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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B등산여행

[미국 3대 트레일 완주] 한국 최초 PCT·AT·CDT 완주한 ‘트리플 크라우너’ 부부

by 한국의산천 2020. 1. 15.

[화제ㅣ 미국 3대 트레일 완주] 한국 최초 PCT·AT·CDT 완주한 ‘트리플 크라우너’ 부부

글 신준범 기자 사진 양희종, 이하늘 제공 입력 2020.01.14 10:12


“아내와 함께 걷는 것이 좋아서 1만2,800㎞ 걸었죠”…
백두대간 동계 일시종주도 도전

  

호주 최고봉 코지어스코(2,228m) 정상에 올라 기념사진을 찍은 양희종·이하늘 부부.


한국 최초로 PCT·AT·CDT를 완주한 트리플 크라우너Triple Crowner 부부가 탄생했다.

미국의 3대 장거리 트레일 PCTPacific Crest Trail(4,300㎞)·ATAppalachian Trail(3,500㎞)·CDTContinental Divide Trail(5,000㎞)을 모두 완주한 사람을 ‘트리플 크라우너’라고 부르며,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5명이 완주했다. 총 1만2,800㎞의 어마어마하게 긴 트레일을 종주한 것.


남편 양희종(35)씨는 2015년 PCT를 시작해 2017년 AT를 완주함으로써 국내에서 두 번째 트리플 크라우너가 되었다. 아내 이하늘(34)씨는 2016년 PCT를 시작으로 지난 9월 CDT를 완주해 국내 여성 최초의 트리플 크라우너가 되었다. 양희종씨는 그 원동력을 단지 “아내와 함께 걷는 것이 좋아서”라고 말한다.


“많은 분들이 물어보는데, 진짜 거창한 이유는 없어요. 좋아서 했어요. 아내와 함께 여행하는 것이 좋고 행복하거든요. 처음엔 하이킹을 하며 여행하는 것에 행복을 느꼈는데, 결혼을 하고 나선 아내를 만나 함께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으로 바뀌었어요.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어서 완주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PCT와 8할이 겹치는 존 뮤어 트레일 요세미티 구간을 걷는다. 유명한 거벽 하프돔 너머로 미국 서부의 거대한 풍경이 펼쳐진다.


두 사람은 상징적인 결혼식을 트레일 위에서 올렸다. 2016년 미국 본토 최고봉 휘트니산(4,418m) 정상에서 상징적인 결혼식을 올렸다. 거센 바람이 부는 산꼭대기에서 이하늘씨가 면사포를 쓰고, 평생을 약속하는 것으로 약식 결혼식을 했다. 귀국 후에도 일반적인 결혼식장에서 예식을 올리지 않은 걸 감안하면, 이 날이 두 사람의 결혼식이었다.


트레일을 걸으며 부부는 각자 책을 썼다. 양희종씨는 PCT 종주기를 담은 <4,300km>를, 이하늘씨는 AT 종주기를 담은 <행복해지는 법을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서>를 출간했다. 이하늘씨는 길 위에서 자신이 깨달은 것을 글로 세세하게 옮겼다.


‘산길을 힘들게 오르내리고 배고픔에 굶주리다가도 시원한 음료수 한 잔, 작은 햄버거 하나, 허름한 숙소에서의 잠은 정말 행복했다. 거기에 샤워까지 할 수 있다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PCT의 눈이 많은 시에라 구간, 포레스터패스(4,009m)를 넘는 양희종씨.


그녀는 ‘하루를 행복하게 살다 보면 매일이 모여 일주일, 일 년, 평생이 행복할 수 있다’는 가치관으로 길 위에서 찾아낸 하루 하루의 행복을 보여 준다.

그녀는 책 출간 외에도 활발한 유튜브 활동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결혼 3년이 지났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여행 중이다. 두 다리와 두 바퀴로 세계를 여행한다는 뜻의 ‘두두부부’란 이름을 내걸고 끝나지 않는 신혼여행을 이어가고 있다. 남미 자전거 여행과 트레킹을 했으며,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로 일하면서 틈 날 때마다 트레킹을 했다. 미국에서 3대 트레일 외에도 여러 국립공원을 돌며 산행했다.


