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라이딩 11회차 1편
이제 마지막 구간을 남겨놓은 가슴 벅찬 날이다
일기예보상에 토요일은 비가 온다기에 고민을 하다가 시간을 앞당겨서 휴가를 내고 목요일과 금요일에 마치기로 하였다
해는 점점 짧아지고 날씨는 추워지고 날씨가 추워지면 옷과 장갑등등 배낭의 무게가 늘어나기에 더 이상 늦출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예정상 이번 토요일과 일요일에 함께 하기로한 친구들과 카페회원님들과 지인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함께 하기로하는 마음을 감사히 받으며 이번 마무리도 저 혼자 지금 출발하니 깊은 이해를 바라며 응원을 바란다고...
사실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지지에 약간은 부담스러움을 느꼈고 또한 혼자 달리는데 이미 익숙해져서 오히려 더 편하고 자유로움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논개의 姓은 주/ 주 논개였다.
나는 오늘에서야 처음 알았다
지난주 백두대간 라이딩 코스 보기 >>> https://koreasan.tistory.com/15606250
▲ 백두대간 관련 지도를 모두 꺼내어 in door 라이딩을 열심히 하고 준비를 철저히 했다
길은 끝나는 곳에서 다시 시작된다 .
오늘 역시 장계에서 출발이다
▲ 장계에서 운봉까지
오늘 장계에서 출발해서 성삼재를 오른 후 구례까지는 120km 하루 라이딩 거리이지만 이곳 장계에 도착하니 점심때가 되었기에 운봉까지 천천히 마감하고 내일 이어서 마무리하기로 결정.
▲ 인천 터미널 도착하니 6시 14분
목요일 평일이라 전철에 자전거를 실을 수가 없기에 집에서 인천 터미널까지 새벽길에 10km를 달려왔다
▲ 대전터미널행 6시 30분 출발
▲ 대전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 지금 지나는 곳은 송산면 공룡화석지 초원지대를 가로지르고 있는 평택 고속도로다
사진 촬영하러 자주 갔던 곳인데... 이렇게 보니 또 다른 느낌이
▲ 대전 터미널 도착해서 장계행 버스 출발시간이 1시간 남있기에 가까운 식당에서 아침 식사
▲ 장계행 버스 9시 30분차량 예매
▲ 장계에 도착해서 라이딩 11시 30분 출발
장계에 도착하니 장계 매표소 여직원께서 지난주에 봤다고 알아보고 인사를 하며 반겨준다
지난주에 육십령을 넘어서 이곳에서 마감을 했기에 오늘 다시 이곳 장계에서 출발한다. 길의 끝은 또 다른 방향으로의 시작점이 되는것이다
▲ 다시 지난번에 왔던 육십령 가는 길을 따라 가다가 오른쪽 논개 생가지로 우회전 우회전 ~!!!!!
▲ 논개는 이곳 장수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논개 그분의 성씨는 주씨 주논개이다. 나는 오늘 처음 그분의 성을 알았다. 위대하신 주 논 개
▲ 논개생가로 가는 길 양편에는 벚나무가 가득하네. 봄이면 벚꽃으로 장관을 이루는 길이다
▲ 중간에 이 표지는 둘레길로 논개 생가로 이어지는 마실길이다. 자전거와 차량을 그냥 가던 도로를 따라 가면 된다
▲ 커다란 저수지 대곡호. 논개의 생가가 이곳 대곡호가 들어서기전 이 골짜기에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현위치로 이전하였다
▲ 대곡호에서
▲ 저수지가 들어서며 이주를 해야했고 그래서 실향민이 된 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망향비가 서있다.
▲ 사대부 집안의 여자로서 논개 그분이 진주에서 적장과 같이 낙하하여 숨진 바위를 의암이라 칭하고 그분의 호가 되었으며 이름은 주 논개이다
▲ 백두대간에서 나고 백두대간에 묻힌 주 논개 생가터에서
논개는 기생이 아니었다.
