수를 마주치고, 먼멧재길에선 지뢰밭 길을 통과한다. 지정된 둘레길을 벗어난 일부 지역에는 아직도 지뢰가 매설된 곳이 있기 때문에 숲길지도사가 반드시 동행해야 한다.
둘레길 탐방을 위해선 인터넷(www.dmztrail.or.kr)이나 전화(033-481-8565)로 3일 전까지 예약해야 한다. 하루 탐방 인원은 200명으로 제한된다.
◇지리산·백두대간·대관령도 국가숲길 지정
지리산 둘레길과 백두대간 트레일, 대관령 숲길 등 3곳도 지난 1일 국가숲길로 지정됐다. 지리산 둘레길(289km)은 전북 남원과 전남 구례, 경남 산청·함양·하동의 지리산을 중심으로 조성한 둘레길로, 지리산의 수려한 경관을 엿볼 수 있다.
강원 인제·홍천·평창·양구·고성 등 지역 5곳을 잇는 백두대간 트레일은 국내 100대 명산으로 꼽히는 방태산과 대암산, 점봉산을 지난다. DMZ 펀치볼 둘레길과 연결된다.
강원도 영동과 영서의 관문인 대관령 일대에 조성된 대관령 숲길에선 양떼목장 등 지역 대표 관광지도 둘러볼 수 있다. 조인묵 양구군수는 “국가숲길로 지정된 DMZ 펀치볼 둘레길을 을지전망대, 제4 땅굴 등 안보 관광지와 연계해 특색 있는 관광 벨트로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펀치볼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은 ‘펀치볼(Punch Bowl)’로 통한다. 도솔산과 가칠봉 등 해발 1000m가 넘는 산자락이 둘러싼 거대한 분지 지형인데, 6·25전쟁 당시 외국 종군기자가 움푹 파인 화채 그릇 같다며 이 같은 별명을 붙였다.
정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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