부부는 평균 150일이 걸리는 장거리 트레일에서 2인용 텐트 하나로 생활했다. 한 달 동안의 원정만 다녀와도 사이가 틀어지는 경우가 허다한데, 부부는 아직 싸운 적이 없다. 비결은 서로를 인정해 주고, 이해해 준다는 것.

 


2018년 PCT 종착지인 캐나다 국경에서 감격의 키스를 나누는 양희종·이하늘 부부. 남편 양씨는 혼자 나섰던 2015년에 이어 2018년 두 번째 완주했다. PCT를 두 번 완주한 한국인은 그가 유일하다.


“의견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럴 때마다 대화로 서로 설득하죠. 서로의 방식을 존중해 주려고 노력해요. 싸우는 것도 욕심에서 생기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아내의 존재 자체만으로 감사하려고 하죠. 워낙 잘 맞기도 해요. 24시간 붙어서 지내다 보니 서로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이해하는 바가 더욱 깊어진 것 같아요. 물론 다른 부분도 있죠.

예를 들어 아내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는 더 여유 있게 잠자기를 즐겨요. 아내는 아침을 꼭 먹어야 하고 저는 평생을 아침을 거르다시피 살아왔죠. 아내는 빵과 초콜릿을 좋아하고, 저는 콜라와 감자칩을 좋아하죠. 그 사람 자체를 인정하다 보니 서로 싸우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두두부부의 땀과 추억이 담긴 오스프리 배낭. 패치는 트레일을 걸으며 훈장처럼 모은 것이다.


고산 사막에서 트레일 포기 고민해

길 위에서 늘 행복한 날만 있었던 건 아니다. 이하늘씨의 트리플 크라운을 마무리 짓기 위한 마지막 여정이 고비였다. CDT 뉴멕시코 구간을 걸으면서 처음으로 ‘포기할까’하는 생각을 했다. 고산 사막지대라 너무 덥고 물 구하기가 어려웠던 것. 하루에 40~50㎞를 걸어야 겨우 물을 만나는데, 소들에게 먹이기 위한 물만 남아 있거나, 그런 물조차 없는 곳도 있었다.


“물이 부족한 상황이 3일 넘게 이어지자 정신력이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이러다 탈수로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죠. ‘대체 이 길을 왜 걷고 있지? 무엇을 위해 이 고생을 하고 있지? 그만 걸을까?’하는 생각이 끝없이 들었죠.”


여기에는 이하늘씨의 완주 목표 때문에 양희종씨가 2016년 완주했던 길을 다시 걷게 한다는 미안한 마음도 작용했다. 그럴 때면 솔직하게 대화를 나눴고, 마을로 내려갔다가 하루 이틀 쉬고 다시 돌아오는 방법으로 어려움을 해결했다.


하늘씨는 “스스로에게 좀 더 도전하고 싶어서, 더욱 최선을 다해보고 싶어서 결국 돌아왔던 것 같다”며 “포기하고 싶을 때 잠시 떠나보는 것, 거리를 조금 두고 바라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 말한다.


특히 이하늘씨는 한국 여성 최초로 트리플 크라운에 성공했다. 일반적인 또래 여성들과는 너무도 다른, 자연 속에서의 지저분함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생활이었지만 “좋아서, 즐거워서 걸었다”고 한다.


“트리플 크라운을 한다고 유명해지거나 부나 명예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여자로서 무언가를 해내고 싶었어요. ‘이렇게 살아가는 여성도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많은 여성들이 좀 더 이런 길 위에서 서고, 제가 했던 멋진 경험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PCT 시에라 구간에서 아내 이씨가 설맹으로 시력을 잃었다가 4일 만에 시력이 돌아왔다. 어쩔 수 없이 텐트 안에서 쉬며 본 풍경. 당시에는 “행여 시력이 돌아오지 않을까봐 정말 두려웠다”고 한다.


