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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문화문학음악

신춘문예 당선 詩

by 한국의산천 2006. 1. 5.

※ 서울신문은 2006년 신춘문예 시 부문 최일호 씨의 '아쿠아리우스' 당선을 취소한다고 25일 밝혔다.
서울신문은 "이 작품은 한국수자원공사가 2004년 실시한 제15회 물사랑글짓기 공모 입상작인 이모씨의 '물병자리별'과 동일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울신문은 또 "최씨는 지역 시동인 후배인 이씨가 2년 전 품평회에서 돌렸던 자신의 작품을 몰래 가져다 응모한 것이라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으나 같은 작품이 이미 이씨의 이름으로 발표된 만큼 미발표작을 대상으로 하는 서울신문 신춘문예의 규정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덧붙였다.

 

2006년 주요 일간지 신춘문예 당선작 모음

 

 

2006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나무 맛있게 먹는 풀코스법/ 이윤설
 

비린 게 무지하게 먹고팠을 뿐이어요

슬펐거든요. 울면서 마른 나뭇잎 따 먹었죠, 전어튀김처럼 파삭 부서졌죠.

사실 나무를 통째 먹기엔 제 입 턱없이 조그마했지만요

앉은 자리에서 나무 한 그루 깨끗이 아작냈죠.

멀리 뻗은 연한 가지는 똑똑 어금니로 끊어 먹고

잎사귀에 몸 말고 잠든 매미 껍질도 이빨 새에 으깨어졌죠.

뿌리째 씹는 순서 앞에서

새알이 터졌나? 머리 위에서 새들이 빙빙 돌면서 짹짹거렸어요

한 입에 넣기에 좀 곤란했지만요

닭다리를 생각하면 돼요. 양손에 쥐고 좌-악 찢는 거죠.

뿌리라는 것들은 닭발같아서 뼈째 씹어야해요. 오도독 오도독 물렁뼈처럼

씹을 수록 맛이 나죠. 전 단지 살아있는 세계로 들어가고팠을 뿐이었어요.

나무 한 그루 다 먹을 줄, 미처 몰랐다구요.

당신은 떠났고 울면서 나무를 씹어 삼키었죠.

섬세한 잎맥만 남기고 갉작이는 애벌레처럼

바람을 햇빛을 흙의 습윤을 잘 발라 먹었어요. 나무의 살집은

아주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있었죠. 푸른 생선처럼 날 것의 비린 나무 냄새.

살아있는 활어의 저 노호하는 나무 비늘들.

두 손에 흠뻑 적신 나무즙으로 저는 여름내 우는 매미의 눈이 되었어요.

슬프면 비린 게 먹고 싶어져요,

아이 살처럼 몰캉한 나무 뜯어먹으러 저 숲으로 가요.

 

 
[2006 신춘문예 ] 시 당선작 - 심사평 
“활달한 상상력, 시어를 부리는 탁월한 능력”

 

언어를 통하여 삶을 투시하는 힘, 절제된 표현, 무엇보다 참신한 패기를 기대하며 심사에 임했다. 박민규의 ‘낙산’, 신미나의 ‘부레옥잠’, 한인숙의 ‘마이산’, 이윤설의 ‘나무 맛있게 먹는 풀코스법’, 남궁선의 ‘폭설’, 김종훈의 ‘국소 마취’는 상당한 시적 성취를 이룩하고 있는 작품들이었다. 그 중 박민규와 이윤설의 작품을 최종 심사 대상으로 올렸다.

박민규의 ‘낙산’은 시어를 다루는 솜씨와 객관적 서술력이 돋보였지만 신인의 패기보다는 모법답안이 주는 안정성이 넘치는 작품이었다. 이윤설의 ‘나무 맛있게 먹는 풀코스법’은 활달한 상상력과 살아있는 시어를 부리는 능력이 탁월했다. 섬세한 묘사로 주제를 구체적으로 서술해 감으로써 한편의 시로서 스스로를 지탱시키는 힘을 느끼게 했다.

 이 작품과 함께 보내온 다른 응모작들도 두루 수준을 이루고 있어 그동안의 습작의 흔적도 알 수 있었다. 부드럽고 미화된 언어보다 정확하고 정직한 언어가 감동으로 직결된다. 언어 사용자로서 최고의 축복을 누리는 한 시인의 탄생을 기다리는 분들께 기쁜 소식이 되기를 바라며, 오래오래 깊은 향기를 터뜨리는 시인으로 남기를 기원한다.


 

 

시인·문정희·황지우
 
[2006 신춘문예] 당선소감 시 당선작  - 당선 소감
“느린 우주의 걸음으로 당신을 다시 만났다”


꿈같고 꿈에서 운 아침같다

 


 

▲한때 당신과 나, 우리 둘이는 짝짝이 신발처럼 어색했지만 잘도 어울려 다녔다.

▲내가 가장 착할 때 당신은 떠났고 왜냐고 묻지 못했다.
▲조금씩 해와 달의 각도를 맞추듯 그렇게
▲느린 우주의 걸음으로 걸어와 당신을 다시 만났다.

참 예쁜 당신

▲당신이 나를 알아볼 줄 나는 알고 있었다.

▲이렇게 그냥 안아줄 줄 나는 알고 있었다. 아무 말도 묻지 않겠다. 이 별에 오길 잘했다.


