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생은 단 한번 핀 섧도록 고운 꽃이구나
[바람의노래] 장돌뱅이 - 곽성삼
부초(浮草)처럼 떠돈 하! 많은 세월
우리의 생은 단 한번 핀 섧도록 고운 꽃이구나
취해도 좋을 삶을 팔고 찾는 장돌뱅이로 산천 떠도세
가야겠네 가야겠네 이 땅을 위한 춤을 추며
어우아 넘자 어우아 넘자 새벽별도 흐른다
선유도_백사장의 노래, 갈대의 춤… 신선이 놀다간 그 섬
군산=글·이영민 기자 / 사진·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출처 chosun.com. 정리 한국의산천 http://blog.daum.net/koreasan ]
선유도(仙遊島)로 향하는 배가 전북 군산항을 떠나자마자 해무(海霧)를 만났다. 시간이 흐를수록 안개는 짙어져 검푸른 바다 위를 빽빽하게 채웠다. 지척도 구분할 수 없는 안갯속에서 바닷길을 열기를 한 시간 남짓, 뱃고동이 울렸다. "선유도 선착장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군산에서 남서쪽으로 약 50㎞ 정도 떨어진 선유도는 신선 '선(仙)'에 놀 '유(遊)'를 쓴다. 먼 옛날 신선이 이곳에서 놀았을 만큼 경치가 좋다는 뜻이다. 신시도·무녀도·방축도·명도·관리도 등 다른 섬들을 둥그렇게 둘러치고 그 가운데 자리한 모양새만 봐도 평범한 곳은 아닌 듯하다.
한때는 이곳이 '군산'이었다. 조선 때 태조 이성계가 왜구의 잦은 침략을 막기 위해 이곳에 수군부대를 배치하면서 '군산도'로 불렀다고 한다. 세종 때 수군부대는 내륙의 옥구군 북면 진포(현 군산)로 옮겨갔고, 이곳엔 '옛 군산'이라는 뜻의 '고(古)군산'이나 '선유도'라는 이름이 남았다.
▲ 선유도는 바다 위에 다리를 놓아 인근 무녀도·장자도·대장도와 연결된다. '섬 4종 세트'인 셈이지만, 섬 4곳의 큰길을 이어도 그 길이가 총 20㎞도 안 된다. 하지만 모래사장·갯벌·산·염전·낙조 등 서해안 섬에서 즐길 만한 것들이 너무 많다.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는 것처럼, 선유도 즐기다 배가 끊길 수도 있다.
군산시는 최근 자전거 하이킹과 도보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선유도 '구불길'을 새로 단장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풍경이 좋은 곳에서는 천천히 걸으며 선유도·무녀도·장자도·대장도 곳곳을 둘러볼 수 있는 길이다. 함께 나선 길벗에 따라 들를 만한 필수코스와 선택코스를 소개한다.
▲ 군산 선유도 남악리 대봉에서 노란 갓꽃이 한가득 피어난 시골길을 따라가면 망주봉 입구에 닿는다.
◇선유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선유도 선착장에서 선유도 내부 길을 따라 5분 정도 걸어가면 '명사십리'다. '선유 8경'의 하나다. 이름에는 10리(4㎞)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 1.5㎞ 남짓한 천연 해안사구 해수욕장이다. 백사장이 유리알처럼 투명하고 고와 맨발로 모래사장 위를 뛰어다녀도 발이 아프지 않다. 파도도 높지 않고 해수욕장에서 수십m를 가더라도 수심이 허리를 넘지 않는 고요한 곳이다. 양말을 벗고 걸어보면 발가락 사이로 파고들며 간지럼을 태우는 모래의 감촉을 느낄 수 있다.
명사십리에서 전월리·남악리 방면으로 가다 보면 뒤옹박 두 개를 겹쳐놓은 모양의 돌산을 만난다. '망주봉(望主峰)'이다. 옛날 선유도에 유배된 충신이 매일 이곳에 올라 한양에 있는 임금을 그렸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하얀 바위산과 그 위에 매달리듯 붙은 낙락장송(落落長松)의 모습이 거대한 조각상처럼 보인다. 여름철에 큰비가 내리면 망주봉에서 7~8개의 물줄기가 쏟아져 '망주폭포'를 연출한다고 한다.
