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은 있다.
그저 좋은 책이라기보다는 한마디로 명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명저서라기보다는 모든것을 통털어 제일이라는 뜻의...
소설 " 빙벽"
새하얀 구름, 우뚝 솟은 빙벽, 그리고 정적...
다시 저 도시의 어지러운 삶으로 돌아갈수있을까. -책 말미에서-
아쿠타가와상,마이니치 예술대상,신초일본문학대상을 수상한 일본 대하소설의 거두 이노우에 야스시의 걸작
몇세대에 걸쳐 최고의 산악소설로 손꼽히는 불멸의 고전.
산악소설로 저는 전용문著 "바람으로 남은 사람들"과 이노우에 야스시著 "빙벽"을 좋아합니다.
▲ 28년 전에 구입한 소설 빙벽과 이번에 구입한 소설 빙벽. ⓒ 2008 한국의산천
학창시절과 산악회 청년부시절 이 책을 구입하여 돌려읽고 그리고 사랑하던 후배 둘은 빙벽을 하다가 다시는 돌아올 수없는 먼곳으로의 여행을 떠났다.
소설"빙벽" 거의 30년전에 나온 책이라 이제는 지질이 누렇게 변하고 깨알같은 글씨가 보기 조금 어려웠는데, 큰 활자로 새로이 출간되어 읽기가 참 좋다.
이 책을 접한 시기는 1980년 10월 15일 이다. 책 말미에 그렇게 기록해놓았다. 그리고 28년이 지난 지금에 또 다시 제 1회 한국 번역상을 수상한 김석희씨에 의해 또 다시 한권의 책으로 나왔다.
1950년대 일본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나일론 자일의 강도(强度) 논쟁' 이라는 실제 사건을 소재로 번역되었던 '빙벽'.
소설 '빙벽'은 일본 대하소설의 거두라 불리는 이노우에 야스시 작품으로, 세속과 체면같은 이유에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사실만을 따르는 이상주의적인 주인공 우오즈를 통해, 자연이라는 무대에 자신을 내어 놓고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는 산사나이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 1980년.구곡폭포에서 ⓒ 2008 한국의산천
아카데미하우스 빙폭, 은계폭포, 구곡폭포, 토왕성 폭포... 그 당시 겨울은 거침없는 젊음이 있었다.
빙폭을 오르기 전에 건영이형 선배로부터 주의 사항을 듣고 있는중 (빨간색 오버트라우즈를 입고있는 저와 이창영)
이야기는 종전 후 경제 부흥기를 맞은 일본의 대도시 도쿄에서의 삶과 일본 북알프스에서도 가장 험준한 곳인 마에호다카를 등반하는 모습이 극적인 대비를 이루면서 전개된다. 소설의 본격적인 전개는 고사카가 산에서 추락하며 조난사 당한 후에 펼쳐진다. 여기서 소설 전체의 화두로 등장하는 것이 '고사카의 끊어진 자일'이다. 때마침 소설의 시대배경이 마닐라삼에서 나일론자일로의 이행기에 해당하는 시기여서 이 문제는 산악계는 물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다.
그토록 안전하다고 선전해온 나일론자일이 왜 끊어졌을까?
그때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어떤 자체 결함 때문인가? 단순한 취급부주의로 인한 사고인가? 산악인들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었던 도시인들이 던지는 질문은 그보다 더 혹독하다. 고사카는 이루어질 수 없었던 불륜의 사랑에 절망한 나머지 스스로 자일을 끊은 것은 아닌가? 또한 자일의 생산자는 신동아상사의 모(母)기업인 사쿠라제강이다. 이익금을 많이 내주는 대량 생산품목이 아니기에 자일의 생산을 멈추면 그만이지만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그로 인한 기업의 이미지 실추였다.
▲ 오래 전 부터 산에 들지 못하는 평일에는 산에 관련된 책을 읽었다 ⓒ 2008 한국의산천
이번에 "검은 고독 흰고독"이 새 단장 되어서 나왔다. 다시 구입하여 읽어야 겠다. 새 단장이 된 책을 읽는 느낌은 어떨까?
소설 빙벽의 주요 인물은 신동아상사의 기획실 직원인 오우즈와 산악도서 전문출판사의 사원 고사카 둘은 언제나 하얀산을 그리워하고 그 산에 오르며, 마음만은 언제나 눈 덮힌 산의 바람 시린 능선 위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나 도시의 세계에서까지 둘이는 유대관계가 끈끈하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산에서 친한 사람이 세속에서 까지 친하라는 법은 없으니까.내가 그렇듯이... 그리고 포터 가미조. 고사카에게 사랑의 열병을 앓게 한 미모의 유부녀 미나코, 응용물리학을 전공한 공학박사이자 미나코보다 무려 27살이나 연상인 그녀의 남편 야시로, 오우즈의 직장 상관으로서 신동아상사의 지사장인 도키와, 고사카의 여동생으로서 오랫동안 오우즈를 짝사랑해온 가오루 등이다
도시에 홀로 남은 산사람은 고독하다. 오우즈는 봄이 되자 고사카의 시신을 수습하고 산장 앞에 장작더미를 쌓아놓고 화장을 한후 죽은 친구의 여동생인 가오루로부터 불의의 청혼을 받는다. 그러나 오우즈는 가오루를 산장에서 기다리게 해놓고 단독산행에 나선다.그 후 산으로 들어가 친구가 자리하고 있는 그 산에서 영원히 잠들게 되며 소설의 막은 내린다.
