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야영 특집] 중고 텐트와 침낭, 발포매트 2장...자객 같은 냉기를 막아주었다
신준범 입력 2024.01.12 07:55
사진(제공) : 주민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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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시 수동면 비금계곡 기점 원점회귀 8km 1박 2일 야영
수묵화 같은 아침 풍경을 넋을 놓고 바라본다. 순한 산등성이와 운해가 꿈결 같은 풍경을 만들었다. 독바위에서 본 767m봉.
‘돌아이인가?’하는 표정이었다. “10만 원으로 겨울 텐트, 침낭, 매트리스, 배낭을 구하고 있다”고 하자 등산 장비점 사장들은 하나 같이 ‘정신 나간 녀석인가?’하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럴 만했다. 혹독한 겨울산 능선에서 10만 원으로 장비를 구해서 백패킹을 한다니, 미치지 않고서야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자살 행위 같은 짓이다.
미친 것 같아 보이는 도전도, 안전하게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백패킹 환경이 장비 과잉이자, 자기 과시의 경연장이 되었다. 무모한 도전이 아닌, 최저가 가성비로 안전한 겨울 백패킹이 가능한지 실행해 옮겼다.
전날 저녁까지 중고장비를 구하러 다녔기에, 피로감이 약간 남아 있었다.
축령산·철마산 사이의 수동계곡으로 들어서자, 산중山中이었다. 첩첩까지는 아니지만, 산이 주인임을 험상궂은 형님처럼 늘어선 주변 분위기로 알 수 있었다.
호흡에서 물기가 묻어났다. 건조하고 사무적이던 공기가 달달하니 차갑다.
주금산 2코스의 상징물이라 할 수 있는 능선의 아름드리 소나무.
투명한 물이 매끈한 암반을 따라 흐르는 비금계곡을 지난다.
몽골문화촌 주차장이 텅 비었다. 백패킹 명소라 몇 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마주치는 이 없이 오를 줄은 몰랐다.
주민욱 사진기자와 1박2일간 마실 물을 나누고, 비화식 발열 도시락을 나누고, 산행 채비를 한다.
주금산 이정표가 방향을 가리킨다. 주민욱 사진기자가 “주금산이라 해서 초주검이 되어 오지는 않겠지”라고 던진 말이 복선이 될 줄은 몰랐다.
컨테이너에 현수막을 내건 계곡매점, 어르신이 인기척에 우리를 쳐다본다.
온 종일 지나간 사람이 있었을까. 팔아드리고 싶지만, 이틀치 짐을 꽉 채워 배낭을 꾸렸기에 인사만 드리고 비금계곡을 따른다.
산마루민박을 지나자 익숙한 듯 새로운 풍경. 이 계절에 찾은 건 처음이다.
지난여름 피서객으로 북적였을 암반 계곡은 잠에 빠져 있다. 인기척 없이 앙상한 가지와 수북한 낙엽, 곁을 흐르는 투명한 물줄기. 잠자던 산이 예상치 못한 손님의 방문에 더벅머리 북북 긁으며, 눈을 찡그리며 고개를 내어 바라본다.
옛날 선비들이 거문고를 숨겼다고 하여 이름 지어진 비금계곡秘琴溪谷. 깊이 들어갈수록 고개를 끄덕인다.
미인 같은 매끈한 피부의 바위와 찰랑이며 흐르는 투명한 물길. 골이 크지 않지만 작지 않으며, 얕지 않은데 깊지 않고, 대신 숲은 깊다.
여름 한나절 머물며 몸과 마음의 피로를 물에 흘려보내고 싶었을 선비의 속내를 이해할 것 같다.
무거운 거문고는 계곡에 숨겨두었다가 올 때마다 켜려는 심산이었을 게다.
우아하면서도 격이 있는 거문고 음색 대신, 골골골 귀여운 소리를 내는 계곡이 시골 강아지처럼 꼬리 흔들며 뛰어나온다.
해가 지기 직전에 닿은 767m봉. 노을과 바람이 섞여 드라마틱한 분위기가 펼쳐졌다.
767m봉에서 790m봉으로 이어진 짧은 바윗길. 시간이 걸릴 뿐 어렵지 않다.
헉, 광기에 가까운 칼바람이
산이 천천히 다가온다. 빨리 능선에 올라 텐트 치고 싶은데, 곧은 잎갈나무숲으로 시선을 가라앉힌다.