임진왜란때 적장을 안고 진주 남강으로 뛰어든 '충절의 여신' 주논개는 1574년 영취산 북쪽의 대곡리 주촌마을에서 태어났다. 논개가 13세 되던해에 부친 주달문이 세상을 떠나자 주색잡기에 빠져있던 숙부 주달무는 당시 장수토호 김풍헌에게 논개를 민며느리로 팔았다
그러나 논개 모녀가 완강히 반대하고 따진 결과 '죄없는 사람을 무고해서 괴롭히는 처사가 있어서는 안된다'고 판결이 나고 논개모녀는 자유롭게 되었다. 이때 장수 현감이 나중에 논개의 부군이 되는 최경희였다
오갈곳 없는 모녀는 장수현감의 병수발을 하면서 머물다가 이후 현감부인은 세상을 뜨고 결국 이것이 인연이 되어 최경희와 주논개는 부부의 연을 맺게된다
이후 몇년이 지나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경상우병사가 된 최경희는 진주성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후 일어난 진주성 싸움에서 성이 함락되자 최경희를 비롯한 장수들이 촉석루에 모여 나라를 지키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고 적의 손에 죽는이 모두 남강물에 뛰어 들어 자결하고 말았다
이에 논개는 승전 축하잔치를 연 왜군들 틈으로 기생으로 변장하고 들어가 왜장 게다니무라 로쿠스케를 껴안고 10여일간 내린 장맛비가 넘실되는 진주 남강에 몸을 던졌다.
현재 최경희와 논개의 묘는 백두대간 육십령 동남쪽으로 십리쯤 떨어진 함양 서상면 금당리 방지마을 뒷산에 있는데 이들 부부의 묘가 이곳에 있게된 사연는 이렇다
성이 함락당하자 장수 지역 의병들은 남강하류르르 수색해 창원 지수목에서 최경희, 그리고 왜장을 껴안은채로 죽은 논개의 시신을 발견했다.
이들 부부의 시신을 고향으로 옮겨 주씨 문중과 장사지낼것을 상의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거절당하고 결국은 백두대간 동남쪽 양지바른언덕에 자리잡아 장사지내고 돌아갈수밖에 없었다고 전한다.
의병의 후손들에 의해 설화처럼 전해 내려오던 이 묘는 40년전인 1975년 세상에 알려졌다. 순절한 후 400년만의 일이다.
▲ 논개 생가 식당으로 육회비빔밥이 일품이었다
▲ 주논개님의 생가터에 서서히 물들어 가는 가을 풍경
▲ 주논개님의 생가지를 벗어나자 마자 바로 업힐이 시작된다
무룡(무령)고개의 시작이다 약 8~9km 정도로 서서히 높아지며 크게 힘들지는 않았다
▲ 오른쪽은 터널이지만 직진하여 지지계곡 쪽으로 올라간다
▲ 봉화산 지직곡쪽으로 고고씽
▲ 굽이돌며 서서히 고도를 높이는데 경사도 조금씩 세진다
▲ 업힐의 앞이 훤히 보이는 힘빠지기 딱 좋은 코스
▲ 헤어핀 코너 반사경에서 셀카놀이도 하고
▲ 방금전에 소나기가 내렸는지 길바닥이 젖었고 나뭇잎도 촉촉히 젖어있다. 빨간 단풍이 이쁘네
▲ 헤어핀(머리 실핀 U 처럼 굽은 구간) 구간을 지나며 경사는 더욱 쎄지고
▲ 무룡고개 정상부아래에 도착하니 광명에서 오신 산악회를 만나고 그곳에서 시원한 막걸리 한잔을 접대받고 다시 길을 오른다
▲ 무룡고개 바로 아래의 휴게소인데 문은 열지 않았다
▲ 생태이동통로가 있는 무룡고개 정상
▲ 무룡고개에서 백두대간 산마루로 올라가는 길
▲ 무룡고개에서 다운 힐 셀카를 촬영하기 위해
▲ 무룡고개 반대편길은 매우 경사가 급하고 헤어핀이 심한 구간이다
천천히 천천히... 과속은 금물...