▲ 남악리 대봉은 선유도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선유도 최고의 전망대다. 밀물 때 물이 차면 섬의 양쪽인 선유 2구와 선유 3구가 가느다란 해안 사구로 이어지고, 썰물이 되 면 모래사장과 갯벌이 언덕길 하나를 두고 맞닿은 모습을 볼 수 있다.
망주봉을 지나 남악리에 닿으면 선유도 최고의 전망대인 '남악리 대봉(152m)'이 있다. 마을 어귀에 있는 등산로에서 시작해 정상까지 20분 정도 걸린다. 길은 험하지만, 바짝 땀을 흘려 전망대에 닿으면 한순간에 노고를 잊게 된다. 가느다란 명사십리 언덕을 통해 이어진 선유도의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선유도 백사장을 본 순간 세상에서 가장 맑고 넓은 원고지를 생각하고는 손가락으로 한 편의 시를 썼다"는 곽재구 시인은 날아가는 새를 보고 "섬이 섬에게 편지를 썼나 보다"라고 했다. 어쩌면 그 편지가 지난 궤적이 대봉에서 바라보는 명사십리 언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새소리와 갈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는 전월리 갈대밭은 어촌마을로 들어서는 신비한 출입구 같다.
◇사랑이 짙어지는 곳
남악리 끝자락에 있는 '몽돌 해수욕장'은 100m 남짓한 자갈 해수욕장이다. 오랜 세월 파도에 씻겨 동글동글해진 검은 돌이 파도가 밀려날 때마다 햇살에 반짝인다. 잘 알려지지 않아 찾아오는 이가 별로 없는 이곳은 해수욕장 한쪽 끝 낡은 벤치가 명소다. 캔커피를 들고 연인과 나란히 앉으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해변 카페'가 된다.
남악리를 나와 전월리 선착장으로 가는 길에는 갈대밭이 있다. 멀리서 보면 평범한 갈대밭이지만, 가까이 가면 갈대밭 사이로 난 오솔길이 보인다. 100m 남짓한 짧은 길이지만, 이곳을 걸어야만 갈대가 해풍에 몸을 부대끼며 부르는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전월리 선착장에는 '기도 등대'가 있다. 원래는 '선유도항 방파제 등대'라는 딱딱한 이름이지만, 기도하는 손 모양으로 생겼다 해서 '기도 등대'라는 별명이 붙었다. 앙증맞게 서 있는 새빨간 등대가 절로 카메라를 꺼내게 한다.
◇배움이 무르익는 곳
선유도에서 무녀도로 건너가면 아이들과 함께 어촌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 많다. 무녀도는 무녀가 제사상을 차리고 춤을 추는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선유도와 무녀도를 잇는 선유대교를 건너자마자 멸치젓·까나리액젓 익는 냄새가 자욱한 전형적 어촌마을이 등장했다.
무녀도는 20~30여년 전만 해도 섬 대부분이 염전이었을 만큼 소금 채취가 번성했지만, 지금은 20평 남짓한 소금밭 예닐곱 곳만 남았다. 하지만 지금도 동풍이 불고 햇볕만 쨍쨍하면 염전 바닥에 깔린 타일 위로 새하얀 소금꽃이 두툼하게 깔린다.
염전 인근에는 조개를 직접 잡아볼 수 있는 '갯벌 체험장'이 있다. 호미 하나를 들고 시커먼 갯벌을 누비며 조개를 캐기도 하고, 동그란 갯벌 구멍에 맛소금을 살살 뿌려 맛조개를 끌어내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무녀도에 있는 유일한 초등학교인 '무녀초등학교'는 아빠·엄마의 어린 시절을 보여줄 수 있는 곳이다. 아무렇게나 자란 운동장 잔디밭 옆에 요즘 보기 힘든 작은 그네와 미끄럼틀이 있는 소박한 풍경이다. 건물에 떡하니 붙은 '한 가지만 잘해도 성공한다'는 교훈에선 소박함이 묻어난다.
