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의 봄] 수행하며 해탈에 이르는 ‘달마의 길’
글 손수원 기자 사진 김종연 기자 입력 2021.03.26 09:20
2017년 달마산 옛길 정비해 개통… 총17.7km 4개 코스마다 특색
달마산 기암괴석 사이에 둥지를 튼 도솔암. 남도 바다가 훤히 바라다 보이는 속세의 풍광이 아름답기만 하다.
인도 파사국의 왕자였던 ‘달마達摩’는 중국으로 건너가 소림사에서 9년간 면벽수련을 한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 이를 계기로 달마대사는 이전의 경전 중심의 교종 불교를 탈피해 좌선 중심의 선종禪宗을 창시했다. 선종은 글씨나 불경을 잘 모르더라도 참선을 통해 수행하고 선행을 쌓으면 누구나 부처의 가르침을 깨달을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체계적인 불경 공부로 깨달음을 구할 수 있다는 교종이 득세하던 중국에서 선종을 주창한 달마는 배척당했고, 결국 여섯 번이나 독을 맞아 죽임을 당한다. 하지만 달마는 죽은 것이 아니었다. 다만 이 세계와 인연이 끝났음을 알았고, 여섯 번째 독약을 먹고 속세를 떠난 것이었다.
3년 뒤 달마는 파미르고원에 나타나 주장자(선사가 가지고 다니는 지팡이)에 신발 한 짝을 걸고는 서쪽(인도)으로 되돌아갔다. 그런데 서쪽이 아닌 동쪽의 나라, 그중에서도 해남에 달마의 이름을 딴 산이 있는 연유가 궁금하다.
도솔암 바위 능선이 훤히 올려다 보이는 미황사.
달마산 훼손 안타까워 자연 친화적으로 조성
이에 대해서는 미황사의 옛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달마산達摩山(489m)은 달마대사의 법신法身이 계시는 곳’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보면 ‘고려시대인 1218년, 중국 남송의 배가 해남 앞바다에 표류했는데, 일행 중 한 명이 달마산을 보고 ‘이름만 듣고 멀리 공경해 마지않았더니 가히 달마대사가 살고 계실 만하다’며 감탄했다’는 내용이 있다.
달마산은 낮은 산임에도 설악산 공룡능선 못지않은 암릉을 뽐낸다. 관음봉~불썬봉~도솔봉까지 약 6km 능선은 ‘남도의 금강산’이라고 불린다. 2017년 11월, 달마산 주변 7~8부 능선에 있는 옛길을 이은 둘레길이 탄생했다. 그것이 바로 ‘달마고도達摩古道’이다.
달마고도는 기존에 있던 임도와 옛길을 이었다.
‘천년의 세월을 품은 태고의 땅으로 낮달을 찾아 떠나는 구도의 길’이라는 긴 수식을 달고 있는 달마고도는 미황사 주지 금강스님이 땀과 노력으로 만든 길이다. 1,0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옛길에는 철심과 말뚝, 밧줄이 난무했다. 금강스님은 달마대사의 법신이 모셔진 달마산이 이렇게 훼손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옛길을 이어 자연 친화적인 치유의 길로 만들었다.
250여 일 동안 날마다 40여 명의 인부가 지게와 손수레에 돌을 실어 날랐고 손과 삽으로 돌을 깔아 길을 내었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기계는 일절 쓰지 않았다. 산비탈을 깎아야 하는 구간에서도 오롯이 사람의 손으로 길을 만들었다. 그렇게 옛길을 자연친화적으로 이은 달마고도는 미황사에서 출발해 큰바람재~노시랑골~몰고리재를 지나 미황사로 되돌아온다. 총 길이는 4개 코스에 17.7km이며 한 바퀴를 다 도는 데 6시간 정도 걸린다.
달마산 바위에서 떨어져 나온 너덜겅지대를 걷는다.
수많은 너덜겅에 새겨진 세월
박미례·김용일 달마고도 트레킹가이드와 함께 1코스를 걷는다. 미황사에서 출발해 큰바람재에 이르는 길로 2.71km 거리다. 달마산의 특징인 너덜지대와 암자 터, 계곡과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길이다.
“달마고도는 코스마다 별칭이 있어요. 1코스는 ‘출가의 길’, 2코스는 ‘수행의 길’, 3코스는 ‘고행의 길’, 4코스는 ‘해탈의 길’이에요. 스님이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기도 하고, 코스마다 각기 다른 특징에서도 이를 연상할 수 있어요.”