또 햇볕에 그을리고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트레일은 남녀 구분 없이 힘든 곳”이라며 “끝없이 스스로를 다독이며 가야 한다”고 말한다. 더불어 “청결이나 생리 같은 문제는 민감한 부분은 맞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자연스럽게 적응이 되었다”고 한다.


 ‘미국 장거리 트레일’이라 하면 평원을 떠올리지만 산악지대가 많다. 해발 3,000m 이상의 고산지대를 지나는 곳도 여럿이다. 무릎과 관절, 연골이 괜찮은지 물었다.

“조금씩 아픈 적은 있었지만, 무리가 갈 정도로 아팠던 적은 없어요. 우리만의 노하우는 무리하지 않는 거예요. 속도나 거리에 너무 구애받지 않고 즐겁게 걷는 거죠. 워낙 길고 오랜 시간이 걸리니 상대적으로 조금 여유가 있는 거죠. 하지만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는 것 같으면 그날은 과감히 쉬어요. 쉴 때는 확실히 쉬고 걸을 땐 확실히 걷는 거죠.”


곰이나 퓨마 같은 대형 야생동물이 많은 미국에서도 가장 조심했던 건 야생 소Bison였다. 우리나라 소보다 덩치가 훨씬 크고 수백 마리가 무리지어 몰려다니며, 새끼가 있는 소떼는 특히 위험해 사람이 나타나면 우두머리 소를 필두로 거대한 소들이 발을 구르며 돌격할 것 같은 자세를 취한다. 이런 식으로 서로 한 시간을 넘게 대치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1만㎞가 넘는 길을 걸으며, 가장 유용했던 장비 3가지가 무엇인지 물었다. 남편 양씨는 오스프리 65리터 배낭, 소이어 스퀴즈 휴대용 정수기, 고사머기어 하이킹 우산을 꼽았다. 아내 이씨는 휴대용 정수기, 2인용 텐트, 고사머기어 하이킹 우산이다. 의외의 장비인 우산은 사막의 뜨거운 햇살도 막아 주고, 비오는 날에 요긴하게 쓰인다는 설명이다. 특히 하이킹 전용 우산은 초경량이며, 자외선도 막아 주는데다 유연성이 좋아 바람에도 잘 버틴다. 2인용 텐트는 제로그램 PCT UL과 엘찰텐을 사용했다.


트레일 특징을 얘기해 달라고 하자, “AT는 미국 장거리 하이킹 역사의 시작, PCT는 자연, 하이킹, 문화가 있는 장거리 하이킹 매력이 적절한 조화로운 트레일, CDT는 조금 더 모험을 추구한다면 추천하는 트레일”이라 답한다.


30대 신혼부부의 세계여행에서 또 다른 궁금증은 여행 경비다. 두 사람은 각자 4년 정도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했기에 그때 모은 돈과 퇴직금이 주된 여행자금이다. 책을 출간하고 받은 인세와 간간이 여행기를 기고하며 받는 원고료와 단기 아르바이트로 얻은 수익,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로 일하고 받은 급여 등이며, ‘두두부부의 유튜브’도 하고 있다.

 

그 멀고 힘든 길에서 한 번도 싸운 적 없다는 두두부부. 양희종씨는 트레일을 걷는 하이킹 여행이 행복하고,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악플도 한편으로 맞는 말

최근에는 이 부부의 기사가 포털에 실리며, 마음고생도 했다. 조회수가 100만 회가 넘을 정도로 관심은 폭발적이었으나 댓글의 반 이상이 악성댓글이었던 것. 악성댓글 내용을 종합하면 “금수저(부자집 자녀)로 태어나 철없이 떠나 세금을 축내며 아이를 갖지 않고 국가에 누를 끼치는 부부”라는 지적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대자연을 누볐던 이들답게 담담히 받아들인다.