 

 시가 시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신 시인들 - 감태준 이승하 선생님과 문창과선생님들, 강형철 선생님, 오정국 선배님, 차창룡 선배님 그리고 멀리서 마음의 손 잡아주시는 철학과 선생님들과 선후배들, 토지문화관의 봄에서 여름까지 뜨거운 예술가의 자세를 보여주셨던 고마운 선생님들, 나의 벗 기연. 그리고 엄마 아빠 가족들, 내가 그다지도 귀애하는 꽃과 새와 별의 지옥인 너에게. 시를 쓰며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문정희 황지우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윤설

1969년 경기도 이천 출생

명지대 철학과 졸업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수료

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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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 

 

 

 

개기월식 / 곽은영



  밤의 문이 열렸어요 이 세계를 견디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는 800kcal 가게 문을 열고 누가 왔어요 저녁을 먹다간 입가 훔치며 정육점 여자는 일어섭니다 반쯤 닫힌 문틈으로 둥근 밥상 가장자리가 보여요 오늘은 개기월식이 있겠습니다 어린 딸 리모콘을 눌러요 채널을 바꿔요

  여자는 손님에게 웃어보이지요 붉게 물든 장갑을 끼고 비닐장갑을 또 끼고 차가운 살덩어리 하나 척 베어서 저울에 올려요 200g 중력이 달랑 하늘에서는 쓱쓱 사라지는 하얀 달조각 여자는 능숙하게 고기를 썰어요

  엄마 나 쉬 마려 칭얼대는 딸 탁탁탁 도마에 칼을 부딪치며 여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꾸해요 마지막 한 조각까지 쓸어모아 검은 비닐에 담아 들려보내요 달랑 떠 있던 마지막 달 조각이 사라졌어요

  달이 밟고 가는 모든 길에 검은 비단을 깔고 바람은 휙휙 채찍질 구름마저 쫓아버렸어요 이제 무엇을 바치오리까 보셔요 은빛 가면 벗고 강림하신 핏빛 달님 여자는 장갑을 벗고 선지 한 그릇 뚝 떠내요 스테인레스 밥그릇 안에 오늘은 핏덩어리 달이 잠겨요

  36.5 365일
  달님의 체온은 몇 도인가요

  엄마 나 정말 쉬 마려 발 동동 구르는 딸 여자는 계집애 팔 잡고 한 볼기 때리고 바지를 까내리고 엄마 한 번 쳐다보고 제 오줌줄기 한 번 쳐다보고 바람이 보듬어가는 어린 것의 지린내 윤기나는 밤의 비단에 싸서 달님 앞에 내려놓아요 하얗고 새초롬한 아가씨 얼굴로 돌아오는 달

  동그란 밥상에 둘러앉아 여자와 아이가 다시 밥을 먹어요 리모콘을 눌러 채널을 돌려요 달은 개기월식 궤도를 완전히 벗어났어요 그녀 힐끔, 가게 문을 쳐다보아요

 

[2006 신춘문예] 시부문 심사평

 

 

예심을 통하여 본심에 합류한 시들은 산문성이 농후하였다. 시는 다른 장르의 특징을 시적인 것으로 포용하여 그 장르적 영토를 변용시켜 온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시 쓰기 방법은 시를 다른 장르, 산문에 복속시켜 버리게 되는 위험성 또한 내포하고 있다.

 

 우리는 본심 작품들 중에서 세 사람의 작품을 최종적으로 선정하여 집중적으로 논의하였다.

 이운성의 ‘황금나무 밑을 간다’ 외 4편의 시는 대상을 집요하게 관찰하는 시각, 그에 따른 해석력이 돋보였다. 그러나 시적인 표현보다는 대상을 설명적으로 묘사하거나 산문적 전개가 거슬렸다.

주영중의 ‘시조새’ 외 6편의 시는 응축된 이미지들의 전개로 하나의 국면을 조성하는 형상화 능력이 뛰어났다. 특히, 응모된 여타의 시들에서 읽을 수 없었던 낯설고 신선한 표상을 시적으로 구현해 내고 있다. 그러나 시적 언술이 전개되는 중에 이미지가 비약하거나 소홀히 처리되고만 시들이 지적되었다.


 곽은영의 ‘양철인형’ 외 5편의 시들은 치밀한 표현, 선명한 이미지, 그 이미지들을 능숙하게 서사적 전개 속에 배치하는 형상화 능력들이 눈에 띄었다.

아울러 응모된 작품들 모두가 완성도가 높고, 수준이 골랐다. 우리는 응모된 모든 시들 중에서 ‘개기월식’을 당선작으로 정하는 데 쉽게 합의하였다.

‘개기월식’은 정육점 여자, 살코기, 월식 중인 달과 아이의 요의와 배설이 중첩되거나 흩어지면서 먹고, 먹히며, 배설하는 풍경 속에 숨은, 생의 비의 하나를 그려내고 있다.

최승호 시인 김혜순 시인

(예심: 반칠환 권혁웅)

 

[2006 신춘문예] 시부문'개기일식' 당선소감

 

 

▲ 곽은영 

1975 광주 출생. 1997 전남대 교육학과 졸업. 2001 서울 예술대 문예 창작과 졸업.

