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日~유라시아 잇는 사통팔달 국제교통도시였다"
chosun.com 유석재 기자 / 입력 2018.08.24 03:00
'철도와 근대 서울' 낸 정재정 교수… 서울 중심으로 쓴 근대 철도역사
"일제 철도 부설은 개발이자 수탈, 당시엔 부산→서울 방향이 하행선"
"20세기 전반, 서울은 동아시아 철도 네트워크의 허브(hub·중심지)였다.
일본 열도~한반도~만주~유라시아 대륙을 최단거리로 연결하기 위한 철도가 한반도를 관통했다.
근대의 서울은 철도가 만든 도시나 다름없었으나, 철도의 역사는 곧 수탈당한 한국인의 혈사(血史)이기도 했다."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을 지낸 역사학자 정재정(67) 서울시립대 명예교수가
새 연구서 '철도와 근대 서울'(국학자료원)을 냈다.
5년 동안 한국과 일본의 자료 1000여 종을 섭렵하며 연구한 600여 쪽 분량의 결과물이다.
정 교수가 1979년 일본 유학을 떠났을 때,
일본 역사학계에선 식민 지배를 미화하며 '우리가 한국에 철도를 놓아 주지 않았느냐'는 시각이 팽배했다.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죠. 철도 부설 과정에서 한국이 얼마나 많은 노동력과 토지를 수탈당했는데…."
이후 근현대사 전반을 폭넓게 연구한 그는
단행본 '일제침략과 한국철도 1894~1945'(1999) 등 철도사 연구에도 관심을 놓지 않았다.
한때 이 역에서 표를 사면 기차를 타고 파리나 모스크바까지도 갈 수 있었다.
1925년 지어진 르네상스 양식의 옛 서울역사 앞에 선 정재정 교수는
"철도를 통해 서울 시민은 ‘근대’를 접할 수 있었으나, 동시에 차별과 억압을 경험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이번 책에서 그는 서울을 중심으로 근대 철도의 역사를 되짚는다.
서울은 경인선·경부선·경의선·경원선·경춘선·경경선(중앙선) 등 '경(京)'자가 들어가는 한국 간선철도망의 시발점이자 종착지였으며,
동북아시아의 직통 국제열차가 펑톈(奉天·선양)을 거쳐 베이징으로, 하얼빈과 시베리아 철도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사통팔달의 국제 교통 도시였다.
"1940년 일본 시모노세키(下關)에서 유라시아 대륙 반대편인 에스토니아의 탈린까지 가는 승차권의 사진이 있습니다.
그 노선은 당연히 서울을 거쳐야 했죠. 서울에서 파리나 모스크바까지 가는 기차표를 살 수 있었습니다."
그는 "철도는 한마디로 이기(利器)인 동시에 흉기(凶器)였다"고 했다.
1899년에서 1945년 사이 일제는 총길이 6400㎞에 이르는 철도를 한반도에 부설했고,
그 철도망을 통해서 지배력을 강화·확산하고 물자를 반출했다.
"철저히 일본 제국주의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철도 노선은 '침략'과 '개발', '수탈'과 '근대'라는 양쪽 속성을 모두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철도는 서울 시민이 근대 문물을 받아들이는 통로이기도 했다.
"하루를 12개 단위로 나누던 시간관념은 기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분·초 단위로 바뀌어야 했고,
기차는 남녀노소가 한 공간에 섞여 앉는 사회적 개방의 현장이었습니다.
" 독립운동에도 큰 역할을 한 것이 철도였다.
3·1운동은 철도 노선을 통해 전국으로 확산됐다.
반면 같은 돈을 내고도 일본인보다 한 등급 낮은 취급을 받는 차별과 억압의 공간이기도 했다.
일제하에선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노선이 '하행선'이었는데,
'제국 수도 도쿄에서 식민지 경성으로 내려가는 길'이란 의미였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도 많다.
일제는 철로를 놓기 쉬운 지형으로 경부선 노선을 정했기 때문에 서울~대전 구간은 영호남으로 가는 교통량이 겹쳐 병목 현상이 일어났고,
이 문제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정 교수는 "남북 철도 연결, 그리고 1940년대에 이미 시스템을 갖췄던 동아시아 철도망의 회복은
정치적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미래에 반드시 이뤄야 할 일"이라고 했다.
서울은 철도를 통해 연결됐을 때 동아시아 거점 도시로서 진가를 발휘했지만,
그 철길에 피맺힌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출처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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