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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설악산 토왕성폭포

by 한국의산천 2008. 2. 4.

설악산 토왕성폭포 제 12회 빙벽 등반대회 2008년 2월 2~3일  

[2008.2.2~3.(토·일요일) 한국의산천 

 

토왕성 폭포 등산로가 열리던 날. 토요일은 경포대에서 자고 다음날 설악산으로 이동했습니다.

토왕성 폭포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비법정등산로이기에 산행이 불가한 지역이나, 이번 토왕성 빙벽대회가 열리는 2008년 2월2~3일 한하여 임시로 개방되었습니다.  160여명의 선수가 참가하고 4,000여명의 등산 동호인이 다녀갔습니다. 

 

1977년은 대한민국 산악계의 커다란 빅뉴스가 있었다. 1977년 1월12일 토왕성 폭포가 초등되었으며,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봉이 1977년 9월15일('산악인의 날'로 선포) 등정이 이루어졌다.

 

토왕성폭이 초등된 지 30년(1977년 초등), 그동안 수많은 등반이 이루어졌지만 이 빙폭은 아직도 360m 라는 국내 최장의 높이를 지닌 빙폭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많은 클라이머들이 한번은 꿈꾸는 한국 빙벽등반 대상지의 최고봉으로 손꼽히고 있다. 

 

참고

하얀 빙벽 위에 울던 표범. 송준호 傳 >>> http://blog.daum.net/koreasan/13784103

산악인 애송 詩  설악산 얘기 - 진교준 - >>> http://blog.daum.net/koreasan/13784952 

 

▲ 매표소를 지나 왼쪽의 다리를 건너 비룡폭포,토왕성 폭포로 간다. 정면에 '한편의 시를 위한 길'코스가 있는 노적봉이 우뚝 서있다.

ⓒ 2008 한국의산천  

 

설악동 주차장에서 매표소를 지나 개울을 건너가면 토왕골이라고 부르는 계곡을 따라 비룡폭포 방향으로 따라가면 멀리 하늘 아래 탁트인 좁은 골짜기 속으로 떨어지는 거대한 물줄기를 만나게 된다. 토왕성폭포 입구의 계곡을 들어서면 양쪽으로는 거대한 바위군이 성채처럼 둘러 싸여 있으며 협곡을 이루고 있다.

이것이 일명 일명 선광(禪光)폭포라고도 불리는 토왕성폭포로, 설악산을 대표하는 3대 폭포 중의 하나다. 빙벽 훈련장으로 유명한 토왕성폭포에 이르지만 길이 위험하여 현재 일반인들의 출입은 통제되고 있다. 

▲ 토왕골에서 바라 본 토왕성 폭포 ⓒ 2008 한국의산천  

 

토왕성폭포가 다른 폭포보다 빼어나 보이는 것은, 큰 봉우리들이 폭포 양쪽으로 수문장처럼 솟아있기 때문이다. 토기가 왕성하지 않을 때는 기암괴봉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5행설에서 폭포이름이 연유되었다고 한다.

설악산 신흥사의 동남쪽으로 석가봉·문주봉·보현봉·문필봉·노적봉 등이 병풍처럼 둘러싼 바위벽들 한가운데로 2단을 이루며 떨어지는 연폭으로, 멀리서 보면 마치 흰 비단을 바위 위에 널어놓은 듯 아름답다. 폭포의 높이는 상,하단 360m이다.

 

▲ 토왕골에서 토왕성폭포 오름길ⓒ 2008 한국의산천 

비룡폭포에서 간단한 장비검사를 마치고 입장했습니다.  

▲ 협곡을 이룬 토왕골ⓒ 2008 한국의산천  

이길을 참 오랫만에 걷는다.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80년도 후반 한참 빙벽 훈련을 하러 무거운 픽켈과 아이스 바일, 스크류, 자일을 들고 푸른 청춘을 불살랐던 때가 엇그제 같은데...

경비가 떨어져 집사람이 고속버스를 타고 설악동까지 와서 돈을 전해주었다. 그때 내 몰골은 입술이 허옇고 마주보기 힘들었다고 집사람은 말한다.

▲ 그 무엇을 찾아 많은 인원이 토왕골을 오르는가? ⓒ 2008 한국의산천  

▲ 상·하단 약 360m 높이를 가진 국내 최대 빙폭 토왕성 빙폭의 위용 ⓒ 2008 한국의산천

▲ 토왕성 폭포 ⓒ 2008 한국의산천  

 

토왕성 빙폭은 국내 최장의 360m의 높이를 지닌 빙폭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많은 클라이머들이 한번쯤 도전하고픈 빙벽(빙폭)등반장이다.