 

 [2006 신춘문예] 시부문 '개기월식' 당선소감
 일곱 명의 왕자가 있었지요 마녀가 그들을 백조로 만들어버렸는데

 차가운 밤바람 불어요 생각들은 얇은 이불을 뒤집어쓴 채 웅크리고 돌아눕네요

 집집마다 꿈 한 자락 배달 나온 달이 가볍게 노크하는데 고양이가 꼬리에 한 가닥 감아말고 저 너머로 사뿐 사라지네요


 저 너머로 쫓겨난 왕자들에게는 어린 여동생이 있었어요 어린 공주는 쐐기풀로 실을 자았는데요

 묘지에서 자란 쐐기풀은 침묵의 푸른 옷이 되어 차곡차곡 어두운 바구니에 담깁니다

 빈 밤거리 거역할 수 없는 붉은 문장 같은 정지등이 가득해요

 규칙적으로 찾아오는 금지와 가능의 경계가 거북하네요

 

 마녀에게 씌웠던 모자만큼이나 큰 낙엽들 몇 장이 굴러와요

 어린 공주는 화형장으로 끌려갔지요 일곱 벌의 옷을 미처 완성하지 못했는데 요란한 머플러 소리를 내며 오토바이가 지나가요 덜컹이는 수레에 실려가는 공주를 보세요

 몇몇이 공주의 손에서 남은 쐐기풀을 앗아갔어요 대신 욕설과 침을 던져 주었죠


 12시 시곗바늘처럼 화형목은 서 있고 시간은 이제 자정을 지나려 합니다 어린 공주 푸른 옷 높이 던졌고 일곱 마리 백조는 날개소리로 그녀의 침묵을 받아들였어요

흰 깃털 목이 메이도록 사방에서 쏟아져 내리며 쓰는 이야기

딸들이 더 어리신 따님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한쪽 날개 그대로 간직한 왕자가 하늘을 나는 대신 날개팔로 공주를 안아주었어요

바람이 새로워요

신호가 바뀌었네요 고마운 이름을 휘파람처럼 불러요


곽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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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한국일보 시부문 당선작

 

 

거미집 / 김두안

그는 목수다 그가 먹줄을 튕기면 허공에 집이 생겨난다 그는 잠자리가 지나쳐 간 붉은 흔적들을 살핀다 가을 비린내를 코끝에 저울질 해본다 그는 간간히 부는 동남쪽 토막바람이 불안하다

그는 혹시 내릴 빗방울의 크기와 각도를 계산해놓는다 새털구름의 무게도 유심히 관찰한다 그가 허공을 걷기 시작한다 누군가 떠난 허름한 집을 걷어내고 있다 버려진 날개와 하루살이떼 돌돌 말아 던져버린다

그는 솔잎에 못을 박고 몇 가닥의 새 길을 놓는다 그는 가늘고 부드러운 발톱으로 허공에 밑그림을 그려넣는다 무늬 같은 집은 비바람에도 펄럭여야 한다 파닥거리는 가위질에도 질기게 버텨내야 한다 하루 끼니가 걸린 문제다

그는 신중히 가장자리부터 시계방향으로 길을 엮고 있다 앞발로 허공을 자르고 뒷발로 길 하나 튕겨 붙인다 끈적한 길들은 벌레의 떨림까지 중앙 로터리에 전달할 것이다 그가 완성된 집 한 채 흔들어본다 바람이 두부처럼 잘려 나가고 거미집이 숨을 쉰다  


입가에 물집처럼 달이 뜬다 / 김두안

해도 지기 전에 뜬다
나는 어둠이 보고 싶어
내 어두움도 보일 것 같아서
부두에 앉아 있는데
달이 활짝 뜬다
달빛은 심장을 욱신거리게 하고
희번득 희번득 부두에 달라붙고 있다
아 벌리다 찢어진 입가에 물집처럼
달빛은 진물로 번지고 있다
달은 어둠을 뻘밭에 번들번들 처바르고 있다
저 달은 환하고도
아찔한 내 안에 근심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초병에게 쫓겨가는
통제구역인 것 같아서
나는 캄캄한 나를
어떻게든 더 견뎌 보기로 한다


심사평
“삶과 존재의 미세한 결 정직하게 읊어내”

심사위원들이 골라 온 작품은 모두11편이었다.

응모된 전체 작품 수를 고려하면 뜻밖에도 너무 적은 양이었다. 그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무엇보다 한국일보 신춘문예의 시 부문 심사절차가 지닌 독특성이 고려되어야 할 듯하다. 즉 예심위원이 본심을 겸하는 만큼 아예 예심 단계에서부터 본심에 임하는 각오로 작품을 선별할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다. 어쨌든 11편을 두고 예심을 치러 아쉽지만 6편을 탈락시켰다.

이여명의 ‘돌을 쪼다’  정철웅의 ‘철거민’  이유훈의 ‘저수지에서 경전을 읽다’  조인호의 ‘알라딘과 코카콜라의 요정’  이연희의 ‘장독하나 묻어두고’  김두루의 ‘얼룩말’이 그 작품들이다.

본심에 오른 작품 가운데 박희진의 ‘햇쑥’은 인고의 계절을 딛고 선 초봄의 여린 햇살처럼 따스하고도 빛나는 서정성이 돋보였으나 작품을 구조적으로 맵시 있게 갈무리하는 솜씨가 다소 서툴러 보였고, 또 소품에 그치고 만 것이 아쉬움으로 지적되었다.

정지현의 ‘직선의 방정식의 일반형’은 곧고도 날렵한 음조를 지닌 의욕적인 목소리와 능란한 은유의 구사가 매력적이었지만, 아직은 저 수사가 소리의 의욕을 충분히 감당하지 못한 듯했다. 작품의 제목을 정하는 데에도 보다 오랜 고민과 세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조언을 드린다.

배호남의 ‘고래꿈’은 구조적으로 매우 안정된 작품이어서 오랜 습작과 훈련의 세월을 읽게 만들었다. 그 점은 함께 출품된 ‘사군자의 꿈’ 같은 시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단 한 편만을 뽑을 수밖에 없는 심사위원들의 처지에서는 그 결정적인 무엇인가가 부족해보였다.

