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흥도 국사봉 라이딩 1
2014 · 2 · 15 · 봄빛 완연한 토요일 영흥도를 달려서 국사봉에 오른 사람 2명 [ L·A조님 / 한국의산천]
'신비'라는 말은 머뭇거려지지만, 기진한 삶속에도 신비는 있다.
오르막길 체인의 끊어질 듯한 마디 마디에서, 기어의 톱니에서, 뒷바퀴 구동축 베어링에서, 생의 신비는 반짝이면서 부서지고 새롭게 태어나서 흐르고 구른다.
땅 위의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고 땅 위의 모든 산맥을 다 넘을 수 없다 해도,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 나아가는 일은 복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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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조님 ⓒ 2014 한국의산천
▲ 한국의산천 ⓒ 2014 한국의산천
영흥대교를 막 건너서 바로 아래 수산시장 횟집 주차장(무료)에 차를 대고 라이딩에 앞서 인증샷 ㅎ ...
▲ 규모는 작아도 아름다운 우리나라 최초의 사장교 영흥대교 ⓒ 2014 한국의산천
영흥도
면적 23.46㎢, 해안선길이 42.2km이다. 인천항에서 남쪽으로 26km 해상에 위치한다. 최고봉은 중앙에 솟은 국사봉(國思峰:127.7m)이며, 동쪽에 대부도(大阜島), 북쪽에 무의도(舞衣島), 서쪽에 자월도(紫月島)가 있다. 원래 명칭은 연흥도(延興島)였으나 고려 말 익령군(翼嶺君) 기(奇)가 정국의 불안으로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온 식구를 이끌고 이곳으로 피신하면서 익령군의 영(靈)자를 따서 영흥도(靈興島)라고 칭하였다.
1973년 지금의 옹진군에 편입되었다가 1995년 인천광역시로 통합, 편입되었다.
1270년(고려 원종 11) 배중손이 이끄는 삼별초가 강화도에서 진도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영흥도를 기지로 삼아 70여 일 동안 항몽전을 벌였으며, 6·25전쟁 때에는 인천상륙작전의 전초기지로 활용되었다.
해안은 대체로 굴곡을 이루고 있어 어장이 발달하였고, 간조 때에는 넓은 개펄 위로 바지락·굴·소라·낙지 등의 해산물이 풍부하게 채취된다. 산이 낮고 농경지가 많아 주민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며, 지역 특산물로 포도와 흑염소 엑기스가 유명하다. 섬 전체에 상수리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십리포해수욕장·장경리해수욕장 등의 해변에는 노송이 우거져 있어 피서철이 되면 사람들로 붐빈다. 2001년에 선재도와 영흥도가 영흥대교로 연결되어 접근이 쉬워졌다. 서쪽 해안에는 영흥화력발전소가 들어서 있다.
국사봉(127.7m)
영흥면 외리의 고개 너머 서남족에 있는 장경리 동쪽에 위치한 이 산은 영흥도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해발 127.7m이며 고려 말 공민왕이 이성계에 몰락 당한 후 고려의 왕족들이 이 곳 영흥으로 피난하여 이 산에 올라가 한양을 바라보며 나라를 생각하였다 하여 '국사봉'이라 하게 되었다고 한다.
▲ 아름다운 영흥대교 ⓒ 2014 한국의산천
영흥대교는 국내 기술진에 의해 최초로 건설된 사장교(斜張橋)다. 영흥대교는 야경이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러 온다.
영흥도는 작은 섬이지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영흥도를 아래와 같이 소개하고 있다.
'택리지 경기편'에서...
육지가 끝나는 바닷가에 화량포 첨사(僉使)의 진(津)이 있고 진에서 바닷길을 10리쯤 건너면 대부도가 있다. 대부도는 화량진에서 움푹 꺼진 돌맥이 바다속을 지나가서 된것이다. 돌맥이 꼬불 꼬불 벋었고 그 위는 물이 매우 얕다. 옛날에 학이 물속에 있는 돌맥 위를 따라 걸어가는 것을 보고 섬사람이 따라가서 그 길을 발견하여 그 길을 학지라 부른다.
-중략-
여기서 서쪽으로 물길을 30리쯤가면 연흥도(영흥도)가 있다. 고려 말년에 고려의 종실이었던 익령군 기(琦)는 고려가 장차 망할 것이란은 것을 알았다. 그래서 성명을 바꾸고 온가족과 함께 바다를 건너 이섬에 숨었다. 익령군의 영(靈)자를 따서 영흥도(靈興島)라 했다. 그리하여 고려가 망한 뒤에도 물에 빠져 죽임을 당하는 환난을 면하였고 자손은 그대로 이섬에서 살았다.
‘택리지’의 저자인 이중환이 살았던 시대에는 그들의 신분마저 낮아져서 말을 지키는 마장목자(馬場牧子:목동)이 되었다고 한다.
또 영흥도에는 1270년 배중손이 이끄는 삼별초가 강화도에서 진도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영흥도를 기지로 삼아 70여일 동안 항몽전을 벌이기도 했던 곳이다.
바다에 오는 이유
- 이 생 진
누군가를 만나러 온 것이 아니다
모두 버리러 왔다
몇 점의 가구와
한쪽으로 기울어진 인장과
내 나이와 이름을 버리고
나도
물처럼
떠 있고 싶어서 왔다
바다는 부자
하늘도 가지고
배도 가지고
갈매기도 가지고
그래도 무엇이 부족한지
날마다 칭얼거리니
자전거를 저어서 바람 속으로 나선다.