김용일 가이드가 달마고도의 스토리텔링을 재미있게 풀어낸다.
달마고도 초입에 있는 비석.
남도 특유의 난대림 숲이 나타난다. 동백나무와 굴참나무, 시누대가 자라는 숲을 지나면 편백나무가 나타나고 그 사이에서 소나무가 넌지시 몸을 드러낸다. 어느 순간엔 참나무와 예덕나무도 나타난다. 발밑에서 조용히 고개를 드는 야생화도 이 길의 주인공들이다.
“이게 너덜겅지대예요. 달마고도에선 특히 자주 마주쳐요. 다른 곳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달마산의 자랑이죠.”
달마산은 1억4,400만~6,500만 년 전인 중생대 백악기 때 격렬한 조산과 화산활동으로 형성됐다. 오랜 세월 바위가 얼고 녹는 것을 반복하면서 바위가 깨져 떨어지고 바람에 깎이면서 너덜겅이 생긴다. 너덜겅은 지질학용어로 애추崖錐 또는 스크리Scree라고 부르는데, 모서리가 날카롭게 각진 것이 특징이다.
달마고도에서는 다양한 수종의 나무와 바위, 꽃들을 볼 수 있다.
“돌을 잘 살펴보세요. 녹이 슨 것처럼 붉게 물들었죠? 규암硅岩이라서 그래요. 규암에는 철분 성분이 함유되어 있거든요. 유리를 만드는 게 이 규암이에요.”
박미례 가이드는 “전라도 사람이 ‘산돌’이나 ‘산독’이라고 부르는 게 다 이 규암”이라며 “규암이 물에 녹으면 수정水晶이 자란다”고 덧붙였다.
길을 걷는 도중 만나는 이정표에는 관음봉으로 오르는 산길을 가리키는 것도 있다. 산 주변을 두르는 길이다 보니 적당한 곳에서 능선으로 치고 오르면 곧바로 달마산 등산을 즐길 수도 있다.
달마고도를 걷다 보면 수시로 너덜겅 지대를 지나친다.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달마고도의 자랑이다.
“이 길은 2010년 입적한 법정스님과도 인연이 있어요. 법정스님, 금강스님 모두 속세에서 고향은 해남이었어요. 스님이 된 이후에도 두 분은 친분이 많으셨죠. 법정스님이 입적하기 며칠 전 금강스님이 직접 동백꽃과 매화를 드리면서 ‘스님, 고향에는 동백꽃이 만발했습니다. 매화도 꽃망울을 터뜨렸고요. 쾌차하셔야죠’라고 말했는데, 법정스님은 말없이 눈물만 흘리셨다고 해요.”
이런 인연으로 금강스님은 법정스님의 다비식 이후 후 재를 가져와 1구간의 어느 소나무 아래 모셨다고 한다.
코스를 완주하고 스탬프를 찍으면 완주 인증서를 받을 수 있다.
두 곳의 너덜겅지대를 더 지나 큰바람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크게 튼다. 이제부터는 왼쪽으로 완도 바다가 보인다. 이제까지 걸었던 길과는 또 다른 섬 분위기다. 마치 섬 산을 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다.
관음암 터에 이르러 스탬프를 찍고 1코스 걷기를 끝낸다. 사진 찍으며 쉬엄쉬엄 걸어 두 시간이 걸렸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눈과 귀가 쉴 틈이 없었다. 옛길에 담긴 사연이 그렇게도 많았다.
관음암 터의 작은 연못에 올챙이가 깨어났다.
만불상에 들어선 도솔암
1코스 걷기를 마친 후 곧바로 달마산 도솔암으로 향했다. “전 코스를 모두 걸을 수는 없어도 도솔암만은 꼭 봐야 한다”는 박미례 가이드의 말을 따랐다.
도솔봉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오솔길을 따라 암자를 찾아 나선다. 왼쪽으로 땅끝마을과 남해바다가 펼쳐진다. 달마산의 기암이 바다와 어우러져 1,000m 고산 못지않은 장쾌한 풍광을 만들어 낸다.
“이 수많은 바위를 만불상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달마산에서 삼배를 하면 곧 삼만 배를 한 것과 같다고 하지요.”
