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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낀 나무들의 성지 태안 천리포수목원 여행

by 한국의산천 2021. 7. 4.

후박나무·닛사나무 아래 숨어볼까… 뜨거운 햇빛 피해 울창한 정원으로
[아무튼, 주말] 바다를 낀 나무들의 聖地
태안 천리포수목원 여행 백수진 기자 입력 2021.07.03 03:00

 

천리포수목원의 여름 연못엔 수련이 한창이다. 1만6939분류군의 식물을 보유한 이 수목원은 2000년 국제수목학회 선정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에 꼽히기도 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해 이스라엘에선 코로나 블루를 극복하기 위해 이색 캠페인이 열렸다. 가까운 공원이나 숲으로 나가 두 팔 벌려 나무를 껴안는 ‘나무 포옹’ 캠페인이었다. 반신반의하던 이들도 공원으로 나가 나무를 안고서 잠시나마 행복과 위로를 느꼈다고 한다.

 

올여름 휴가엔 뜨겁게 북적이는 관광지 대신 한적한 나무들의 성지(聖地)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ASMR 영상을 틀어놓은듯, 가만히 서서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에만 귀 기울여도 명상이 되고 힐링이 되는 곳, 바로 천리포 수목원이다.

 

천리포수목원은 바다와 섬을 품고 있어 산책길 따라 서해안 풍광을 함께 즐길 수 있다.


◇나무가 행복한 수목원

 

서울에서 차로 2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충남 태안의 천리포수목원. 천리포 해변과 접해 있는 수목원에 들어서자마자 파도 소리가 밀려왔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자 주변 온도가 2~3도는 낮아진 듯했다. 국내 최초의 사립 수목원인 이곳은 1945년 미군 장교로 한국 땅을 밟았다가 귀화한 민병갈(칼 페리스 밀러·1921~2002) 박사가 세웠다.

 

1만6939분류군의 식물을 보유한 희귀 식물의 보고로 2000년 아시아 수목원 최초로 국제수목학회 선정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인증받았다. 40여년간 연구 목적 외에는 출입할 수 없었던 비개방 수목원은 2009년에야 7개 구역 중 1개 구역만을 일반에 공개했다.

 

염분 가득한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곰솔. 전정을 최소화해 가지가 옆으로도 길게 뻗어 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뜨거운 여름 햇빛을 피해 울창한 정원으로 들어섰다. 서해안 해변을 따라 만들어진 수목원 가장자리 산책길을 먼저 걸었다. 덱 중간중간에 뚫린 구멍 사이로 나무들이 솟아 있다. “사람이 행복한 수목원이 아니라 나무가 행복한 수목원을 만들겠다”는 철학에 따라 길 한가운데 놓인 나무를 베지 않고 그대로 놔뒀다.

 

500m 앞으로 보이는 바다 위 낭새섬 역시 수목원 소유의 섬. 하루에 두 번 물이 빠지면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 물이 빠졌을 때 걸어 들어갔다가 물이 차버려 구조돼 나오기도 한다니 물때 시간을 꼭 확인해야 한다.

 

수목원 가운데 큰 연못과 작은 연못은 붉은빛 수련으로 가득하다. 연못가 쉼터인 ‘관영대’는 관람객에게 인기 있는 포토존이다.

물 아래까지 잔가지를 축 늘어뜨린 ‘닛사’ 나무가 연못에 비쳐 신비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닛사 나무가 폭 감싼 듯한 이곳은 밖에선 잘 들여다보이지 않아 연인이 사랑을 속삭이는 곳으로도 불린다.

 

천리포수목원 관영대. 닛사나무가 연못에 비쳐 신비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다시 걷다 보면 수목원에서 가장 오래된 1호 나무인 후박나무를 만난다. 울릉도에서 후박나무의 달콤한 진액과 열매로 ‘후박엿’을 만들었는데 발음을 혼동하며 ‘호박엿’으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1970년 민병갈 원장이 전남 완도군에서 가져온 1년생 어린 묘목이 아름드리나무로 자랐다. 김용식 천리포수목원장은 “아파트 조경하듯 큰 나무를 옮겨 심는 수목원도 있는데, 우리 수목원은 척박한 토양에서 어린 묘목부터 심기 시작해 울창한 숲을 일궜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했다.