▲ 휴일 외출시에 새로 구입한 새 단장이 된 소설 "빙벽"을 구입해서 읽었다. 활자가 커서 읽기 좋았다 ⓒ 2008 한국의산천
책은 두꺼울수록 좋다. 읽을거리도 많지만 책을 읽다가 졸리면 베고 자기도 좋다.
할머니는 늘 말씀하셨습니다. 책을 똑바로 들고 다니라고.. 책의 펼쳐지는 부분을 아래로 하고 다니면 글자가 아래로 쏟아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글을 잘 못읽는 할머니였지만 책에 대한 사랑과 배움에 대한 욕구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있으셨다.
저자는 험준한 산과 함께 등반하며 우정을 맺어온 고사카의 사고사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각계의 억측과 외면에 맞서는 우오즈의 모습에서, 왜 산에 가는지, 어떤 이유로 그런 위험에 아무런 두려움 없이 나를 던질 수 있는 지를 묻는 사람들에게 " 우리는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않되었어,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 무슨일이든 할 수 있지 않은가. 우리는 그 마에호타가 동벽을 아무도 올라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곳을 올라가려고 했던 거야. 춤을 추는대신, 노름을 하는 대신, 영화를 보는 대신, 우리는 눈 덮힌 암벽과 빙벽을 올라가려고 했던 거야' 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고사카의 사고 원인을 밝히는 과정에서 외적 변수에는 상관없이 자신의 양심과 명백한 사실에만 충실한 우오즈의 모습에서 순수함을 잊고 사는 우리들에게 진정한 자아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찾을 수 있는 가에 대한 감동을 전해준다
▲ 내가 아끼는 명품들 ...산에 들지 못하는 평일에는 산에 관련된 책을 읽었다 ⓒ 2008 한국의산천
소설 빙벽
조금 오래된(1980년 3월 발행) 손때 묻은 책이지만은 지금도 가끔씩 들쳐보게 된다.
이 책의 끝 부분에 귀절이 인상 깊게 남아 있어서 옮겨 적어보겠습니다 .
산악인 사이에 일어나는 한 여자와의 삼각관계 그리고 운명적인 산에서의 조난과 사고.
.
.
.
중 략
점심때 사무실을 나갔던 도끼와 지사장이 돌아온것은 퇴근시간이 가까운 5시경이었다.
도끼와는 들고 있던 상의를 의자에 걸치고 묵직한 저음으로 여럿을 불렀다 ' 모두들 일손을 멈춰주게'묵직하고 낮은 목소리였다.
내 외근을 합해서 남아있던 20여명의 시선은 일제히 지사장을 바라보았다 .
모두들 신문을 보아서 알고들 있겠지만 우리의 좋은 친구였던 우오즈군이 호다까의 D사와에서 조난을 당했어요 조금전 확인 연락이 왔어요. 우오즈군을 위해 묵념을 올립시다'
도끼와 지사장은 일동이 일어서기를 기다리며
'묵념' 하고 짧게 구령을 내렸다
이윽고 자리에 앉아 말을 계속하였다
' 난 우오즈군이 훌륭한 사원이었냐고 묻는다면 무조건 좋은 사원이었다고 내게 이상적인 사원이라고 말 할수는 없다.
그는 휴양을 간다고 휴가를 얻었고 그리고 산에 올랐다.
내게 거짓말은 하면서 휴가를 얻었고 산에 올랐다 .
그렇게 산이 회사보다 소중했던가요?
소중하다면 왜 바른대로 말하지 않았는가? 안그런가? 그것은 아직 그가 덜된. 덜 떨어진.바보 풋내기 자식...'
그는 말하면서 연신 목덜미의 땀을 딲았다.
'왜 나에게 바른대로 말하지 않았느냐 그것이다 . 내가 언제 그런말은 못하도록했는가?.내가 말도 붙이지 못하게 쌀쌀맞게 군적이 있나요?'
부르짖는 그의 태도가 바뀌어 조용히 말했다
' 그건 그렇지만 나는 그를 용서할 수 있다. 죽은자에게 채직질은 하지 말아야지.
그러나 우오즈군은 등산가로서 훌륭했습니다 .
