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무르익으며 단풍잎이 서서히 지는 11월 4일 금요일
원주 섬강 소금산 그리고 하드프리의 메카 간현암 둘러보기
요즘은 폰으로 사진 촬영하는 맛이 솔솔하게 좋습니다. 업무중에도 편리한 맛에
산마루에서 헤어진 그 사람은 아직도 그곳에서 기약없이 불어 오는 바람으로 남아 있을까?
언제던가?
문경으로 갔을때던가? 아니면 설악 "한편의 詩를 위한 길"이었던가.
산 정상에서 바라 보았던 비어있는 하늘. 빈 나뭇가지에 기대어 나를 생각했다. 진정한 자유를 찾아나선게 산행이었다면 그 종말의 끝에서 나는 마침내 피안에 닿을 수 있게 될까?
岳友들과 야영을 한 후 샤방 샤방 릿지 등반을 마치고 나는 중딩시절 사춘기때부터 유랑처럼 암벽등반을 시작한지 35년만에 바위를 접었다.
아쉬움과 시원함이 교차했지만 흘러가는 구름 스쳐가는 바람처럼 아무런 미련없이...
平丘驛(평구역) 말을 갈아 黑水(흑슈)로 도라드니 蟾江(셤강)은 어듸메오 雉岳(티악)이 여긔로다 - 관동별곡 中에서 송강 정철-
간현
산과 산사이 계곡에는 강이 흐르고 협곡 사이로 허공을 가로 지르는 철교 위로 터널을 빠져 나온 기차가 지나가는 아름다운 곳이다.
▲ 나뭇잎새도 이제 옷을 벗으며 겨울맞이 준비를 하네요 ⓒ 2011 한국의산천
하늬바람에 새떼가 떨어지듯
황량한 하늘가에 나무 한 그루
벗을 것 다 벗고도 거기
눈 감고 의지할 산이 있듯이
내게는
산이 있었다.
▲ 간현암으로 가기 위해 건너가는 다리 ⓒ 2011 한국의산천
1970년도에는 저기 보이는 다리가 없었으며, 군인들이 유격 훈련시에 이용하는 드럼통을 엮어서 만든 간이 부교를 건너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1984년도에 이곳으로 암벽장비를 챙겨서 여름휴가를 왔을때에는 일명 줄배(강 이쪽과 강건너 저쪽에 쇠밧줄을 연결하고 그줄에 연결된 나룻배)를 타고 들어갔습니다. 그 당시 저는 결혼을 하고 큰 아이가 하나 있을때 암벽팀 청년부 가족들과 제 집사람과 이곳에 암벽등반겸 여름 휴가를 왔었습니다. 어느덧 30년전 일이군요.
※ 야영지가 아주 좋은 곳이 있기에 그곳에 텐트를 쳤는데, 중앙선 여객 열차와 시멘트 실은 기차 그리고 석탄을 실은 기차가 밤새도록 머리위로 철교의 큰 울림을 남기며 지나기에 한잠도 못자고 그 다음날 아침 야영지를 다른곳으로 옮겼던 추억이 있는 곳입니다
▲ 섬강을 가로지르는 간현철교 ⓒ 2011 한국의산천
이곳은 대학생들과 젊은이들의 MT로 인기가 좋기에 봄부터 가을까지 주말이면 청춘의 향연으로 활기 넘치는 곳입니다
▲ 왼쪽의 섬강 지류인 삼산천이 흘러드는 쪽에 간현암이 있습니다 ⓒ 2011 한국의산천
▲ 일명 새마을 다리 위로 가운데 보이는 암벽이 간현암입니다 ⓒ 2011 한국의산천
平丘驛(평구역) 말을 갈아 黑水(흑슈)로 도라드니 蟾江(셤강)은 어듸메오 雉岳(티악)이 여긔로다 - 송강 정철-
간현국민관광지(艮峴國民觀光地 :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간현리)
영동고속도로 문막IC에서 나와서 북쪽으로 6km 지점에 위치하며 남한강 지류인 섬강과 삼산천이 합쳐지는 지점에 있으며 양쪽 기슭에 40∼50m 높이의 절벽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고 숲이 울창하다. 소금산과 간현봉 사이 협곡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백사장이 있어 가족휴양지로 이름높은 곳이다. 이 협곡에는 바위절벽이 많으며 약 50여개의 암벽등반루트가 개척되어있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고치질 못할 고질병(泉石膏肓: 천석고황)이 되어, 창평에서 한가로이 지내고 있었는데, (임금님께서) 8백 리나 되는 강원도 관찰사의 직분을 맡겨 주시니, 아아, 임금님의 은혜야말로 갈수록 그지없다. 경북궁 서문인 연추문으로 달려 들어가 경회루 남쪽 문을 바라보며 임금님께 하직을 하고 물러나니, 이미 임금님의 신표인 옥절이 앞에 서 있다.
평구역(양주)에서 말을 갈아 타고 흑수(여주)로 돌아드니, 섬강(원주)는 어디인가? 치악산(원주)이 여기로구나.