◇추억이 살아나는 곳
선유도 선유봉 아래에 있는 옥돌 해변은 주민들이 추천하는 선유도의 비경이다. 바다에선 맑은 물이 자그마한 자갈 위로 출렁이고, 육지엔 선유봉의 고운 자태가 병풍처럼 펼쳐진다. 그리 넓지는 않지만 아담하고 조용한 해변을 독점할 수 있어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며 회포를 풀기 좋은 곳이다.
선유도에서 장자대교를 통해 이어진 장자도는 과거 멸치잡이가 번성했던 곳이다. 지금은 선유도 인근 작은 섬에 지나지 않지만, 한때는 고군산군도의 16개 유인도(有人島) 중 가장 풍요로운 섬이었다. '선유 8경'의 하나로 꼽히는 장자어화(壯子漁火)는 장자도가 풍요를 누리던 시절, 섬 인근에서 배들이 불 밝히고 야간작업을 하던 모습을 말한다. 지금은 그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지만 가족 단위로 바다낚시나 갯벌 체험 등을 해보는 '어촌 체험'은 해볼 수 있다.
장자도에서 대장도로 넘어가는 길목에는 10m 길이의 작은 다리가 있다. 장자교라고 불리는데, 인근 선유대교·장자대교에 비해 규모가 작아 지도에도 잘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은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사랑하는 낙조(落照) 촬영 포인트. 어린 시절 본 것과 비슷한 섬마을 풍경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찍기에 좋다.
대장도 대장봉(142.8m) 8부 능선에는 '할매바위'가 있다. 5월 짙어지는 녹음 사이로 앙칼지게 솟아나 한 폭의 산수화를 완성한다. 과거를 보러 서울에 간 남편을 기다리던 여인이 바위가 됐다는 옛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여·행·수·첩]
◆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군산 고속버스터미널이나 군산역까지 버스나 기차를 이용해 가야 한다. 서울의 경우 서울센트럴터미널에서 군산까지 고속버스가 2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서울 용산역에서 새마을호를 타면 군산역까지 3시간 정도 걸린다. 선유도행 배는 군산연안여객터미널에서 탈 수 있다. 쾌속선은 1시간, 고속선은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여객선 운항 일정은 날씨 등에 따라 유동적이다. 여객선 운항 문의 (063)461-8000(한림해운) (063)462-4000(월명여객선) www.hanlim heawoon.co.kr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서해안고속도로 군산IC로 나와 옥녀교차로에서 연안여객터미널 방향으로 빠지면 된다. 선유도에는 차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어 여객터미널 주차장에 세워둬야 한다. 섬에서는 버스나 택시 등의 대중교통 수단이 없어, 하루 1만원 정도에 자전거를 빌리는 것이 좋다.
◆ 대부분 횟집이다. 활어 양식장이 없는 선유도에선 어민들이 직접 잡아온 돔이나 갑오징어 등을 맛볼 수 있는데, 도톰한 살이 쫄깃쫄깃하다. 민박집을 겸한 선유팔경횟집(063―465―6725, 465―8667)에선 신선한 활어회는 물론 자연산 굴로 시원하게 맛을 낸 미역국·순두부찌개 등을 즐길 수 있다.
◆ 선유도 남악리에 있는 대봉은 섬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다. 등산로 입구에서 약 20분 정도 가파른 길을 올라가야 하지만, 전망대에 오르면 왜 선유도가 '신선이 놀던 곳'으로 불리는지 알게 된다.
선유봉과 장자도 낙조대는 서해 낙조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명소다. 최근에는 장자도에서 대장도로 넘어가는 다리(장자교) 바로 앞부분에 있는 작은 언덕도 '어촌마을에 지는 해'를 찍는 명소로 부상하고 있다.
낭만적인 분위기를 원한다면 선유도 전월리 선착장에 있는 '선유도항 방파제 등대'를 추천한다. 기도하는 손 모양의 빨간색 등대는 자전거만 한 대 세워놓아도 한 폭의 수채화가 된다.