회사의 일은 잘 마무리지었다고 말 할 수 없지만 등산가로서는 훌륭하게 마무리를 짓고 갔습니다.
죽기전까지 조난의 상황을 상세하게 정확하게 메모를 남기고 갔어요.
이건 우리 아무도 흉내내지 못할 일입니다.
그의 온몸에서는 땀이 분출 되고 있었다
' 우오즈는 왜 죽었는가? 그건 분명하다 그는 용감한 등산가 였기에 죽었다.
용감한 등산가란 모두 죽는다고 생각한다.
가장 죽음의 확률이 많은 곳에 몸을 던지는데 어찌 안전하단 말인가?
우오즈군이 이번에 죽지 않았더라도 언제가는 죽는다.
죽음이 충만한곳에 자연이 인간을 거부하고 있는곳에 인간은 기술과 의지를 무기로 도전 한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을 확실히 시험하는 훌륭한 행위이다.
과학과 문화도 이같은 과정을 거쳐서 발전해온 것이다.
인류의 행복도 이처럼해서 얻어진것이다. 그런의미에서 등산은 훌륭한 취미이다.
'그러나 등산의 본질은 스포츠가 아니에요 등산을 애당초 스포츠라고 생각하는게 잘못의 원인입니다.
등산이 스포츠라면 규칙을 만들라 이겁니다. 규칙이 없는 스포츠가 존재한다는것이 말이 됩니까?
또 하나 모든 스포츠에는 아마추어와 프로가 있습니다. 그러나 등산에는 그게 없어요
아마추어가 한번 산에 갔다오면 모두 프로가 된것처럼 우쭐거립니다. 그런데 프로인 우오즈 조차도 죽었잖아요'
그러나 항상 죽음과는 종이 한장 차이이다.
그는 신동아 상사에서 월급을 받고 살아가는 회사원이 아니라 등산가 였던 것이다
도끼와는 연설인지 울부짖음인지 알수없는 장광설을 펴고 있었다
마침내 지사장은 여사원에게 '물좀줘요' 했다 그리고 끝으로 '바보자식' 하고 끝을 맺었다
그는 이제 할말이 없어지자 갑자기 공허감이 도키와의 가슴에 몰려오며 허탈해 졌다.
아아 우오즈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약에 죽은 우오즈가 지금 여기에 살아있다면 독특하고 끈기있고 자신만만한 말투로 반박을 하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사장님? 등산에도 룰이있습니다 .
얼핏보기에는 없는것 같지만 확실히 룰이 있습니다라고 .....
그리고는 나를 한방에 해치우려고, 언제나 자신 만만한 두눈으로 천천히 나를 바라 보겠지. 바보같은 자식!
지사장은 상의를 집어들고 사무실을 나왔다.
우오즈가 없는 사무실은 이제 쓸쓸하기 짝이없었다 .
보도에는 해지기 직전의 엷은 햇살이 깔려 있었다.
도끼와 지사장은 어디로 갈까 망설였다 . 갈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다만 목이 탈 뿐이었다.
자식을 잃은 어버이의 마음이 이런것일까?
그는 집으로 가기위해 정류장으로 가면서도 아무데도 갈곳이 없는 텅빈거리에 서있는 사람처럼 허전함 뿐이었다 ... [옮김 한국의산천]
신문기사평
산악인들의 수기는 문장력이나 표현력이 다소 떨어질 수는 있다.
그러나 극한의 상황을 겪은 산악인들의 경험담은 손끝으로는 흉내낼 수 없는 중량감을 지니고 있다.
소설 빙벽
친구와 함께 등반을 갔던 주인공이 혼자 살아서 돌아온다.
자일이 끊어졌던 것이다.
사람들은 실연을 한 친구 우오즈가 자살을 하기 위해 스스로 자일을 끊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한다.
주인공은 이것을 단호하게 부정한다.
"우오즈는 산악인이다.그가 암벽을 오르면서 자살할 이유는 없다.그것은 산의 신성을 모독하는 행동이기때문이다.
산악인은 산이 원하면 생명을 바치지만, 속세를 청산하려고 산에서 일부러 목숨을 끊는 그런 짓은 결코 하지 않는다."
산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산서(山書)에는 신변잡기의 소설이나 처세술로 가득찬 책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인간정신의 가장 높은 성취가 담겨있다. 그 책들 역시 결국 산이 만든 창조물일지도 모르기때문이다. -매일경제신문-
▲ 내가 아끼는 명품들 ...산에 들지 못하는 평일에는 산에 관련된 책을 읽었다 ⓒ 2008 한국의산천
이제는 절판이 되어 다시 구할수없는 산서가 많다 아쉬운 일이다.
도시에 남은 산사람은 고독하다.
낙엽이 지고 눈이 내린다면 더욱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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