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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포구기행](10) 을왕리 선착장 

by 한국의산천 2020. 1. 24.


[포구기행](10) 을왕리 선착장 

글·사진 김순철기자 입력 : 2009.07.03 04:00 수정 : 2009.07.09 15:42

  

지금 을왕리 해변은 ‘연인들의 천국’

 


일상에 지친 당신, 이제 떠나라. 한 번쯤 호기를 부려 길을 나서도 당신은 무죄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고 했던가. 그렇다. 지금 떠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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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폭염이다.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은 지쳐간다. 반복되는 일에 치이고 사무적 관계에 짓눌린다. 늘 그렇듯 가까운 이로부터 상처받고 또 돌려준다. 달리 벗어날 도리도 없다.일상은 그렇게 우리 곁 한 뼘 정도의 거리에 똬리를 틀고 있다. 같이 늙어가자고, 같이 무너지자고 유혹하고 윽박지른다.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늪과도 같다. 많은 이들이 그 앞에 속절없이 당한다. 아예 투항을 작정하는 이들도 늘어난다. 욕구불만으로 홧병에 걸리느니 가늘고 길게 사는 게 장땡이라고 자위하기도 한다. <생활의 발견> 따위의 ‘홍상수 영화’를 보며 동류의식을 느끼는 지점이기도 하다. 어느 순간 편안함에 젖는다. 궁상스런 일상과는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이 동거를 택하는 것이다. 어제도 그렇게 살았고, 오늘도 그랬다. 내일이라고 달라질 것은 없다면서.


그래도 우리는 아주 가끔 일상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한다. 일회성이긴 해도 반역의 피가 솟구치는 것이다. 그것은 충분히 무죄다. 어떤 탈출이든 괜찮다. 철인 3종경기에 도전하든 스포츠댄스교실에서 차차차와 룸바를 배우든 상관없다. 몇 년째 먼지만 뒤집어 쓴 기타를 꺼내들거나, 카드를 긁어 비싼 색소폰을 손에 넣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짓도 먹고 살 만한 이들이나 누릴 수 있는 호사일 뿐이다. 당장 대출이자와 카드값을 막아야 되고 한 달에 한 번 돌아오는 월급날이 유일한 젖줄인 더 많은 소시민들에겐 ‘강 건너 꿈’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선택한다. 낡은 자가용이지만 트렁크에 먹을 것과 옷가지들을 바리바리 챙겨 싣는다. 그리고 떠난다. 바캉스라고도 하고 피서라고도 하는 그것말이다. 하지만 멀리 가지는 못한다. 기름값도 신경쓰이고 고속도로 통행료를 내다 보면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 우리들 삶이란 게 그렇다.
 


아직 바닷물은 차갑다. 차마 뛰어들지 못하는 피서객들이 석양빛에 물든 해변을 거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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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철이다. 장대같이 굵은 햇살이 내려꽂히는 오후, 인천 을왕리선착장으로 차를 몰았다.

을왕리의 낮 풍경을 볼 심산이다.

인천공항이 들어서면서 연륙교가 사라지고 갯벌이 매립되면서 옹진군 용유면 을왕리에서 인천시 중구 을왕동으로 ‘창씨개명’된 곳이다. 서울, 인천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외지자본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을왕리와 왕산 일대는 이젠 ‘전국구’ 해수욕장으로 거듭났다.


백사장은 성급한 피서객들로 제법 활기를 띠고 있었다.

머리부터 흠뻑 젖은 남녀 학생들이 물에 빠진 생쥐꼴로 삼삼오오 깔깔대며 몰려 다닌다.

주차부터 하기로 했다. 눈에 보이는 땅뙈기에는 모조리 크고작은 차량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송곳 꽂을 땅뙈기도 없다던가. 주차기술들도 좋다.

간신히 차 한 대 비집고 들어갈 만한 공간이 눈에 띄었다. 조심스럽게 뒤꽁무니부터 들이밀어 본다.

저쪽에서 내내 지켜보던 아주머니 한 분이 다가와 차창을 내리라는 손짓을 한다.