◆ 군산시 (063)453-4986, tour.gun san.go.kr
선유도 www.sunyudo.com
소나무숲과 바다가 맞닿은 태안반도 '솔향기길'을 걷다
3개 나란히, 바위섬엔 형제의 효심이 담겼다
길(道)은 원래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숱하게 밟고 간 자리에 풀숲이 걷히고 바닥이 드러나면 길이 된다. 길마다 사람의 흔적과 사연이 남는 것은 이 때문이다. 충남 태안의 '솔향기길'도 원래는 길이 아니었다. 그저 해안가를 따라 해송(海松)을 이불처럼 덮은 능선이 끊일 듯 이어진, 이름 없는 한적한 어촌이었다.
2007년 12월 태안 앞바다에서 원유 유출 사고가 나자 이곳 해안은 온통 시커먼 기름으로 뒤덮였다. 인적이 드물었던 솔향기길에 사람의 발길이 잦아진 것은 그때부터였다. 기름을 닦으러 나선 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숲을 헤치고 가파른 절벽을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시커멓던 바위가 닦이고 씻겨 제 빛깔을 찾아가면서 어느새 그곳에 길이 생겼다. 한쪽으로는 소나무숲, 다른 쪽은 바다를 끼고 걸으며 서해안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명소가 됐다.
◇해안가 길 정상에선 파란 하늘 반 파란 바다 반
솔향기길의 시작은 태안반도 북쪽 끝 만대(萬垈)항이다. 지명은 '많은 사람들이 살 곳'이란 뜻이지만, 실제로는 작고 아담한 포구마을이다. 포구가 끝나는 곳에서 솔향기길이 시작된다.
가파른 산길로 첫 발걸음을 뗀다. 산길에는 지난 겨울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솔잎이 황갈색으로 덮여 있다. 얼마 안 가서 나타나는 오르막길에 호흡이 가빠지지만 크게 숨을 들이쉴 때마다 짙은 솔향이 콧속을 파고든다. 코에 솔향이 감돈다면, 귀에는 서해 바다 파도소리가 닿는다. 굽이굽이 난 숲길은 나지막한 산 정상으로 이어진다. 해안가 길인만큼 정상에서 마주하는 것은 파란 하늘이 아닌 푸른 바다다.
숲길을 따라 700m 정도 걸어가면 '해변길로 가시오'라는 팻말이 나온다. 동시에 산속 풍경은 어느새 맨질맨질한 자갈 해안으로 바뀐다. 아기 주먹만한 자갈은 밟힐 때마다 "뽀드득뽀드득" 소리를 낸다.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면 파도도 잔잔하게 잦아드는 느낌이다.
▲ 삼형제 바위는 바닷가로 일을 나간 뒤 돌아오지 못한 어머니를 기다리던 형제들이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세 개의 바위섬이 나란히 서 있어 보는 위치에 따라 하나로 겹쳐 보이기도 한다. /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태안 해안가 바람은 센 편이 아니다. 바람이 거셌다면 해송들이 바다 반대쪽으로 누웠을 테지만, 솔향기길 해송들을 하늘을 향해 직립하고 있다.
해안을 지나 다시 접어든 숲길. ‘붉은 앙뗑이’와 ‘중떨어진 앙뗑이’라는 안내판이 나온다. ‘앙뗑이’는 가파른 곳을 뜻하는 태안 지역 사투리다. ‘붉은 앙뗑이’는 흙과 돌이 붉어 붙여진 이름이지만, ‘중떨어진 앙뗑이’는 나무열매를 따던 중이 절벽에서 떨어졌다는 믿기 힘든 유래를 담고 있다.
가장 가파른 구간은 당봉전망대까지 이어지는 200여m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산길에 능숙한 등산객들도 땀을 뻘뻘 흘린다. 흐르는 땀은 전망대 한쪽에 운치 있게 놓여진 정자에서 매끄럽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식힐 수 있다.
당봉·근욱골해변·칼바위를 지나면 가마봉이 나온다. ‘가마봉’이라는 안내판을 끼고 돌아서면 펼쳐지는 바다는 한 폭의 수채화다.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민 태양이 서해 바다 위로 햇빛을 쏟아낸다.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빛나는 바다 위에서 어선 한 척이 서서히 멀어지더니 검은 점으로 사라진다.