 

식물마다 붙은 이름표는 나무의 생애를 짐작할 수 있는 열쇠다. 일련번호가 ’1970-0221′이라면 1970년에 221번째로 들어온 나무라는 뜻. 김 원장은 “모든 나무에 연도와 순번을 표시하는 수목원은 흔치 않다. 식물 하나하나의 정확한 이름을 알려주고 성장을 기록하는 것이 수목원의 또 다른 목표”라고 했다.

 

죽은 나무껍질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다. 하늘 위로 높이 솟은 나무들이 모여 있는 우드랜드에는 고사목 파편들이 뿌려져 있다. 자박자박 밟으면 향긋한 나무 냄새가 올라와 깊은 숲 속에 들어온 듯하다.

 

수목원 반 바퀴를 돌다 보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카페가 나온다. 시원한 목련차를 한 잔 시키고 노루오줌원 앞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노루오줌은 뿌리를 캐면 오줌 냄새가 난다고 해서 붙은 이름과 달리 솜사탕처럼 고운 색깔과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마침 어린이집에서 나들이를 나온 아이들이 올망졸망 모여 노루오줌을 구경했다. 그 모습이 한 폭의 수채화 같지만, 정작 아이들은 노루오줌보단 올챙이에게 정신이 팔렸다. 선생님이 올챙이에게 푹 빠진 아이들 손을 잡아끌며 말한다. “자, 올챙이한테 인사해. 개구리가 되어 다시 만나자!”

5~7월에 만개하는 노루오줌. 노루오줌원 옆 카페 '안녕, 나무야'에서 쉬어갈 수 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개구리가 풍덩 물에 빠지는 소리, 지저귀는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천리포수목원을 즐기는 방법. 철새와 텃새 200여종이 날아올 정도로 다양한 생태종이 산다.

 

얼마 전엔 청정 구역에만 산다는 천연기념물인 수달이 나타나 수목원 내에서 화제가 됐다. 민병갈 원장은 수목원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많은 동물 중에서도 “다시 태어나면 개구리로 태어나겠다”고 했을 정도로 개구리를 좋아했다. 수목원 연못가에 놓인 그의 흉상 옆에서도 개구리 조각상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달 21일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수목원 에코힐링센터 1층에 민병갈식물도서관도 개관했다. 식물 전문도서 1만여권과 민 원장의 식물기록일지 등을 소장하고 있다. 6·25전쟁 직후부터 1970년까지 민병갈 원장이 역사의 한복판에서 직접 찍은 사진 500여장도 볼거리. 1970년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한국어와 영어로 기록한 식물기록일지는 ‘나무 덕후’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식물도서관을 먼저 방문했다가 수목원 곳곳에서 기록일지 속 나무들을 찾아보는 것도 둘러보는 재미를 더한다. 민병갈 식물도서관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천리포수목원(041-672-9982)은 연중 무휴로 관람료는 성인 9000원, 청소년(중·고등학생) 6000원, 어린이(만 3세 이상) 5000원이다.

 

지난달 21일 개관한 천리포수목원 민병갈식물도서관.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바람에 따라 물결치는 모래 언덕


수목원을 다 둘러봤다면 해가 지기 전에 국내 최대의 모래 언덕, 신두리 해안사구를 봐야 한다. 빙하기 이후 1만5000년 동안 바다가 실어나른 모래로 사구가 형성됐다. 들어가자마자 발에 밟히는 폭신한 모래가 달라진 지형을 실감 나게 한다.

 

신발을 벗어 던지고 고운 모래에서 뒹구는 경쾌한 아이들 목소리도 들린다. 사구 개방 시간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입장료는 무료다.

신두리 해안사구센터(041-672-0499·월요일 휴관)에서 만난 최경자 생태해설사는 “시간마다 색깔이 달라져 아침엔 하얀빛, 오후엔 노란빛의 사구를 볼 수 있다”면서 “해가 지기 전, 그러니까 오후 4시쯤 올 때 가장 아름다운 사구를 감상할 수 있다”고 했다.

 

국내 최대 모래언덕인 신두리 해안사구. 바람에 따라 모래 언덕의 형태가 조금씩 달라진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30분·60분·90분 코스로 사구를 둘러볼 수 있는 둘레길을 조성해놨다. 완만한 경사의 언덕은 갈대를 닮은 띠풀로 뒤덮여 이국적인 풍경을 뽐낸다.

