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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보탑사, 보물 백비 진천

by 한국의산천 2007. 1. 22.

탑속에 절이 있는 진천 보탑사와 보물 백비  

답사 [2007. 1. 21.   한국의산천  우관동]

 

답사코스

길상사 - 김유신 장군 생가 - 보탑사 - 만뢰산 (611.7m) -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촬영장 - 농다리  

 

 ▲ 엽돈재의 일출 ⓒ 2007.  한국의산천

경기 안성에서 진천으로 넘어가는 도중 엽돈재에서 만난 일출 풍경.         

 

 ▲ 엽돈재를 내려서서 진천으로 가는 도중 만나는 넓은 백곡 저수지 ⓒ 2007.  한국의산천         

 

 ▲ 보탑사 주변 안내도 ⓒ 2007.  한국의산천         

 

 ▲ 보탑사 입구에서  ⓒ 2007.  한국의산천         

 

보련산 자락 연곡리는 이름에서 풍기는 이미지 그대로 연꽃 계곡답다. 고려시대에는 큰 절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보탑사에 있는 백비가 옛 영화를 말해주는 듯 싶다. 

이곳은 원래 절터 였으나 폐사되고 다시 보탑사가 들어선 것이다.
백비는 보물 404호로 처음부터 비문이 없는 백비였는지,아니면 후대에 글씨가 닳아없어진 것인지는 알길이 없다.

 

보탑사는 건립된지 얼마 안되는 비구니 사찰이다. 이곳이 본격적인 유명세를 치루게 된 동기는 바로 우리시대 명인 신영훈님의 걸작 3층목탑 때문인듯 싶다. 이 목탑은 사람이 직접 올라갈 수 있는 형식이다 목탑 형식을 하고있는 법주사 팔상전은 겉에서만 다층 형식일 뿐 안은 통층이다. 그러나 이곳은 층층이 계단으로 올라갈 수 있게 설계되어있다. 

 

 ▲ 보탑사 전경  ⓒ 2007.  한국의산천         

 

탑속에 절이 있다.
충북 진천읍 연곡리에 있는 보탑사. 42m 3층목탑 속에 대웅전, 법보전, 미륵전이 들어 있다. 황룡사 9층탑이 몽골군에 의해 소실된 후 750여년만인 96년에 재현된 이 목탑 옆에 지난 1998년 10월 10일 지장전이 완공됐다. 

 

보탑사는 거대한 3층 목탑이 유명하다 목수 신영훈 선생이 삼국시대 목탑형식을 빌어 고스란히 재현한, 2000년대의 문화재다. 쇠못 하나 쓰지 않는 순수한 목탑으로 높이는 무려 42.71m로 웬만한 고층아파트 높이. 척 단위로는 탑신이 108척으로백팔번뇌를 상징한다고... 80m가 넘는 황룡사탑에는 못미치지만 옛사람들의 건축술을 재현한 현대의 기념비적 건물이다.

  

 ⓒ 2007.  한국의산천         

 

 ⓒ 2007.  한국의산천         

 

 ▲ 와불을 모신 숙조전 ⓒ 2007.  한국의산천         

 

 ▲ 숙조전의 꽃 문살 ⓒ 2007.  한국의산천     

 

씨날과 빗살로 짠 만나는 점에 꽃무늬뿐만 아니라 꽃나무를 통째로 새겨 문을 짠 것을 말한다.

 

참고 

마니산 정수사 대웅전 문살은보물 161호로 지정되어있는 아름다운 문살이다. 

정수사 대웅전 문살은 사방연속문양의 배열 형식이 아니라 판장에 화병과 꽃을 그려 투각한 것을 중심부에 붙여 놓았다. 이런것을 꽃나무살문이라고 한다.

씨날과 빗살로 짠 만나는 점에 꽃무늬뿐만 아니라 꽃나무를 통째로 새겨 문을 짠 것을 말한다. 정수사 대웅보전과 선암사 원통전 어칸 그리고 용문사 8모윤장대등에서 볼 수 있다. 연꽃이나 모란꽃들을 앞사귀, 줄기와 가지채로 길게 새겨 올린것으로 보다 실물적이고 자연스럽다. 더욱이 정수사 꽃문은 백자꽃병에 꽃꽂이 형태의 꾸밈으로 눈길을 끈다.     

 

 ▲ 숙조전의 꽃나무 문살 ⓒ 2007.  한국의산천         

 

 ▲ 3층 목탑 ⓒ 2007.  한국의산천         

 

3층 목탑


아파트 13층 높이의 목탑을 보며  "황룡사 9층탑은 얼마나 대단한 규모였겠느냐"면서 자긍심을 느낀다.

 

탑안 1층에 들어서면 999개의 백자탑을 모신 심주를 중심으로, 석가모니(남쪽), 약사여래불(동쪽), 아미타불(서쪽), 비로자나불(북쪽) 등 사방불이 있다. 불법이 사방으로 퍼지기를 기원하는 방식으로 탑에서만 가능한 양식이다. 2층에 올라가면 중앙에 8만 대장경을 보관한 윤장대와 한글법화경을 새긴 석경이 있고, 3층에서는 미래세계를 화평하게 할 미륵불에 예불을 드릴 수 있다. 

신영훈(문화재 전문위원)씨를 비롯한 문화재 전문가들이 건축한 3층목탑은 설계에만 2년이 걸렸다. 일본의 목탑은 사람이 못들어가는 구조이고, 1056년 만들어진 중국 산서성 불궁사 5층목탑은 올라갈 수는 있지만 8각탑이라 참고가 되질 않았던 것. 시공을 맡았던 김영일(해라시아 문화연구소 연구원)씨는 10년동안 모델을 찾아 헤매다가 경주 남산 마애탑을 보고 복원을 시작했다. 