다짜고짜 일행이 몇이냐고 묻는다. 식당에 온 게 아니면 차를 빼라며 눈을 부라린다. 낯익은 피서철 풍경이다.

여느 포구와는 공기부터 완연히 다르다. 더 이상 한적한 어촌 포구의 모습은 찾기 힘들다.

자본과 사람의 손을 많이 탄 도회의 색채가 넘쳐난다. 첫 인상은 그랬다.
 


을왕 해수욕장 인근의 마시란해변에서 어린이들이 물수제비를 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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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바람 모텔·펜션 우후죽순


선착장서 봐둔 나이 지긋한 낚싯배 선장을 수소문했다.

성경에서 따와 이름 붙인 방주호 선장 노영희씨(74)는 “예전엔 10분만 배 타고 나가도 고기가 많았고 전날 쳐 놓은 그물에 꽃게들이 그득했다”며 “지금은 한 시간씩 50~60㎞를 나가도 허탕만 친다”고 좋았던 시절을 회고했다.


과거 연륙교 주변 갯벌은 수심이 얕아 고기들의 산란장이었다고 한다. 배 이름도 없는 1톤짜리 목선을 노 저어 나가면 꽃게가 지천이었단다. 지금은 GPS니 어군탐지기니 별별 장비가 다 있지만 어획량은 턱없이 줄었다며 혀를 찬다.


190만 원이나 들여 장만한 어군탐지기는 노인 축에 드는 노씨에겐 애물단지나 다름없었다.

설명서 책자를 보며 연구해 보았지만 일찌감치 포기했다고 한다.


오히려 예전의 '감'이 첨단장비보다 훨씬 낫더란다. 한창 나오던 광어가 산란을 끝내고 이젠 저만치 먼 바다로 물러나면서요즘은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여름에 나는 병어가 제맛인데 흔치가 않고… 이래 저래 가을 추석 전후 성수기나 돼야 낚시손님을 태울 수 있을 거라고 한다.
 



노아의 방주. 방주호 선장 노영희씨는 선착장을 즐겨 찾는다. ‘을왕리 명물’인 노씨가 줄을 던져 매달라고 부탁하면 누구 하나 마다하는 이가 없다. 세상과 소통하는 그만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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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씨는 “요즘은 재혼한 마누라와 운영하는 낡은 모텔에서 간간이 용돈이나 벌고 있다”고 말했다. 크고 웅장한 현대식 모텔들에 가려 골목 안쪽에 있는 그의 '낙원모텔'은 주목을 끌지 못하고 있었다. 벽돌집에 외관만 목재마감재를 덧댄 1층짜리 흰색 구옥이다. “앞에 집들 다 차야 우리 집에 오지.들어오려다 낡은 모양을 보고는 뒷걸음질치는 손님도 많고. 가격도 대중없어.” 그는 허허롭게 웃었다.


주말엔 예약손님이 없어도 선착장에 방주호를 대고 시간을 보내는 그에게 말을 붙이는 외지인이 꽤 많은 편이다. 그로서는 늘그막에 느끼는 작은 즐거움이기도 하다. 황해도 출신인 노씨는 6·25 전쟁으로 남쪽으로 내려왔다. 미군부대 하우스보이를 거쳐 어부로, 낚싯배 선장으로, 모텔 주인으로 변신하기까지 그가 걸었던 삶의 이력들은 어쩌면 신산고초의 한국현대사이기도 하다. 아까부터 곁눈으로 바라보던 부인 김순복씨(61)가 수박과 삶은 감자를 내왔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감자는 한눈에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웠다. 맛의 비결이 뭐냐고 물으니 “설탕대신 뉴슈가를 쓴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 옛날 할머니와 어머니들이 내왔던 바로 그 감자 바로 그 맛이었다.