갯메꽃·갯그령처럼 바닷가에서만 자라는 식물도 가득하다. 바닷가 모래땅에서 자라는 순비기나무 언덕에선 허리를 숙여 냄새를 맡아보길 권한다. 가까이 다가가면 싱그러운 향이 코를 찌른다.

 

제주 해녀가 물질하다 올라와 세차게 내는 숨소리를 ‘숨비기소리’라고 하는데, 해녀들이 두통 치료제로 순비기나무 열매를 먹으면서 유래한 이름으로 알려졌다. 천연 허브로도 쓰이는 순비기나무는 모래가 바람에 의해 유실되는 걸 막아주는 고마운 식물이기도 하다.

 

야트막한 언덕은 주로 바닷가에서 자라는 식물들로 뒤덮여 있다.


운이 좋다면 한가롭게 풀 뜯는 소를 만날 수 있다. 멸종위기 야생동물인 쇠똥구리를 복원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한우 2마리를 풀어놨다.

새벽녘과 해 질 녘엔 고라니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모래 위에서 고라니 발자국을 찾아볼 수 있다. 방문객들에게 인기인 동물은 멸종위기동물인 표범장지뱀. 주로 모래땅에서 사는 도마뱀으로 몸 전체에 표범 무늬가 있다.

 

◇노을과 함께 서핑 즐기는 ‘만리포니아'


해질 무렵, 서해안의 일몰을 보기 위해 만리포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만리포의 옛 이름은 ‘만리장벌’. 옛날 명나라 사신을 환송할 때 ‘수중만리 무사항해’를 기원하면서 유래한 이름이다.

 

요즘엔 서핑객이 모여들면서 캘리포니아만큼 좋은 파도가 밀려온다는 뜻으로 ‘만리포니아’라 불린다. 흔히 서핑 하면 동해를 떠올리지만, 상대적으로 한적한 해변을 찾는 이들이 만리포로 온다. 아이와 함께 서핑을 배웠다는 정윤희(44)씨는 “수도권에서 가깝고, 동해보다 한적해 코로나 시기에 아이들을 데리고 오기 좋다”고 했다.

 

아름다운 낙조를 보며 ‘선셋 서핑’을 즐기는 이들도 많다. 1회 서핑 강습(약 1시간 30분)에 5만원. 서핑 보드와 수트 렌털은 각각 2만원·1만5000원이다. 만리포 해변에 자리한 레인보우서프 직원 김진한(24)씨는 “동해보다 수심이 얕고, 넓은 해변을 따라 일정하고 질 좋은 파도가 들어와 초보자가 타기 좋다”고 했다.

 

만리포 해수욕장을 찾은 서퍼들이 서해안의 낙조를 배경으로 서핑을 즐기고 있다. /레인보우서프


만리포해수욕장 끝자락에 있는 뭍닭섬을 한 바퀴 둘러봐도 좋다. 네이버 지도에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뭍닭섬은 지난 3월에야 탐방로가 열린 새로운 태안 여행지다.

탐방로를 걸으며 동해처럼 맑은 물과 해안 절벽, 소나무 숲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 높이 10m, 길이 180m의 해상 인도교를 걸을 땐 물 위를 걷는 듯 아찔하다. 탐방로를 따라 뭍닭섬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천리포수목원으로 다시 이어진다.

 

<아무튼주말> 천리포수목원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태안을 떠나기 아쉽다면 천리포수목원 내 숙소인 가든하우스에서 하룻밤 쉬어갈 수 있다. 한옥을 사랑했던 민병갈 원장이 서울·안동 등에서 버려진 고택의 나무들을 가져와 다시 집을 지었다.

 

양쪽으로 만리포·천리포 바다가 보이는 ‘해송집’, 여름이면 붉은색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가 있는 ‘배롱나무집’, 과거엔 전 직원이 가을마다 모여 이엉 공사를 해왔던 정겨운 초가집 ‘다정큼나무집’ 등 다양한 형태의 숙소를 이용할 수 있다.

예약은 숙소 종류에 따라 예약일 13~29일 전부터 천리포수목원 홈페이지(chollipo.org)를 통해 가능하다.

 

#아무튼 주말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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