송강 정철 - 관동별곡中에서 -
당시 강원도 관찰사 감영은 원주에 있었고 이곳 섬강 나루에 이르자 강주변 경치에 반하여 지은 글이다. 간현이라는 지명은 조선 선조 때 이조판서를 지낸 이희가 낙향하던길에 주변 산세의 아름다움에 반해 가기를 멈추고 머물렀다고 해서 간현(艮峴)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 위 사진 왼쪽 끝이 암벽등반을 하는 간현암입니다 ⓒ 2011 한국의산천
1980년대에는 우리 팀들과 가족동반하여 강가에서 야영을 하며 한가롭게 오르던 간현암을 다시 찾아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 간현암으로 다가가 보겠습니다 ⓒ 2011 한국의산천
간현암은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간현리 국민관광지 내에 위치하고 있다. 간현 국민관광지는 섬강과 삼산천이 합류되는 지점으로 간현봉과 소금산 사이로 강줄기가 흐르는 아름다운 곳이다.
간현은 학생들의 MT와 가족유원지로 유명하고 또한 국내에서 이름있는 하드프리 클라이밍의 메카로 유명하다.
바위를 한다는 사람은 누구나 한번 이상은 와 보았을것이고 또는 오기를 희망하는 곳이다. 이곳에는 수직바위와 오버행으로 이루어졌으며 약 50여개의 루트가 다양하게 개척되어 있으며 야영장과 식수가 준비되어있고 화장실이 잘 되어있는 곳이다.
1993년 부터 본격적으로 원주클라이머연합회 회원의 노력과 봉사로 개척된 간현암은 5.6 ~ 5.13급대까지 다양한 난이도가 있으며 주로 한피치의 코스가 주를 이루지만 2~3피치까지 이어지는 긴 루트도 있다.
▲ 다리위에서 소금산 정상 방향을 바라본 풍경입니다 ⓒ 2011 한국의산천
원주 간현 국민관광지내 섬강 변에 자리잡은 소금산(343m)은 섬강 삼산천과 어울려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는 산이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기에 오순도순 정담을 나누며, 또는 냇가에서 쉬며 푸른 물과 어우러진 오형제바위 등 아름다운 벼루와 낙락장송을 건너다보며 물놀이 온 가족들이 함께 산에 올라 한 바퀴 돌기에 아주 좋은 산이다.
소금산이란 명칭도 규모는 좀 작지만 산세가 빼어나서 소금강산의 줄인말이라고 한다. 산행중에 내려다보이는 섬강의 지류는 아름답기 그지없다.
협곡사이로 구비구비 흐르는 강물과 산봉우리들이 어우러져 빚어낸 절경인데 그 봉우리를 뚫고 흐르는 강물위에 놓여 있는 철로위를 지나가는 기차들을 보다 보면 옛 추억이 떠오르기도 하는 곳이다. 강 우측으로는 천길 벼랑이 끊임없이 솟구치고 그 아래 섬강은 유유히 흐른다
간현은 6.25 사변 이 후 군 유격장으로 활용되다가 1985년 국민 관광지로 개발 되면서 민간인의 본격적인 출입이 이루어졌다. 전체적으로 강물은 매우 맑으며 그다지 깊지않고 강폭은 넓다 가족 휴가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다. 산행은 약 2시간 정도이고 산에서 내려와서 취사가능하고 봄,여름,가을 산행으로 좋으며 특히 더운 여름에 물놀이를 겸한 산행으로 추천 할 만하다.
▲ 강원도 말로는 "뼝대"라고 하더군요. 강원도에서는 이러한 벼랑을 자주 볼수가있지요. 특히 강가에서는... ⓒ 2011 한국의산천
▲ 스산한 가을 바람이 부는 날이지만 오늘도 역시나 젊은 청춘들이 중력과 싸우며 아름다운 오름짓을 하고 있습니다 ⓒ 2011 한국의산천
병풍을 기어
닭벼슬을 거슬러
더 오를 곳이 없는 암릉 위에 가 서서도
머리 위에 떠도는 것은
구름같은 좌절감
아, 소리치며 소리치며
올라붙은 끝에
멍든 정강이를 어루만지며
지긋이 눈을 감는 나날
산은 정말
거기 있는 것일까?
어느 길로 해서 너를 만나랴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산을 오르게 했던가?
등산은 회기다. 산은 시작이자 종결이며 출발이며 동시에 도착이다. 그것은 끝나지 않는 윤회의 과정이다. 그 과정을 도는것이 예정된 삶이다. 오르면 반드시 내려와야 하고 내려오면 다시 오르고자 한다. 돌지 않고 그대로 있다면 서서히 무너져 끝내 침몰해갈 것이다.
1993년 부터 본격적으로 원주클라이머연합회 회원의 노력과 봉사로 개척된 간현암은 5.6 ~ 5.13급대까지 다양한 난이도가 있으며 주로 한피치의 코스가 주를 이루지만 2~3피치까지 이어지는 긴 루트도 있다.
