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구기행](4)강화 황산포구
입력 : 2009.05.15 02:00
밤 새 닻을 내린 포구는 ‘어머니의 자궁’
포구에 서면 어머니가 그립다. 닻을 내리고 밤을 샌 선외기 몇 척에게 포구는 어머니의 자궁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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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와 철쭉의 차이는 ‘잎’에서 시작한다. 진달래는 꽃이 먼저 피고 꽃이 진 자리에서 잎이 돋는다. 철쭉은 꽃과 잎이 동시에 나거나 잎이 먼저 나고 꽃이 핀다. 진달래는 겨우내 바싹 말랐던 가지에 물이 오르기 시작하면 꽃부터 피우고 본다. 앙상한 가지 끝에는 군더더기 없이 꽃들만 드문드문 핀다.
반면 철쭉은 푸릇푸릇한 잎이 깡마른 가지를 덮을 즈음 꽃을 펼쳐보인다. 잎과 꽃, 청과 홍이 어우러져 화려함을 자랑한다.
김포에서 강화도로 들어가는 초지대교를 기준으로 왼쪽이 황산포구, 오른쪽이 초지포구다. 두 포구는 거리 상 불과 2㎞ 남짓 떨어져 있지만 풍기는 분위기는 진달래와 철쭉 만큼이나 다르다. 2002년 8월 초지대교가 생기면서 평일 대낮에도 관광객이 끊이지 않아 왁자지껄한 초지포구에 비해 황산포구는 여전히 조용하고 애닯다.
초지대교를 건너 방향을 왼쪽으로 틀었다. 길을 따라 1㎞ 가량 달리니 황산 어판장 입구를 알리는 팻말이 보였다. 네모 반듯한 팻말 앞쪽으로 낡디 낡은 나무배 한 척이 어판장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밝은 색 페인트를 새로 칠하긴 했지만 나무 판 마다 깊게 패인 상처는 세월을 짐작케 했다. 배는 마치 행인들에게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한다’고 외치고 있는 듯 했다.
입구를 따라 들어가니 황산도와 육지를 잊는 연륙교가 나타났다. 황산도는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에 딸린, 이름 그대로 섬이다. 초지리 간척지와 초지대교 맞은편인 김포시 대곶면 약암리 사이 수로 상에 있으며 육지와는 500여m 떨어져있다. 이 500m를 두 개의 연륙교가 이어주고 있다. 연륙교는 승용차가 두 대는 지날 수 없을 만큼 폭이 좁아 500m 사이를 두고 섬에 들어오려는 차와 나가려는 차들이 서로의 눈치를 살피는 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구름에 숨어있던 햇살이 황산포구 남단 갯벌에 은빛으로 내려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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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안의 횟집’ 독특한 어판장
25년 전만해도 황산도에서 뭍으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노를 저어야만 했다.
황산도에서 나고 자라 이곳 어촌계장이 된 금강호 선주 고현수씨(44)의 어린시절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소설같다.
섬 전체를 통틀어 고작 대여섯 가구가 살고 있었던 황산도에 학교가 있을리 없었고 고씨는 섬에서 강화도로 건너가 유학 생활을 했다. “장난인줄 아는가 보네.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나무 배 타고 학교에 다녔다니까. 옛날 일이 아니여.” 고씨는 연륙교가 생기기 전 배가 닿던 선착장 자리를 알려줬다.
연륙교가 생기기 전 배들은 지금의 연륙교 바로 앞 갯벌에 되는 대로 배를 대고 생선을 풀었다.
썰물 때가 되면 바닷물이 수 ㎞까지 빠져나가 갯벌이 천연 선착장을 만들어줬다.
배가 횟감을 쏟아낼 때 즈음이면 양 겨드랑이에 팔뚝만한 소주병을 낀 ‘주태공’들이 노를 저어 황산도로 들어와 질펀하게 먹고 마신 뒤 다시 제 갈길로 흩어졌다.
사는 사람이라고는 배를 부리는 대여섯 가구가 전부였고, 구멍가게나 술을 파는 주점도 없었기에 ‘술은 셀프’였단다.
“와서 암만 마시고 놀아도 돌아갈 때 사람 빈 손으로 보내는 법은 없었지. 남기려고 파나, 있으니까 팔고 그래도 남으니까 더 퍼주는 거지.”
어린 시절 고씨의 눈에 비친 황산도는 부족함이 부족함을 채워 모자란 듯 풍족한 섬이었다.
고씨는 별 볼 것 없는 섬을 아직까지도 찾아주는 이들이 고마울 뿐이라고 했다.
어촌계장 고현수씨가 운영하는 횟집앞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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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륙교를 건너자마자 왼쪽 도로로 들어서 모퉁이를 도니 황산도 어판장이 나왔다.
어판장 바로 옆으로 물이 빠져 민낯을 드러낸 선착장이 숨을 돌리고 있었다.
현재의 황산도 어판장은 초지대교 건너편에서도 눈에 띌 만큼 외관이 독특하다.
황산도 어민들은 지난해 12월 어판장을 새롭게 단장했다.
김포와 마주보이는 쪽 갯벌을 매립하고 그 위에 어선을 수 백배 확대시킨 듯한 모양으로 건물을 지었다.
그 건물 안에 횟집 14호가 들어 앉았다.
멀리서 보면 잘 만든 배 한 척이 갯벌 위에 떠있는 형상이다.