◇승천하지 못한 용이 굳어버린 망부석
솔향기길에는 전설도 많다. 만대항에서 출발해 처음 만나는 해안에는 작은 바위섬 3개가 나란히 서 있다. ‘삼형제 바위’다. 홀로 아들 3형제를 키우던 한 여인이 있었는데 어느 날 조개를 잡으러 바다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바닷가에서 식음을 전폐하고 어머니를 기다리던 아들들이 바위가 됐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솔향기길 중간지점에 있는 여섬은 옛날 조상들이 인근 섬들에 이름을 붙일 때 남을 여(餘)자를 붙여 ‘여(餘)섬’으로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이름이 섬의 운명이 됐다. 1999년 여섬 인근에 이원방조제가 생기면서 방조제 안쪽에 있던 다른 섬들은 모두 육지가 됐고, 여섬 홀로 ‘섬’으로 남았다.
펜션단지 근처에 있는 해식동굴은 용이 나왔다고 해서 ‘용난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옛날 용 두 마리가 이 굴 속에서 함께 도를 닦으며 승천을 기다렸다는 전설이 서려 있다. 하지만 하늘로 오른 것은 한 마리뿐. 승천에 성공한 용은 굴 입구에 하얀색 비늘자국을 남겼지만, 실패한 용은 굴 앞에서 한을 품고 바위가 돼 망부석이 됐다고 한다.
만대항에서 여섬·용난굴을 지나는 솔향기길 1구간은 총 10.2㎞다. 이 구간은 태안 원유유출 사고 때 방제작업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차윤천(61)씨 주도로 만들어졌다. 차씨는 “해안가에 기름을 닦으러 가는 자원봉사자들과 주민들을 도우려고 곡괭이로 길을 내던 게 지금 솔향기길이 됐다”고 했다.
▲ 용이 승천을 기다리며 도를 닦았다는 용난굴. 18m 길이의 굴 안에서 내다보니 태안 화력발전소가 보인다. /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태안군은 2009년부터 차씨의 뜻을 이어 솔향기 길을 4구간으로 늘렸다. 꾸지나무골해수욕장에서 가로림만을 거쳐 이원방조제까지 이어지는 2구간(9.9㎞)과, 밤섬 선착장과 해송이 아름다운 3구간(9.5㎞)도 볼거리다. 4구간은 새섬부터 청산포구를 거쳐 갈두천까지 12.9㎞로 아담한 항구와 어촌마을을 둘러볼 수 있다.
[태안 여행 포인트]
◇이원방조제 희망벽화
충남 태안군 이원면 이원방조제에 그려진 '희망벽화'는 2007년 12월 원유유출사고를 극복하고 되찾은 희망을 표현했다. 길이 2.7㎞, 높이 7.2m, 면적 1만9440㎡로 전 세계 방조제 벽화 중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한다. 태안 갈매기, 바다생물, 파도 등을 담은 49개 작품이 2㎞에 걸쳐 그려져 있고, 나머지 0.7㎞ 구간에는 사고 당시 방제작업에 힘을 보탰던 자원봉사자와 주민들의 손도장이 등장한다.
◇두웅습지
원북면 신두리 두웅습지는 해안가 사구(沙丘·모래언덕)에 만들어진 습지다. 면적이 6만5000㎡에 달하고, 2007년 국제적으로 보존가치가 높은 습지(람사르 보존 습지)로 등록됐다. 멸종위기에 처해 보존가치가 높은 금개구리·흰뺨검둥오리·표범장지뱀·아기마름 등 희귀 동식물이 살고 있다. 원시 자연을 학습할 수 있도록 입구에서부터 안쪽의 정자까지 150m 정도 나무길이 깔려 있다.
◇신진도
서해에서 잡히는 오징어가 모이는 곳이다. 봄이 되면 신진도 안흥외항에서 출발하는 안흥 유람선도 이용할 수 있다. 외항을 출발해 마도·사자바위·가의도·독립문바위 등을 둘러볼 수 있다. 6월부터는 천연기념물 괭이갈매기의 번식지로 유명한 난도를 둘러볼 수 있는 코스도 새로 생긴다.