1977년 국내 산악계의 최대 이벤트는 두 가지로 요약 할 수 있다. 그 첫째가 한국 원정대의 에베레스트 국내 초등정이요, 둘째는 토왕성 빙폭 첫 등정이다.

설악산에서 많은 코스를 개척한 송준호씨는 1973년 이곳에서 등반 중 추락하여 사망하였다. 그 후 1977년 1월 12일 크로니산악회의 박영배·송병민씨에 의해 수직 표고차 320여m에 이르는 고드름 층의 토왕성 빙폭이 국내 최초로 완등 되었다. 이때의 완등은 두 사람이 목숨을 걸고 이루어낸 사투의 대가였다.     

▲ 토왕성 빙폭 ⓒ 2008 한국의산천  

 

토왕설폭포 초등 당시 상·하단 등반에 소요된 날짜는 12일이었으며 실제 등반에 소요된 시간은 하단 4시간, 상단 19시간이었다. 등반 방식은 약 70여개의 이상의 아이스하켄을 설치하며 등반한 인공등반이었다. 초등 당시 고드름 빙질에서 적응도가 높았던 장비는 모래내금강 제작의 바르트혹(Wart hog)과 김수길씨가 설계하여 제작한, 해머와 블레이드를 겸비한 다기능의 토왕성 피켈이 사용되었다.

이 등반에서 후등자인 송병민은 심야의 수직 빙폭에 혼자서 고립된 채 동료의 로프 확보 없이 단독으로 19시간 동안 사투를 벌이면서 절체절명의 위험 속에서 초등정의 최후를 장식하는 극적인 단독등반으로 마무리된다.

 

토왕성 초등은 국내 빙벽등반의 성장을 입증한 결과며 수직의 빙벽에서 프런트포인팅 기술에 대한 확신과 국산장비의 우수성을 보여준 결과였다 . 이 등반이 기폭제가 되여 수직 빙벽 등반이 한층 더 활기를 띠게 되었으며, 그 결과 그동안 난제로 미루어왔던 미등의 처녀 빙폭으로 그 열기가 이어진다.   

▲ 토왕성 빙폭 ⓒ 2008 한국의산천

 

토왕성계곡은 협곡으로 눈사태의 위험이 많은 지역으로 일기 예보에 주의를 기울여 등반해야한다.   

1985년 2월 마산 무학산악회 회언 3명 토왕골 함지덕'Y'에서 눈사태로 조난. 1명 구조 3명 사망. 

1998년 1월 14일 17:00경  설악산 토왕성폭포에서 빙벽등반 훈련을 실시하던 산악연맹 소속 경북대학교 일행 8명중 6명과 구조 활동에 함께 동참했던 등반객 2명이 1, 2차에 걸친 눈사태로 모두 8명이 눈 속에 매몰된 사고 8명(남 7, 여 1)가 있었다.

이곳을 등반 할때는 기상방송에 주의를 기우려 많은 눈이 예상되면 등반금지와 신속한 대피가 필요한 지역이다.  

▲ 얼음과 바위가 혼합된 코스에서 경기중인 출전 선수.ⓒ 2008 한국의산천  

▲ 토왕성 폭포 ⓒ 2008 한국의산천  

▲ 토왕성 폭포에서 ⓒ 2008 한국의산천  

토왕성 이곳에 참 오랫만에 섰다.그간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80년도 후반 한참 빙벽 훈련을 하러 무거운 픽켈과 아이스 바일, 스크류, 자일을 들고 푸른 청춘을 불살랐던 때가 엇그제 같은데...

경비가 떨어져 집사람(위 사진 오른쪽)이 고속버스를 타고 설악동까지 와서 돈을 전해주었다. 그때 내 몰골은 입술이 허옇고 마주보기 힘들었다고 집사람은 말한다.