아무도 없는 낙엽송 사이에서 사슴 한 마리가 고개를 내밀어 쳐다보고 있을 것 같은 미묘한 침묵의 숲. 휴대폰에서는 ‘주파수 검색 중입니다.
긴급전화만 가능합니다’라는 확인 메시지. 세상과의 단절이 불안하지 않았다.
전자파의 숲을 벗어나 자연 이불을 덮은 것 같은 이상한 통쾌함.
갈색 바늘이 쫙 깔렸다. 연극이 끝난 무대처럼, 화려한 빛깔의 단풍잎이 지고 난 후의 숲은 차분하다.
물에 떠가는 낙엽송 비늘, 비금은 아직 가을을 놓아주지 못한 듯 추억에 잠겨 있다.
갈림길에서 2코스를 따른다. 주능선으로 곧장 오르는 길을 2코스, 동릉을 따라 오르는 길을 1코스라고 이곳 등산안내판과 이정표에 표시되어 있다.
배낭이 신경 쓰인다. 힙벨트가 빈약해 하중 분산 능력이 약하고, 어깨끈을 어떻게 조절해도 불편하다.
과거 한북정맥·금북정맥 취재산행 할 땐 30kg씩 메고 다녔던 적도 있지만, 지금 생각하면 용감했던 게 아니라 무식했다.
몸 상하지 않게, 관절 무리가지 않게 스틱에 최대한 힘을 싣고 걷는다.
등산 말고도 즐거움은 많지만, 백발이 되어도 산행이라는 한 권의 자연을 몸으로 읽어내는 오감 독서를 놓고 싶지 않다.
독바위봉의 계단 같은 사다리. 독바위는 주금산의 백미로, 사다리를 올라서면 황금비율의 경치를 볼 수 있다.
자상한 산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고도를 올리면 힘들까봐 지그재그로 완급 조절한다.
낙엽이 깊지만 산길이 선명해 어렵지 않다. 능선이 다가오자 돌로 쌓은 벽이 드러난다.
산성 흔적인지, 산사태 방지를 위해 근래에 쌓은 옹벽인지 알 수 없다. 산에 세운 인간의 흔적은 10년만 지나도 수 백 년 된 것 마냥 폭삭 늙는다.
천마지맥이다. 하늘을 나는 말을 탄 듯 주능선에 서자, 바람이 사정없이 몰아세운다.
냉기가 서려 있어 뺨이 금방 얼얼하다. 광기에 가까운 바람, 밤이 쉽지 않을 것 같다.
간식으로 열량을 높이고, 배낭에서 재킷을 꺼내 껴입고 능선 종주에 나선다.
느릿느릿 여유 부리며 올라온 걸음이 날쌔게 변한다. 적당히 땀을 내어 추위와 붙어볼 요량이다.
주금산은 발음을 오해하면 ‘죽음산, 주검산’처럼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본래 이름이 가진 의미는 부정적인 것과 거리가 멀다. ‘쇠 불릴 주鑄’에 ‘비단 금錦’자를 쓴다.
단풍이 들었을 때 산 아래에서 보면, 산세가 비단이 펄럭이는 듯해 유래한다.
쇠를 불리는 재주로 비단을 녹여 만든 색감이 화려한 산이라는 멋진 뜻을 품고 있다.
중고 가격 4만 원에 구입한 중국산 텐트는 의외로 안락했다. 바람에 강한 형태라 플라이가 펄럭이는 소음을 거의 듣지 못했다.
수 백만 원 드론, 어디로 사라졌나?
기념사진 필수 코스로 꼽히는 아름드리 소나무는 예전보다 화려한 맛이 줄었다. 가지치기를 해서인지 예전만큼 거대한 느낌이 없다.
꾸준히 고도를 높이자 구두쇠처럼 인색하던 경치가 한 번에 끝난다.
주금산의 백미인 767m봉 헬기장. 세상의 꼭대기에 올라선 듯 파노라마 풍경이 회오리치며 돌풍처럼 감겨온다. 멍에 같은 배낭을 털썩 내려놓자 영혼이 자유로워지는 느낌이다.
독바위는 여전히 불룩한 배를 내밀고 장독대 모양으로 포천을 바라보고 있다.
