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탐방
강화 해양관방유적 5진 7보 53돈대 둘러보기 출발!
강화 나들길 2코스 : 호국 돈대길 라이딩
화도돈대 / 용강돈대
[ 2019 · 4 · 13 · 토요일 / 맑음 ]
오늘 답사코스
오두돈대~ 화도돈대~용당돈대~용진진 / 좌강돈대~갑곶돈대~월곶진 /월곶돈대(연미정)~강화부근리지석묘~고려산 왕복라이딩
외침의 역사가 스민 53돈대
그길이 질기고 멀어도
전 구간을 천천히 그러나 꾸준하게 찾아서 돌아 볼것이다
▲ 강화도 5진 7보 53돈대 지도 ⓒ 2019 한국의산천 우관동
오랜시간에 걸쳐서 강화도 돈대 53개 위치를 찾아 다시 기입하였다
자료를 찾다 보니 건립된 돈대의 숫자도 다르고 위치도 다르고
이름이 바뀐 경우도 있어서 혼란스러웠으나 최대한 많은 자료를 통하여 정리하였다
흔적이 희미한 곳도 있고 어명을 받아 폐쇄된 곳도 있고 흔적조차 사라진곳도 있지만
위치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지도상에 모두 기록으로 남겼다.
아직 완전하게 정립된 자료는 아니므로 오기가 있는곳은 추후 수정 보완 할 것이다
강화에 남아있는
5진 7보 53돈대 둘러보기 출발.
돈대(墩臺)
본래는 평지보다 높직하게 두드러진 평평한 땅이란 뜻인데 해안가나 접경 지역에 쌓은 요새로 소규모 관측·방어시설을 말한다.
전망이 좋은 곳에 위치하며 병사들이 돈대 안에서 경계근무를 서며
외적의 척후 활동을 비롯한 각종 수상한 정황을 살피고 적이 침략할 때는 돈대 안에 비치된 무기로 방어전을 펼친다.
▲ 화도 돈대
화도(花島)돈대는 1679년(숙종 5)에 쌓은 48돈대 가운데 하나로 오두돈대·광성돈대와 함께 광성보에 속했다.
원래는 화도보 소속이었으나, 1710년(숙종 36)에 화도보가 폐지되면서 광성보의 지휘를 받게 되었다.
방형 구조로 둘레가 129m이다.
8. 대청교(大淸橋)
溪流東走大淸橋 시냇물은 동쪽으로 흘러 대청교를 지나는데,
十里相通花島湖 십리나 떨어져 있는 화도호와 통하네.
滿月一坪瀦水濶 만월평의 저수지는 넓기도 넓으니,
年年穡事奏豊謠 해마다 농사 잘 되어 풍년가를 부르네.
○ 혈구산 이남의 시냇물은 모두 대청교(大淸橋)로 흘러가는데,
화도(花島) 사이의 조수와 서로 통하였기에 주민들이 제방을 쌓아 대청포(大淸浦)·만월포(滿月浦)를 만들어서 가뭄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화도 갑문의 위에는 하나의 돈대가 있으니 ʻ화도돈대(花島墩臺)ʼ이다. 그 형상이 마치 꽃핀 가지가 물에 떠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 현종 갑진년(1664)에 유수 조복양(趙復陽)24)이 제방 등 수문을 쌓았다. 그 후에 유수 이은(李溵)25)이 수문을 수리하고 기문을 지었다.
그 기문은 다음과 같다.
“화도수문은 심부(沁府) 남쪽 20리 떨어진 곳에 있으며, 광성보의 북쪽에 있다. 수문의 이름이 화도(花島)인 것은 화도돈대의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문의 외부에는 오두양(鼇頭洋)이 있으며 바다 안쪽으로는 대청포(大淸浦)가 있다.
이 섬의 여러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은 바다와 포구의 좌우로 모이고 또 수백결의 민전이 있어서 ʻ만월평(滿月坪)ʼ이라고 하는데
선원면·인정면·불은면 3면의 백성들이 이곳에 의지해서 생활하고 있다.
1백년 전 갑진년(1664,현종 5)에 조복양(趙復陽)이 유수로 재직할 때에 연변에 수십 리나 되는 긴 제방을 쌓아서 태풍에 대비하고
조수가 전지(田地)에 침범하는 것을 막았으므로 ʻ포구ʼ라고 하였으며,
3개의 수문을 설치해서 안쪽의 물을 밖으로 빼냈으므로 ʻ화도 수문ʼ이라고도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문을 설치한 것이 어찌 절실하다 하지 않겠는가?
수문을 삼가지 않으면 내지의 물이 넘칠 뿐만 아니라 바다의 조수가 침범하게 되어 큰 제방이 무너지면 바다를 지키는 일이 허망해지고
국가의 유사시를 대비하는 일도 말할 수가 없으며 또한 3면에 거주하는 백성들의 생명도 매우 위태롭게 되므로 국가를 위해서나 백성을 위해서나 폐할 수 없는 것이다.
수문을 지키는 것은 이처럼 중요한 일이다. 최초로 설치할 때에는 바위를 깎아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는 큰 돌로 덮어서 너비가 십여 보,높이가 한 장쯤 되었다.
그 공력이 매우 컸으며 그 규모와 제도 또한 장엄하였다.
그러나 안으로는 포구이고 밖으로는 조수가 있어서 서로 충돌하여 그 위치가 매우 험하며,문의 곁으로는 또 흙이 있어서 흙에 물이 스며들어 틈이 생겼다.
이 때문에 1백년 전에 처음으로 수리했을 때에는 그 기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알 수가 없다.
