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사면석불 (四面石佛)
답사 2007. 4. 29 (일요일)
예산 면천향교, 면천읍성- 영탑사 - 사면석불-와우리 단군전-개심사-해미읍성 [한국의산천 ]
작은 바위돌의 사면 모두에 불상에 새겨져있는 보물 794호 예산 화전리 사면석불을 찾아서..
▲ 도로가에 세워진 예산 화전리 사면 석불 안내판 ⓒ 2007. 한국의산천
위치: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화전리. 면천에서 봉산면,덕산으로 가는 2차선 국도변에서 약 200m.
집 한채가 있는 오른쪽으로 작은 산 동산위에 있어 나무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으나 잘 깔린 돌단길을 따라 가면 된다.
▲ 사면석불 (四面石佛) 보호 누각 ⓒ 2007. 한국의산천
▲ 사면석불 보호 누각 ⓒ 2007. 한국의산천
▲ 남쪽을 향하고 있는 석불 ( 누각의 정문방향입니다.편의상 1면이라고 말하겠습니다.) ⓒ 2007. 한국의산천
사면불의 전체 높이는 310㎝, 최대폭은 140㎝이며 두께는 80㎝입니다.
▲ 오른쪽으로 돌아서 1,2면의 석불 ⓒ 2007. 한국의산천
1983년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화전리에서 발견된 것으로 돌기둥 4면에 불상이 새겨져 있는 백제시대 유일의 사면불(四面佛)이다.
사면불은 일명 ‘사방불’이라고도 하는데, 동·서·남·북의 방위에 따라 사방 정토에 군림하는 신앙의 대상인 약사불, 아미타불, 석가불, 미륵불을 뜻한다.
남면에는 본존불로 생각되는 여래좌상이 있고, 나머지 면에는 여래입상이 각각 1구씩 새겨져 있다. 머리 부분은 많이 훼손된 채 서향과 북향만이 남아있고, 따로 끼울 수 있도록 되어있는 손은 모두 없어졌다.
4구의 불상은 모두 양 어깨에 옷을 걸치고 있으며 가슴부분에 띠매듭이 보인다. 옷주름이 매우 깊고 가슴아래에서 U자형으로 겹쳐 있다. 머리광배는 원형으로 불꽃무늬·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백제 특유의 양식이다.
▲ 정면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서 2면의 석불 ⓒ 2007. 한국의산천
▲ 정면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서 3면의 석불 ⓒ 2007. 한국의산천
▲ 정면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서 3,4 면의 석불 ⓒ 2007. 한국의산천
▲ 정면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서 4면의 석불 ⓒ 2007. 한국의산천
▲ 정면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서 4면과 다시 정면의 석불 ⓒ 2007. 한국의산천
명칭 예산화전리사면석불(禮山花田里四面石佛)
보물 제794호.지정일 1984.11.30
분류 유물/ 불교조각/ 석조/ 불상
수량1기
소재지 충남 예산군 봉산면 화전리 61
시대 백제시대
남면만 좌상이고 나머지는 입상인데, 사면의 높낮이가 각각 다르다. 손과 목을 따로 만들어 끼운 흔적이 있으며, 시무외 여원인을 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 참고: 시무외 여원인
불교에서 여래나 보살이 취하는 수인(手印)의 하나로서 부처가 중생에게 사랑을 베풀고 중생이 원하는 바를 달성하게 해준다는 덕을 표시하는 인상(印像)으로, 시여인(施與印), 시원인(施願印), 여인(與印) 등으로도 불린다.
손의 모습은 왼팔을 길게 아래로 늘어뜨리고 손가락을 펴서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때 마지막 두 손가락을 약간 구부린 불상이 많다. 오른손을 어깨높이로 올리고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는 시무외인과 반대되는 형상인데, 대개 오른손은 시무외인을, 왼손은 여원인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 수인은 선정인이나 항마촉지인과는 달리 석가모니가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 하던 인상이었는지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장소에서 어떤 의미로 취하는 것인지도 가려내기 어렵다. 다만 한국 삼국시대의 불상에서는 시무외인과 함께 불상의 종류에 관계없이 모두 취하고 있는 수인이며, 그래서 이 두 수인을 통인(通印)이라고도 한다.
▲ 불꽃모양의 광배가 살아 움직이는 듯 예술적이고 멋있다. ⓒ 2007. 한국의산천
우리나라 최초의 석조 사방불로서 서산 마애삼존불과 비교할 수 있어 백제미술사와 불교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작품이다.
이 석불(石佛)은 자연석의 네 면에 불상(佛像)을 조각한 것으로 백제사면불(百濟四面佛)로는 유일하다. 사면불이란 일명 사방불(四方佛)이라고도 하는데 동,서,남,북(東西南北)의 방위에 따라 사방정토(四方淨土)에 군림하는 신앙의 대상으로 약사불(藥師佛), 아미타불(阿彌陀佛), 석가불(釋迦佛), 미륵불(彌勒佛)을 말한다.
이 불상의 특징은 소발(素髮)인데 불두(佛頭)에 비해 육계(肉계)가 작고 광배(光背)에 조식(彫飾)된 불꽃무늬나 연꽃무늬는 백제 특유의 양식(樣式)을 나타내고 있다.
법의(法衣)는 통견(通肩)으로 옷주름이 매우 깊으며 가슴 아래의 옷주름은 U자형(字形)으로 겹쳐 있다. 발목 끝까지 내려온 옷자락은 고식(古式)인 Ω형(形)으로 되어 있다.
이 불상은 서산(瑞山)과 태안(泰安)의 마애불(磨崖佛)과 비교되는 우수한 작품(作品)으로 당시의 불교사(佛敎史)와 미술사(美術史) 연구(硏究)에 귀중한 자료(資料)가 된다.
땅 속에 묻혀있던 것을 1983년에 발굴(국립공주박물관)하여 보물로 지정·관리하고 있으며, 석불의 전체 높이는 310㎝, 최대폭은 140㎝이며 두께는 80㎝이다. [문화재 정보센타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