동쪽으로 첩첩산중 가평 땅이 산국의 시작을 알리고, 남쪽으로 한북정맥에서 갈라져 나온 왕조의 조카뻘 천마지맥이 명가의 위세를 드러내고 있다. 시야가 맑았다면 북한산을 가늠했을 텐데, 구름이 먼 산을 지웠다.
인터넷 중고 거래로 4만 원에 구입한 텐트를 친다. 가격에 비해 상태가 좋아, 전 주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냉기를 막아 줄 그라운드시트와 펙은 아예 별도로 새 제품을 넣어주었다.
발포 매트리스 2개를 펴고, 침낭을 펼치자 잠자리가 그럴싸하다. 11만5,000원에 마련한 겨울 백패킹 장비라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푸근해 보인다.
추락한 드론을 찾으러 급히 배낭을 꾸려 나선다.
독바위로 향한다. 고정로프를 잡고 짧은 암릉구간을 지나 독바위 사다리 앞에 서자 깜깜하다.
헤드랜턴을 켜고 조심스레 사다리를 올라서자 노을은 사라지고 읍내의 불빛이 반딧불이마냥 반짝인다.
767m봉 캠프로 돌아가 전투식량으로 배를 채운다. 소박한 맛이지만 허기가 반찬이라 한 봉지 깨끗하게 뚝딱 비운다.
밤이 깊을수록 야경도 화려함을 더한다. 북쪽 포천과 양주 옥정동 불빛이 반짝이고, 남쪽으로 진접 일대가 불야성을 이룬다.
야영 터로 인기 있는 곳이지만, 오늘은 우리 독차지다. 남자 둘뿐인 탓에 말소리보다는 바람소리가 더 크다.
저녁 9시쯤, 각자 텐트로 들어가 이른 잠을 청한다. 취재 산행 날까지 장비를 구하지 못할까봐 동분서주했더니, 금방 눈이 감겼다.
플라이 아래로 바람이 숭숭 들것만 같았던 텐트는 생각보다 아늑하고, 좁지 않다.
중국산 거위털을 3,000g이나 넣은 무게 3.5kg 침낭은 옛날 시골집 이불 같다. 필파워는 떨어지지만 수북한 무게로 몸을 감싸줘, 따뜻하다.
숙면을 취할 수 있었던 잠자리. 더블월 텐트에 발포 매트리스 2개를 깔았다. 중국산 구스다운 3,000g 침낭은 3.5kg으로 무겁지만 따뜻했다.
“이럴 수가 있나!”
대강 그런 말이었던 것 같다. 주민욱 사진기자가 해돋이를 멋있게 찍으려 띄운 드론이 오작동으로 엉뚱한 곳에 추락했다.
독바위 너머 비탈진 사면에 추락한 것. 등산로 없는 비탈의 위험성은 알고 있지만, 드론을 찾으려 사진기자가 등산화 끈을 단단히 묶고 보온옷을 겹쳐 입는다. 눈꺼풀만 떼고 물과 간식, 옷가지만 챙겨 따라나선다.
얼마나 지났을까. 추락 위치 부근에 닿았으나 지형이 위태롭다.
로프 없이 내려서기 어려운 바위가 곳곳에 있어 몇 발짝 떼기가 쉽지 않다. 1시간 넘게 주변을 뒤졌으나 드론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주민욱 기자의 얼굴 표정이 단호해, 감히 “포기하고 돌아가자”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두고 온 야영장비와 카메라가 걱정되어 결국 포기하고 돌아가기로 한다.
독바위 등산로에 닿았으나 주민욱 기자는 오지 않는다. 더 찾아볼 요량인 게다. 홀로 돌아와 텐트 주변에 둔 삼각대와 장비를 정리한다. 1시간쯤 지나자, 그가 함박웃음 지으며 나타났다.
프로펠러와 다른 몇 군데가 부러졌지만, 새로 장만하는 것보다는 수리가 훨씬 저렴하다며 안도한다. 등산로가 없는 가파른 곳을 누빈 탓에, 이미 점심시간을 넘겼다.
이물질을 털어내고 하산을 준비한다. 1.8kg으로 비교적 가벼운 편이다.
중고 거래를 통해 11만5,000원에 장만한 겨울 야영 장비. 인터넷 카페와 앱을 통해 마련했다. 시간을 두고 구한다면 더 좋은 장비를 더 저렴하게 구입하는 것도 가능하다.
장비를 정리해 1코스로 하산한다.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고 빠르게 능선을 내려선다.