북쪽의 한 문에서 물길이 무너졌고 여름 장마에 막혀 성안으로 범람해서 경작지가 무너질 지경에 이르러 오래도록 폐기될까 우려해서
거주하는 백성들이 수리를 요청한 것이 여러 번이었지만 시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유수로 부임한 처음에 그 형편을 살펴보았더니 공력이 클 뿐만 아니라 썰물 후에야 비로소 공사를 시작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조수가 하루에도 여섯 번 드나드는데 공사 시각이 매우 제한적이어서 그럭저럭 세월만 가고 오래도록 복구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관방이 중요하고 백성들의 생업이 걸려있는 만큼 이대로 둘 수 없어서 재물을 모아 성 수축 시기에 맞추어 한꺼번에 공사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붕괴 위험은 북문 옆의 흙에 물이 스며드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예전에 쌓았던 것을 모조리 걷어내고 물길을 터놓고서 돌을 많이 가져다가
옛것과 새것을 섞어 좌우의 무사석(武砂石)과 훤선(楦墠) 등은 두꺼운 장방형의 돌받침으로 길게 엇갈려 쌓고
위에는 다듬은 돌을 사용해서 홍예(虹霓)를 만들어 흙이 무너지는 병폐를 방지하고 너비를 약간 넓게 해서 물의 출입을 편리하게 하자
일몰 후에도 물이 넘쳐 붕괴되는 근심을 면하게 하였다.
공사를 시작하자 백성들이 스스로 와서 공사에 참여하겠다고 한 자들 중에서는
단지 하루만 일할 것을 허락하였으므로 백성들을 위한 정사가 매우 절실하고 급했음을 알 수가 있다.
병술년(1766,영조 4) 4월 13일에 공사를 시작해서 6월 10일에 공사를 마쳤다.
공사가 끝나갈 즈음 감독·장교·공장 등을 모아 공사 장소에서 회식을 시켜주었다.
아!조공이 처음 공사할 때 수십 리나 되는 긴 제방을 3개의 수문과 동시에 시행하였으니 그 비용이 많이 들었음을 알 수 있다.
수문에 돌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재력이 부족해서이다. 내가 쌓은 것은 옛 제방 중에서 무너진 곳을 보수했으므로 수리한 곳은 한 개의 수문뿐이다.
공권력이 매우 적게 들었고 이미 망가진 곳을 보아서 돌홍예를 설치하였으며 남쪽의 두 문은 망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돌을 덮는 제도를 따랐다.
후에 개수할 때에도 이 제도에 따라 3문을 모두 돌로된 홍예문을 완성한다면 해안 방어와 백성들의 생업은 영원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것을 기록하는 것은 공사 완료 뿐만 아니라 장차 후인에게도 알리고 싶어서이다.”
24) 조복양(1609∼1671)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중초(仲初), 호는 송곡(松谷).
강화유수로는 1664(현종5) 1월에 부임하여 1665년 2월에 이임하였다.
25) 이은(1722∼1781)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치호(稚浩), 호는 첨재(瞻齋).1766~1767년 강화유수로 재직했다.
용당돈대
강화도 해안가에는 1679년(숙종 5) 5월에 48돈대가 세워졌으며 그 이후 5개 돈대가 추가로 지어졌다.
48돈대는 황해도·강원도·함경도 승군 8,900명과 어영청 소속 어영군 4,262명이 80일 정도 걸려서 쌓았다.
돈대 축조를 기획하고 감독한 이는 병조판서 김석주였고 실무 총괄은 강화유수 윤이제였다.
강화 해양관방유적 5진 7보 53돈대
진이 규모가 크며 돈대는 보에 속해있는 작은 규모이다.
1.강화 5진
1)월곶진 : 강화5진의 하나. 강화읍 월곶리.
2)제물진 : 강화5진의 하나. 강화읍 갑곶리.
3)용진진 : 강화5진의 하나. 선원면 연리. 향토유적 제8호.
4)덕진진 : 강화5진의 하나. 불은면 덕성리. 사적 제226호.
5)초지진 : 강화5진의 하나. 길상면 초지리. 사적 제225호.
2.강화 7보
1)광성보 : 불은면 덕성리에 있는 강화7보의 하나. 사적 제227호.
2)선두보 : 강화7보의 하나. 길상면 선두리.
3)장곶보 : 강화7보의 하나. 화도면 장화리.
4)정포보 : 강화7보의 하나. 내가면 외포리.
5)인화보 : 강화7보의 하나. 양사면 인화리.
6)철곶보 : 강화7보의 하나. 양사면 철산리.
7)승천보 : 강화7보의 하나. 송해면 당산리.
3.강화 53돈대
가리산돈대, 갈곶돈대, 갑곶돈대, 건평돈대, 검암돈대,
계룡돈대, 광성돈대, 광암돈대, 굴암돈대, 귀등돈대,
낙성돈대, 덕진돈대, 동검북돈대, 망양돈대, 망월돈대,
망해돈대, 무태돈대, 미곶돈대, 북일곶돈대, 분오리돈대,
불장돈대, 빙현돈대, 삼암돈대, 석각돈대, 석우돈대,
섬암돈대, 소우돈대, 손돌목돈대, 송강돈대, 송곶돈대,
숙룡돈대, 양암돈대, 염주돈대, 오두돈대, 옥창돈대,
용당돈대, 월곶돈대, 의두돈대, 인화돈대, 작성돈대,
장곶돈대, 장자평돈대, 적북돈대, 제승돈대, 좌강돈대,
천진돈대, 철북돈대, 초지돈대, 초루돈대, 택지돈대,
화도돈대, 후애돈대, 휴암돈대 - 이상 53개소.
정리 : 한국의산천 http://blog.daum.net/korea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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