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용주사4

정조의 못다 이룬 꿈 화성 정조의 못다 이룬 꿈 화성 세계문화유산 수원 화성(華城) ▲ 수원천 위에 지어진 화홍문의 야경 ⓒ 2010 한국의산천 불행과 불운의 학자 군주 정조 노론의 나라가 아닌 왕의 나라 백성의 나라를 꿈꾸었던 정조 정조의 죽음은 실로 조선의 죽음이었다. 정조의 개혁 실패는 조선의 개혁 실패였다. 그는 전환기에서 방향을 찾지 못하고 방황했다. 그의 방황은 조선의 방황이었다. 그의 죽음으로 조선의 방황은 멈추었다. 그것은 쇠락의 길이었고 國亡의 길이었다. 조선의 혼이었던 정조가 죽고 조선이 망하는데 걸린 시간은 정확히 100년이었다. ▲ 화성은 정조께서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옮기고 왕권을 강화할 의도로 축조한 성이다. 이곳 수원에는 정조의 숨결이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는 곳이다. 누가 떠나고 누가 남는가 위대한 .. 2010. 12. 15.
승무 조지훈 용주사 승무 조지훈 [2008· 6· 17 화요일· (날씨: 비 장마시작) 한국의산천] 정조 융건릉 & 회양나무...그리고 용주사의 승무 ▲ 경기 화성 용주사 ⓒ 2008 한국의산천 조지훈님은 1938년 용주사에서 영혼의 고뇌를 춤으로 승화시킨 승무를 참관하고 영감을 얻어 詩"승무"를 쓰게 되었다. 산에서 내려오며 숲이 우거진 도고산 동막골로 접어들며 조지훈님의 '승무'를 외우며 내려왔더니, 곁에서 같이 걷던 친구가 詩 전문을 올려 달라기에 이곳에 참고 자료와 함께 올립니다. ▲ 2005년 6월5일 용주사에서 촬영 ⓒ 2008 한국의산천 ▲ 2005년 6월5일 용주사에서 촬영 ⓒ 2008 한국의산천 ▲ 2005년 6월5일 용주사에서 촬영 ⓒ 2008 한국의산천 조지훈님은 1938년 용주사에서 영혼의 고뇌를 춤으.. 2008. 6. 17.
용주사 용주사 ▲ 용주사 입구의 표석 ⓒ 2007. 한국의산천 ▲ 용주사 ⓒ 2007. 한국의산천 신라 문성왕 16년 (854년)에 창건된 갈양사로써 청정하고 이름 높은 도량이었으나, 병자호란 때 소실된 후 폐사되었다가 조선시대 제22대 임금인 정조(正祖)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으로 옮기면서 사도세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절을 다시 일으켜 원찰로 삼았다. 28세의 젊은 나이에 부왕에 의해 뒤주에 갇힌 채 8일만에 숨을 거둔 사도세자의 영혼이 구천을 맴도는 것 같아 괴로워 하던 정조는 보경스님으로부터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설법을 듣게되고 이에 크게 감동, 부친의 넋을 위호하기 위해 절을 세울 것을 결심하면서 경기도 양주 배봉산에 있던 부친의 묘를 천하제일의 복지(福地)라 하는 이곳 화산으로 옮겨와 현릉원.. 2007. 4. 15.
용주사 둘러보기 용주사 용주사 하면 가곡 선구자의 노랫말이 떠오른다. 용주사 저녁종이 비암산에 울릴때~ ~ 그러나 화성의 용주사는 그 가곡과는 아무런 연관은 없고 신라 문성왕 16년 (854년)에 창건된 갈양사로써 청정하고 이름 높은 도량이었으나, 병자호란 때 소실된 후 폐사되었다가 조선시대 제22대 임금인 정조(.. 2005. 6.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