당선작과 마지막까지 경합한 작품은 오선희의 ‘꽁치’로서, 구조적 완결성에 있어서 발군의 솜씨를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되었다. 실직 가장의 죽음과 구운 꽁치의 이미지를 절묘하게 결합하여 삶의 엄숙함과 핍진함을 형상화한 이 작품이 당선작이 되지 못한 데에는 그러므로 순전히 운명의 여신의 장난이 작용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실망하지 말고 계속 정진하시길 각별히 당부 드린다.

당선작인 김두안의 ‘거미집’은 어떠한 과장된 수사나 현란한 말재간도 사양한 채, 차라리 어눌할 정도로 느껴지는 작고도 여린 목소리로 이 삶과 존재의 미세한 결을 한 땀 한땀 정직하게 발음해내는 섬세한 내면 감각이 단연 돋보였다. 세상의 말들이 제 가치를 잃어가고 있는 시대에 시의 언어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다시금 일깨워주는 기회가 되었다.

함께 제출된 ‘입가에 물집처럼’도 저 우직할 정도의 정직성을 높게 사 아울러 당선작으로 뽑는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낙선자에게는 위로를 드린다.

심사위원 : 김기택, 황인숙, 김진수


당선소감

“좁고 판판한 들길이 절벽 같아”

 

 

 김두안 시인

1965년 전남 신안 임자도 출생 임자중, 목포 영흥고 졸. 

200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늦은 저녁 전화 한 통이 걸려오고 머리 속에 달 하나 뜬다. 뻘밭에 김 말뚝을 다 세우고 아버지와 나는 배를 밀어낸다 갯벌에 종아리를 박고 등으로 민다 섬 사이에 닻을 내린다 깍두기 국물에 밥을 말아먹고 낚시줄을 던진다 환한 수면이 잔잔히 밀려오기 시작한다 달 속에 수수깡찌가 보인다 낚싯대가 휘어진다 배가 출렁거리고 달빛이 끈길 것 같이 팽팽하다 아버지의 가시등이 휘어오른다 달이 뽑힌다.  팔뚝만한 농어가 꿈벅꿈벅 아가미를 벌리고 허공을 되새김질하고 있다. 

고향 섬 임자도를 떠나온 지 오래 되었습니다. 습관처럼 김포 들녘을 걷습니다. 별똥이 논둑으로 사라지고 군데군데 남아있는 눈이 은하수처럼 반짝입니다. 얼어붙은 논바닥에서 기러기 한 무리 소리없이 날아오르고 있습니다. 겨드랑이에 바람이 스밉니다. 

나는 좁고 판판한 들길이 절벽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절벽을 기어오르는 희미한 달그림자를 봅니다. 나는 어딘가에 내 그림자 하나 버리러 갑니다. 아버지와 눈빛도 없이 살아가는 어머니 얼굴이 보입니다. 

 

저에게 힘든 길을 안겨주신 심사위원 선생님, 그리고 한국일보에 깊은 감사 드립니다. 김포 지인들에게도 오래 고개 숙입니다. "사람의 삶, 그 사이에 있고파" 전남 신안군 임자면 임자도(荏子島) 섬 소년은 문둥이가 산다던 배미골 너머 바다와 나란히 뻗은 20리 산길을 달려 마방촌 큰 아버지댁에 심부름을 다니곤 했다. 늦봄이면 외진 해변마다 피어나던 찔레꽃무리, 그 그늘에 앉아 바라보던 바다를 그는 기억한다고 했다. 5학년 때 그의 어린 동생이 숨진다. 뭍의 병원에서 석 달을 버티다 식어버린 동생을 포대기에 싸 업고 배에서 내린 엄마를 따라 걷던 조금사리의 갯벌둑…, 하얀 간(흙의 소금기)에 반사되던 그 날의 노을과, 엄마의 병원 냄새를 그는 기억한다고 했다. 

20대의 그는 고향의 김 양식장과 염전을 등지고 상경해서는 공장 일을 했고, 운 좋게 장가를 들었고, 잠시 낙향했다가 다시 올라와 경기 김포에 눌러앉는다. “섬이 싫어 찾아온 도시지만 이 곳도 섬과 다를 바 없더군요. 김포는 그래도 바다와 들판이 있어 좋았어요.” 빈 들녘의 허전함과 고요가 좋다는그는 그 날 이래 지금껏, 한 해 최다 여섯 켤레의 구두를 작살낸 보험맨으로 살아왔다. 5년여 전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것도 그 박탈감과 허전함을 견디기 위해서라고 했다. “김포시가 연 ‘시민강좌’에서 함민복 시인을 만났어요. 그가 시인이라는 것도 그 때 처음 알았죠.” 배워서 된 시인이 아니라, 겪어서 된 시인인 그는 그래서 유년의 바다와 염전, 김포 공단을 떠돌 때에도 이미 시인이었을 것이다. “유년의 추억과 가족, 자연, 길에서 만난 사람들…, 그들의 삶을 잇는 시간과 공간 속의 길처럼 늘 그 사이에 있고 싶습니다.” 그런 그의 당선 소식에, 한 번 미치면 끝장을 보려 드는 그의 성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의 아내는, “갑갑하다”고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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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시

 

 

아쿠아리우스 / 최호일

 

나는 물 한 그릇 속에서 태어났다

은하가 지나가는 길목에 정한수 떠있는 밤

물병자리의 가장 목마른 별 하나가

잠깐 망설이다 반짝 뛰어 들었다

물은 수시로 하늘과 내통한다는 사실을

편지를 쓸 줄 모르는 어머니는 알았던 것이다

달마다 피워 올리던 꽃을 앙 다물고

그이는 양수 속에서 나를 키웠다

그 기억 때문에 목마른 사랑이 자주 찾아 왔다

지금도 물 한 그릇을 보면 비우고 싶고

물병 같이 긴 목을 보면 매달리고 싶고

웅덩이가 있으면 달려가 고이고 싶다

어디 없을까 목마른 별 빛

물의 심장이 두근거리며 멎을 때까지

아주 물병이 되어 누군가를 적셔주고 싶다

아니,트로이의 미소년 가니메데에게

눈물 섞인 술 한잔 얻어 마시고

취한 만큼 내 안의 고요를 엎지르고 싶다

한밤중의 갈증에 외로움을 더듬거려 냉장고 문을 열면,그리웠다는 듯

반짝 켜지는 물병자리 별 하나

※물병자리 별. 그리스 신화에는 제우스에게 납치 당해 신들에게 술을 따르는 트로이의 왕자 가니메데의 이야기가 있다.

