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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교동도 유적지 답사 라이딩

by 한국의산천 2010. 12. 11.

우리는 자징구타고 너른 평야를 달리고 거친호흡 몰아쉬며 높은 산을 오르고 숲이 우거진 산길을 달린다

땅 위의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고 땅 위의 모든 산맥을 다 넘을 수 없다 해도,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 나아가는 일은 복되도다.

 

[2010년 12월 11일 토요일 날씨 하늘은 파랗고 바람 불고 아주 추웠음 / 한국의산천]

 

아침 7시에 눈을 떴다. 창을 열어 밖을 보니 날씨가 여간 추운것이 아니다. 하늘을 봤다. 하늘은 점점 맑게 개이고 푸르러지고 있었다.

야호~~ 아무리 추워도 하늘이 푸르면 출발이다. 강화도의 부속섬 교동도로 답사를 떠나기로 하였다

강화도로 가는 도중 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잔차를 가지고 한강으로 오라기에.... 에효...전 이미 강화도 교동으로 출발 했는데요 ...

 

▲ 강화도는 모든곳이 모두 노천 박물관이라 말할정도로 문화유적이 곳곳에 산재해 있는곳입니다 ⓒ 2010 한국의산천

▲ 교동도로 배를 타고 갈수있는 창후리 선착장 ⓒ 2010 한국의산천

 

중요사항: 배의 승선권을 구입하면 입출항 신고서를 주는데 방문 목적지를 기재해야합니다. (참고하세요. 저는 교동향교와 화개사를 방문목적지로 적었습니다)

 

교동도는 주민 이외에 민간인에게 출입이 허용된지가 10여년 밖에 되지 않은 민통선 북단에 위치한 섬입니다. 북한땅까지 약 3~4km 남짓 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민간인 통제선 최전방 군사보호지역이어서 해안 철책선에 손을 대면 안 되고, 출입금지 표시가 있는 곳은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해병대 군인 아자씨들의 말에 잘 따라주어야합니다.

 

창후리선착장에서 교동도까지 자전거를 포함한 운임은 1인당 편도3500원입니다. 

자전거 코스는 월선선착장에서 출발해 교동읍성, 대룡리, 양갑리, 난정저수지, 지석리 망향대, 인사리, 고구저수지, 농로, 봉소리 복지회관, 화개산 송림고개에서 월선선착장으로 돌아오는 총 30~40 킬로미터 코스로 4시간 정도 소요된다.

 

교동도 내에는 슈퍼나 편의점 없습니다

식당과 가게는 화개산 뒤쪽에 자리한 교동 초등학교가 있는 그곳에만 조그맣게 있으니까 물과 간식을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교동도

북한의 황해도 연안군과 불과 2~3㎞ 거리에 있는 강화도 북단의 섬. 강화 본도와 비교해 특별한 명승지나 볼거리는 부족하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북녘 땅을 바라보며 여행의 무게감을 느끼기엔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강화 창후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들어와 배가 닿는 월선선착장을 기점으로 교동향교~화개사~교동읍성~난정저수지~망향대~고구저수지를 돌면 약 3~40㎞의 섬 일주가 완성된다. 

 

 

교동도 연혁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에 속하는 교동도는 우리나라에서 14번째로 큰 섬으로 서해안에 자리하고 있다.

교동도의 동남은 양사면, 삼산면, 서도면과 마주하고 있으며 서북으로는 불과 5km 밖의 바다를 사이에 두고 북한과 군사분계선을 이르고 있어 황해도 연백군이 눈앞에 보인다. 도서라고는 하지만 비교적 평야가 많으며 해안선은 평탄한 편이고 해저는 수심이 얕고 간만의 차가 심하다

 

교동의 원래 이름은 대운도(戴雲島)이다.고림(高林)또는 달을신(達乙新) 이라고도 불렀으나, 고구려 때 처음으로 현(縣)을 두어 고목근현(高木根縣)이라 하고, 신라 경덕왕때 교동현이라 한 것이 오늘에 이른다. 주민들의 주업이 농사일 만큼 넓디넓은 평야를 품고 있다. 농사짓던 사람들이 더 벌이가 좋은 일을 찾아 하나둘 도시로 떠나면서 이제 교동도는 한적한 섬이 됐다.

 

▲ 몇해전 초가을 카메라를 들고 교동을 찾았던 기억이 새롭다. 이번에는 자전거를 타고 답사를 하니 더욱 편리하다 ⓒ 2010 한국의산천

▲ 역사가 숨 쉬는 작은 섬 교동도를 향하여 ⓒ 2010 한국의신천

 

교동도에는 유적도 많다.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하는데, 한때는 송도와 한양의 관문 노릇을 했다. 교동향교는 그때를 알려주는 대표적인 곳. 고려 충렬왕 12년 안향 선생이 공자의 초상화를 들여와 봉안한 곳이다. 향교에는 공자의 신주와 우리나라 유현들의 위폐를 모신 대성전, 유생들이 공부했던 명륜당, 제수용품을 보관하는 제기고가 있다. 