▲ 엄청난 경사 지지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잊어야 한다고 눈을 감으면 가까운 빛으로 다가오는 것을
낙엽이 지기 전에 돌아 서려니 벌써 눈이 내리네
하지만 어쩌다 그리울 때면 지나간 날들을 사랑이라 여기고
흐르는 시간 속에 나를 달래며 잊을 수는 없을까
아는지 모르는지 웃음만 보이던 그대가 커피 한잔의 추억은 아닌 거야
이렇게 흘러 가는 세월 속에서 슬픈 사랑의 비밀을 간직한 채
또 다시 내일을 기다려 내일을 기다려 내일을 기다려
▲ 계속 무한 다운힐이 이어진다
▲ 신나게 S코스를 이루며 이어지는 다운 힐
▲ 나보다 앞서가는 소나기로 인하여 아스팔트는 젖어있고 햇볕에 의해 수중기가 피어오르는 광경이 멋지다
▲ 단풍으로 물드는 아름다운 지지계곡
▲ 지나가는 차도 없고 사람도 없고 풍경도 날씨도 좋기에 평지에서 페달링을 신나게 했다 시속 33.9km
▲ 동화호의 수량이 너무 적어서 애처롭게 보인다
▲ 단풍이 드는 나뭇잎 사이로 반짝 반짝 편린처럼 빛나는 호수
▲ 동화호에서 내려와서 삼거리에서 왼쪽 인월 아영방향으로 서서히 업힐 ( 남원방향으로 직진하면 아니되옵니다 )
▲ 왼쪽 길로 들어서면 저 멀리 산위로 보이는 복성이재로 넘어 가는 산길
▲ 이곳 수자원공사 간판앞에서 왼쪽으로 왼쪽으로
▲ 고도가 높아지면서 마을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 굽이 굽이 돌아가는 고갯길
▲ 고개를 오르는 중간에 그 유명한 봉화산 철쭉 단지로 오르는 주차장
▲ 날씨가 뿌옇다 그래서 풍경이 선명하지 않네
▲ 높은 고갯마루지만 이곳이 복성이재는 아닙니다. 아니라구요 ~
▲ 동화저수지를 지나서 빡세게 오른 이곳 이곳은 복성이재가 아님
높다고 모두 백두대간이 아니며 이곳은 높은 고개이지만 능선이 연결되는곳이 아니기에 그냥 아래쪽으로 내려가야 함
이곳에는 어디에도 백두대간 표식이나 리본이 전혀없다.
▲ 동네 높은 언덕 정상부에 있는 임도 차단기를 넘어가지 말것 중요
복성이재는 그냥 도로진행방향으로 자연스럽게 500m 정도 내려가면 복성리 마을 표석과 함께 백두대간 이정표와 리본이 보일것임
그곳에서 오른쪽으로 180도 P턴 회전하여 마을길로 내려감
▲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쭈~욱 내려오면 나타나는 복성리 마을 표석과 복성이재
이곳에서 오른쪽 전통한옥펜션이라는 간판 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들어가야 한다. 길 방향을 놓치기 쉬운 지점이다
▲ 이 고개는 봉화산과 사치재를 이어주는 중간 지점이다
오래전 백두대간 봉화산으로 갈때 이곳에서 버스를 내렸다
▲ 복성이재 도착
이곳에서 사치재 방향으로 마을길로 진입할것
▲ 위 사진 오른쪽길에서 내려와사 바로 P턴하여 왼쪽길로 내려가야함
사진 , 라이딩 설명은 잠시 대기.....
▲ 성암마을을 지나서 계속 다운 힐 구간.
▲ 이정표를 보면 왼쪽 운봉방향으로 이동
▲ 전면의 고속도로 다리 아래로 가지 말고 이곳에서 바로 왼쪽으로 이동
▲ 한참을 올라가는 길이다
▲ 이곳에서 왼쪽 사치방향으로 가면 백두대간 사치재와 사치재 터널이 나온다. 그러나 연이어 연결되는 길이 없기에 패스~
이곳에서 오른쪽 아영 운봉쪽으로 이동하기. 이곳 사치삼거리의 고도가 약 490m 정도 나오는 만만찮은 고개다
▲ 다음의 숙제로 남겨둔 사치재를 지나서 황산대첩비로 나오기
▲ 사치재 삼거리에서 다운힐하면 오른쪽 운봉 남원 방향으로 이동하다가 삼거리가 나오면 왼쪽 중앙선이 있는 방향으로 이동하기
▲ 사치재에서 오다가 중앙선이 있는 왼쪽길로 이동
▲ 운봉 소재지 둥지민박을 찾아서 달려라
▲ 이곳은 바래봉 철쭉제를 할때 3번이나 왔던 곳이기에 눈에 익은곳이다
철쭉제때는 산악회 버스와 관광버스 차량이 미어터지도록 많이 오지만 그외에는 한가한 고장이다
판소리의 고향인 운봉
판소리 동편제 발생지인 운봉에는 판소리 다섯마당 가운데 하나인 홍보가의 배경이된 마을도 있다. 동편제 창시자인 송흥록은 조선 말기 운봉 화수리 비전마을에서 태어났다
▲ 차량이 서있는 건물이 둥지민박이다
둘레길로 인하여 많이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 고갯마루에 오를 때는 덥고 고갯마루에서 다운힐때는 매우 춥기에 베스트와 바람막이를 입으며 다운했다.
속에 긴팔 라운드 티셔츠를 입었더니 더워서 벗었다.
▲ 밤 10시 취침 4시 30분 기상했다
내일은 여원재를 거쳐서 정령치와 하이라이트인 성삼재까지 오른 후 구례 버스터미널로 이동하는 것이다
지족불욕(知足不辱)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지지불태(知止不殆)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가이장구(可以長久) 오래도록 편안할 것이다. - 노자 도덕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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