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유적지 답사
답사 촬영 2007. 10. 28 일요일.[ 한국의산천]
오늘 답사코스
아침 4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5시에 길을 나섰습니다
영동고속도로 ~ 수안보 IC~ 수안보 ~ 충주 미륵리 ~ 사자빈신사지 석탑 ~ 덕주사 ~ 청풍단지 ~ 제천 동산 무암사 & 남근석 ~ 정토사법경대사지 (출발,도착 16시간 /총 소요거리 468km)
딸과 같이 걷는 길
울긋 불긋 단풍이 절정을 이룬 월악산과 충주호
아빠와 딸이 대화를 하며 호젓하게 걷는 답사길 즐거웠습니다.( 답사 유적지는 각각 별도로 페이지 준비합니다)
※ 아래 지도 참고 빨간선이 이동코스( 지도 상단의 금성부터 동량면까지는 비포장도로입니다) 하얀선 테두리는 이번 답사지입니다.
금성면에서 정토사법경대사자등탑비 가는길은 험하고 먼지나는 비포장길이었지만 아름다운 충주호를 가까이서 또 다른 방향에서 볼 수 있는 멋진 여정이었습니다.
▲ 제천 금성면에서 동량면까지 굽이 굽이 비포장도로를 지나야 합니다ⓒ 2007 한국의산천
▲ 제천 금성면에서 비포장도로를 20km 이상 달려야 합니다. ⓒ 2007 한국의산천
▲ 충주호로 실낫처럼 이어지는 도로 ⓒ 2007 한국의산천
▲ 이 길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충주호의 아름다운 풍경 ⓒ 2007 한국의산천
▲ 굽이 굽이 험로를 지나오며 잠시 휴식 ⓒ 2007 한국의산천
제천 금성면(충주호 끝단)에서 충주댐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충주호의 북쪽의 수면을 아주 근접하게 따라 이어지며 승용차 교행이 조심스레 겨우 가능한 굽이 굽이진 비포장 절벽 도로입니다
▲ 산아래로 멀리에 지나온 길이 보입니다 ⓒ 2007 한국의산천
▲ 산을 넘으면 또 다시 호수의 절경이 보입니다. ⓒ 2007 한국의산천
금성면에서 충주댐까지 물과 같이 나란히 가는 길입니다.
▲ 드디어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 2007 한국의산천
▲ 주차장에서 바라 본 정토사법경대사자등탑비(보물 제17호) ⓒ 2007 한국의산천
정토사법경대사자등탑비(淨土寺法鏡大師慈燈塔碑 보물 제17호)
소재지 충북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177-1
시대 고려시대
충주호가 만들어 지며 수몰지구에 있던 것을 현위치로 옮겼다.
정토사터에 전하고 있는 비(碑)로, 신라말,고려초의 승려 법경대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정토사는 신라말에서 고려초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법경대사가 이 절의 주지가 되어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다가 태조 24년(941)에 입적하자, 그의 뒤를 이어 홍법대사가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비는 전체적으로 보존이 잘 되어 있으며, 당시의 양식을 잘 따르고 있어, 비받침에 새겨진 거북조각이나 머릿돌의 용조각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머릿돌 앞면의 중앙에는 ‘법경대사’라는 비의 명칭이 새겨져 있고, 비의 몸돌에는 대사의 행적이 자세히 새겨져 있다.
법경대사는 통일신라 헌강왕 5년(879)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불교의 법을 배워 20세에 불가에 입문하였다. 906년에 당나라에 들어가 도건대사에게 가르침을 받고, 924년에 귀국하였다. 경애왕은 그를 국사로 대우하여 정토사의 주지로 임명하였고, 고려 태조 24년(941)에 63세로 입적하자 태조는 시호를 ‘법경’, 탑이름을 ‘자등’이라 내렸다.
태조 26년(943)에 그의 공덕을 칭송하기 위해 이 비를 세웠고, 비문은 당시의 문장가 최언위가 지었으며, 유명한 서예가였던 구족달(仇足達)이 글씨를 썼다. 함께 서 있었을 사리탑은 일본으로 반출되어 이곳에 남아 있지 않다.
▲ 탑비는 시원하게 펼져진 충주호를 바라 보고 서있습니다.ⓒ 2007 한국의산천
이 비의 규모는 비신 높이 3.15m, 폭 1.42m로서,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수몰지에 있던 것을 1983년에 현 위치로 옮겼다.
동량면 하천리에 있는 정토사지(淨土寺址) 법경대사자등탑비(法鏡大師慈燈塔碑). 충주호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저 아래 어디엔가 있었지만 수몰이 되면서 이곳 언덕으로 옮겨왔습니다. 청풍단지, 수산리에서 이곳을 오기에는 너무 넓은 호수가 가로막혀 험로를 돌아 돌아 왔습니다.
법경대사는 879년 1월1일 오시에 태어나 898년에 가야산사(伽倻山寺)에서 구족계를 받고 906년에 당나라로 가는 배를 얻어 타고 구법의 길을 떠났다. 구봉산(九峯山)의 도건(道乾)대사를 만나 법을 구하고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은 물론 천태산(天台山)을 비롯한 명산의 선백(禪伯)들을 두루 만나 공부를 이루고 924년에 귀국한 인물이다. 귀국하자마자 고려의 태조인 왕건은 국사의 예로 대사를 맞이했으며 대사를 정토난야(淨土蘭若)에 머물게 했는데 그곳이 바로 정토사이다. 그러나 정토사는 어느덧 폐사가 되고 우리 인간이 만든 커다란 호수로 인하여 본래의 자리를 잃었지만 그 자리가 그리운듯 드넓은 충주호를 바라보며 의연히 서있습니다.
▲ 규모가 큰 비입니다.ⓒ 2007 한국의산천
이 비의 규모는 비신 높이 3.15m, 폭 1.42m로서,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수몰지에 있던 것을 1983년에 현 위치로 옮겼다.
이 비는 고려(高麗) 태조(太祖) 26년(943) 법경대사(法鏡大師)의 공덕(功德)을 칭송하기 위하여 세운 것으로 글은 최언위(崔彦위)가 짓고 글씨는 명필로 알려진 구족달(仇足達)이 썼다.
법경대사(法鏡大師)는 신라, 고구려의 고승으로 신라시대에는 정토사(淨土寺)를 창건하였고 고려조(高麗朝)에 이르러 태조(太祖) 7년(924)에 국사(國師)의 대우를 받고 태조 24년(941)에 63세로 입적하니 시호(諡號)를 법경(法鏡), 탑명(塔名)을 자등(慈燈)이라 하였다.
▲ 새로 만든 등탑비와 그 뒤로 보이는 법경대사자등탑비 ⓒ2007 한국의산천
▲ ⓒ 2007 한국의산천
▲ 100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 2007 한국의산천
▲ 여의주를 물고있는 귀두 ⓒ 2007 한국의산천
▲ ⓒ 2007 한국의산천
▲ 정토사법경대사자등탑비 ⓒ 2007 한국의산천
▲ 충주호 리조트ⓒ 2007 한국의산천
정토사법경대사자등탑비에서 약 1km정도 떨어져 있으며 이곳서부터는 도로가 좋습니다.
계속해서 아래 웹페이지에 이번 답사에 동참한 제 딸의 모습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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