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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전등사 겨울 풍경

by 한국의산천 2021. 1. 9.

40년만에 다시 돌아온 강추위 더구나 폭설까지 내려주어 겨울맛을 제대로 느끼는 날

맹추위속에 하늘은 더 없이 파랗게 열리고 있었던 탓에 나갈수 밖에 없었다

강화도 전등사를 향하여 출발 

 

쉬면서 즐기자고 하는 취미활동이 일이 되어서는 안된다

천천히 느긋하게 · · ·

 

강화도에는 보문사와 전등사라는 유명한 사잘이 자리하고 있다

서울과 근교에서도 둘러보기 좋은곳으로 바다 풍경과 함께 당일로 돌아보기도 좋은 곳이다.

 

강화도 정족산안에 자리한 전등사 둘러보기

중학교때 인천에서 이곳으로 수학여행와서 이곳 근처 여관에서 묵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그 여관은 폐가가 되어 남아 있는듯... 

 

전등사로 들어가는 정족산 삼랑산성 동문

기온은 차가웠지만 공기는 맑고 투명했으며 하늘은 파랗고 청안한 날입니다

 

동문으로 들어서면 왼쪽으로 남문이 가까이 보인다.

 

전등사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정족산 삼랑성 안에 있는 절로서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에 아도 화상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대웅전 기둥위에서 지붕을 떠 받들고 있는 나부상

 

전등사

         - 고 은

 

강화 전등사는

거기 잘 있사옵니다

옛날 도편수께서

딴 사내와 달아난

온수리 술집 애인을 새겨

냅다 대웅전 추녀 끝에 새겨 놓고

네 이년 세세생생

이렇게 벌 받으라고 한

그 저주가

어느덧 하이얀 사랑으로 바뀌어

흐드러진 갈대꽃 바람 가운데

까르르

까르르

서로 웃어대는 사랑으로 바뀌어

거기 잘 있사옵니다

 

시인 고은 선생은 효봉스님의 제자로 출가를 하였고 해인사에서 4.19를 거쳐 속리산 법주사 주지로 임명을 받고 법주사를 전등사 주지와 교환하여 전등사 주지를 역임(1967년).

 

대체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신성한 법당에 웬 벌거벗은 여인인가 하고 궁금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나부가 아니라 원숭이로 간주하는 경우도 있다. 원숭이는 사자나 용과 마찬가지로 불교를 수호하는 짐승으로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의 사찰에 모셔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등사 대웅전의 조각상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나부상이라는 데 의견이 더 많다.

 

사랑을 배반하고 떠난 도편수의 연인인 나부상(나녀상 裸女像)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은 이렇다
전등사는 160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한 가운데 여러 차례 화재를 겪고 이 때문에 대웅보전도 여러 번 중건되었다. 그 중 지금의 나부상이 만들어진 것은 17세기 말로 추측된다.

 

전등사 홈페이지에 따르면...
당시 나라에서 손꼽히는 도편수가 대웅보전 건축을 지휘하고 있었다. 고향에서 멀리 떠나온 그는 지리적 특성으로 섬에 들어오면 수개월째 바깥출입을 할 수 없었던 탓에 외로움을 달래려 사하촌의 한 주막을 찾았고 그곳 주모와 눈이 맞았다. 사랑에 눈이 먼 도편수는 돈이 생길 때마다 주모에게 모조리 건네주었다.

"어서 불사 끝내시구 살림 차려요."
"좋소. 이 일이 끝나면 우리 그림 같은 집 한 채 짓고 오순도순 살아봅시다."

도편수는 주모와 함께 살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대웅보전 불사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사 막바지에 이른 어느 날 그 주막으로 찾아가보니 여인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며칠 전에 야반도주를 했수. 찾을 생각일랑 아예 마시우."
이웃집 여자가 말했다.


도편수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여인에 대한 배반감과 분노 때문에 일손이 잡히지 않았고 잠도 오지 않았다.

그래도 도편수는 마음을 다잡고 대웅전 공사를 마무리했다. 공사가 끝나갈 무렵 대웅전의 처마 네 군데에는 벌거벗은 여인이 지붕을 떠받치는 조각이 만들어졌다.
이것이 전등사 대웅보전에 얽힌 전설이다.

 

불상이 모셔진 금당이지만, 설령 저잣거리에서 주고받는 이야기의 소재가 되었다고 해서 불경스럽다고 할 필요는 없다. 절이란 모든 사람 가리지 않고 껴안고 보듬으며 깨달음으로 나가도록 등을 도닥여 주는 곳이지 않은가.

 

어쨌던 전설은 흥미롭지만 종종 현실을 비껴가고, 기록은 생생하지만 대개 상상력이 부족하다. 전등사 대웅보전은 역사인 동시에 전설일 뿐이다. 하여간 위의 조각상은 당시의 능숙한 조각 솜씨를 엿볼 수 있고, 조선 중기 이후의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전등사 나부상의 전서(傳書)

- 도편수에게 보내는 -

                           노 운 미


꽃은,
아무 때나 피고 지는 법이 없지요

 

술이 넘치고 웃음이 넘치는 주막이라 해서 주모의 연정(戀情)까지 넘치는 것은 아니 옵지요

뭇 사내들이 헐값으로 흘리고 가는 정을 다 품을 수는 없지요

도편수 당신의 사랑, 당신의 것이기에 흐르고 넘치는 것 또한, 내 알 바가 아니었지요

어찌, 사내들은 없는 사랑을 짜내라 떼쓰는 어린아이와 무에 다른지

웃음을 판다 하여 분명, 속도 지조도 없는 여인네라 판단치 마시라 당부 드렸는데 허투루 들은 탓을 내게 돌리시다니…,

내 떠난 것은, 도편수 당신의 마음을 알았기에 상처 될까 심려한 배려였거늘

그 순수했던 사랑을 처마 밑에 걸어두고 욕보인 당신의 어리석음이 벌거벗겨진 내 몸뚱이, 내 마음이 걸린 것보다 더, 안타까울 뿐이지요

사백년을 처마 밑, 허울 좋은 하눌타리 사랑으로 버텨! 야 하다니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

 

과연 그 대웅전을 중건했던 도편수나 스님들은 무슨 뜻으로 나부상을 올려놓았던 것일까?
단순히 사랑을 배신하고 욕심에 눈 먼 여인을 징계하고자 하는 뜻만은 아닐 것이다. 도망간 여인이 잘못을 참회하고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라는 염원도 들어있는 것이다. 또 그런 조각상을 보게 될 후대의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자비로운 마음을 본받으라는 뜻도 담겨 있으리라.
그렇기에 전등사 대웅보전의 나부상은 보면 볼수록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눈속에 고요함을 느끼게 해주는 죽림다원 (찻집)

죽림다원에서 언몸을 녹히며 차 한잔

핫팩을 두개 사용하였지만 손발이 많이 시렸다.

 

맹추위속에 몸은 조금 떨었지만 찬바람에 기분은 상쾌하고 좋았다.

 

전등사 여름 풍경 둘러보기 >>> https://koreasan.tistory.com/15606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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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족불욕(知足不辱)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지지불태(知止不殆)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가이장구(可以長久) 오래도록 편안할 것이다.  - 노자 도덕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