“돌이켜보면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저희에게 여러 생각할 여지를 주는 댓글도 있었고요. 처음엔 조금 놀랐지만 만약 내가 이런 기사를 읽었다면, 저 역시 그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들에게 우리 부부가 틀린 것이 아닌, 다른 것으로 봐 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분들의 생각이 다른 것이니 저희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부부는 남미 자전거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미국에서 도움을 많이 주었던 미국인 부부가 한국에 오기로 하면서 함께하기 위해 지난 9월 귀국했다. 잠깐 머무르고 떠날 생각이었지만, 그간 부족했던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고 한국의 자연도 제대로 둘러보고 싶어 머무는 기간이 길어졌다. 설악산, 영남알프스, 북한산, 관악산, 무등산 등 우리 산 산행을 했다. 이 와중에 ‘두두부부’는 한국을 대표하는 장거리 산악 코스인 백두대간을 걷기로 했다. 2020년 1월 5일부터 지리산을 출발해 진부령을 향해 동계 일시종주에 나선다.


“백두대간이 궁금하기도 하고, 외국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과연 우리가 하는 방식의 하이킹으로 백두대간 종주가 가능할 것인지도 궁금하고요. 완주가 목표라기보다 가능성을 확인해 보고 싶어요.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많은 영감을 받고 싶기도 하고요. 추위와 눈이 걱정되지만 언젠가는 백두대간을 계절마다 모두 걸어보고 싶은 마음에, 우선 겨울에 걸어보기로 했어요. 산불방지 입산금지 기간을 피해서 1월에 출발할 계획이에요.”


두두부부는 합법한 대간종주를 할 계획이다. 비법정 코스는 도로를 따라 우회하고, 국립공원 내 야영과 화기 사용 없이 대간길을 간다. 남편 양씨는 “합법적인 범주 내에서 하는 것이 옳은 하이커의 자세”라고 말한다.


대간 일시종주에서도 텐트는 한 동이다. 서로의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큰 피로회복제이기 때문이다.

“지치고 힘들 때 아내가 곁에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면 걱정과 고민이 다 사라져요. 제 존재의 이유는 옆에 있는 사람과 함께하고, 함께 행복한 것인데 그러고 있으니까요.”

‘두두부부’의 신혼여행은 혹독한 한겨울 백두대간에서도 계속 된다. 미국 1만2,800㎞를 걸어낸 열정과 소신, 두터운 애정으로 새해 백두대간에 온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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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장거리 트레일 특집 | 양희종·이하늘 부부 풀스토리] “미래 행복을 위해 희생할 필요 없다는 걸 PCT가 알려주었어요”

월간산 글 신준범 기자 사진 이경호 차장·양희종 제공 [580호] 입력 2018.02.14 10:14


PCT·AT·CDT 완주한 양희종씨와 이하늘씨가 휘트니산에서 결혼한 사연…


AT의 명소인 맥아피놉에 앉아 경치를 즐기는 두 사람. 3,500km의 AT를 함께 걸었다. /양희종 제공


미국 최고봉 휘트니산 정상에서 한국 남녀의 결혼식이 열렸다. 닳은 등산 장비와 그을린 피부만 보더라도 먼 길을 가는 장거리 하이커임을 알 수 있었다. 시원한 경치와 거센 바람이 부는 산  정상에서 신부 이하늘씨가 면사포를 쓰고, 서로에게 소중한 약속을 하는 것으로 결혼식은 마무리되었다. 귀국 후 혼인신고를 했고, 한국에서 일반적인 결혼식장 예식을 올리지 않은 걸 감안하면, 2016년 이 날이 두 사람의 공식적인 결혼일이었다.


이로부터 15개월이 지난 2017년 12월 이 부부는 한국에서 평창올림픽 성화 봉송을 했다.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장애인 올림픽)을 알리기 위해 배낭에 두 마스코트를 달고, AT(3,500km)를 걸으며 마주치는 외국인들에게 올림픽 스티커를 붙인 음료수와 기념품을 선물한 이들의 자발적인 노력의 가치를 인정한 것이다.


