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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하마비2

정조 이산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정조 못다한 이야기 [사진 2008.1.28.(월요일) ] 이 행렬을 호위한 인물은 병조판서 윤숙이었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히던날 정승들에게 세자를 구하라고 명한죄로 홍봉한에게 탄핵당해 해남으로 귀향길에 올랐던 한림 윤숙이었다.다시 사도세자를 구하려던 자의 호위를 받으며 안식처로 길을 떠나고 있다. (젊은 사관이었던 윤숙은 해남으로, 영조의 명에도 물러가지 않고 세자를 지키고 세손 정조를 업고 들어와 할아버지에게 죄를 빌게 했던 사관(한림) 임덕제-'나의 손은 사필(史筆)을 잡는 손이다. 내 손이 짤릴 지언정 나를 끌어낼수는 없다'고 외쳤다-는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부주(父主)여 살려주소서!' 했던 아버지와 '할바마마 아비를 살려주시옵소서!'라고 호소했던 세손이 왕이되어 함께 떠나는 길이었다. 각영.. 2022. 4. 13.
파산서원 (坡山書院) 파산서원 (坡山書院) 성수침 선생의 자호 를 딴 파산서원 (경기도 파주 파평면) 답사 2007년 5월 13일(일요일). 한국의산천 행주산성 - 중남미 문화원 - 최영장군묘 - 연산군시대 금표비 - 용미리 석불 - 윤관장군묘 - 자운서원 - 파산서원 - 파평윤씨 용연 - 화석정 - 반구정 ▲ 하마비에서 말에서 내려서 바라 본 파산서원 전경 ⓒ 2007 한국의산천 고종 2년(1685)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에 의하여 전국 650개중 47개서원만을 유치할 때에도 파산서원이 보전하게 될정도로 중요시되던 곳이다 ▲ 파산서원 이정표석 ⓒ 2007 한국의산천 조선시대 학자 성수침(成守琛)과 그의 아들 우계 성혼(成渾), 아우 성수종(成守琮) 및 백인걸(白仁傑)의 위패를 봉안하고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다. 조선시대 학자.. 2007. 5.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