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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문화문학음악

방기곡경 · 너에게 이르기 위하여

by 한국의산천 2010. 1. 5.

걷기 좋은 길 여주 강천리

(아래의 사진 3장은 모두 같은 곳입니다)

 

방기곡경?

굽어 있지만 굽지 않은 길 

 

굽은 길이라도

한발 한발 걸어 보세요

내 딛는 걸음마다 모두 직선의 연속입니다 

 

▲ 흰눈으로 단장한 강천리 풍경 ⓒ 2010 한국의산천

비록 이길은 샛길이고 굽어 있지만 '방기곡경(旁岐曲逕)'은 아닐것이다. 오히려 말로만 '방기곡경'을 부르짖으며 그릇된 수단과 억지를 부리는 자들이 꼭 걸어야 할길이다.

 

                  -신현대-

 

우 ~~

걸어 보아도 새로운 길은 보이지 않고 

항상 도로 그길

끝이 시작인지 시작이 끝인지

알 수 없는 그 길

 

우 ~~

걸어 보아도 새로운 산은 보이지 않고 

항상 도로 그 산

끝이 시작인지 시작이 끝인지

알 수 없는 그 산

알 수 없는 그 산

 

27913

 

▲ 초여름 강천리 풍경 ⓒ 2010 한국의산천

옛길은 자연 지형을 따라 오랜 시간에 걸쳐서 만들어 졌기에 구불 구불 이어집니다. 인위적으로 급조한 고속도로, 신작로와는 보는 맛과 걷는 맛이 다릅니다.

 

길을 묻다
           -이인수-   

눈 덮인 겨울 산에서 
세상의 길들을 만난다.
갈래 난 사람의 길
은밀한 짐승의 길
하늘로 향하는
나무들의 꼿꼿한 길,
문득 걸음 멈추고
뒤돌아 본 나의 길은
비뚤비뚤 비딱하다.
어디로 가야할까,
아직 봉우리는 아득한데
어디로 가야할까,
겨울 산 비탈에서
다시
길을 묻는다.

 

▲ 황금 물결 일렁이는 강천리 풍경 ⓒ 2010 한국의산천

여주 강천리의 들판에는 가을이 익어갑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같이 어울려 부평, 김포평야에 나가 메뚜기 잡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길 위에서의 생각
                      - 류시화 -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자는 빈 들녁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것도 없고 얻은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녁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울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저기 들판 사이로 난 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

.

.

.

.

.

 

▼ 네에 남한강이 그 모습을 들어 냅니다

 

너에게 이르기 위하여  

 

▲ 네 품에서 떠나야 한다. 진실로 너에게 이르기 위하여 ⓒ 2010 한국의산천 

북한산 좌로부터 · 염초봉 · 백운대 · 노적봉

 

너에게 이르기 위하여                                      

                             - 김장호 -

 

너에게 이르기 위해서는
네게서 떠나야 한다.

 

기슭에서 바라보는 유연한 산줄기,
두멧자락 시누대밭머리로 아아라이 뻗어나간
등성이 너머 뭉게구름 피어나고,
산새 소리 잦아지자
삽시간에 골을 굴 속에 가두어넣는
억수같은 빗줄기,
하늘과 땅을 한 손에 동강내는 천둥벼락,
걷어 가는 안갯발 사이
근접할 수 없는 위엄으로
어느새 저만치 우뚝 솟아 손짓하는 봉우리,
그 너머로 번지는 황홀한 저녁 노을,
속살 쏟아지는 밤하늘의 보석들.

 

너에게 이르기 위해서는
네 아름다움에서 떠나야 한다.

 

송화가루 날리는 골짜기를 헤치면
더덕내음 파도처럼 싣고 오는
골안개 사이로 눈뜨는 시냇물,
발 아래 간들거리는 한점 메나리,
죽 죽 善意처럼 뻗는 자작나무,
가지 사이 쳐다보는 벼랑 위에
학춤 추는 두어그루 老松, 그 아래
산의 품은 너그럽구나, 어느 날
마음 내키는 날, 영 눈감고 드러누울 수 있는
양지 바른 억새밭의 自由.