당선 소감

"옆집 아줌마에게 말걸듯--- 그렇게 詩 써내려 갈 것" 

 

십년 전쯤, 생업을 등지고 시에 빠져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무성 영화처럼 돌아간다. 세상은 온통 잿빛이었고 나는 살짝 맛이 가 있었다. 과도한 의욕이, 편견과 오만이, 그리고 화려한 궁핍이 내 유일한 의상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보이거나 천재였다. 나보다 주변 사람들이 먼저 지쳐있었다.

어림도 없을 줄 알았던 당선소식을 듣고는, 아이들은 상금의 용도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고, 아내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를 고민하다가 방에 가서 운다. 나는 실없는 장난 전화를 받은 것처럼 담담했다. 가소롭다. 나도, 아내도, 아이들도…. 누군가 말했다. 시인은 돈을 멀리해야 하고, 살이 쪄서도 안 되며, 오로지 고독과 이슬만 먹고 살아야 한다는 심한(?)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시인의 양식은 과연 고독과 이슬일까? 하지만 나는 어느덧 돈의 단맛을 아주 잘 알고 있을 정도로 영악해져 있다. 그러나 등이 따뜻해져 갈수록 마음은 여전히 춥거나 허기를 느낀다. 그리하여 시여!시인이여!절벽까지 나를 안내해 다오. 출구가 도대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작심을 하고 쓴 시는 모조리 밀려나고, 옆집 아줌마에게 얘기하듯 쓴 시가 당선이 되어 적지 않게 놀랐다. 힘을 뺐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는 앞집 아줌마에게 얘기하듯 시를 써봐야겠다. 아무튼, 내가 어쩌자고 이곳으로 다시 기어들어 왔는지 통 모르겠다. 아버지에게 약주나 한잔 부어 드리러 산에 가야겠다. 격려해 준 어머니와 형제들, 그리고 홍일표 시인, 날시 동인, 글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님들, 지금은 눈에 덮여 있을 추동공원의 벤치에게 참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최호일 약력

1958 충남 한산 출생.잡지 프리랜서. 날시 동인

 

심사평

"우물처럼 웅숭깊은 신화적 시선"

 

 예심을 거쳐 온 적지 않은 작품들을 숙독하면서, 올해의 응모작들이 시적 다양성이나 인식의 틀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해 선자(選者)들은 안타까웠다. 말을 지나치게 낭비하고 있으면서도 사로잡힌 시가 안보이니!

뿌리 없는 상상력과 모호한 주제들, 시답지 않은 시시덕거림의 중언부언들, 리듬을 사상(捨象)시킨 산문의 줄글체 등이 어지럽게 부조되어 왔다. 스스로 감동하지 못하는 시상(詩想)을 펼쳐 독자에게 다가선들 그 반응은 불문가지이리라. 마치 알맹이가 빠져나가버린 말의 빈 포대자루를 한참이나 들고 서있었다는 느낌이다.

그 와중에서도 임수련씨와 최호일씨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라 할까.

임수련씨의 작품에서 오래 묵힌 신뢰 같은 것을 맛본다.‘악어왕국’에서 보여주듯이 진술과 묘사를 교직시키는 적확한 비유가 삶에 스며드는 풍자와 제대로 어울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발상의 동력을 내쳐 지탱해내는 인내를 잃었을 때,‘달리는 자전거의 실루엣’처럼 처음의 긴장이 어느새 허물어져버리는 시편으로 나타난다.

최호일씨의 경우, 응모 작품 전체에서 균질감이 살펴진다. 그만큼 습작의 강도가 굳셌음을 읽어내게 한다. 상상에 젖어든 시어의 활달한 운용도 그의 시편들을 오롯이 한 편씩의 완결된 서정으로 구축하는데 일조했으리라.

그 중에서도 ‘아쿠아리우스’는 태생의 별자리를 짚어 삶의 근원적인 갈증을 풀어내는 신화적 시선이 우물처럼 웅숭깊게 다가온다. 이 작품이 당선작으로 뽑힌 것은 직선도 곡선도 아닌 시의 얼개를 어느 정도 아우를 줄 아는 솜씨가 평가된 것이다. 당선을 축하하며, 더욱 정진하길 당부한다

정현종 김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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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문화일보 시부문 당선작  

 

 

 

내 친구 야간 대리운전사 / 최명란

 

 

