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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봄 도다리쑥국 못지않은 여름 동해의 참 가자미회

by 한국의산천 2017. 7. 25.

봄 도다리쑥국 못지않은 여름 東海의 참가자미회

[하응백의 해산물식당] 구룡포 '삼정포횟집'

 

東海로 귀양간 茶山 정약용 "아침마다 가자미국뿐이네"
詩 '추회'에 푸념하듯 썼지만 가자미 회와 물회는 여름 별미
서툰 손질에 육질 물러지니 손의 재빠름이 회의 맛 결정

 

 










하응백 문학평론가
 

  국호가 아닌 별칭으로 우리나라를 부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해동(海東), 동국(東國), 청구(靑丘), 진단(震檀), 계림(鷄林), 근역(槿域) 등이 바로 그것이다. 접역(鰈域)이란 좀 특이한 별칭도 있다. '한서 교사지(漢書 郊祀志)'에서 유래한 말로 우리 바다에서 가자미가 많이 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란다.


  가자미는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생선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가자미는 아주 흔한 생선이고 그 종류도 많다. 참가자미, 물가자미, 노랑가자미, 용가자미, 문치가자미 등등이 어물전을 장식한다.


  19세기 초입 다산 정약용이 살았던 시대에도 가자미는 아주 흔한 생선이었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가자미를 질리도록 먹었다. 신유사옥에 연루된 다산은 1801년 3월 경상도 장기로 처음으로 유배를 갔고 여기서 약 8개월간 머물렀다.


  부지런한 다산은 이 기간에도 60여 수의 시를 남겼는데, '추회(秋懷)' 8수 중에는 가자미를 한탄하는 내용의 시도 들어 있다. "꽃게의 엄지발이 참으로 유명한데/ 아침마다 대하는 것 가자미국뿐이라네(紅擘蝤蛑儘有名 朝朝還對鰈魚羹)."


  허균은 '도문대작'에서 게를 두고 "삼척에서 나는 것은 크기가 강아지만 하여 그 다리가 큰 대[竹]만 하다. 맛이 달고 포(脯)를 만들어 먹어도 좋다"고 하였지만, 다산은 같은 동해바다 대게 산지에 있으면서도 대게 맛조차 보지 못한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허균이야 삼척부사를 지냈으니 특품의 대게를 맛보았겠지만, 귀양살이를 온 다산에게 대게는 언감생심일 터. 가자미국이라도 감사해야 할 처지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입맛은 쉽게 바꿀 수 없다. 다산은 경기도 사람, 40년간 길들여온 서울 입맛에 경상도 음식이 입에 맞을 리가 없다. 아침마다 나오는 경상도식 가자미국에 질리고 질려 두 손을 들었던 것이다. 다산은 음식 투정을 하며 슬쩍 본심을 드러낸다. "소신은 남가일몽 다시는 꾸지 않고/ 강가에서 낚시꾼이나 되는 것이 원이라오(小臣不復南柯夢 願作江邊一釣徒·한시 번역은 양홍렬)." '이제 다시는 서학 따위는 믿지 않겠습니다. 가자미가 정신 번쩍 나게 했어요'라고 비명을 지른 셈이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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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은 몸서리를 쳤지만, 가자미는 맛있는 생선이다. 가자미 중에서 가장 대접받는 종류는 문치가자미와 줄가자미. 문치가자미는 도다리라는 이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고 이른 봄에 남녘에서 '도다리쑥국'으로 이름값을 한다.


  줄가자미는 지역에 따라서는 돌가자미라고도 하는데, 표면에 돌기가 줄을 서 있는 가자미다. 가자미류 중에서는 희소성이 있어 맛보기가 가장 힘들다. 당연히 가격도 비싸다. 대개 회를 모르는 사람들이 동해에 가면 '이시가리'라는 이상한 일본말로 더 잘 알려진 줄가자미를 찾고, 제주에 가면 다금바리를 찾는다.


  맛의 명성에 휘둘리는 사람들이다. 동해 남부 지역에서 여름부터 가을 초입까지 가자미류 중에서 참가자미는 으뜸의 맛을 자랑한다.


  100년의 시차를 넘어 다산의 염장을 지를 작정으로, 다산의 유배지였던 장기 바로 옆 구룡포삼정포항으로 간다. 구룡포 터줏대감인 K 시인이 알려준 삼정포횟집은 아담해서 예쁜 삼정포항 초입에 있다.


  참가자미회와 물회를 주문한다. 이윽고 차려진 여름 초입의 참가자미회 한 상. 초장에 찍어 살짝 맛을 본다. 살만 발라낸 회는 투명하면서도 쫀득하고 촉촉하다. 뼈회는 고소하다. 그다음에는 음미와 흡입이 반복된다. 초장과 간장과 된장에 각각 찍어 먹어 본다. 어디에나 다 어울린다. 수북한 회가 바닥이 보일 때쯤 물회가 등장한다. 물회는 밥을 조금 말고 물을 부어 마시듯이 후루룩 먹어야 제 맛이다.


  이 집 회는 별다른 기교가 없다. 그날그날 들어오는 싱싱한 활어를, 주문받자마자 회 쳐서 내놓는다. 주인이자 주방장인 지영수 대표에게 회 맛에 대한 비결을 묻자 별말이 없이 웃기만 한다. 답답했던지 옆에서 아내가 한마디 거든다. "저 사람 손이 빨라요."


  바로 그거다. 이 집 맛의 비결은 바로 재빠름이었다. 손의 재빠름은 회 맛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가자미나 볼락과 같이 작은 생선이 특히 그렇다. 껍질 벗기느라 주물럭거리면 고기가 물러져 맛은 저 멀리 달아난다. 때문에 생선 박피기를 사용하여 껍질을 벗기고 동시에 수돗물로 세척하는 횟집도 많다. 하지만 회는 기계와 민물과 만나는 순간, 맛은 사라지고 단백질만 남는다.


  여름의 별미, 참가자미회는 동해 남부 어느 지역에서나 여러 횟집에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손쉽게 즐길 수 있다. 손이 빠른 주인장을 찾는 것이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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