지금은 도굴되어 사라졌지만 예전에 왕의 묘가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을왕(乙旺)이다. 물 평균 깊이 1.5m의 완만한 백사장인 을왕리 해변은 과거에는 군 정찰기도 이착륙이 가능했을 정도로 고우면서도 단단했다고 한다. 마을 한쪽 매간부리라 불리던 지역엔 미군부대가 터를 잡았고 미군 LST 상륙함은 선수 주둥이를 쩍 벌리고 병력을 토해냈다. 이제는 상전벽해라는 말도 부족할 만큼 개발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용유·무의도 일대를 송두리째 바꿔 놓을 외자유치를 통한 개발계획이 몇 년째 논의 중이다. 당초 계획보다 4배나 확대된 총 28.7k㎡에 2011년 토지보상에 이어 2014년에는 1단계 개발사업을 끝낸다는 구체적인 일정도 들려온다. 발빠른 일부 투자자는 벌써 대형 리조트를 지은 뒤 영업에 들어갔고, 산허리를 잘라낸 자리엔 모텔과 펜션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고 있다.


해수욕장 번영회 어제 개장식
을왕리 해수욕장 번영회는 2일 공식 개장식을 가졌다. 피서객들의 안전과 상가의 번영을 비는 자리였다. 이곳에서 태어나 66년 동안 을왕 백사장을 지켜왔다는 어촌계장 김덕형씨(66)는 상가번영회와 함께 손님맞이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낡은 간판을 교체하고, 식탁이나 낡은 전등들도 손보는 집들이 많다고 한다. 김씨는 “서울이나 인천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이면서도 해변의 풍광과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을왕,왕산 만한 곳이 없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해경,119소방 구조대와 연계된 지역 자치인명구조대가 잘 조직되어 있다는 자랑도 빠뜨리지 않았다. 국내산인 상합, 비죽, 가무락, 동죽, 키조개, 바지락, 소라 등 10여 가지는 족히 됨직한 푸짐한 조개구이가 을왕 해수욕장의 추천 메뉴인데 소, 중, 대 기준으로 4, 5, 6만 원이다. 이웃한 왕산해변에선 수족관에서 오래 살지 못하는 자연산 광어가 아주 저렴하다고 한다. 횟집을 겸하는 선주들이 배에서 바로 잡아 온 것들이라 가격이 착할 수밖에 없다. 탕으로 끊이면 흙냄새가 나는 양식과 달리 자연산은 담백하고 깊은 맛이 일품이라고 김씨는 귀띔했다.


개발 바람과는 무관하게 해변과 선착장은 가지각색의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불타는 조개구이를 허벌나게 드린다'는 현수막을 지나쳐 해변에 들어섰다. 해안가 샤워실 부근에 지붕을 열어 접어버린 노란색 외제차가 눈에 들어온다. 잘생긴 젊은남자가 여자 친구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막 차에서 내리는 한 커플이 보인다. 큰 키에 안경을 쓰고 와이셔츠 차림인 남자는 40대 중반의 사무직 같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와 걷는 동안 한 손을 주머니에 꽂고 돌멩이를 차는 모양새가 자못 껄렁하다. 바다에 뛰어든 한 남자는 도망치는 여자를 안더니 이내 다리를 걸어 물에 빠뜨렸다. 금세 울상이 돼버린 여자는 그래도 싫지 않은 듯했다. 조그만 은박돗자리에 애써 양 끝단으로 떨어져 앉은 대학생 커플을 지나쳤다. 여학생의 조크에 남자는 과장된 손뼉으로 맞장구친다. 만난 지 얼마 안 되는 커플이 분명했다. 1주일 됐단다. 100㎏은 훌쩍 넘을 체중의 남자가 스물을 세더니 40㎏도 안 돼보이는 여자친구를 쫓다가 제풀에 먼저 지쳐 포기하는 모습도 보였다.


건너편 횟집 앞에서는 술취한 어느 젊은 남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의자 등 집기를 안으로 던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경찰의 도움이 필요할 듯 싶다고 느끼는 순간 순찰차 한 대가 달려가고 있었다.


안개 때문에 ‘용유 8경’의 하나라는 낙조는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연이어 카메라를 꺼내 찍었다. 작품사진에는 못 미쳐도 사람 눈으로 기억하기보다는 나을 터였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싶으면서 을왕리의 첫 인상은 조금씩 누그러져 갔다. 선착장 오른편으로 지던 해가 완전히 해무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갈매기들의 날갯짓도 서서히 잦아들었다.

      
글·사진 김순철기자

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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