늦은 밤
야간 대리운전사 내 친구가 손님 전화 오기를 기다리는 모습은
꼭 솟대에 앉은 새 같다
날아가고 싶은데 날지 못하고 담배를 피우며 서성대다가 휴대폰이 울리면
푸드덕 날개를 펼치고 솟대를 떠나 밤의 거리로 재빨리 사라진다
그러나 다음날이면 또 언제 날아와 앉았는지 솟대 위에 앉아 물끄러미 나를 쳐다본다
그의 날개는 많이 꺾여 있다
솟대의 긴 장대를 꽉 움켜쥐고 있던 두 다리도 이미 힘을 잃었다
새벽 3시에 손님을 데려다주고 택시비가 아까워 하염없이 걷다 보면 영동대교
그대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참은 적도 있다고 담배에 불을 붙인다
어제는 밤늦게까지 문을 닫지 않은 정육점 앞을 지나다가 마치 자기가
붉은 형광등 불빛에 알몸이 드러난 고깃덩어리 같았다고
새벽거리를 헤매며 쓰레기봉투를 찢는 밤고양이 같았다고
남의 운전대를 잡고 물 위를 달리는 소금쟁이 같았다고 길게 연기를 내뿜는다
아니야, 넌 우리 마을에 있던 솟대의 새야
나는 속으로 소리쳤다
솟대 끝에 앉은 우리 마을의 나무새는 언제나 노을이 지면
마을을 한 바퀴 휘돌고 장대 끝에 앉아 물소리를 내고 바람소리를 내었다
친구여, 이제는 한강을 유유히 가로지르는 물오리의 길을
물과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물새의 길을 함께 가자
깊은 밤
대리운전을 부탁하는 휴대폰이 급하게 울리면
푸드덕 날개를 펼치고 솟대를 떠나 밤의 거리로 사라지는
야간 대리운전사 내 친구
오늘밤에도 서울의 솟대 끝에 앉아 붉은 달을 바라본다
잎을 다 떨군 나뭇가지에 매달려 달빛은 반짝인다

 

 

시적 형상화 탁월--- 상상력 빼어나

 

당선작 ‘내 친구 야간 대리운전사’ 외 네 편을 응모한 최명란씨의 작품들은 그 어느 시를 당선작으로 내놓아도 좋을 만큼 빼어난 것들이다. 탁월한 시적 형상화 능력과 적확한 언어 구사, 기발하면서도 활달한 상상력, 절제된 담백한 어조는 이 신인의 만만치 않은 문학적 내공을 짐작케 한다. 작품들은 주로 고된 삶을 다루고 있다. 노숙자, 보도블록 까는 청년, 꼬막 캐는 여자, 야간 대리운전사 같은 버거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냉정하게 관찰하고 묘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최명란씨의 시들은 감정의 표출을 자제하면서 어떤 안쓰러운 사실들의 풍경 앞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대상과의 거리를 요구하는 그 풍경은 소외된 인생들의 어두운 풍경이기도 하지만, 심미적 안목과 감수성으로 걸러진 언어들에 의해 언어예술로 승화된 풍경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당선작이 되지는 못했지만 이승규씨의 ‘대추나무 이력서’ 외 2편도 마지막까지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이승규씨의 시들은 맛깔스러운 언어들로 빚어낸 정감있는 이미지, 연기론적인 상상력이 돋보였다. 그러나 시적 긴장을 늦추는 산문적인 요소들이 흠이었다.

 고원효씨의 작품 중에서는 ‘미더덕의 맛’과 ‘코가 만들어지기까지’ 두 편이 관심을 끌었다. 말의 우연성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시적 전개 방식은 재미있고 독특하다. 그러나 그것이 시적 울림을 이끌어내기에는 미흡한 점이 있었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그리고 응모자 모두에게 정진과 향상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심사위원 황동규·최승호

 

 

당선소감

 

2006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시 당선 소감

 

" 솟대 끝 나무새처럼 날고 싶다.

 

 내가 새로 아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대부분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이었고, 내가 안다고 믿고 있는 것들도 정녕 모르고 있는 것이었으며, 아래로 흐르고 있다는 것 역시 위로 흐르는 것인지도 몰랐다. 소통되지 않음에 절망하고, 절망으로 넘어질 때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일어서야 했다.

그런 내게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는 이는 솟대 끝에 앉은 나무새였다.

 

 함께 날고 싶었다. 날고 싶은데 날개가 없었다. 그 막막한 상황을 뒤집는 박수소리는 바로 당선 소식이었다.

 

 이제 단단한 등에 날개를 달았다. 내 딸 진이가 가는 손가락으로 얼굴을 묻고 까르르 웃는다. 나도 함께 웃는다. 웃음이 이내 눈물로 바뀐다. 이래서 우리 삶은 때때로 감동적인 것을! 아, 우리에게 이야기가 아닌 것이 어디 있으며 노래가 아닌 것이 어디 있으랴.

 

 솟대 끝에 앉은 나무새 한 마리 푸드덕 날개를 펼치고 날아간다. 물과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물새의 길을 나도 함께 가야지. 베란다 화분의 풍로초도 그 사이 또 한 송이 꽃을 피웠다

 


최명란
1963년 진주 출생
세종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2005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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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북어 /  기명숙


살점이 뭉텅 빠진 들쑥날쑥한 몸 하나 허공에 걸려있다

 

  쾡한 눈알을 바람이 핥고 지나가자 파르르 눈가의 잔주름이 흔들린다 헤쳐가야 할 길을 또렷이 바라볼수록 굳은살처럼 딱딱한 몸은 야위어간다 그 해 누군가 억센 손으로 그의 내장을 파내고 그 속에 단단한 뼈대를 세웠다 그의 몸 바깥에서 느닷없이 아카시아꽃이 펑펑 지고, 군화자국이 지나간 자리마다 비늘 같이 꽃잎이 소복하게 쌓였다 바람 불어 허공이 저 혼자 우는 밤, 그는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뻣뻣해졌다

 

스물다섯 해, 맷집 하나로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사는 북어가 있다 상한 지느러미 곧추세워 풍향계처럼 헤엄치려 하는데 아무도 그에게 길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우리 큰오빠……
떠나야 한다, 떠나야 한다 입술을 달싹이는데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날아다니는 꽁치 / 기명숙