▲ 토왕성 폭포에서 ⓒ 2008 한국의산천  

▲ 노적봉 '한편의 시를 위한 길' 하산 루트를 촬영중 ⓒ 2008 한국의산천  

▲ 토왕폭 하단에서 보이는 토왕골 하늘은 푸르기만 하다 ⓒ 2008 한국의산천   

▲ 빙벽장비는 후배들에게 다 분양되었고, 남은 것은 오래 된 워킹용 피켈. ⓒ 2008 한국의산천  

▲ 토왕성 폭포에서 바라 본 노적봉(한편의 시를 위한 길)과 왼쪽 능선이 하산.하강 한 릿지이다. ⓒ 2008 한국의산천  

▲ 지난 해 가을 노적봉'한편의 詩를 위하여'코스를 등반하며 촬영한 토왕성 폭포 상단부 ⓒ 2008 한국의산천

▲ 주차장으로 나오는 길에.ⓒ 2008 한국의산천  

▲ 설악산 관광단지 C지구 노루목모텔 옆 산악인의 묘지 입구. 노루목 모텔 오른쪽 개울 건너 뒤산에 산악인 묘지가 있다. 위 사진에서 오른쪽 건물 바로뒤에 있다. 설악산을 찾는 일이 있으시면 먼저가신 선배 산악인들에게 간단하게 소주 한잔, 묵념이라도 바치고 같다면 그들도 기뻐할것입니다.ⓒ 2008 한국의산천

 

외설악 초입 노루목에 가면 지금은 관광당지 C지구의 호텔과 여관들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 설악의 맞은편 산자락에 산악인의 묘지가 있다. 사실 이곳을 아는 이가 그리 많지 않다. 이정표도 없다. 설악동 주변상가 사람들 조차도 잘 모른다. 건물에 가려져 입구조차 없는 길을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을 밟고 개울 뚝을 타고 어렵게 들어갔다.

설악을 사랑하다 결국 설악의 품에 안긴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그곳에는 1969년 죽음의 계곡에서 눈사태로 조난한 한국산악회의 열 동지를 비롯해 많은 산사람들의 무덤이 있다. 인가는 없지만 우리나라 유일의 산악인 묘지로서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인생에서 이름마저 남기지 않은 이름없는 산사람의 조그마한 묘지들이 모인 곳이다. 이 무덤의 주인공들은 거의가 벚꽃처럼 젊은 나이에 산에서 져버렸다.

10동지 묘 이외에도 엄홍석과 신현주라는 두 남녀의 무덤이 있다. 두 사람은 설악에서 등반사고로 함께 죽었다. 송준호는 이 두 사람과 같은 산악회 회원이었고 엄홍석과는 자일 파트너였다. 그 들을 생각하며 산을 올랐고 천화대로 달라 붙는 능선에 코스를 내고 그 길이름을 석주길이라 명명했다. 엄홍석과 신현주의 이름 끝자를 따서 붙혔다. 그리고 그 역시 1973년 토왕성 폭포에 오르다 추락하여 사망하고 이곳에 석주옆에 나란히 묻혔다.   

 

▲ 10동지 묘에는 산으로 향한 불타는 의지를 접은채 하얀 눈속에 포근하게 못다이룬 꿈을 가진 청춘이 고이 잠들고 있다. ⓒ 2008 한국의산천

 

혼비에는 "시간과 존재의 불협화음으로 공간을 활보하고 있는 악우(岳友)들이여! 철학적 경이로써 모둠된 그대들의 자취는 훗날 이 인자한 산정을 찾는 이들의 교훈일 것이다. 추억을 침묵으로 승화시킨 사람들, 그 대담한 의지로 회생하리라.” 라고 새겨져 있다. 먼저가신 岳友님께 술 한잔 못올렸지만 묵념으로 그들의 영혼을 위로했다.  묘지가 주변 건물에 싸여있어 입구를 찾기가 어려운 곳이다.

 

한국등산사에 기록되는 가장 큰 산악사고 중 하나인 '설악산 10동지 조난'은 한국산악계의 도약기를 바라보는 1969년 2월에 일어났다.

한국 산악계에 잊지 못할 슬픔을 안겨준 설악산 죽음의 계곡 사건 당시 눈사태로 히말라야 원정을 위해 동계 훈련하던 산악인 18명 중 10명이 목숨을 잃었다.

 

1969년 2월 14일 당시 이희성 대장이 이끄는 한국산악회 ‘해외원정을 대비한 제1차 적설기 설악산 훈련대’ 조난사고 10명의 희생자를 낸 설악산 죽음의 계곡 눈사태는 36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국산악계에 더없이 안타까운 사고로 기록되고 있다.

 히말라야 원정을 대비해 적설기 설악산에서 훈련하던 대원 중 이희성 대장 등 10명이 죽음의 계곡에서 눈사태로 사망한 것이다. 조난대원들은 당시 산악계를 이끌어 갈 차세대로 주목받을 만큼 역량이 뛰어난 산악인들이었기에 많은 산악인들에게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겨주었다.  

▲ 밤그늘이 드리운 물치항에서 바라 본 설악산 능선 ⓒ 2008 한국의산천 

 

돌아오는 차안에서 모두가 조용히 노래를 불렀다.

 

내 어이 잊으리오 꿈같은 산행을~

잘있거라 설악아 내 다시 오리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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