오솔길은 딱 한 사람이 걸을 만한 넓이다. 맞은편에서 사람이 오면 어김없이 몸을 옆으로 틀어 비켜 주어야 한다. 그럼에도 주말이나 명절이 되면 제법 많은 이가 도솔암을 찾는다.
“일몰 명소예요. 진도 쪽 바다 섬 사이로 석양이 지는 모습이 천하비경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남쪽 완도 앞바다에 보름달이 뜨면 바다 전체가 하얗게 빛납니다. 이 하얀 월광月光이 다시 달마산의 바위를 비추니 바다와 산 전체가 하얀색으로 물들지요.”
도솔암은 새 둥지처럼 완벽하게 바위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미륵의 세계로 들어서는 관문 같다. 어떻게 이런 곳을 찾았고 암자를 세웠는지 감탄스럽기만 하다.
도솔암 마당에 서서 바위 너머로 바라보는 바다가 어느 속세의 풍경인가 싶다. 이 작은 둥지에 몸을 감추고 있는 그 짧은 동안엔 갈등이나 분노, 걱정 따위를 내려놓고 온전한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것이 달마대사가 말한 선을 실천해 깨달음을 얻는 길이기 때문이다.
‘365일 달마고도워킹데이’에 참여하세요!
달마고도·두륜산 등 14개 소 중 1곳 방문해 인증샷 업로드하면 끝
해남군(군수 명현관)은 해남의 산과 숲길을 걷는 ‘365일 달마고도워킹데이’를 4월 25일까지 비대면으로 진행한다.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인증용품을 받는 것. 카카오톡 채널(365일 달마고도 워킹데이)를 통해 이름과 연락처를 남기면 수건 형태의 인증용품을 받을 수 있다(선착순 1,000명).
인증용품을 받으면 행사기간 동안 인증지점 중 한 군데 이상을 방문해 사진을 찍어 본인의 SNS에 해시태그(#365일달마고도워킹데이 #달마고도 #해남군 #여행의시작땅끝해남)를 달아 업로드하면 된다.
인증지점은 달마산 8개소(달마고도 완주 스탬프함 6개소, 달마봉, 도솔암), 두륜산 3개소(가련봉, 두륜봉, 노승봉), 갈두산 2개소(땅끝전망대, 땅끝탑), 흑석산 1개소(깃대봉) 등 14개소이다.
아울러 행사기간 중 인스타그램 인증샷 이벤트도 함께 진행한다. 인증샷을 업로드 후 해남군 공식 인스타그램(instagram.com/haenampr) 이벤트 페이지에 ‘참여완료’ 댓글을 달면 추첨을 통해 숙박권과 디저트 세트 기프티콘 등 경품을 증정한다.
문의 해남군 관광과 061-530-5157~9
‘남해의 금강산’ 달마산
달마산達摩山의 높이는 489m밖에 되지 않지만 ‘남해의 금강’이라고 불릴 정도로 볼거리가 넘친다. 특히 산 능선에서 바라보는 서해 낙조는 남도 제1경으로 알려져 있다. 달마산 능선은 들쭉날쭉한 기암괴석이 솟구쳐 있어 여느 큰 암릉 못지않다.
달마산 산행은 미황사 기점 코스가 기본이다. 미황사로 들어서기 전 오른쪽 임도를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잠시 길을 따르면 ‘작은 금샘 0.8㎞, 미황사 0.2㎞’ 안내판이 나타난다. 여기서 숲길을 따라 20분쯤 더 가면 바위가 나타난다.
달마산 등산지도 / ©동아지도 제공
고정로프를 붙잡고 오르거나 데크계단을 이용한다. 우회로도 잘 나있다. 달마산 정상에는 돌 봉수대가 있다. 하산은 문바위 직전, 문바위 안부, 작은금샘 갈림목에서 미황사로 돌아갈 수 있다.
등산 거리는 약 7㎞에 3시간 정도 걸린다. 더 긴 산행을 원한다면 정상에서 북릉을 타고 농바우재나 바람재까지 능선을 탄 뒤 송촌마을로 내려선다.
송촌마을에서 시작해 능선을 타고 달마봉을 거쳐 미황사, 또는 도솔봉까지 내리 걷는 종주 산행도 인기 있다.
바람재에서 정상으로 이어진 능선이 이 코스의 하이라이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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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족불욕(知足不辱)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지지불태(知止不殆)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가이장구(可以長久) 오래도록 편안할 것이다. - 노자 도덕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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