◇꾸지나무골·파도리 해변
태안에는 만리포·몽산포·꽃지 등 이름난 해변이 많다. 하지만 여행 고수들은 꾸지나무골·파도리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해변을 더 선호한다. 이원면 꾸지나무골 해안은 솔향기길 1구간 끝 부분에 있다. 입구에 짙게 우거진 솔 그늘을 지나면 '아늑하고 정겹다'고 할 만한 작은 백사장이 나온다. 주변 산에 '꾸지뽕'(오디)이 많아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소원면에 있는 파도리 해안은 태안의 다른 해안들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붉은 갯바위와 절벽이 바다를 감싸고 있다. 여행객들에게는 전북 부안 변산바다의 적벽강을 닮은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여·행·수·첩
우럭젓국과 간장게장이 있으면 밥 한 공기로 부족하다. 태안의 토속음식 우럭젓국은 봄·가을 해풍에 사흘간 말린 우럭으로 끓인 맑은 국이다. 말린 우럭을 한 번 쪄낸 후 쌀뜬물을 넣고 두부와 청홍 고추 정도로만 맛을 낸다. 느끼하지 않고 짭조름한 국물은 해장국으로도 일품이다.
서해에서 잡은 싱싱한 꽃게로 담근 간장게장은 태안 여행의 별미가 된 지 오래다. 태안 주민들과 미식가들이 꼽는 맛집 ‘토담집’(041―674―4561)은 매년 봄 꽃게를 잔뜩 사서 얼려놓고 수시로 게장을 담근다. 벌집을 넣어 비린 맛을 잡아냈고, 직접 담갔다는 간장은 달달한 맛이 난다.
서해라면 낙조(落照)다. 붉게 물든 낙조를 찍을 때 섬 하나 넣고 싶다면 ‘여섬’이 제격이다. 솔향기길 1코스 중 가마봉전망대와 펜션단지 중간에 있다. 20m 높이의 작은 섬으로, 밀물이 되면 바위를 때리며 물보라를 일으키는 파도가 장관이다. 물이 빠지면 50여m의 바닷길이 열려 섬까지 걸어갈 수도 있다. 해안으로 내려가서 여섬을 올려보고 찍는 것보다 길 위에서 섬을 내려보는 구도가 파도의 움직임과 하늘빛을 함께 담기에 좋다.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하려면 서산IC나 해미IC에서 나와 태안읍에 들어온다. 홍성IC로 나왔을 때는 AB지구 방조제를 지나서 태안으로 진입할 수 있다. 태안읍에서는 원북면을 거쳐 이원면 만대항 방면으로 가는 데 30분 정도 걸린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태안버스터미널까지 시외버스를 타고 가서, 터미널 뒤편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원북·이원 방면 시내버스로 갈아탄다. 만대항까지 가는 시외버스는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6시 50분까지 하루 7차례 운행된다. 버스운행 문의는 태안여객(www.taeanbus.co.kr 041-675-6672)
●태안군청 www.taean.go.kr, 041-670-2797
태안군 음식·숙박 가격표시제 홈페이지(price. taean.go.kr)
▲ 서산 가로림만이 보이는 팔봉산에서 ⓒ 2012 한국의산천
소유언시(小遺言詩)
- 황동규-
열반에 머문다는 것은 열반에 속박되는 것이다 - 원효
1
살기 점점 더 덤덤해지면,
부음(訃音)이 겹으로 몰려올 때
잠들 때쯤 죽은 자들의 삶이 떠오르고
그들이 좀 무례하게 앞서갔구나 싶어지면,
관광객도 나대지 않는 서산 가로림만(灣)쯤에 가서
썰물 때 곰섬(熊島)에 건너가
살가운 비린내
평상 위에 생선들이 누워 쉬고 있는 집들을 지나
섬 끝에 신발 벗어놓고
갯벌에 들어
무릎까지 뻘이 차와도
아무도 눈 주지 않는 섬 한구석에
잊힌 듯 꽂혀 있다가
물때 놓치고 세상에 나오지 못하듯이.
2
그냥 가기 뭣하면
중간에 안국사지(安國寺址)쯤에 들러
크고 못생긴 보물 고려 불상과 탑을 건성 보고
화사하게 핀 나무 백일홍들
그 뒤에 편안히 누워 있는 거대한 자연석(自然石) 남근을 만나
생전 알고 싶던 얘기나 하나 묻고
대답은 못 듣고.
