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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불타는 소금강

by 한국의산천 2013. 10. 27.

불타는 오대산 소금강 [10월 27일 일요일]  

 

滿山紅葉

시월도 이제 막바지에 다달은 일요일 온 산에 나뭇잎은 붉게 물들고 있었다.

오대산 소금강 계곡의 공기는 약수물처럼 톡 쏘게 맑고, 붉고 노란 이파리들은 춤추듯 미묘하게 하늘대고 만산홍엽은 꽃보다 요요하고 노을처럼 화려했다.

온 국민이 단풍구경을 나선듯 고속도로와 관광지는 인파로 만원이었다 

 

 

 

 

오대산 소금강 (강원 강릉시 연곡면)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삼산리  오대산국립공원에서 태백산맥 동사면에 속한 연곡천 상류 지역의 골짜기.

강릉시 연곡면 삼산리의 국립공원 소금강 지구의 소금강은 우리나라 명승 제1호로 지정(1970년 11월 18일)되어 있으며 오대산국립공원 면적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계곡이다.

 

 

  오대산에서 가장 빼어나다는 소금강(小金剛)은 본래 청학산 소금강이었는데, 오대산국립공원으로 편입되면서 오대산 소금강이라 불린다. 소금강이란 빼어난 산세가 금강산 같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이다.

 

  청학산은, 황병산을 주봉으로 해서 우측은 노인봉, 좌측은 매봉이 자리한 것이 마치 학이 날개를 편 듯한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당일 탐방코스로서 소금강 관리사무소에서 백운대까지 둘러보고 오는 길이 적당하다.(약 3시간 30분 소요)

 

 

 

 소금강의 경승은 이이(李珥)의 「청학산기(靑鶴山記)」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 곳이다. 1569년(선조 2)에 이이는 잠시 벼슬을 그만두고 강릉에 내려와 있을 때 산세가 수려하고 골짜기 물이 청정하여 자연의 정취가 그윽한 곳을 찾던 중, 마침내 인적이 드물어 잘 알려지지 않은 청학산을 찾게 되었다. 이율곡은 이곳을 더없이 사랑하여 「청학산기」를 저술했다.

 

 

  소금강의 주요 경관으로는 금강문, 취선암, 잣고개, 내동, 무릉계, 귀새바위, 쇄암, 십자소, 금강사, 이능암, 식당암, 금구암, 명경대, 신선암, 청심대, 세심폭, 구룡연, 구룡폭포, 은선계곡, 만물상, 아미산성, 상팔담, 학유대, 구곡담, 신선암, 비선암, 삼불암, 불영소, 금강굴, 삼폭, 광폭, 견우암, 오각봉, 십이오작담, 강아지바위, 삼연폭포, 사문다리, 선녀탕계곡 등이 있다.

소금강 주차장 주변으로 산장, 방갈로, 민박, 식당 등이 있다. 소금강에서는 매년 10월 둘째주에 날을 정해 청학제를 열고 있다.

 

 

 

  주차장에서 가다보면 처음 만나는 것이 "소금강" 이라는 비석과 " 명승 1호 명주 청학동 소금강" 이라는 표지석이 눈길을 끈다
철다리를 건너 청학산장  - 계곡가에 십자소 (바위가 십자형으로 파여 있으며 고기가 많이 노닌다 )-  금강사를 지나서 철다리를 건너면 - 상당히 넓은 바위 식당암이 나타난다 -  모퉁이를 돌아서면 우뚝 솟은 삼선암 - 구룡폭 ( 구룡폭포 상단의 아홉번째 폭의 구멍파인 바위는 마의 태자가 군율을 어긴 병사에게 사형을 집행햇다는  사형대이다 ) - 폭포 계곡 위쪽으로는 아미산성 - 학유대 - 귀면암 - 향로암 , 백마봉 , 일월암 , 선녀탕, 탄금대 등이 모여 있는 만물상. 그위로는 백운대의 조그만 머리돌 만한 공기돌위에 집채만한 바위가 얹혀져 있다 . 그위로는 낙영폭포가 있으며 계곡은 점차 노인봉으로 올라가는 능선으로 변하며 고도를 높여간다

 

 

 

 

 

 

 

 

 

 

▲ 식당암에서 ⓒ 2013 한국의산천

  명경! 세상에 거울처럼 두려운 물건이 다신들 있을 수 있을까! 인간 비극은 거울이 발명되면서 비롯했고, 인류 문화의 근원은 거울에서 출발했다고 하면 나의 지나친 억설일까? 백 번 놀라도 유부족일 거울의 요술을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일상으로 대하게 되었다는 것은 또 얼마나 가경할 일인가?

  

  신라조 최후의 왕자인 마의 태자(麻衣太子)는 시방 내가 서 있는 바로 이 바위 위에 꿇어 엎드려, 명경대를 우러러 보며 오랜 세월을 두고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했다니, 태자도 당신의 업죄를 명경에 영조해 보시려는 뜻이었을까! 운상기품에 무슨 죄가 있으랴만, 등극하실 몸에 마의를 감지 않으면 안되었다는 것이 이미 불법이 말하는 전생의 연일는지 모른다.

 

 

   태자의 몸으로 마의를 걸치고 스스로 험산(險山)에 들어온 것은, 천 년 사직을 망쳐 버린 비통을 한몸에 짊어지려는 고행이었으리라. 울며 소맷귀 부여잡는 낙랑공주의 섬섬옥수를 뿌리치고 돌아서 입산 할 때에, 대장부의 흉리가 어떠했을까? 흥망이 재천이라. 천운을 슬퍼한들 무엇하랴만, 사람에게는 스스로 신의가 있으니, 태자가 고행으로 창맹에게 베푸신 도타운 자혜가 천 년 후에 따습다.

 

  천 년 사직이 남가일몽이었고, 태자 가신 지 또다시 천 년이 지났으니, 유구한 영겁으로 보면 천년도 수유 칠십 생애에 희로애락을 싣고 각축하다가 한움큼 부토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의지 없는 나그네의 마음은 암연히 수수롭다. - 산정무한中에서-

 

 

 

 

 

 

 

 

 

 

 

 

 

 

 

 

 

 

 

 

 

 

 

 

▲ 진고개에 오르니 지난 여름 MTB를 타고 서울 ~ 강릉을 가며 지났던 추억이 떠오른다 ⓒ 2013 한국의산천

 

▲ 지난 여름 7월 서울 ~ 강릉을 달리며 진고개에서 ⓒ 2013 한국의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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