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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소금창고

by 한국의산천 2005. 10. 23.

 

 

ⓒ 2005 OhmyNews 2005-10-23 

소금창고 그리고 세월, 그것은 바람

비릿한 바다 내음조차 사라진 소래염전 소금창고
텍스트만보기   우관동(koreasan) 기자   
태양과 바람의 합작품 소금

소금은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음식이자, 인체에 생리적으로 없어서는 안 되는 광물에서 만들어 낸 식염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월급을 타는 사람, 샐러리맨(salary man)의 샐러리(salary) 어원은 라틴어의 소금(salt)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 시대에는 소금으로 월급에 가름하는 양을 주었다고 한다. 소금의 중요성의 알게 해주는 단어이다.

▲ '품질향상 이룩하여 우리소득 높여보자.' 반공구호를 연상케 하는 빛바랜 표어가 소금창고 출입문마다 붙어있다. 예나 지금이나 고품질의 물건이 가치를 높인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염부들이 떠난 드넓은 폐염전의 무너져 내리는 소금창고는 때론 음산하기까지 하다.
ⓒ2005 우관동
학교를 졸업하는 식장에서 교장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사회에 나가서 빛과 소금이 되십시오."

청운의 꿈을 가지고 학업을 마치면 정의를 수호하며 사회에서 봉사의 일익을 담당하고픈 꿈은 직장생활을 통하여 그리고 결혼을 하면서 스스로 자신을 겨누며 통제하던 날이 선 칼날은 서서히 무디어 진다. "빛과 소금"이 되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중년의 세월을 가르고 있었다.

동물에게 소금은 생리적으로 필요 불가결한 것이다. 소금은 체내, 특히 체액에 존재하며, 삼투압의 유지라는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혈액 속에는 0.9%의 염분이 함유되어 있다고….

▲ 잡초 속에 폐허. 소금창고 지붕 위의 낮달이 부끄러운 듯 내려보고 있다.
ⓒ2005 우관동
인천 소래 염전은 약 70년 전만 해도 갯벌이었으나 1930년대 일본인이 중국인 노동자를 고용하여 개발하기 시작하여, 일제 때부터 1996년까지 천일염을 생산하던 국내 최대의 염전이었다.

지금은 공업용인지 식염인지 구분도 모호한 중국산 수입소금으로 인하여 우리의 재래식 염전은 제 할일을 잊어버리고, 소금창고는 그저 바람의 통로일 뿐이다.

▲ 지금은 남동구 쪽의 염전 일부가 생태공원으로 조성되어 가족 동반 나들이 장소로, 자전거타기, 조깅, 웨딩 촬영장소로 변화되어 또 다른 모습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05 우관동
까까머리 학창시절 친구들과 짧은 대나무 낚싯대와 카메라 점에서 빌린, 필름 24장짜리를 넣으면 48장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를 들고 뽀얀 먼지 나는 굽이굽이 고갯길을 달려 소래포구에서 망둥이 낚시하고, 꼬마기차를 타고 현재 안산으로 변모한 고잔 역까지도 가곤 했다.

  멋진 사진을 찍어보겠다고 작가의 꿈을 꾸며 갯벌에 비스듬히 서있는 어선을 촬영하던 시절이 아마도 35년 전 쯤의 추억이다.

▲ 염전에 바닷물을 대던 갯강은 아직도 무심히 흐르고 있다.
ⓒ2005 우관동
▲ 소금창고는 무거운 소금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서 벽체에 약간의 경사를 주고 만들어진다. 소금기를 머금어서인지 창고 벽체 나무는 단단하였으나, 바닷가의 바람은 그를 그냥 두지 않았다.
ⓒ2005 우관동
▲ 소금창고는 가까이도, 멀지도 않은 일정하게 적당한 간격으로 세워져 있다. 우리 인간 사이에도 필요한, 가까이도 아니고 멀지도 않은 적당한 간격을 가르쳐 주고 있다. 고대의 연금술사처럼, 바닷물을 가두어 햇볕에 말리고 바람에 날리며 하얀 보석을 만들던 못이 이제는 들판의 하릴없는 바람의 놀이터가 되고 말았다.
ⓒ2005 우관동
▲ 펜 잡는 법을 잊어버리지는 않았는지... 먼 후일 화석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곱게 다져진 염전 바닥에 흔적을 남겼다.
ⓒ2005 우관동
▲ 타일이 깔린 염전 바닥. 소금을 만들 때 개펄 흙이 섞이면 소금의 색깔이 하얗지 않기 때문에 바닥에 건축자재인 타일을 깔아서 좋은 소금을 생산한다. 타일을 깔고 생산한 소금은 결정이 더 굵고 빛깔도 좋아 가격을 더 쳐준다.
ⓒ2005 우관동
▲ 바람이 만들던 소금. 그러나 지금, 아무곳에도 소금은 없다. 바람만이 하릴없이 이리 불고 저리로 불어 갈 뿐.
ⓒ2005 우관동

나는 기억한다
바람과 뜨거운 여름햇살 아래서 태어나던 하얀 보석을

나는 보았다.
소금 창고 안에 가득 쌓여서 눈부시게 수정처럼 빛나던 소금을….

▲ 소래포구 철교
ⓒ2005 우관동
인천 소래포구는 싱싱한 수산물이 가득한 재래어항으로서 수도권에서는 봄이면 싱싱한 게와 김장철이면 젓갈 판매지로 유명한 곳이다.

오래 전에는 소래포구를 가로지르던 작은 꼬마기차(협궤열차)가 있어서 운치가 있었지만 교통수단의 발달로 운행 58년만인 지난 95년 12월 31일 은퇴를 하고 지금은 그 협괘열차가 다니던 철교를 보수하고 개량하여 월곳에서 소래로 건너다닐 수 있게 인도교로 사용하고 있다.

먼 바다에서 좁은 갯강을 이루며 그 물길 끝자락에 소래포구가 위치하기 때문에 시원한 바다 경치는 기대할 수 없지만 고기잡이 작은 어선을 볼 수 있는 관광 명소이며 지금도 주말이면 가족,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소래 철교위로 붉게 물든 노을을 보며 시 한편을 떠올렸다.


소금
- 류시화 -

소금이
바다의 상처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금이
바다의 아픔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상의 모든 식탁 위에서
흰 눈처럼
소금이 떨어져 내릴 때
그것이 바다의 눈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눈물이 있어
이 세상 모든 것이
맛을 낸다는 것을.


 

▶소래 가는 길

1) 서울이나 일산에서 외곽 순환도로를 타고 진행하다가 장수 나들목에서 나간 다음 다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월곶IC로 나와 소래 대교를 건너면 바로 소래포구에 닿게 된다.

2) 제2경인고속도로 남동IC에서 나와서 남동공단로를 지나 논현동에서 소래포구로 갈 수 있다.

인천 남동구 문화공보실: 032-453-2103

해양생태공원:032-453-2962.

▶주변 둘러볼 곳: 오이도, 시화방조제, 대부도, 제부도, 영흥도.
우관동 기자의 홈페이지: http://www.koreasan.com
2005-10-23 18:25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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