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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강화53돈대탐방

강화 선수돈대 검암돈대

by 한국의산천 2019. 4. 20.

강화 선수돈대 (검암돈대)

선수돈대(船首墩臺 )

인천 문화재자료 제10호 

위치 : 화도면 내리

 

조선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때 강화도가 함락되자 이에 충격을 받은 조정에서는

강화도를 경강 어귀의 요새로 만들기 위해 숙종 5년(1679) 당시 강화유수 윤이제에게

강화도의 요소마다 돈대를 설치하고, 화력을 보강하여 해안 경비를 강화하도록 하였다.

이 돈대는 당초 병조판서 김석주로 하여금 감독케 하여 축조한 49돈대 중 하나이다. 

▲ 선수돈대 (船首墩臺) 가는 길

도로에서 10~15분 정도 나무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선수돈대가 보인다.

선수돈대 아래에 있는 후포항은 밴댕이회로 유명하여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선수돈대 (船首墩臺)

문화재자료 제10호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근대정치국방 / 국방

지정(등록)일 : 1995.03.02

소 재 지: 인천 강화군 화도면 내리 1831번지 외 1필지 

시 대 : 조선시대

 

강화도에 있는 돈대들은 조선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일어나 강화도가 함락되자,

이에 놀란 조정에서 해안 경비를 튼튼히 하기 곳곳에 쌓아두도록 한 것이다.

이 돈대는 당시 병조판서를 지내던 김석주의 명을 받아 쌓은 49돈대 중 하나로, ‘검암돈대’라고도 불리운다.

 

일부는 둥글게, 일부는 각이 지게 쌓아 위에서 내려다 볼 때 반달모양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조선 숙종 5년(1679)에 축조된 것으로, 강화유수 윤이제가 어영군을 동원하여 쌓았다.

선수돈대
강화도 돈대는 병자호란(1636) 이후 강화도를 한강 어귀의 요새로 만들기 위해 설치한 국방유적이다.

숙종은 강화도 해안 경비를 강화하고자 1679년(숙종5) 48개의 돈대를 축조하였으며,

선수돈대는 그 후 1690~1696년 사이에 추가로 설치된 돈대이다.

돈대의 동서 길이는 18m, 남북 길이는 32m로 평면 형태는 장방평이다.

 

강화군 화도면 내리 후포항 뒷산에 위치한 선수돈대는 강화해안 53돈대중 하나로 석모도가 내려다 보이는 산위에 설치되어 있다.

선두돈대는 해안방어를 위한 군사조직인 5진7보에 속하지 않은 영문이라고 하는 본부 직할의 돈대이다.

돈대의 형태는 동서 18m, 남북 32m의 직사각형 형태로 서쪽 석모도 앞바다 방향으로 2문, 남.북 해안방향으로 1문씩 포를 놓을 수 있는 포좌가 설치되어 있다.

 

 

 

약1.5m의 폭으로 바다쪽으로 길게 네모난 석축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포좌 문이 해안을 향해 설치되어 있다.

돈대에서 앞을 바라보면 후포선착장을 드나드는 어선들과 석모도와 해명산이 바다 건너로 손에 잡힐듯 보인다.

 

 

 

 

 

 

 

 

▲ 이슬비가 내리고 추워지기 시작한다

ㄸㅏ듯한 아메리카노 커피와 치즈 케익을 먹고 다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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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족불욕(知足不辱)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지지불태(知止不殆)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가이장구(可以長久) 오래도록 편안할 것이다.  - 노자 도덕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