 

접시 위에 잘 구워진 채 퍼덕거린다 물때가 채 가시지 않은 맑은 눈을 또랑또랑 뜨고 꽁치는 지금 잠시 숨을 고르는 중이다 꽁치가 다시 날아가지 못하도록 젓가락들이 날렵하게 접시 주변을 들락거린다 그러다 보니 꽁치의 살과 살 사이 흰 머리카락 같은 가시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참 성가시게 달라붙어 있다 용케도 힘을 나란히 모으면서 촘촘히 박음질한 무명 천 조각처럼 가시는 끄떡없다 이 가시는 바다에서 꽁치의 몸을 찌르던 바늘이었다 바다를 벗어나고 싶은 꽁치가 나는 누구인가, 하고 물을 때마다 가시는 단단해졌다 가시 때문에 아파서 푸른 물결을 뚫어야 했다 가시에 찔리지 않으려고 도망치다 보니 꽁치는 길쭉해졌다 그러다가 꽁치의 몸에 청회색 바다가 대가리부터 꼬리까지 길게 들어와 박히게 되었다 젓가락들이 바다를 뜯어먹게 놔두고

 

지금 꽁치는 다시 날아가려고 기우뚱 몸을 한번 뒤집고 있다
반대쪽 살이 통통하다

 

심사평 - 섬세한 관찰력이 돋보인 수작

 

 

 예심을 거친 17 사람의 시가 우리에게 넘겨졌다. 한 사람이 대략 3-5 편씩, 더러는 10여 편이나 20 편 가까이 응모한 이도 있었다. 한 사람이 열 편도 넘게 응모하는 것은 응모하는 이에게 아무래도 손해가 될 것 같았다. 그 중에 좋지 않은 게 섞여서 그 사람의 다른 시들도 도맷금으로 넘어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람 단위가 아니라 넘겨받은 시 한 편 한 편을 독립시켜 읽어보고자 했다. 오늘이 동짓날, 일 년 중 낮이 가장 짧은 날이라고는 해도, 오후 2시부터 심사를 시작했으니 시간은 우리에게 녹녹한 편이었다.

 

 예선을 거친 작품들이어선지 시들은 그러나 모두 녹녹치 않았다. 선 밖으로 일단 밀어놓는 작품들이 쌓일 때마다, 하얀 실에 검정물이 드는 것을 보고 한없이 울었더라는 墨子 생각이 나곤 했다. 노란 색 파란 색 빨간 색 그 어느 색깔로도 다시는 물들일 수 없는 그런 절망적인 검정색이 아니기를 빌면서 우리는 자꾸만 선 밖으로 작품을 밀어냈다. 한 편만 뽑아야 한다는 건 얼마나 야속한 선택인가.

「얼룩동사리」, 「어머니에게 ‘잊혀진다’는 말은」, 「날아다니는 꽁치」,「북어」등 마지막 4 편이 그렇게 우리의 선 안에 남았다. 선 밖으로 작품을 밀어낼 때마다 우리는 작품의 흠결들을 주로 화제로 삼곤 했는데 이제부터는 작품의 좋은 데를 서로 들춰보였다. 그러면서 우리는 한 곳으로 한 곳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얼룩동사리」는 정확한 관찰과 참담한 부성애를 집요하게 부각시키는 전개 솜씨가 돋보였지만, 마지막 부분의 자살한 사람과 얼룩동사리와의 대비가 시적 긴장을 결정적으로 상쇄시킴으로써 시 전체가 사람이 미물만도 못한 거 아니냐 하는 일반론에 함몰되고 만 것 같다.

 

「어머니에게 ‘잊혀진다’는 말은」이라는 작품에 대해서 우리는 가장 길게 의견을 나누었다. ‘잊혀지는 것’과 ‘잘 삭아서 숙성되는 것’을 일원적으로 파악하는 시적 착상이 무엇보다 돋보이는 작품이었지만 땜질 흔적이 드러나 보이는 구조상의 문제점과 숙성이 덜 된 시어들이 끝내 우리들의 맘에 걸렸다.

 

「날아다니는 꽁치」와 「북어」는 둘 다 기명숙씨의 작품이었다. 데생이 정확한 화가가 좋은 그림을 오래 그릴 수 있다는 말을 새삼 떠올리게 할 만큼 두 작품 다 섬세한 관찰력이 우선 돋보였다. 「날아가는 꽁치」의 시적 긴장이 유지되는 상상 또한 그런 섬세함 때문에 더 신선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북어」는 북어라는 媒材를 통하여 시대의 그늘과 그 아픔이 우리들의 삶 속에 어떻게 얼룩져 있는가를 가시화하고 있어서 특히 눈길을 끈다.

 

 선 밖에 빚더미처럼 쌓인 작품들이 내내 맘에 걸렸지만 우리는 이견 없이 이 두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고 신문사를 나섰다. 일 년 중 낮이 가장 짧은 날 뽑았지만, 가장 좋은 작품이 가장 긴 밤과 큰 축복을 함께 누렸으면 좋겠다. 팥죽도 못 얻어먹은 동짓날 짧은 해가 무슨 미련이 남아 있는 듯 녹다 만 눈길 위에 머뭇머뭇 기울고 있었다. (이운룡. 정 양)

 

 

당선 소감

 

"미숙한 출발 치열하게 정진할 터"

 

 

  터널 속을 통과할 때 잠시 겪는 적막감이 줄곧 나를 괴롭혔다. 발길에 채이는 것은 온통 고개숙인 것 투성이고 문득 내가 서있는 곳이 어딘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럴 때마다 일기장 귀퉁이에다 주절거리기도 하고 수신인이 없는 엽서에 한없이 깊고 슬픈 내 사랑을 꾹꾹 눌러 썼다. 삶의 비의가 날카롭게 나를 스쳐가고 문학을 향한 그리움이 세월의 톱니바퀴 속에서 자잘하게 부서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두리뭉실하게 살아버리자, 하며 나를 달래고 있을 때, 기적과 같은 당선소식이 내게로 왔다.