 

네 품에서 떠나야 한다
너에게 이르기 위하여.

 

키를 넘는 눈구렁,
천길 머리 위로 파랗게
가슴 설레는 意志의 氷瀑,
갈기 날리며 치닫는 매몰찬 바람 소리,


그 감동의 연원에서 떠나야 한다
너에게 이르기 위하여.


네 아름다움을 한폭의 그림으로 그려내어본들
그 그림, 네가 주는 감동만 붙안고는
네 정수리, 그 상상봉으로 헤쳐둘 수가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五萬分之一地圖 한 장을 펴들고 너를 대하면 거기,
二次元 平面위에 환원되는 點과 線의 記號밭,
無聊한 黑白의 네모판,
기슭에서 바라보던 네 아름다움도 웅장함도 마침내
구름위에서 내다보는 매마른 갯바닥의 금이다.

하늘은 어디가고, 햇살이며 빗줄기며
안개, 산새소리, 물소리, 저녁 노을은 모두 어디 갔는가.
바람 한줄기, 낙엽 한 잎, 다람쥐 한 마리, 눈부신 雪景,
自由의 空間도 거기에는 없다.

 

진실로 너에게 이르기 위하여
나는 이 삭막한 空虛로 되돌아서야 한다,

 

멀리서 아니 높이에서 아니 밖에서
너에게는 등을 돌린 채.
꿈속에서 깨어나듯 地圖한 장을 펼쳐들고 앉으면
목욕에서 돌아오는 누이의 세수 비누에 엉긴
머리카락같은 計曲線 오라기를 따라
그 어깨죽지에 앉은 새침한 點,
댓닢 포갠 듯 촘촘한 목덜미 雪溪를 거슬러
뭉긋한 귓바퀴로 빠진 緩斜面을 밟아라,
귀뿌리 鞍部를 거쳐 뽀얀 가리마의 主稜線에서는
登山靴도 숨가쁘다, 마침내
소용돌이가 끝나는 한가운데 標高點에 올라서면
杳杳한 세계,거기

그렇다, 아름다운 것, 웅대한 것, 진실로


네 발치로 돌아오기 위하여
나는 네게서 떠나야 한다.

 

차라리 눈을 감고
즈믄날 塔을 돌 듯
한장의 虛無로 되돌아서야 한다

 

너에게 이르기 위하여.

 


네 발치로 돌아오기 위하여 나는 네게서 떠나야 한다.

 

▲ 강천리의 휑하니 열린 들판 ⓒ 2010 한국의산천  

 

법정스님은 말씀하셨다

'열린 귀는 들으리라. 텅 빈 들녘에서 끝없이 밀려오는 소리 없는 소리를'

 

그러나 나는 텅 빈 들녘에서 끝없이 밀려온다는 소리없는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단지 바람소리만이 귓가를 스쳐 갈 뿐이었다.

그럼 그렇지 아무나 누구에게나 그 심오한 소리없는 소리를 들을 수는 없는것입니다 

  

※ 방기곡경('旁岐曲逕' :곁 방, 갈림길 기, 굽을 곡, 지름길 경)

방기곡경이란 사람이 많이 다니는 큰 길이 아닌 '샛길과 굽은 길'을 뜻하는 말로, 바른 길을 따라서 정당하고 순탄하게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릇된 수단을 써서 억지로 한다는 것을 비유할 때 많이 쓰인다.

 

 조선 중기의 유학자 율곡 이이는 왕도정치의 이상을 다룬 저서 '동호문답(東湖問答)'에서 "제왕이 사리사욕을 채우고 도학을 싫어하거나 직언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고 구태를 묵수하며 고식적으로 지내거나 외척과 측근을 지나치게 중시하고 망령되게 시도해 복을 구하려 한다면 소인배들이 그 틈을 타 갖가지 旁岐曲逕의 행태를 자행한다"고 지적했다.

 

 이이는 또 송강 정철에게 보낸 편지에서 "공론(公論)이 허락하지 않더라도 旁岐曲逕을 찾아 억지로 들어가려는 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 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