교동도는 중종반정으로 폐위된 연산군이 유배된 지역이라 연산군 적거지가 있다. 조선 인조 7년 교동에 처음으로 영이 설치될 때 축조된 교동읍성도 교동의 문화유적이다. 그런데 연산군과 관련된 유적이나 교동읍성은 보존이 제대로 되지 않아 많이 훼손됐다. 교동읍성은 주민들이 성곽의 돌을 날라 담으로 쌓기도 했다고 전한다.

 

 

교동도는 조선시대부터 왕족의 유배지로 유명했다. 연산군과 광해군을 비롯해 세종의 3남 안평대군, 선조의 첫째 서자 임해군, 인조의 동생 능창대군, 인조의 5남 숭선군, 철종의 사촌 익평군, 흥선대원군의 손자 이준용 등이 교동도로 유배당했다가 풀려나거나 사사되었다.

 

전남의 해남지역이 선비들의 유배지였다면 교동도는 왕족의 유배지였다. 정쟁에서 패한 인물은 한양에서 먼 곳으로 보내졌지만 왕권에 치명적일 수 있는 왕족 등 거물은 가까우면서도 완전히 격리된 곳에서 늘 동정을 살펴야 했기 때문이다. 한양에서 하루, 이틀 거리인 교동도는 해안과 가깝지만 급한 조류로 접근이 쉽지 않아 유배지로서 최적의 땅이다.

최충헌에 의해 쫓겨난 고려 21대왕 희종을 시작으로 안평대군, 임해군, 능창대군 등 11명의 왕족이 교동으로 유배됐다. 그 중 꼭 집고 넘어갈 인물이 바로 조선왕조의 풍운아 연산군이다.

중종반정으로 쫓겨난 연산군은 바로 교동으로 유배돼 2달만에 사망했다. 교동의 역사발굴이 제대로 되지 않아 유배지가 교동의 어디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봉소리의 신골, 고구리의 연산골, 읍내리 세곳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강화도 서북쪽에 있는 교동도는 고려와 조선 1천년간 개성과 서울의 관문이자 군사요지였으며, 활발한 무역항이었다. 지금도 옛날 중국 화폐가 많이 출토된다. 섬에서 가장 높은 화개산(2백60미터)에는 화개산성이 남아 있다. 서쪽의 서한리에는 봉수대가 전한다. 교동읍성은 한때 번성했던 옛 시절의 흔적을 보여준다.

 

 

▲ 화개사와 향교 입구 삼거리에는 조선시대 때 선정을 베푼 이들의 공덕비가 가득 세워져있습니다 ⓒ 2010 한국의산천

 

화개사

고려때 창건한 목조건물로서 창건연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교동면 상용리의 "갈공사"에서 묵고 있던 무학대사, 낙공선사, 지공선사가 이곳 화개사로 공부하러 다니던 곳이라 전합니다. 당시에는 조그만 암자였던 것으로 화재로 불상 및 서적이 모두 소실된 것을 후에 다시 건립하였습니다. 또한 고려시대 목은 이색 선생이 교동을 아주 좋아하여 화개사에 머무르며 수양하고 글을 지었다 하며 화개산을 전국 8대명산중 하나로 꼽았다고 합니다

 

  

교동향교

고려 충렬왕 때 안유(안향, 1243∼1306)선생이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공자상을 들여와 이 향교에 봉안하였다고 전하며, 이 후 각 고을에 향교가 생겼다고 한다.
원래 화개산 북록에 있던 것을 조선 영조때 남록으로 옮겼으며 대성전에는 중국의 5성과 신라, 고려, 조선시대의 유현을 배향하고 있다. 매달 음력 초하루, 보름에는 전교, 유림들이 모여 분향을 하며 교동향교 왼편의 약수가 있는데 마시면 학문에 더욱 정진케 된다는 말이 있다. 교동향교는 우리나라 향교 가운데 가장 최초로 창건된 유서깊은 곳이다. 최초 창건은 1127년(인종 5)으로 이때는 화개산의 북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었다고 한다. 그후 1286년(충렬왕 12)에는 고려 유학제거(儒學提擧)로 있던 문성공(文成公) 안유(安裕)가 원나라에서 공자상(孔子像)을 들여와 봉안하였다. 그후 박사(博士) 김문정(金文鼎) 등을 중국에 보내어 성철(聖哲)화상 10점과 제기(祭器) 등을 구해오게 했는데, 이때 서해로부터 귀환하면서 교동에 기착하여 문묘에 봉안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로써 우리나라 향교 가운데 가장 먼저 공자와 제자들의 화상(畵像)을 봉안하게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경도와 각읍에 문묘가 설치되었다고 한다.