2018년 1월 현재 양희종씨는 PCT·AT·CDT를 완주한 트리플 크라우너Triple Crowner이며, 이하늘씨는 AT를 완주했으며 CDT를 반 정도 마쳤다. 양희종씨는 PCT 종주기를 담은 책 <4,300km>를 펴냈으며, 조만간 아내와 함께 한 번 더 PCT를 완주할 계획이다. 미국 장거리 트레일에 관한 국내에서 가장 전문가 부부인 셈이다.

 

AT의 종착지인 카타딘 산 정상에서 완주를 기념하기 위해 입맞춤을 했다. 별도의 결혼식을 대신해 산 정상에 오를 때마다 면사포를 쓰고 기념사진을 남겼다./ 양희종 제공


두 사람의 인연은 대학 시절, 혈기의 분출구였던 ‘한국 청소년오지탐사대(이하 오탐)’에서 시작되었다. 등산과 운동을 좋아했던 이들은 대한산악연맹이 매년 주최하던 오탐 대원으로 2008년 알래스카와 2010년 중국 치렌산맥으로 각각 원정을 다녀왔고, 이후 탐사대 OB모임에서 만나 7년간 절친으로 지내다 결혼했다.


오탐에서의 경험은 두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혹한지역 탐사와 5,000m대 고산 등반이라는 극적인 경험은 평범한 대학생이던 두 사람을 변하게 했다. 때문에 두 사람은 “오탐이 삶의 가치관을 바꿔 놓았다”며 “오탐이 아니었더라면 친구들처럼 일반적인 삶을 살았을 텐데 하는 후회를 한 적 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하지만 “인생 최대의 경험이었고, 다시 돌아가더라도 오탐을 가겠다”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양희종(31)씨가 2015년 처음 PCT를 시작할 땐 ‘트리플 크라우너’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PCT 완주는 그의 목표가 아니었다. 그는 “도망치듯 PCT로 떠났다”고 한다. 오탐을 다녀온 후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게 된 그는, 2011년 아웃도어 브랜드에 입사해 4년 동안 일했다.  치열하게 업무에 몰두했지만, 어느 순간 그는 깊은 절망감에 빠졌다. 짧은 기간에 한 팀을 이끄는 자리로 승진하며 회사에서 인정받았지만, 업무에 대한 중압감과 과중한 업무량을 견디기 어려웠다.


그는 “너무 힘들었지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누구에게도 얘기할 수 없었다”며 “지금 생각하면 대인기피증과 공황장애였던 것 같다”고 힘들었던 시기를 말한다. 마라톤 풀코스 완주를 5번 했을 정도로 운동을 즐겼지만 그는 집과 회사만 오가는 생활 속에서 75kg이던 몸무게가 100kg으로 불어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그는 한 달을 집에만 있었다. 그때 든 생각이 ‘자연 속에서 길게 걸으며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4,300km의 PCT를 떠나게 되었다.

“완주를 목표로 간 게 아니었어요. 일주일 만에 돌아올 수도 있고, 안 돌아올 수도 있다고 주변에 얘기했어요. 그냥 내 자신과 대화의 시간을 갖고 싶었어요.”


그의 하이킹 스타일은 즉흥적이었다. 느리게 걷다가 풍경이 좋으면 그냥 누워 있기도 했다. 이후 그는 한결 표정이 부드러워졌고, 다른 사람 얘기를 많이 듣게 되었다.