 

 ▲ 3층 목탑 전경ⓒ 2007.  한국의산천      

 

보탑사 3층 목탑은 신라가 새로운 통일국가를 염원하여 황룡사 9층탑을 세웠듯이 남북통일의 간절한 염원을 담아지은 탑이다.

국내산 적송을 이용하고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며 현존하는 목탑중 유일하게 3층(높이 42.1m)까지 올라간 세계 최대의 목탑이다. 사실 내부에 대웅전, 법보전, 미륵전을 기능적으로 포함하고 있는데, 1층은 탑의 핵심인 금당이다. 금당에는 동서남북으로 사방에 부처님을 모셨으며 이탑의 중심이 되는 심주안에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셨고 둘레에는 999개의 간절한 발원이 담긴 백자 원탑(願塔)이 있다. 2층은 티벳불교에서 따온 윤장대가 있으며 4면의 벽에 한글법화경을 쑥돌에 새긴 석경이, 3층은 미륵3존불을 모신 미륵전으로 꾸며져 있다.    

 

 ▲ 만뢰산 오름길에 내려 본 보탑사 ⓒ 2007.  한국의산천          

 

 ▲ 3층 목탑 내부의 올라 가는 계단 ⓒ 2007.  한국의산천         

 

 ▲ 3층 목탑의 2층은 전시관처럼 꾸며져 있다.ⓒ 2007.  한국의산천         

 

 ▲ 목탑의 3층 ⓒ 2007.  한국의산천         

 

 ▲ 목탑의 2층에 있는 윤장대 ⓒ 2007.  한국의산천         

 

 ▲ 보물 404호 백비 ⓒ 2007.  한국의산천         

 

 

 ▲ 백비(보물 404호) ⓒ 2007.  한국의산천  

     

요사채 옆 비각에는 비석에 아무 글자도 새기지 않은 백비(白碑촵진천 연곡리 석비촵보물 404호)가 있다. 우리나라에 4, 5기 정도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백비는 무자비(無字碑)라고도 한다. 

 

전남 장성군 황룡면 금호리 비는 주인이 분명한 유일한 백비다. 조선시대 최고의 청백리 박수양의 비석인데 명종 임금이 비석을 내리면서 어명으로 글자를 새기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전남 함평군 신광면 계천리에도 백비가 있다.
 

 ⓒ 2007.  한국의산천         

    

연곡리 백비는 조형양식과 수법으로 보아 고려초에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말을 닮은 귀부의 머리는 전면과 좌우가 모두 깎여져 모습을 알 수 없지만 여의주를 문 용 아홉 마리가 뒤엉킨 이수는 사실적인 조각이 돋보이는 비석이다.

처음부터 글씨를 새기지 않았던 것으로 보는 설이 유력하다. 비석 귀부의 거북 등 표면이 박리현상으로 벗겨지고 있는데 한 꺼풀 벗겨진 곳에서도 표면과 같은 거북 등 무늬가 선명하게 드러나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 보물404호 백비 ⓒ 2007.  한국의산천 

 

비석에 아무런 글자도 씌어 있지 않아 관심을 끄는 백비. 고려 초기 것으로 추정되는 이 진천 연곡리 석비는 보물 404호.

비석에 글자를 새기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미완성설, 사후 제거설, 도교적 허무주의 배경설, 진실을 밝힐 수 없는 시대에 대한 저항설 등의 가설이 있지만 아직 정설은 없다.  

 

비석의 주요부분 명칭 

비신(碑身), 이수(螭首), 귀부(龜趺)

 

이수(螭首) : 용의 형체를 새겨 장식한 비석의 머릿돌. 이자는 본래 뿔이 없는 용 또는 교룡(蛟龍)을 가리키는 글자이다. 그 용어와 양식은 중국에서부터 사용한 것으로, 본래는 이기(彛器)·비액(碑額)·석주(石柱)·석계(石階)·인장(印章)·종(鐘)·정(鼎) 등의 표면과 머리 부분에 용의 형체를 조각하여 장식한 것을 말한다. 이 가운데 비액의 이수가 형체나 크기로 보아 가장 대표적인 것이어서 오늘날의 일반적인 개념이 되었다.

 

비신(碑身) : 추모자의 업적이나 또는 기념비의 내용을 적는 부분, 금석문이라 한다.

 

귀부(龜趺) : 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 삼국 시대부터 쓰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귀부 위에 비신을 세우고 비신 위에 두 마리 용으로 장식된 이수를 씌우는 것이 보통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용의 모습 외에 해태 모습을 한 것도 있고, 사실적인 거북 모양에서 점차 변형되어 장중한 것, 패기에 넘치는 것, 우아한 것 등 형태를 달리한 것이 많다. 태종무열왕릉비(太宗武烈王陵碑)의 귀부와 이수는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높이 평가된다. 

 

 ▲ 포항에서 이른 새벽에 출발 했다는 부부팀 ⓒ 2007.  한국의산천  

 

포항에서 이곳에 오기위해 새벽 일찍 출발 했다는 부부팀. 이곳을 둘러보고 목탑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부탁하기에 그들을 찍어주었다.

피로한 기색도 없이 행복한 모습이 얼굴에 가득했다.      

 

 ▲ 만뢰산 자락 작은 마을에 자리한 보탑사.ⓒ 2007.  한국의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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