 

 과문한 문장, 부끄럽고 송구스러울 뿐인데 시인으로서 명찰을 달아주신 전북일보와 두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우석대 문창과 안도현 교수님을 비롯한 여러 교수님들을 만난 건 내게 행운이었다. 그분들의 존재가 너무 커서 혹 뒤뚱거리다 그림자라도 밟을까 늘 조심스러웠다. 우석대 문창과 꼬맹이들아! 정말 고맙다. 문학캠프 담임선생님, 윤석정 선생님, 두 분의 열정이 무지하고 소심한 내게 불을 지폈습니다. 그 고마움을 오랫동안 잊지 못 할 것 같고, 무엇보다 나를 믿고 지켜봐 준 사랑하는 남편과 내 아이들, 사랑하는 아버지, <북어>의 모델이 된 오빠, 멋진 기행숙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어쩌면 하늘나라에서 시인의 모습으로 다시 살고 계실 어머니! 당신이 내 몸에 남겨놓은 풍류객의 피가 결국 무대 위로 나를 세우는군요. 친구 황미숙, 그 외에 나를 아껴주는 많은 친구들과도 이 기쁨을 함께 하고 싶다.

 

 무턱대고 달아오르는 문학에 대한 열정만으로 시작한, 미숙한 출발이지만 앞으로 정진하겠습니다. 치.열.하.게.

 

약력

전남 목포 출생
한양대학교 졸업
우석대학교 문예창작과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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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가작)  

 

 

 

여행, 스무살의 열차 / 이병철

 

너는 차창 위로 그림을 그리다
새벽보다 축축한 잠에 빠졌다
그림자 같이 어둡게 기운 어깨 아래
네 손은 얇은 책장처럼 떨렸고
나는 첫 장을 넘기듯 조심스레
작은 네 손에 뜨거운 지문을 새겼다

 

밤바람 달리는 녹슨 철로는
별빛 스러지는 안개의 통로이자
누군가 밟고 지나간 질척한 눈길
열차는 흐릿한 눈을 뜨고
쓸쓸한 어둠을 향해 주행을 재촉했다

 

무서운 꿈이 가슴을 짓누르는 밤
너는 엷은 숨을 내쉬는 어린아이처럼
내 어깨에 피곤한 머리를 기대고 잠들었다
열차가 기억의 간이역을 지나자
하늘의 뒷면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눈을 뜬 아침은 죽음 같은 잠을 깨부숴
어둔 너의 그림 위에 밝은 물감을 덧입혔다

 

열차가 멈춰 서자 우리는
아지랑이 같은 입김을 일으켜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갈색 언덕을 향해 달려갔다
우리의 숨결을 잠재울 계절이 오기 전
벌써 내일의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신춘문예] 시부문 심사평

 

  동양전통은 말에 대해서 가혹하다. 그것은 말의 불완전함을 단정하고 있다. 동양에서의 말의 사건은 이미 종결처리된 사건이다. 그래서 노자는 “말하여질 수 있는 도는 도가 아니”라고 했다. 불가에서는 아예 말 자체를 버려버린다. 정말 냉정하고 과격한 철학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는 상대적인 것만 표현할 뿐 절대적 진리를 담을 수 없다’는 노자의 사상은 도교적 미의식뿐 아니라 동양의 미의식을 대변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공자는 “말 할 수 없다면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얘기하고 있다. 우리는 심사하는 과정에서 노자의 미의식과 공자의 미의식 사이에서 고민했다. 말해지지 않음을 극복하는 사유의 깊이와, 말해야 하는 인식의 철저함이 아쉬웠다. 그것은 응모된 작품들이 모두 이러한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메시지가 강한 작품은 사유의 깊이에서 오는 시어의 독특함이 부족했고 시를 잘 만들어내고 있는 작품들은 인식의 철저함에서 오는 성찰이 부족했다. 사유가 생각의 논리적 전개라면 철저한 인식은 사유를 깊고 절실하게 만드는 힘이다. 그런 점에서 박창호씨의 `표류'는 끝까지 논란이 되었던 작품이다. 그러나 시를 만들기에 급급해 내용이 형식을 얻지 못하여 표류하고 있는 게 흠으로 지적되었다. 그 반면에 정경희씨의 작품들은 사유와 인식의 깊이에 있어서 이미 기성시인이었다. 그러나 페이소스 가득한 스냅사진이란 혐의에서 우리는 이 시인을 더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이병철씨의 `여행, 스무살의 열차'는 기성의 어떤 유행에도 물들지 않았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작품을 주목했다. 상황에 대한 묘사와 통제가 적절히 이루어져 개인적인 삶의 어느 한때를 보편성 있게 설득하는데 성공하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다듬어지지 않은 표현들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어 크게 아쉬웠다. 시에는 숨김이 없어야 한다. `생각에 삿됨이 없다’는 말은 시는 솔직해야 한다는 말이고 그 솔직함이란 지금의 자신까지도 부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 부정의 불온성이야말로 시를 시대의 가장 예민한 촉수로 만드는 근거이다. 우리는 그 근거를 더 기다리기로 했다.


 <심사위원  / 함성호·서준섭> 

 

출처: 해당 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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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한국의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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