“PCT 이후 스스로에 대한 짐을 많이 내려놓았어요. ‘굳이 나를 옥죄면서 살 필요가 없다. 욕심에서 놓여나 지금 이 순간을 중요시해야 한다. 먼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실을 희생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PCT 완주 3일 후 그는 캐나다 빅토리아마라톤에 참가해 42.195km 풀코스를 완주했다. 이후 한 달간 캐나다 여행을 하면서 다시 미국 비자를 받아, 미국 서부해안길을 따라 자전거 여행을 했다. 멕시코를 거쳐 남미 끝까지 간다는 계획이었으나 장거리 트레일인 CDT를 시작하게 되었다. 꾸준히 글과 사진을 SNS에 올리며 소통하던 그에게 출판사에서 출간 제의가 왔고, 출판을 위해 귀국했다. 한국에 있는 3주 동안 양희종씨와 이하늘씨는 친구에서 연인이 되었다.

 

1 트레일에서 만난 아이에게 꽃을 보여 주고 있는 이하늘씨. 2 평창 장애인 올림픽 홍보를 위해 현지인들에게 올림픽 기념품을 선물했다.


양희종씨가 미국으로 돌아가 CDT를 걷는 동안 이하늘씨는 매일 손편지를 적어 사진과 함께 보냈고, 서로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은 더 깊어졌다. 이하늘씨는 2주 동안 여름휴가를 내고 미국으로 건너와 CDT를 함께 걸었고, 이때 양희종씨가 청혼해 미국 본토 최고봉 휘트니산(4,418m) 정상에서 두 사람만의 결혼식을 올렸다.


“완주에 대한 마음보다, 아내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어요. 선택의 기로에서 아내의 뜻에 따르겠다고 했어요. 함께 여행하거나, 제가 그만두고 돌아가거나 둘 중 택하기로 한 거죠.”


이하늘씨 역시 세계여행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다니던 직장도 만족스러웠지만 남편과 함께 있고 싶었다.  그녀의 부모님은 결혼보다 직장과 한국생활을 그만두고 여행가는 것을 더 걱정했다고 한다. 무조건 반대하기보다는 “네가 알아서 잘 결정한 것일 테지만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라”고 조언해 주었다. 귀국 후 한 달을 고민하다 결국 사직서를 내고  CDT에 합류했다. 그녀 역시 ‘지금 행복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큰 이유였다.


“예전에 아버지가 심혈관 질환으로 갑자기 쓰러지셨을 때 어머니가 입원 처리하느라 경황이 없어 제가 보호자로서 아빠 수술에 대한 서명을 했어요. 그때가 전환점이었어요. ‘더 강해져서 성인으로서 책임감 있게 오늘을 잘 살아야겠다. 남들에게 보이는 면보다 내 에너지를 내가 행복해지는 데 써야겠다’고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미국 3대 장거리 트레일을 완주한 양희종씨의 발./양희종 제공


결혼식보다 결혼생활이 더 중요해

CDT를 완주한 이들은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 자전거여행을 하다 2016년 11월에 귀국했다. 이들은 양가 부모님 인사와 상견례, 혼인신고를 마치고 멕시코로 다시 돌아갔다. 진정한 결혼식은 휘트니산 정상의 입맞춤 사진이 전부였다. 신부 입장에서 아쉬울 법하지만 “결혼식보다는 결혼생활이 더 중요하다”며 “보여 주기 위한 소모적인 행사로 지치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렇게 두 사람의 신혼여행이자 세계여행이 시작되었다. 직장 생활 동안 모아둔 돈으로 여행을 해야 했기에 이들은 최대한 절약하며 여행했다. 또한 자전거의 두 바퀴와 두 다리로 세계 여행한다는 뜻을 담아 ‘두두부부’라 별명을 짓고 SNS에 글과 사진을 올렸다. 멕시코, 과테말라 등 중미 여행은 물가가 저렴하고 예상보다 치안도 나쁘지 않아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양희종씨는 AT에 신경이 쓰였다. 그동안은 순전히 장거리 트레일이 좋아서 걸었지만, 하나만 더 완주하면 얻게 되는 ‘트리플 크라운’이라는 명성이 의식되었던 것이다. 결국 2017년 4월에 두두부부는 AT를 시작했다. 이미 PCT와 CDT를 완주했지만, AT는 쉽지 않았다.


