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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적석총 서울 석촌동

by 한국의산천 2007. 5. 20.

삶과 또 다른 내세의 삶이 함께 공존하는 석촌동 적석총 답사 2007년 5월 20일(일요일). [한국의산천 ] 답사코스 : 석촌동 백제초기적석총 - 삼전도 碑 -남한산성

 

송파구 대부분은 "파면 나온다" 할 정도로 곳곳에서 유물이 출퇴되는곳이다

송파구는 백제 678년의 역사중 가장 긴 493년간 (기원전 18년~475년)한성백제의 도읍지였다

 

석촌동 백제초기적석총(百村洞 百濟初期積石塚 )
지정번호: 사적 제243호
시대: 백제초기
소재지: 서울특별시 송파구 석촌동 248 외  

 

 

▲  사적 제243호 석촌동 백제초기적석총(百村洞 百濟初期積石塚 ) 입구 ⓒ 2007 한국의산천

 

 

▲ 정문 말고도 사방에 작은 문이 하나씩 있다.  ⓒ 2007 한국의산천

 

  

 ⓒ 2007 한국의산천

 

 

▲ 1.2호 분 ⓒ 2007 한국의산천

 

표고(標高) 20m 정도의 남북 방향의 얕은 뚝 모양의 대지 위에는 1917년 당시만해도 60기 이상의 적석총이 남아 있는 등 돌이 많았기 때문에 '돌마리'라고 불리워 왔으며, 석촌동이란 지명은 서울특별시 관할구역으로 편입되면서 생긴 것이다. 

 

이 고분군에는 막돌, 포갠 돌 등을 섞어 쌓아 분구를 축조한 방형단축(方形段築)의 적석총(積石塚)을 비롯하여, 즙석(葺石)을 덮고 흙을 쌓아 분구를 축성한 봉토분, 지표에 장방형 토광을 파서 묘광을 만든 토광묘, 그리고 내원외방형(內圓外方形)을 이룬 고분 등 구조형식과 축조시기를 달리하는 고분 8기가 자리잡고 있다

이중에서 사적 제243호로 지정되어 보수, 정비된 것은 제3, 4호분이며 모두 적석총(돌무지무덤)이다. 제1, 2호분 및 내원외방형분 등 3기는 파괴가 극심하여 하단부의 일부만 남아있고, 토광묘 2기는 원형을 보존하기 위하여 흙을 덮고 그 위에 모형 토광묘를 만들어 놓아 백제 전기 고분의 성격을 알 수 있게 하였다. 

 

제3, 4호분은 방형단축의 분구라든가 큰 자연석을 비스듬히 세워 놓은 지탱석 등 분구의 구조형식이 고구려의 기단식 적석총(基壇式積石塚)과 동일함에 따라, 이 시기에 백제와 고구려가 밀접한 교류가 이루어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고분군의 보수·정비 공사는 1983년 3월에 착수하여 1991년 6월에 완료되었다.

 

 

▲ 적석총 전경 ⓒ 2007 한국의산천

 

 

▲ 규모가 가장 큰 3호분  ⓒ 2007 한국의산천

 

적석총이란 한자를 그대로 풀이하면 돌을 쌓아 만든 묘라는 뜻이다.

 

이 돌무지무덤(적석총)은 백제가 서기 475년 웅징(熊津,공주)으로 도읍지를 옮기기 전까지 도읍지였던 이 곳 한강유역에 만든 백제 초기 고분군이다.

 

백제 초기의 매장 풍습과 함께 당시의 문화,정치,사회등에 관한 흔적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이 곳 석촌동 일대의 낮은 대지위에는 1916년 당시 돌무지무덤23기,흙무덤 66기 등 모두 89기의 고분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 무덤은 개발로 인하여 거의 다 없이지고 1987년 복원할 당시에는 석촌동 적석총 제3호분과 제4호분의 2기 밖에 남아 있지 않았으며, 발굴 결과 내원외방형적석총(內圓外方形積石塚)흔적이 확인되었다.  

 

 


 

이 곳 고분군에는 제3호분과 같이 왕릉처럼 보이는 것이 있는 반면, 소형 움무덤(토광묘)과 같이 일반관리나 서민의 것으로 추정되는 것도 섞여 있어, 시기를 달리 하며 많은 무덤들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석촌동백제초기적석총은 백제가 한강 하류역에 위치한 한성(漢城)에 도성을 정한 후 서기 475년 웅진(熊津)으로 천도하기 이전까지 형성된 백제 전기 고분군이다. 흔히 생각하기를 '백제' 하면 생각나는것은 충청도 지방의 공주가 도읍이었던 웅진시대, 부여가 도읍이었던 사비시대는 백제시대 찬란한 역사의 극히 일부분이다. 오히려 지금의 서울 송파구 일대가 도읍이었던 한성시대의 역사가 그보다 오랜 시간이었다
 이곳 적석총은 백제의 매장 풍습과 함께 축조 당시 문화,정치,사회 등에 관한 백제사의 여러 가지 내용을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 2007 한국의산천

 

 

▲ 피라미드 느낌이 나는 적석총  ⓒ 2007 한국의산천

 

이 동네에는 예전부터 적석총이 남아 있는 등 돌이 많았기 때문에 '돌마리'라고 불리워 왔으며, 석촌동(石村洞)이란 지명은 서울특별시 관할구역으로 편입되면서 생긴 것이다. 

 

 

▲ 사적지이지만 동네 한가운데의 숲으로 둘러싸인 넓은 곳이라 아침 운동하는 사람이 많다. ⓒ 2007 한국의산천

 

 

ⓒ 2007 한국의산천

 

 

ⓒ 2007 한국의산천

 

 

▲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죽은 이의 묘를 둘고 있는 풍경이 아이러니하다. ⓒ 2007 한국의산천

  

 

▲  석촌동 제3호 돌무지무덤 ⓒ 2007 한국의산천

 

 

▲  3호 무덤 ⓒ 2007 한국의산천

 

석촌동 제3호 돌무지무덤
3호분은 방형(또는 장방형)의 단축적석총(段築積石塚)이고, 3단까지 남아있는 각 단의 높이는 0.7∼0.8m, 폭 4∼4.2m이다. 남북 길이 43.7m, 동서 길이 55.5m, 그리고 높이가 약 4.5m로 추정되고 있다.
무덤의 축조 과정은 상부 시설물을 만들기에 앞서 지반 위에 자갈을 고르게 깔아 수평을 이루게 하고 그 위에 할석(割石)을 폈다. 다시 할석 위에 한 벌 자갈을 깔고 또 할석을 펴는 방법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기단에는 넓은 장방형의 판석을 두 겹 쌓았고 그 바깥 주위에는 묘역 시설로 주구(周溝)를 팠다.

 

 ▲  석촌동 제3호 돌무지무덤 ⓒ 2007 한국의산천

 

 

▲  석촌동 제3호 돌무지무덤 ⓒ 2007 한국의산천 

이곳 적석총 유적지 주변은 주택과 빌라들로 애워싸여 있다.

 

 

▲  석촌동 제3호 돌무지무덤 ⓒ 2007 한국의산천
 

70년대 잠실 일대가 개발되는 과정에서 발굴된 석촌동 백제 초기 적석총은 1975년 5월 27일 사적 제243호로 지정됐다
이제 이곳 사람들에게 석촌동 백제 초기 적석총은 오래전에 만들어진 문화재가 아니라 현재의 삶을 같이하고 있는 현재의 역사인 것이다.
 
석촌동 백제초기 적석총 개방시간 : 06:00~21:00(7~9월 05:00~22:00) 입장료 없음   다음 답사지 <삼전도 비>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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