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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가을바다 파란하늘

by 한국의산천 2007. 11. 4.

가을바다 파란하늘  

똥섬에서 오이도~대부도~선재도~영흥대교까지

답사 촬영 2007. 11. 4. 일요일.[ 한국의산천]  

 

일요일 아침 출근길에 하늘이 푸르러 잠시 바닷가를 달려보고 출근 했습니다.

가을 하늘 가을바다를 보니 가슴이 시원했습니다.

작은 풍경이지만 제겐 큰 기쁨입니다. 

 

▲ 오이도. 똥섬 입구 ⓒ 2007 한국의산천 

월곳IC에서 나와 시화방조제 방향으로 가다보면 고가도로를 지나면 바로 오이도 입구가 나온다. 오이도 입구를 들어서서 가다보면 T자형 삼거리가 나오는데 오른길은 똥섬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은 오이도로 가는 길이다.  

 

▲ 똥섬 ⓒ 2007 한국의산천 

멀리서 보면 마치 사람의 변을 닮았다하여 똥섬이란 이름이 붙었다. 이 작은섬은 개인 소유로서 안에는 카페와 레스토랑 주차장이 있다. 참 친근감이 있는 재미있는 이름이다.

 

▲ 오이도 노을등대 ⓒ 2007 한국의산천  

노을 등대는 5층 높이의 규모로 내부의 나선형 계단을 천천히 올라 4층을 지나면 전망대에 서게 된다.

 

고독 

 

나는 떼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이생진-

 

▲ 노을전망대 입구 ⓒ 2007 한국의산천 

 

바다는

 

                 - 용혜원-

 

밀물로 몰려드는 사람들과
썰물로 떠나는 사람들 사이에
해변은 언제나
만남이 되고
사랑이 되고
이별이 되어 왔다.

똑같은 곳에서
누구는 감격하고
누구는 슬퍼하고
누구는 떠나는가?

감격처럼 다가와서는
절망으로 부서지는 파도

누군가 말하여 주지 않아도
바다는
언제나 거기 그대로 살아 있다.

 

▲ 오이도 방조제 ⓒ 2007 한국의산천

 

▲ 오이도 방조제 ⓒ 2007 한국의산천 

오이도 식당가에서 이제 오이도 노을 등대로 올라 갑니다.

 

▲ 노을등대에서 내려 본 오이도 선착장 ⓒ 2007 한국의산천

 

▲ 노을등대에서 내려 본 오이도 거리 ⓒ 2007 한국의산천

 

▲ 길이 11km의 시화 방조제ⓒ 2007 한국의산천

 

 ▲ 시화 방조제에서 바라 본 바다 ⓒ 2007 한국의산천 

 

그리운 바다 성산포 4

                                     -이생진-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사람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사람 무덤이 차갑다

 

나는 떼어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달만 뜬 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달만 그리운 것이 없어질 때까지 뜬 눈으로 살자

.

.(중략)

바다는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 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 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집 개는 하품이 잦아았다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게 탄 버스엔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살아서 무더웠던 사람 죽어서 시원하라고 산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술 좋아하던 사람 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두 짝 놔 두었다

삼백육십오일 두고 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육십평생 두고 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 방아다리 풍경 ⓒ 2007 한국의산천

 

 ▲ 나무와 란도리 ⓒ 2007 한국의산천

해변가의 적막한 나무와 비가오나 눈이오나 늘 새벽이슬 맞고 나와서 달과 별을 보며 나와 함께 퇴근하는 고생많은 란도리

 

코란도(Korando)

코란도의 뜻은 Korean can do의 줄임말로 "한국인은 할 수 있다" 라고 합니다. 그뜻이 너무 멋지지 않습니까?   

 

 ▲ 구봉도 송림 해안가 ⓒ 2007 한국의산천

 

 ▲ 구봉도의 억새 ⓒ 2007 한국의산천

 

 ▲ 선재교 아래 ⓒ 2007 한국의산천

 

 ▲ 선재교 아래에서 ⓒ 2007 한국의산천 

 

바닷가에서

 

                  - 정호승-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게 좋다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잠자는 지구의 고요한 숨소리를 듣고 싶을 때
지구 위를 걸어가는 새들의 작은 발소리를 듣고 싶을 때
새들과 함께 수평선 위로 걸어가고 싶을 때
친구를 위해 내 목숨을 버리지 못했을 때
서럽게 우는 어머니를 껴안고 함께 울었을 때
모내기가 끝난 무논의 저수지 둑 위에서
자살한 어머니의 고무신 한 짝을 발견했을 때
바다에 뜬 보름달을 향해 촛불을 켜놓고 하염없이
두 손 모아 절을 하고 싶을 때
바닷가 기슭으로만 기슭으로만 끝없이 달려가고 싶을 때
누구나 자기만의 바닷가가 하나씩 있으면 좋다
자기만의 바닷가로 달려가 쓰러지는게 좋다

 

 ▲ 항도(목섬)ⓒ 2007 한국의산천  

특정도서 제 15호 항도 이곳에서는 목섬이라고 부른다. 아주 작은 무인도로서 물이 빠지면 섬까지 걸어갈 수 있다.