3
길 잃고 휘 둘러가는 길 즐기기.
때로 새 길 들어가 길 잃고 헤매기.
어쩌다 500년 넘은 느티도 만나고
개심사의 키 너무 커 일부러 허리 구부린 기둥들도 만나리.
처음 만나 서로 어색한 새들도 있으리.
혹시 못 만나면 어떤가.
우리는 너무 많은 사람,
나무, 집과 새들을 만났다.
이제 그들 없이 헤맬 곳을 찾아서.
4
아 언덕이 하나 없어졌다.
십 년 전 이곳을 헤매고 다닐 때
길 양편에 서서 다정히 얘기 주고받던 언덕
서로 반쯤 깨진 바위 얼굴을 돌리기도 했지.
없어진 쪽이 상대에게 고개를 약간 더 기울였던가.
그 자리엔 크레인 한 대가 고개를 휘젓고 있다.
문명은 어딘가 뻔뻔스러운 데가 있다.
남은 언덕이 자기끼리의 대화를 기억하고 있을까.
지난날의 갖은 얘기 이젠 단색(單色) 모놀로그?
5
한 뼘 채 못 되는 시간이 남아 있다면
대호 방조제까지만이라도 갔다 오자.
언젠가 직선으로 변한 바다에
배들이 어리둥절하여
공연히 옆을 보며 몸짓 사리는 것을 보고 오자.
나이 늘며 삶이 점점 직선으로 바뀐다.
지난 일들이 빤히 건너다보이고.
6
곰섬 건너기 직전
물이 차차 무거워지며 다른 칸들로 쫓겨다니다
드디어 소금이 되는 염전이 있다.
산다는 것은 스스로든 억지로든
칸 옮겨 다님,
누군가 되돌아가지 못하게 제때마다 물꼬를 막는다.
자세히 보면
시간에도 칸들이 쳐 있다.
마지막 칸이 허옇다.
7
물떼샌가 도요샌가
긴 발로
뻘에 무릎까지 빠진 사람은
생물로 치지 않는다는 듯이
팔 길이 갓 벗어난 곳에서 갯벌을 뒤지고 있다.
바지락 하나가 잡혀 나온다.
다 저녁때
바지락조개들만
살다 들키는 곳.
8
어둠이 온다.
달이 떠오르지 않아도
물소리가 바다가 된다.
밤새가 울 만큼 울다 만다.
왜 인간은 살 만큼 살다 말려 않는가?
생선들 누웠던 평상 위
흥건한 소리마당 같은 비릿함,
그 냄새가 바로 우리가 처음 삶에,
삶에 저도 모르게 빠져든 자리!
그 속에 온몸 삭히듯 젖어
육십 년 익힌 삶의 뽄새들을 모두 잊어버린다.
이 멈출 길 없는 떠남! 내 안에서 좀체 말 이루려 않는
한 노엽고, 슬거운 인간을 만난다.
곰처럼 주먹으로 가슴 두들기고
밤새처럼,
울고 싶다.
가로림만 한가운데에 웅도라는 작은섬이 있다.
해안선 길이 5km밖에 안되는 작은 섬이지만 물이 빠지면 광활하게 드러나는 갯벌이 장관이다. 갯벌의 바다 한가운데에 서 있는 느낌이다.
풍요롭고 기름진 갯벌에 토해놓는 석양의 빛은 웅도를 최고의 일몰 여행지로 꼽게 만든다. 물기 촉촉한 갯벌에 붉게 스며드는 석양이 가슴에 진한 기억을 남긴다.
부초(浮草)처럼 떠돈 하! 많은 세월
우리의 생은 단 한번 핀 섧도록 고운 꽃이구나
취해도 좋을 삶을 팔고 찾는 장돌뱅이로 산천 떠도세
가야겠네 가야겠네 이 땅을 위한 춤을 추며
어우아 넘자 어우아 넘자 새벽별도 흐른다
※ 이번 일요일에는 챌린지팀 회원님 여러분이 집안과 학교 행사가 많기에 라이딩은 개인적으로 실행하시기를 바랍니다
저 역시 개인적으로 답사 라이딩 갑니다 - 山川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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