곳곳에 태극기를 달아 놓은 모습도 인상적이다.어민들은 초지대교가 생긴 이후 강화도를 찾는 관광객이 많아지자 눈길을 끌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비슷비슷한 포구, 특히 물 건너 김포 대명포구와 옆 동네 초지포구와의 차별화가 필요했다. 그 방법이 ‘배 안의 횟집’이었던 것이다.
초지대교를 건너는 운전자들의 눈을 사로잡는데는 확실히 성공했지만 너무도 반듯하고 깨끗해진 외관은 어쩐지 낯설었다.
초지대교 위에서 바라본 황산포구의 밤. 오른쪽으로 거대한 배모양의 황산어판장이 불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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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낯선 감정은 황산도가 걸어온 역사에서 비롯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황산도는 주목받는 섬이 아니었다. 1232년 고려는 몽골의 제2차 침입에 대항하기 위해 지금의 강화군 강화읍에 강화산성을 짓고 천도했다. 이때 강화성을 보호하기 위해 내성, 중성, 그리고 동쪽 해협을 따라 외성을 쌓았다. 외성은 강화 동쪽의 해안을 방어하기 위해 적북돈대에서 부터 초지진까지 쌓은 성이다.
주목받지 못했던 ‘성 밖의 섬’
이후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도 초지진은 강화 외성의 최남단으로의 사명을 수행했다. 바꿔 말하면 황산도는 성 ‘밖’의 섬으로 수 백년을 주목받지 못했던 것이다. 강화를 지키고 염하의 물결을 따라 한양으로 향하는 외적들을 소탕하는 최남단은 초지진이었고 황산도는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초지대교가 초지진과 황산도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는 것 역시 성 안과 밖을 구분짓는 역사를 재확인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마저 들었다.
선착장에 서서 섬을 한참이나 둘러보다 시선이 한 만물상에 꽂혔다. 하얀색 네모판에 굵은 매직으로 덫칠해 쓴 간판을 보니 ‘선창가 슈퍼’였다. 바다에서 먹고 바다 밖에 모르는 어민들 틈에서, 그것도 몇 가구 되지도 않는 황산도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없는 것 빼고 다 있을 것 같은 어수선한 슈퍼 안에서 고추 모종을 심고 있는 정차랑씨(66)를 만났다.
정씨는 강화 사람이 아니지만 강화 사람, 정확히 말하면 ‘황산도가 고향이고 싶은’ 사람이었다. 일본 후쿠오카에서 태어나 세 살 되던 해 해방이 되면서 우리나라로 건너왔던 정씨는 서울에서 자녀 넷을 모두 먹이고 가르쳤다.
우연한 기회에 황산도를 알게 됐고 삶이 고달플 때마다 발걸음을 하게 됐단다. 1997년 넷째가 대학을 졸업 하자마자 집과 직장을 정리하고 황산도에 내려와 슈퍼를 차렸다. “다른 바다도 있지만 여기 오면 마음도 편해지고 그래서 왔지. 바닷일은 안해봤으니 슈퍼 밖에 더 있나. 이제 애들도 여기가 고향이겠거니 하고 내려오고 그래.” 정씨가 심던 모종은 고현수씨가 밭에 심어 손님상에 내야 한다며 사갔다.
섬을 한바퀴 돌 요량으로 선착장 반대편 섬 남단으로 향했다. 섬 남단의 갯벌에서는 섬이 만들어낸 어줍잖은 숲과 깊게 주름이 패인 드넓은 갯벌, 달아날 만큼 달아난 바다가 또 하나의 얘깃거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시선을 끌기 위해 굳이 애쓰지 않아도 비어있는 듯 꽉찬, 조용하지만 살아있는 듯한 느낌은 포구의 뒷뜰에서도 그대로 전해지고 있었다.
섬 사람들 삶의 체취 물씬황산도 어촌전시관 개장
황산도 어촌전시관은 2008년 겨울 새롭게 단장한 어판장이 개장하면서 함께 문을 열었다. 어촌전시관은 황산도를 찾은 관광객들이 잠시 들러 쉴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전시하고 있는 것은 초지·황산 어촌계 어민들의 기념사진과 어로에 필요한 용품, 강화에서 주로 잡히는 어종에 관한 정보 등이다. 전시관 입구에는 황산도의 예전 모습을 담은 사진과 어민들의 사진을 전시했다. 사진 가운데는 강화도의 옛 모습을 알 수 있는, 사료적 가치가 높은 귀중한 사진도 끼어 있다.
전시관 중앙으로는 어로 용품을 전시했다. 60~70년대 집에서 만들어 사용하던 지게, 어망 등을 비롯해 현재까지도 사용하고 있는 용품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꾸몄다.
어민들이 각자 집에서 보관하고 있던 것을 모은 이 용품들 가운데는 포구를 찾은 손님들이 마시던 소주병까지도 포함돼 있어 새삼 섬사람들의 삶의 체취를 전해준다.
황산도 앞바다에서는 젓새우와 실뱀장어, 주꾸미 등이 잡히는데 전시관에서는 이 같은 다양한 어종들에 대한 상세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강화군과 황산 어촌계 주민들은 해안산책로, 갯벌체험장, 포구체험장 등을 만들어 섬을 찾는 관광객들이 보고, 먹고, 즐길 수 있는 코스를 개발해 나갈 계획이다.
<글 최보경·사진 김순철기자>
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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