주능선에서 1km 왔을 뿐인데, 큰 산을 넘어온 듯 몸과 마음이 기진맥진이다.
낙엽에 묻혀 희미해진 산길을 암호해독하듯 신중히 내려서자 비금계곡이다.
멀리서 여성 한 명이 백패킹 배낭을 메고 올라온다. 모처럼 만나는 사람, 그것도 야영하러 온 백패커가 반가워 인사를 건넨다. “야영하고 이제 내려가세요?”라고 의아하다는 듯 묻는다.
대체로 아침에 철수해 늦어도 점심쯤에는 하산하는 걸 감안하면, 늦은 시간이다. “네 잃어버린 걸 찾느라 그리 되었어요”라고 답하자,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 잃어버린 걸 찾은 걸까. 몸은 노곤한데, 마음은 평온한 알갱이로 꽉 찬 기분이다.
값싼 중고 장비로 하룻밤 주금산 호텔 꼭대기 층에서 편안히 쉬었다. 초저가 장비인 탓에 막 쓸수 있고, 산에만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독바위봉 꼭대기의 바위 전망터. 주금산 전체를 통틀어 가장 조망의 즐거움이 큰 곳이다. 멀리 천마지맥의 맹주 천마산이 드러난다.
산행길잡이
상행 4km, 하행 4km의 쉬운 1박 2일 원점회귀 코스다. 수도권 백패커들에게 일종의 공식처럼 통용되는 인기 있는 야영 명소. 몽골문화촌은 주차장이 무료이고 화장실이 있어 산행 기점으로 편리하다.
몽골문화촌에서 이정표를 따라 오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산마루민박 마당을 관통해 산길이 이어진다. 주택 마당이 나오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건물 옆을 지나쳐 오르면 산길이 이어진다.
비금계곡 갈림길에서 1~2코스 중 어디를 택해도 난이도는 비슷하다. 보통 2코스로 많이 오른다. 갈림길에는 이정표가 있어 길찾기는 어렵지 않다.
헬기장에서 팔각정 지나 200m 오르면 790m봉이고 여기서 서쪽 갈림길로 가면 독바위봉이다.
계단 같은 사다리가 있어 조심하면 초보자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독바위에서 본 헬기장 풍경이 기념사진 명소다. 독바위 위에는 1~2인용 텐트 한 동 칠 공간이 있다.
790m봉에서 250m 능선 따라 직진하면 주금산 정상이다. 야영 가능한 평지가 있으나 나무로 둘러싸여 조망은 없다.
790m봉에서 동릉으로 하산 시 670m봉을 넘어 내려선 후 안부에서 비금계곡으로 내려선다.
비금계곡 내려서는 길이 낙엽이 깊어 희미하므로 주의해야 하지만, 계곡만 따라 내려서면 1-2코스 갈림길에 닿는다.
더 짧은 산행을 원할 경우, 불기고개에서 능선 따라 2km를 오르면 767m봉에 닿는다.
비금계곡은 수량이 적지 않으므로 계곡 상류에서 휴대용 정수기로 물을 떠가는 것도 무게를 줄이는 방편이다.
교통
경춘선 마석역에서 33, 330-1, 330-2번 버스를 타면 몽골문화촌에 닿는다. 40분 정도 걸린다. 청량리역에서 마석역까지 경춘선 전철로 40분 걸린다.
맛집(지역번호 031)
몽골문화촌 맞은편 징기스칸옛고향(592-8801)은 몽골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색다른 맛집이다.
양고기수육(5만 원), 양갈비구이(2만3,000원), 양족탕(1만5,000원), 양볶음덮밥(2만 원), 칸호떡(8,000원) 등이 있다.
옛날밥상(592-9963)은 쌈밥전문점. 우렁된장쌈밥(1만 원), 고등어우렁강된장쌈밥(1만2,000원)이 먹을 만하다. 수동반점(594-3454)은 무난하게 먹기 좋은 중국음식점이며 짜장(6,000원), 굴짬뽕(1만 원), 볶음밥(8,000원), 미니탕수육(1만 원)이 가볍게 먹기 좋다. 식당 3곳 모두 주차가 편리하다.
월간산 1월호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월간산 신준범 기자
주금산 산행>>> https://koreasan.tistory.com/15605852
지족불욕(知足不辱)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지지불태(知止不殆)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가이장구(可以長久) 오래도록 편안할 것이다. - 노자 도덕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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