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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백영옥의 말과 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by 한국의산천 2021. 7. 13.

[백영옥의 말과 글] [144]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백영옥 소설가
입력 2020.04.11 03:14

 

백영옥 소설가

며칠 전 사온 사과가 짓무른 것을 봤다. 서로 맞닿아 있던 부분이 특히 심했다. 적당히 떨어뜨려 놓았으면 생기지 않을 일이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이 한창인 때라 생각이 깊어졌다.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근접공간학(Proxemics)에서 인간관계의 공간을 4가지로 분류한다. 

친밀한 공간, 개인적 공간, 사회적 공간, 공적인 공간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공간'은 '거리'로 읽어도 무방하다. 

가령 친밀한 거리는 46㎝ 이내로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다. 연인이나 가족 이외에 허락 없이 누군가 그 영역 안으로 들어오면 본능적 거부감이 드는 거리다. 

 

개인적 거리는 46~120㎝ 이내로 팔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로 평소 호감을 가진 지인들과의 관계다. 

 

사회적 거리는 120~360㎝ 정도의 거리로 일적인 관계로 만나는 관계를 뜻하는데, 정부가 시행하는 사회적 거리 두기 2m가 여기에 속한다. 

공적인 거리는 강연이나 행사 등 360㎝ 이상의 거리로 이성적 영역이다.

문득 조금만 거리를 두었으면 더 좋았을 사람과 너무 거리를 두어 멀어졌던 사람들 모두가 떠올랐다. 어느 정도의 거리가 적당한 걸까. 거리 조절의 실패는 관계의 실패로 이어질 때가 많다. 

 

동화 '고슴도치의 소원'에는 가까워지면 아프고 멀어지면 얼어 죽는 고슴도치의 딜레마를 이야기하며 이 문제를 "외롭지만 혼자이고 싶고, 혼자이고 싶지만 외로운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표현했다.

유채꽃이 한창인 제주에서 상춘객이 몰릴까 두려워 마을 사람들이 꽃밭을 갈아엎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바람이 많이 불던 제주의 돌담을 걸으며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거친 섬 바람에도 돌담이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돌과 돌 사이의 틈새에 있다고 했다. 

틈과 틈 사이, 그 빈 공간 때문에 바람이 빠져나가 돌담이 강한 바람에도 버틸 수 있었다고 말이다. 

 

바이러스로 지구촌이 아비규환이다. 아직은 아름다운 사회적 거리가 필요한 시간이다. 2020년 봄날은 그렇게 간다.
#백영옥의 말과 글

[백영옥의 말과 글] [205] ‘사이’에 대하여
백영옥 소설가
입력 2021.06.18 23:40

 

BMC 생태학 사진전 보존생태학과 생물디양성 연구 부문 수상작. 꼭대기 가지들이 서로 거리를 둔 수관기피 현상을 보여준다./BMC

깊은 산속에서 하늘을 향해 사진을 찍으면 기묘한 경계로 이루어진 나뭇잎 사이로 하늘이 찍힌다. 흥미로운 건 숲속의 소나무, 녹나무 같은 나무들이 자라면서 꼭대기 부분이 상대에게 닿지 않는 현상인데 이를 수관 기피라고 한다. 

 

수령이 비슷한 나무들은 자라날 때 옆 나무의 영역으로 침범하지 않는다. 이른바 나무들 사이의 거리 두기인 셈이다. 식물학자들은 수관 기피를 공간을 겹치지 않게 확보해, 뿌리 끝까지 햇빛을 받아 동반 성장하기 위한 식물들의 생존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타인과 적당히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문제는 적당함의 기준이 과연 어느 정도의 거리나 온도를 말하느냐는 것이다. 나무들의 수관 기피 현상은 그런 의미에서 인간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림태주는 ‘관계의 물리학’에서 “좋아하는 사이는 거리가 적당해서 서로를 볼 수 있지만, 싫어하는 사이는 거리가 없어져서 서로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사이가 있어야 모든 사랑이 성립”하고 “사이를 잃으면 사랑은 사라진다”. 즉 “사랑은 사이를 두고 감정을 소유하는 것이지 존재를 소유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코모레비’라는 일본어가 있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라는 뜻인데, 잎들 사이로 흩어지게 바람이 만든 햇살은 과연 생각만으로도 아름답다. 예민한 사람들은 이미 알아차렸겠지만 이 짧은 칼럼에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는 ‘사이’다.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의 ‘사이’와 ‘사이’의 틈새에서 살아간다. 인간이라는 단어도 한자로 사람 ‘인’과 사이 ‘간’을 쓴다. 

 

좋은 관계를 ‘사이좋다’고 표현하는 건 또 어떤가. 좋은 사이란 뜨겁게 가까운 거리도, 차갑게 먼 거리도 아니다. 그것은 서로가 36.5도의 따뜻함으로 존재할 수 있는 거리를 말한다. 

 

우리는 그렇게 무수한 사이에 겨우 존재하는 것이다. 겨울과 봄 사이, 밤과 아침 사이, 아이와 어른 사이, 이해와 오해 사이 그리고 당신과 나 사이, 그 무수한 사이 속에서.
#백영옥의 말과 글 #읽어주는 칼럼

 

지족불욕(知足不辱)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지지불태(知止不殆)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가이장구(可以長久) 오래도록 편안할 것이다.  - 노자 도덕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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