“비도 많이 오고, 습하고, 다른 트레일과 달리 상업적인 면도 보이고, 트리플 크라운을 하고 싶은 내 욕심 때문에 떠밀려서 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힘들었어요. PCT와 CDT를 걸으면서 나름 많은 걸 깨달았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욕심이 생기는 걸 깨느라 어려웠어요.”


게다가 AT는 우리나라 백두대간 종주와 비슷해 만만치 않았다. 보통 CDT가 가장 어렵다고 하는데, 이것은 트레일이 100% 정비가 안 되어 있고, 1m 이상 눈이 쌓인 4,000m대 산악지대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오르내림은 AT가 더 많아 체력적으로는 가장 힘들다. 가파른 오르막과 간담이 서늘한 바위 구간이 가장 많은 것도 AT라고 설명한다.


원래 계획에 없던 AT를 걷게 되었지만 의미 있는 일을 하자고 생각한 두 사람은 자발적으로 평창 장애인 올림픽을 홍보했다. 부부는 클라우드 펀딩(인터넷 모금)을 통해 모은 기금으로 평창 관련 배지와 마스코트 인형을 구입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또 평창 홍보 문구 스티커를 붙인 탄산음료를 트레일 곳곳에 두어 다른 하이커들이 마실 수 있게 했다. 양희종씨는 대학교 때 우연히 장애인올림픽 봉사를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캐나다 배낭여행 때 우연히 패럴림픽 취재봉사를 했는데, 그때 한국 장애인 선수들과 얘기하면서 많은 걸 느꼈어요. 미약하나마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인터뷰를 위해 월간<산>을 찾은 양희종·이하늘 부부. 신혼부부다운 애틋함이 묻어난다. /이경호 차장


단 하나의 트레일만 간다면, PCT 강추!

두두부부의 트레킹 일정은 단순했다. 아침 7시에 일어나 텐트를 정리하고 걸었다. 걸음이 빠른 이하늘씨가 앞에 가고 양희종씨가 뒤를 따랐다. 남아도는 것이 시간이니 얘기를 많이 했는데, 서로에 대한 이야기부터 사회 이슈, 철학적인 내용 등 온갖 얘기를 끝없이 했다. 때문에 “결혼 생활은 1년밖에 안 되었지만 대화 시간은 10년차 부부만큼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음식은 낮에는 초코바와 견과류, 식빵을 먹고 저녁에는 라면을 먹는 것이 전부인 단출한 식단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마을로 내려가 보급을 할 때면 이들은 서로 ‘진짜 음식’이라 부르는 걸 먹었는데 바로 맥도날드 햄버거였다. 그만큼 아끼고 절약하는 생활이 몸에 배어 있었다. 배낭 무게도 20kg 정도로 비슷하게 지고 걸었으며, 평균 10시간 동안 40~50km를 걸었다. 무척 빠른 것 같지만 “계속 걷다 보면 언제부턴가 자연스럽게 속도가 난다”고 한다.


24시간 붙어 있지만 싸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물론 트레일이 힘들어 짜증이 날 때도 있지만 침착하게 말로 풀어간다. 이 과정을 통해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서로를 더 맞추게 되었다고 한다.


두두부부는 딱 하나의 트레일만 가야 한다면 PCT를 추천한다. 장거리 트레킹이 가진 재미가 고루 담겨 있기 때문이다. 미국 장거리 트레일의 매력으로 풍경의 다양성을 꼽는다. 워낙 땅이 넓어 지역마다 풍경이 다르고, 우리나라에는 없는 각각의 색다른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행이 끝난 후에는 장거리 하이킹 문화를 확산시킬 수 있는 일련의 활동을 할 계획이지만, 두두부부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전전긍긍하기보다 ‘지금 행복한 것’에 열중하고 있다.


두 사람은 PCT 공식 슬로건을 월간<산> 독자들에게 전한다.

‘자연 그대로의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에서 너 스스로의 하이킹을 하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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