 

 

 

 

 

교동읍성

교동읍성은 조선 인조7년(1629)에 세웠으며 둘레는 430m, 높이는 약 6m이며 동, 남, 북 세곳에 성문을 설치하였습니다. 각 문에는 문루를 세웠는데 동문은 통삼루, 남문은 유량루 그리고 북문은 공북루하 하였습니다. 동문과 북문은 언제 없어졌는지 확실치 않으며, 남문은 1921년 폭풍우에 무너져 현재는 홍예만 남아있습니다.1753년(영조 29)에 통어사 백동원(白東?)이 치첩(雉堞)을 수축하였고, 1764년에 방어사 백낙윤(白樂倫)이 남문(庾亮樓)을 중건하였으나 동문(統三樓)과 북문(拱北樓)은 수축하지 못하였으며, 남문 앞의 해자도 역시 메워 버렸다.32) 규모는 둘레가 4정 26칸 4척이고 높이는 18척이다.33)
동, 서, 북문은 그 흔적을 찾을 길이 없으며, 남문만이 현존하고 있다. 내부에는 조선시대 수영터를 확인할 수 있다.

 

 

 

▲ 강호동의 1박 2일 촬영지였던 교동도에 있는 교동 이발관 ⓒ 2010 한국의산천

▲ 교동이발관 주인 할아버지 ⓒ 2010 한국의산천

 

某 방송국의 프로그램 1박 2일 있지?

그것을 촬영하러 호동이가 여기에 왔어 그러더니 이발소에서 촬영을 하겠데...난 말했지 아니 여기 뭐 볼게 있다고 하하하

그래서 그날 저녁 집에 가서 말했더니 대학교 다니는 손녀딸이 부탁하는거야 강호동씨 사인 받아달리고....

그리고 그 다음날 호동이가 방송국 로고가 찍힌 시계하나를 주데 그런데 내가 말했지...

야! 호동아 !

당신 사인 안해주면 촬영 안해~~ 

그렇게 말했더니 주머니에서 미리 준비된 사인지를 꺼내서 주더군 하하하

그리고 촬영후에 영수증을 내밀더니 사인하래...

그래서 그 종이에다가 사인했더니 현찰로 30만원 주데. 하하하

 

허...젊은이  커피물 다 끓었다 자 커피한잔해~~~

커피 잘마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라일락 할아버지.(담배를 피시기에 잘 살펴보니 라일락 담배를 피고 계셨다 그래서 두갑을 사드리고 이발관을 나섰다)  

 

▲ 교동 이발관 라일락 할아버지와 함께 기념샷~! ⓒ 2010 한국의산천

이용사 면허증 발급연도는 1965년 이었다. 45년간 이자리에서 이발소를 하고 계시다

 

▲ 커피물이 끓었으니 커피한잔해 ~!!! 고마워요 라일락 할아버지 ⓒ 2010 한국의산천 

▲ 잠시 후 손님이 들어오시니 하얀 가운을 입으시고 이발을 시작하셨다 ⓒ 2010 한국의산천

- 할아버지 저 갈께요...

- 아냐 좀 더 쉬었다가 가~~ 이 추운데 무슨짓이야 ㅎ

저는 잠시 나와서 작은 가게에 가서 라일락 두갑을 사가지고 와서 전해 드리고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 우리 도심의 6~70년대 같은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대룡시장 ⓒ 2010 한국의산천

규모가 작은 시장이지만 왠지 모르게 큰 시장처럼 느껴지는 곳이다. 아기자기한 골목길에 그래도 없는것은 없었다. 이런 풍경을 만날때 여행자의 마음은 더 없이 기쁘기만하다 

  

 

 

▲ 개교 역사 100년이 넘는 교동 초등학교 ⓒ 2010 한국의산천 

▲ 교동초등학교 ⓒ 2010 한국의산천

광무10년(1906년)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계속해서 아래 페이지에 연산군의 유배지(적거지)로 이동합니다. 바로가기 클릭>>> http://blog.daum.net/koreasan/15604837  

 

교동도 가는 길

서울에서 가까운 강화도는 김포가도를 타고 가는 외길이므로 별도의 교통안내조차 필요 없는 곳이다. 그러나 주말이면 수도권 차량들이 많이 몰리는 데다 외길이므로 교통체증이 극심한 구간이다. 새벽 일찍 떠나서 강화도를 한 바퀴 돌고 오후 이른 시간에 귀경하는 것이 좋다. 강화도에서 차를 배에 싣고 갈 수 있는 선착장이 두 곳 있는데, 외포리에서 석모도로 건너가는 코스와 창후리에서 교동도로 가는 코스다. 흔히 석모도는 사람들이 많이 배를 타고 건너가기 때문에 뱃길을 따라오는 갈매기들에게 과자 부스러기를 던져주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그러나 교동도로 가는 뱃길에는 갈매기 그림자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쓸쓸하다. 그만큼 오가는 사람이 별로 없는 한적한 곳이다.

 

서울에서 강화 가는 48번 국도를 따라 강화읍을 지나 계속 가면 고인돌로 유명한 하점면이다. 하점면 소재지를 지나 신봉삼거리에서 좌회전해 창후리 방향으로 5.5킬로미터 가면 포장도로가 끝나고 작은 포구가 나온다. 이곳 창후리선착장에서 교동도 월선선착장까지 자동차도 실을 수 있는 카페리가 운항한다. 밀물시 15분 소요 /썰물시 1시간 이상 걸립니다

편도 요금은 성인 2,300원이고, 자전거는 사람 포함 편도 3,500원(승용차 편도요금은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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