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다가오기에 마음먹고 집안 대청소를 하다가 책장 위에서 오래전의 빛바랜 사진을 발견했다. 아주 많은 양의 사진을~
그중 브라보와 함께 했던 몇장의 사진을 보며 그 시절을 회상해봅니다. 지금 올려진 사진은 대략 30~20년전의 사진이다
▲ 1980년 부산 태종대에서 ⓒ 2012 한국의산천
1980년 대통령기 쟁탈 제 13회 전국 등산대회가 부산 금정산에서 열렸다.
브라보와 내가 출전한 팀이 종합 최우수상인 대통령기를 수상하고 태종대를 둘러볼때 사진이다
▲ 30년의 세월이 유수와 같이 흘러서 엊그제 2012년 9월 라이딩 사진 ⓒ 2012 한국의산천
살아감의 향기를 맛볼 수 있음은 소유를 버릴 때 가능하다. 미증유의 물질적 풍요는 얼마간의 만족을 줄지 모르지만 또 다른 족쇄를 채우며 인간을 감금시킨다.
진정으로 자유로운것은 되돌아 가도 자기것이라고 주장할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때 그때만이 참다운 자유인의 반열에 당당히 들수가 있다. 그 일이 가능할까? 그것은 神의 경지다. 어찌 내가 神의 경계를 넘나보며 마음을 비웠다고 가당찮은 언변을 늘어 놓을 수가 있었던가.
그러나 나는 조금씩 터득 해 가고 있다. 山 만이 결국 세상의 속박으로 부터 벗어나게 해서 人間이 궁극적으로 갈구하는 自由를, 그리고 해탈을 얻게 해주는 유일한 길이라는것을-
▲ 1992년. 지금은 중년이 된 그 당시 산아가씨들과 함께 인수를 오르며 ⓒ 2012 한국의산천
브라보와 나는 중학교 2학년때 (15세)부터 암벽등반을 시작했다. 작은 손도끼 옆에차고 키타와 야전(포터블 야외전축)을 챙겨서 날라리(?) 캠핑 가려다가 동네兄의 꼬득임에 넘어가 바로 암벽등반에 입문했다. ( 동네兄 / 이건영 : 대한산악연맹 인천연맹 회장, 인천 마라톤 클럽 회장 역임)
우이암, 치마바위, 주봉을 오르고 선인과 인수를 오르며 젊음을 노래했다. 그 당시 토요일에는 학교가 파한 후 무조건 야영을 들어갔다. 야영할때 선배들의 술심부름도 하고 막걸리 한잔씩을 홀짝 홀짝 마셨다.
▲ 그 당시 등산은 나의 종교이자 내 생활의 전부였다 Only climbing~! ⓒ 2012 한국의산천
산은 땅의 한 부분이지만 그 끝은 허공이다. 산을 오르는 것은 허공을 향해 가는 길이다.
산의 정상에 섰을 때 우리는 손으로 무엇 하나 잡을 수 없다. 그러함에도 사람들은 하늘의 문을 여는 빗장이라도 찾으려는 듯 산으로 오른다.
산은 사람들에게 가식된 생활의 일상을 벗겨내고 스스로를 직립해서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을 찾기 위해 산을 향해 길을 떠난다. 순례의 길이기도 하다.
▲ 1982년 강촌 구곡폭포를 오르며 ⓒ 2012 한국의산천
설악아 잘있거라 - 신현대
설악아 잘있거라 내 또 다시 네게 오마 포근한 내 품속을 어디간들 잊으리오
철쭉꽃 붉게 피어 웃음지는데 아~~ 나는 어이해 가야하나
선녀봉 섧은 전설 속삭이는 토왕성아 밤이슬 함뿍젖어 손짓하던 울산암아
나 항상 너를 반겨 여기 살고픈데 아~~ 나는 또다시 네게오마
보라빛 코스모스가 찬바람에 흩날릴때 포근한 네눈동자 그리움에 젓었네
가을이면 잊으마한 그리운 그대여 아~~ 나는 잎 떨어진 나무인가
▲ 1992년 7월 19일. 한여름 설악산 천화대에서 웅혼하게 펼쳐진 잦은바윗골 능선을 배경으로 ⓒ 2012 한국의산천
천화대를 3번 오르면서 아마도 제일 나중에 올랐던 사진으로 기억된다
암릉을 오르고 바위에 앉아 눈을 감고 귀 기울여 보라. 숲과 숲이 내통하고 바위와 바람이 몸을 섞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설악과의 내밀한 사랑을 꿈꾸는 이들은 저 멀리 바람 끝에 묻어오는 설악의 내음이 짙게 느껴질 것이니…. 사랑은 항상 목마른 법이다.
설악과 사랑에 빠진 산꾼이라면 가슴 어느 한 구석 어딘가에서 ‘타는 목마름으로’ 설악을 갈구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모순율을 가진 병이며, 설악에 가야만 치유되는 몹쓸 상사병이다.
설악의 부르심을 받았다면 별 수 없다. 떠나서 오르는 일이외는 답이 없다.
▲ 설악산 북인길 트레버스 코스에서 ⓒ 2012 한국의산천
▲ 석주길 성벽에서 ⓒ 2012 한국의산천
이 성벽을 마주할때 숨이 헉! 막히고 심장이 뛰었다. 그래도 멋진 선을 그으며 Top으로 올랐다.
▲ 보라빛 코스모스가 찬바람에 흩날릴때 포근한 네눈동자 그리움에 젓었네
▲ 국내 최초로 만들어진 RF(레드페이스) 암벽화 캔버스 슈즈에 츄리닝 바지를 입고 바위를 올랐다 ⓒ 2012 한국의산천
그 당시 암벽 등반시에는 츄리닝바지가 내겐 제일 편했던 복장이었다
▲ 야영장비인 텐트와 침낭 그리고 암벽등반 장비를 짊어지고 설악산 신흥사 일주문 앞에서 ⓒ 2012 한국의산천
다시금 옛 추억처럼 그 가을이 다시 오고있다.
힘겹게 산을 오른 후 더 올라설 곳이 없다고 느꼈을 때 그때는 어디를 가고 싶게 될까? 하늘로 오를 것인가?
정상의 마지막 바위 끝에는 하늘문을 여는 빗장이 놓여 있는가? 우리는 그 빗장의 문고리를 잡기위해 끝이 보이지 않게 반복되는 길고 긴 산행의 장막을 한겹 한겹 헤치고 있는지 모른다.
산은 존재하는 그 자체만으로 무한한 뜻을 지닌다. 언제나 침묵하는 자세로 우리들 곁으로 다가와 혼탁해진 사람의 가슴을 열게하고 순백한 애정의 한자락을 심어준다.
천 년 사직이 남가일몽(南柯一夢)이었고, 태자 가신 지 또다시 천 년이 지났으니, 유구(悠久)한 영겁(永劫)으로 보면 천년도 수유(須臾)던가!
고작 칠십 생애(七十生涯)에 희로애락을 싣고 각축(角逐)하다가 한움큼 부토(腐土)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의지 없는 나그네의 마음은 암연히 수수(愁愁)롭다.
-정비석 산정무한 中에서-
'MTB등산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서진 야생화단지 2 (0) | 2012.10.01 |
---|---|
정서진 노을종 (0) | 2012.09.29 |
푸른 능선, 더 푸른 충주호 금수산 (0) | 2012.09.27 |
청계천 라이딩 (0) | 2012.09.23 |
저녁 산책 (0) | 2012.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