▲ 파란 하늘 그리고 계곡사이로 스산하게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오래된 추억을 다시금 아름다운 색깔로 채색을 한다. 어여가자 집으로, 해떨어지기 전에 ⓒ 2011 한국의산천
하늘을 보면 하늘이 마음에 펼쳐지고
꽃을 보면 꽃이 내 안에서 피어난다.
바람을 안는 이 새가 되어 허공을 날고
구름은 품은 이 비가 되어 대지를 적신다.
▲ 문경 촛대바위에서 ⓒ 2011 한국의산천
언제던가?
문경으로 갔을때던가? 아니면 설악 "한편의 詩를 위한 길"이었던가.
산 정상에서 바라 보았던 비어있는 하늘. 빈 나뭇가지에 기대어 나를 생각했다. 진정한 자유를 찾아나선게 산행이었다면 그 종말의 끝에서 나는 마침내 피안에 닿을 수 있게 될까?
岳友들과 야영을 한 후 샤방 샤방 릿지 등반을 마치고 나는 중딩시절 사춘기때부터 시작한 35년간의 산행을 접었다. 흘러가는 구름 스쳐가는 바람처럼 아무런 미련없이...
그리고 내 생애동안 영원히 안주할 수 있는 산 하나 갖기를 소망했다. 그 山을 찾아 지금도 길을 떠난다.
이번 일요일 비가 내린다면 집에서 뒹굴거리며 책을 읽고 굴 파전에 소주나 한잔해야겠다.
책은 흑산? 아니면 바람으로 남은 사람들?
밤마다 남대천 둑위에 홀로 앉아
불 밝히고 떠나는 남행 열차를 바라보며 외로움에 온몸이 오그라 들어갔다
따듯하고 불 밝은 열차 속에 앉은 사람들이
저희끼리 도란 도란 나누는 행복한 이야기가 부러워 목이 컥컥 막혀오는 갈증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 당시
내 마음의 중심에 나는 매일 한 조각의 허무를 씹어가며 밤마다 자살을 꿈꾸었다
계속해서 281쪽 마지막 15장의 제일 뒷귀절.
낮술을 마시고 노란 배추꽃이 질펀하게 피어 있는 한낮의 밭두렁에 퍼질고 앉아 허무해서 그냥 목놓아 울고 싶은 그런 날 산조는 네팔로 떠났다
산조가 히말리야로 떠나고 나는 미루고 있던 아내와의 일을 마무리 지었다. 판결은 수 초도 소요되지 않았다. 판사는 이 서류에 이의가 없느냐고 물었고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끝이었다.
우리의 15년간 결혼생활의 종점은 마침내 이혼을 도출해 내고 아내와 나는 타인이 되었다. 치욕과 미움의 서울에서 인연의 모든 줄을 끊어버리고 이제 떠나려고 작정을 했을 때, 내 몸은 바람에 하늘거리는 말라버린 코스모스의 대궁마냥 힘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서울 거리를 혼자 정처없이 배회하다가 강남의 어느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여관에서 혼자 잠이 들었다. 밤새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다 일어난 다음날 아침, 나는 남행 열차를 탓다.
내 차림은 청바지와 흰 운동화뿐 손에 든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 끝 - [전용문著 바람으로 남은 사람들 中에서]
이책을 덮으며 내마음 싸하게 아려왔고 모든것이 너무 허무했다.
그래서 출판사와 병원협회에 수소문하여 이책의 저자이신 부산에서 병원을 운영하시는 전용문 의사 선생님을 찾아 전화 통화를 했다.
잠시 인사를 나눈 후 ...
"이책의 2권이나 후편이 나오나요?" 물었다
" 저자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 아니요 "
▲ 오랜 시간동안 나와 악전고투를 같이하며 내 머리를 보호해준 프랑스製 갈리비에 헬멧 ⓒ 2011 한국의산천
흘러가는 구름 스쳐가는 바람처럼 세월 참 빠르다.
모든 장비는 후배들에게 다 주고 이 등산 헬멧만은 비닐봉투에 담겨 서제 책꽂이 위에 있다.
현재는 자전거 헬멧으로 이태리製 셀레브 메트릭스를 쓰고있다. 나는 취미생활마다 헬멧을 꼭 써야 하는가보다.
천 년 사직이 남가일몽(南柯一夢)이었고, 태자 가신 지 또다시 천 년이 지났으니, 유구(悠久)한 영겁(永劫)으로 보면 천년도 수유(須臾)던가!
고작 칠십 생애(七十生涯)에 희로애락을 싣고 각축(角逐)하다가 한움큼 부토(腐土)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의지 없는 나그네의 마음은 암연히 수수(愁愁)롭다.
-정비석 산정무한 中에서-
이번 주말에는 비가 온다고 하네. 아니 지금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모처럼 집에 봉사 할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스스로에게 다짐해본다.
박영석의 도전정신 우리 마음에 영원히 살아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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