봄에는 자전거 바퀴가 흙 속으로 빨려든다. 이제 흙의 알맹이들은 녹고 또 부풀면서 숨을 쉬느라 바쁘다. 부푼 흙은 바퀴를 밀어서 튕겨주지 않고, 바퀴를 흙의 안쪽으로 끌어당긴다. 그래서 봄에는 페달을 돌리는 허벅지에 더 많은 힘이 들어간다. 허벅지에 가득 찬 힘이 체인의 마디를 돌리고, 앞선 마디와 뒤따르는 마디가 당기고 끌리면서 바퀴를 굴린다.
몸의 힘은 체인을 따라 흐르고, 기어는 땅의 저항을 나누고 또 합쳐서 허벅지에 전한다. 몸의 힘이 흐르는 체인의 마디에서 봄빛이 빛나고, 몸을 지나온 시간이 밖으로 퍼져서 흙속에 스민다. 다가오는 시간과 사라지는 시간이 체인의 마디에서 만나고 또 헤어지고 바퀴는 구른다. 바퀴를 굴리는 몸의 힘은 절반쯤은 땅 속으로 잠기고 절반쯤이 작전거를 밀어주는데, 허벅지의 힘이 흙 속으로 깊이 스밀 때 자전거를 밀어주는 흙의 힘은 몸속에 가득찬다.
봄의 부푼 땅 위로 자전거를 저어갈 때 흙속으로 스미는 몸의 힘과 몸속으로 스미는 흙의 힘 사이에서 나는 쩔쩔맸다 페달을 돌리는 허벅지와 장딴지에 힘이 많이 들어가면 봄은 몸속 깊이 들어 온것이다. 봄에는 근력이 필요하고, 봄은 필요한 만큼의 근력을 가져다준다. 자전거를 멈추고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몸을 떠난 힘은 흙속에 녹아서 보이지 않는다. 지나간 힘을 거둘수 없고 닥쳐올 힘은 경험되지 않는데 지쳐서 주저앉은 허벅지에 새 힘은 가득하다. 기진한 힘속에서 새 힘의 싹들이 돋아나오고 . 나는 그 비밀을 누릴 수 있지만 설명할 수 없다.
자전거를 저어서 나아갈 때 풍경은 흘러와 마음에 스민다. 스미는 풍경은 머무르지 않고 닥치고 스쳐서 불려가는데, 그때 풍경을 받아내는 것이 몸인지 마음인지 구별되지 않는다 .
▲ 벚나무로 가득한 국사봉 오르는 길. 봄이오면 다시 찾고 싶은 길이다 ⓒ 2014 한국의산천
'신비'라는 말은 머뭇거려지지만, 기진한 삶속에도 신비는 있다.
오르막길 체인의 끊어질 듯한 마디 마디에서, 기어의 톱니에서, 뒷바퀴 구동축 베어링에서, 생의 신비는 반짝이면서 부서지고 새롭게 태어나서 흐르고 구른다.
땅 위의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고 땅 위의 모든 산맥을 다 넘을 수 없다 해도,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 나아가는 일은 복되다.
▲ 십리포해수욕장 ⓒ 2014 한국의산천
▲ 십리포해변 끝에서 왼쪽으로 임도로 올라섭니다 (탐방로 데크는 오른쪽, 임도입구는 왼쪽입니다 ) ⓒ 2013 한국의산천
▲ 오르면 내려가고 내려가면 다시 오르고 산길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끊임없이 요동치며 이어져간다 ⓒ 2014 한국의산천
▲ 십리포해수욕장이 한눈에 보이는 경치좋은 그리미지 오토캠핑장에 도착 ⓒ 2014 한국의산천
▲ 그리미지(그림이지?) 오토캠핑장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캠핑장 이름 그대로 그림이었다 ⓒ 2014 한국의산천
▲ 앞 크랭크 변속기에 진흙이 끼어서 기어변속이 잘 안되었다 ⓒ 2014 한국의산천
▲ 봄날 포근함을 느끼며 간식시간 ⓒ 2014 한국의산천
▲ 지난 여름에 걷던 이 길을 오늘은 자전거를 타고 오른다 ⓒ 2014 한국의산천
통일사
1992년에 건립된 통일사는 최선규 스님께서 6.25 사변 당시 이북에 가족을 두고 내려온 실향민의 애타는 가슴을 달래며 하루속히 통일되기를 기원하기 위하여 건립한 것이다. 멀리는 서울, 부산 등 각지에 거주하는 신도들도 이 통일사를 찾는다.
국사봉 기슭에 자리잡은 이 통일사는 울창한 숲과 멀리 수평선위에 오가는 외항선을 바라볼 수 있어 답답한 가슴이 후련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 섬을 애워싼 해무 ⓒ 2014 한국의산천
안개.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버릴 수가 없는 해무
바다의 해무는 짙었다. 유배를 당하듯 온섬이 짙은 해무에 감싸이고 있다. 김승옥님의 소설 "무진기행"이 다시 생각났다.
"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 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곳으로 유배당해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恨)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 쌌고 먼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 김승옥 무진기행'중에서 -
▲ 국사봉 정상에서 만난 솔 민박 사장님 ⓒ 2014 한국의산천
국사봉
영흥면 외리의 고개 너머 서남족에 있는 장경리 동쪽에 위치한 이 산은 영흥도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해발 127.7m이며 고려 말 공민왕이 이성계에 몰락 당한 후 고려의 왕족들이 이 곳 영흥으로 피난하여 이 산에 올라가 한양을 바라보며 나라를 생각하였다 하여 '국사봉'이라 하게 되었다고 한다.
▼ 아래 사진은 지난해 여름 이곳 등산으로 국사봉에 올랐던 사진입니다
계속해서 영흥도 국사봉 라이딩 2편이 이어집니다 >>> http://blog.daum.net/koreasan/15605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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