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지리산
하늘 파랗게 물들던 가을 그리고 장맛비 하염없이 내리던 한여름 그날에도 코재를 올라 지리산 화대종주(화엄사~대원사)를 하던 그때
그리고 아주 오래 전 철쭉이 한창일때 해마다 오르던 정령치와 바래봉.
이제는 먼산. 그래도 그 산이 그립다.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는 그 산
산이 나를 잊어도 내가 잊을 수 없는 그 산
아 지리산~!
독 백 - 혜은이
이 세상 모든빛은 꺼지고 멀리서 밀려드는 그리움 조그만 내가슴에 퍼지면 아련히 떠오르는 그모습
아직도 내귀에는 들리네 언제나 헤어지지 말자던 그말이 그러나 헛된꿈이 되었네 이제는 기다리며 살리라
오 그 모습 지워 버리려 눈을 감아도 감겨진 두눈엔 눈물만 흘러 내리네
사랑한다는 말도 못하고 그렇게 멀어져야 했나요 그대가 떠나버린 날부터 이별의 서러움을 알았죠
아직도 내귀에는 들리네 언제나 헤어지지 말자던 그말이 그러나 헛된꿈이 되었네 이제는 기다리며 살리라
오 그모습 지워버리려 눈을 감아도 감겨진 두눈엔 눈물만 흘러 내리네
그는 지금도 지리산 깊은 의신마을에 있을까?
유월에 들어서며 김명후와 박산조는 병원에 사표를 냈다. 낮술을 마시고 노란 배추꽃이 질펀하게 피어있는 한낮의 밭두렁에 퍼질고 앉아 허무해서 그냥 목놓아 울고 싶은 그날에 산조는 김명후를 대신해서 네팔로 떠났다.
산조가 히말리야로 떠나고 김명후는 치욕과 미움의 인연을 털며 부인과 15년간 결혼생활의 종지부를 찍는다. 그리고 남행열차를 타고 지리산계곡의 조용한 마을로 떠난다.
불 밝은 열차의 창속을 바라보며 이제 서울은 나를 감동 시킬 가슴도, 미련을 둘 땅도 부재하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으로 산화하여 한줌의 재로 세상에 남겨지기를 원했다.
죽어 재가 되어버린 나는 밤이 오면, 바위와 숲속에 흩어진 혼백을 불러 일으켜세워 길을 밝혀주는 작은 등불이 되고 싶다.
산마루에서 헤어진 그 사람은 아직도 그곳에서 기약없이 불어오는 바람으로 남아 있을까?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 이원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 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불일폭포의 물방망이를 맞으려면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시라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시라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 다운 힐에서 너무 달리지 마슈~ 엔진 과열인지 브레이크 과열인지 몰라도 등에서 연기나네요 ⓒ 2011 한국의산천
삶은 조여진 줄처럼 긴장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완벽하게 경직되어 있기만 한다면 그 생 또한 쉽게 부서지기 쉽다. 삶을 시행착오 없이 살기란 힘들다. 착오는 시간의 낭비를 가지고 오지만 어쩔도리가 없다. 미래를 살아보지 않는 한 수레바퀴 돌 듯 쉬지않고 진행되는 일상을 정지 시킬 방법은 부재하다. 후회하면서도 살아보는 수밖에 없다.
그것은 마치 미답의 산을 처음 오르려는, 그래서 정상에는 무엇인가 기대할 만한 것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산행과 동질성을 띤다. 삶을 돌아본다는 것은 미지의 산을 향해 한발 한발 걸어나간 족적을 헤아려 보는 회상과 다를바 없다. 우리는 후회하면서 살아간다. 그것이 인생이다
산은 존재하는 그 자체만으로 무한한 뜻을 지닌다. 언제나 침묵하는 자세로 우리들 곁으로 다가와 혼탁해진 사람의 가슴을 열게하고 순백한 애정의 한자락을 심어준다.
▲지리산 1172m 정령치에서 / 내 가슴에 존재하는 산 정상에 올라 하늘로 통하는 문의 빗장을 열수있을까? ⓒ 2011 한국의산천 우관동
힘겹게 산을 오른 후 더 올라설 곳이 없다고 느꼈을 때 그때는 어디를 가고 싶게 될까? 하늘로 오를 것인가?
정상의 마지막 바위 끝에는 하늘문을 여는 빗장이 놓여 있는가?
우리는 그 빗장의 문고리를 잡기위해 끝이 보이지 않게 반복되는 길고 긴 산행의 장막을 한겹 한겹 헤치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 사람은 각자대로 운명의 길을 살아갈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