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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이덕일 사랑] 굳센 소나무

by 한국의산천 2008. 12. 30.

내년은 기축년 (己丑年) 소띠의 해

모두가 웃는 해, 웃는 소, 웃소가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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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보 180호 세한도(歲寒圖) 종이에 수묵 109.0cm x 23.7cm. 1844년作 (국보 180호) ⓒ 2008 에코마운틴 한국의산천

어떤 역경에 처해도 변함없는 선비의 지조를 나타낸 작품이다. 간일한 구도, 대담한 생략, 갈필로 이루어진 까슬한 필치 등에 김정희 선생의 농축된 문기가 넘친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선생이 소위 '윤상도의 옥사'에 연루되어 제주 대정골로 유배가 된 것은 1840년. 그는 그 후 이곳에서 가시 울타리를 두른 집안에서 위리안치(圍籬安置)의 유형 생활을 하며 9년을 견뎌야 했다.  

  

세한도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대표적인 산수화로서, 추사가 제주도에서 유배중이던 1844년(헌종 10) 제자인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 1804∼1865)이 청나라 연경에서 구해온 책을 보내주는 등 변함없는 사제의 의리를 지켜준것에 대한 고마움을 세한송에 비유하여 그려준 그림으로 완당 생애 최고의 명작으로 꼽힌다. 이러한 사연은 그림의 왼편에 쓰여있는 추사의 발문(跋文)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추사는 발문에서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와 논어(論語) 자한편(子罕篇)의 글귀를 인용하여 권력과 이익에 좌우되는 세상인심과, 그 가운데서도 스승을 잊지 않고 중국에서 구한 귀한 서책을 멀리 귀양간 스승에게 보낸 이상적의 마음 씀씀이를 칭찬하였다. 또한 논어의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날이 차가워진 다음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라는 구절은 특히‘세한(歲寒)’이라는 시기를 강조한 것으로 해석하면서, 고적하고 어려운 자신의 유배생활을 세한(歲寒)에 비유하고, 송백(松柏)과 같은 기상을 잃지 않으려는 자신의 굳센 의지도 은연중에 표현하고 있다. 

 

그림을 보면 넓은 공간에 자그마한 집과 아름드리 송백만이 매우 간략하게 그려져 있어 추운 시절의 황량한 느낌이 잘 나타나 있다. 삼각형의 안정된 구도 속에 꼿꼿하고 굳센 필치와 메마르고 차가운 먹색이 어우러져 고고한 문기(文氣)를 강렬하게 발산하고 있다. 이상적은 중국어 역관으로 십 여차례 중국을 드나들며, 스승의 소개로 중국의 명망있는 문사들과 깊이 교유하였다. 추사에게서 세한도를 받은 이상적은 이듬해 다시 중국 북경에 가게 되었고 옛 친구인 오찬(吳贊)의 잔치에서 세한도를 내보였다. 이 때 자리를 함께 했던 청나라 문사 16인은 이 그림을 감상하고는 세한도의 높은 품격과 사제간의 깊은 정에 감격하여 저마다 이를 기리는 시문(詩文)을 남겼다.

현재 세한도의 두루마리에는 그림 뒤쪽에 이들의 시문이 모두 붙어 있으며, 이외에도 김준학(金準學), 오세창(吳世昌, 1864∼1953), 이시영(李始榮, 1869∼1953), 정인보(鄭寅普, 1892∼?)의 찬문(讚文)도 포함되어 있다.

 

세한도(歲寒圖)가 여러사람의 손으로 전전하다가 일제시대 경성제국 대학교수였던 후지쓰가(藤塚)씨 손에 들어가 그만 일본으로 건너가고 말았다. 해방후 우리나라 원로 서예가인 손재형 (1902-1981)씨가 우여곡절끝에 겨우 입수하여 한국으로 가지고 돌아왔다. 한국인 김정희가 그렸고 중국인들이 그 신기에 놀라 감탄하였으며 일본인들이 탐냈던 `세한도'는 국보 제180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추사고택에서 세한도 복사품 구입시 안내문 참고]     

 

▲ 추사고택 ⓒ 2008 에코마운틴 한국의산천 

 

[이덕일 사랑] 굳센 소나무
이덕일·역사평론가

 
'논어' 자한(子罕)편에 '세한(歲寒:날씨가 추워짐) 연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알겠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也)'라는 공자의 말이 실려 있다. 소나무를 선비의 처신과 비교할 때 쓰이는 말이다. 조선 말 동부승지를 역임했던 항일 문신 수당(修堂) 이남규(李南珪·1855~1907)는 1907년 일본군이 도보로 연행하려 하자 "선비를 죽일 수는 있지만 욕보일 수는 없다(士可殺不可辱)"고 호통치며 가마를 타고 나가 그 길로 살해 당했다.

 

▲ 추사고택 곁에 서있는 백송 ⓒ 2008 에코마운틴 한국의산천 

 

이남규는 '송포기(松圃記)'에서 "저 소나무는 홀로 우뚝 치솟아서 차라리 꺾일지언정 굽어지지는 않으며, 눈과 서리도 옮길 수 없고, 비와 바람도 흔들지 못한다. 사철을 꿰뚫고 천추의 세월에도 그 가지와 잎을 바꾸지 않는 것은 뜻한 바(有心)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자도 '날씨가 추워진 연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알겠다'고 한 것이다"고 썼다.

 

 

같은 충청도 예산 출신이지만 남인이었던 이남규와 달리 노론이었던 추사 김정희(金正喜)는 성균관 대사성을 역임하는 등 승승장구하다가 헌종 6년(1840) 윤상도(尹尙度)의 옥사와 관련해 제주 대정현(大靜縣)에 유배된다. 그러자 친구도 다 끊어졌는데 역관 출신 제자 이상적(李尙迪)이 중국의 귀한 책을 자주 보내주자 고마운 마음에 그린 것이 '세한도(歲寒圖)'다. 그 발문에 '권세와 이익이 있는 자에게 보내지 않고 해외의 초췌하고 마른 사람에게 보냈다'면서 역시 공자의 이 구절을 인용했다.

 

 

성삼문의 시처럼 소나무는 '백설이 만건곤(滿乾坤)할 때 독야청청'하지만 아무 환경에서나 사는 잡초 같은 나무가 아니다. 옮겨 심기가 가장 어려운 나무로서 자신이 자란 토질과 다르거나 심지어 가지의 방향만 달라도 죽기 일쑤다. 그렇게 까다롭지만 일단 정착하면 추운 겨울을 버티기에 선비들이 더욱 사랑한 것이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를 노래한 애국가는 우리 민족의 자존심과 강인한 의지를 잘 보여준다. 어려운 한 해가 다 가는 시점에서, 또 더욱 어려우리라는 내년의 문턱에서 겨울 소나무를 바라본다.

 

 

▲ 문화관광부에서 보내 온 연하장 ⓒ 2008 에코마운틴 한국의산천

 

오래 전에 문화관광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제 블로그에 있는 사진이 필요하고 그 원본까지도 필요하다기에 담당자에게 보내드리고 그 후 여러번 제가 촬영한 사진의 원본을 보냈습니다.

연말 그 답례로 연하장이 왔습니다. 연하장 한장만으로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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