 

무명도(無名島)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운 것이
없어질 때까지
뜬 눈으로 살자 -이생진-

 

▲ 항도(목섬)ⓒ 2007 한국의산천 

 

낮잠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이생진-

  

 ▲ 영흥도 바닷가 ⓒ 2007 한국의산천

 

 ▲ 영흥도 바닷가 풍경ⓒ 2007 한국의산천 

 

영흥도는 작은 섬이지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영흥도의 원래 명칭은 ‘연흥도(延興島)’였다. 그러다 고려말 익령군이 정국의 불안으로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온 식구를 이끌고 이곳으로 피신하면서 익령군의 영(靈)자를 따서 영흥도(靈興島)라 했다. 그래서 고려가 망한 뒤 대다수의 왕씨들처럼 물에 빠져 죽임을 당하는 화를 면하였고, 자손은 그대로 이 섬에 살게 되었다. ‘택리지’의 저자인 이중환이 살았던 시대에는 그들의 신분마저 낮아져서 말을 지키는 목동이 되었다고 한다.

 

고려말 왕씨들은 대부분 전(田), 옥(玉), 마(馬) 씨 등 왕(王)자가 들어간 글자로 성씨를 바꿔 숨어 살았다고 하는데, 영흥도에 숨은 왕씨들은 어땠는지, 그리고 지금 그 후손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또 영흥도에는 1270년 배중손이 이끄는 삼별초가 강화도에서 진도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영흥도를 기지로 삼아 70여일 동안 항몽전을 벌이기도 했던 곳이다.

 

 ▲ 영흥도 바닷가 ⓒ 2007 한국의산천

 

 ▲ 빈배 ⓒ 2007 한국의산천

 

▲ 영흥도 바다 ⓒ 2007 한국의산천 

 

바다

 

바다는 슬퍼할 겨를이 없다.

하루에 두번 난바다로 여행을 준비하고 

여행을 마치기 무섭게 또 다시 떠날 준비를 한다.

 

바다는 슬퍼할 겨를이 없다.

갯벌의 온갖 생물을 쓰다듬고 보듬으며

그들의 보살핌에 온힘을 다한다.

 

폭풍우 치는 격동의 바다.

호수처럼 잔잔하고 고요한 바다.

잠자는 바다, 늘 깨어있는 바다.  - 한국의산천-  

 

▲ 영흥대교의 야경(촬영2007.8.25 밤10시) ⓒ2007 한국의산천 

 

▲ 멋진 위용을 자랑하는 영흥대교 ⓒ2007 한국의산천 

 

영흥도,영흥대교 

대부도 방아머리와 서의를 지나면 삼거리가 나온다. 오른쪽 영흥도 가는 길로 접어들어 한참을 가다보면 왼쪽에 대부동사무소가 있는 읍내가 나온다. 읍내는 생각보다 그리 크지는 않았고 한눈에 면소재지 정도구나 생각될 정도의 규모였다. 전형적인 삼거리형 읍내로 삼거리를 중심으로 세 방향으로 시가지가 형성되었다.

 대부읍내를 빠져나와 영흥도로 향한다. 그 전에 선재도를 지나야 한다.

 선재대교. 2000년 11월에 개통된 다리다. 1년 후인 2001년 11월에 영흥대교가 개통되어 대부도~선재도~영흥도가 모두 다리로 이어졌다. 이 다리는 영흥화력발전소 진입도로 공사의 일환으로 건설한 것이다. 총공사비는 225억원이 소요되었다. 섬 하나를 육지로 만드는데, 200억원 정도 든 셈이다.

선재도(仙才島)는 고려부터 조선시대 후기까지 ‘소우도’로 불리다가 1871년을 전후하여 선재도로 개칭되었다.

 

교통
영흥도로 가기 위해서는 되도록 한산한 시간대를 택하는 것이 좋다. 특히 주말에는 단조로운 진입로 때문에 오이도입구부터 대부도까지 영흥대교를 넘어 선재도까지 긴 차량행렬이 물고 늘어진다. 새벽에 출발하고 일찌감치 떠나 섬을 돌아보고 나오는것이 좋다.

 

영흥도로 가는 방법은 2가지다. 인천방면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월곳 IC에서 빠져나와 안산 시화방조제를 건너 303지방도를 타고 대부도, 선재도를 거쳐 영흥도로 들어가면 된다. 또 다른 하나는 당진,안산 방면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비봉IC를 나와 306지방도를 타고 대부도, 선재도를 거쳐 영흥도로 들어갈 수 있다. 

신선한 바닷 바람과 여유를 느끼고 싶다면 시화방조제를 거쳐 가는 방법을 추천한다.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과 안산시 대부동을 잇는 시화방조제는 총 11.2㎞의 거대한 바다옹벽. 방조제 위에서는 젊은이들이 시원한 바다 바람을 가르며 인라인 스케이트와 자전거를 타고 있고, 방조제 중간쯤에 위치한 선착장에서는 바다낚시를 하려는 낚시꾼들이 자신이 탈 배를 기다리고 있다. 주위로 무단 주차차량이 많으므로 방조제 위해선 항상 서행과 조심운전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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