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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법천사지 지광국사현묘탑비 당간지주

by 한국의산천 2010. 3. 1.

문막에서 법천리를 거쳐 목계에 이르는 구간은 남한강과 나란히 달리며 한적하기 이를 때 없는 베스트 드라이브 코스입니다.  

서울에서 영동고속도로나 장호원쪽을 이용한 국도 이용을 해도 접근성이 좋고 강을 끼고 달리는 주변 풍경은 멋지기만하지요.

이번에는 법천사지와 국보 제59호 법천사지 지광국사현묘탑비를  찾아보겠습니다

 

임진왜란때 불탄 후 그대로 방치되어 폐사된 법천사지(사적 제 466호)

국보 제59호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비(法泉寺智光國師玄妙塔碑) 

 

흥법사에서 문막읍을 거쳐 49번 지방도를 타고 부론·귀래 쪽으로 22㎞쯤 가면 부론면 법천리, 진리가 샘처럼 솟는다는 뜻을 가진 법천사터가 나온다. 법천리 서원마을 전체가 옛 절터다. 발굴 작업이 중단된 상태이며, 곳곳에 푸른 비닐을 덮어 놓았다. 몸통이 빈 거대한 느티나무 그늘에 차를 두고 잠깐 산길을 오르면, 눈부신 조각으로 장식된 석물들이 한데 모여 있는 옛 부도각 터가 나타난다.

 

축대 위의 좁은 터에 세 채의 건물터가 있고, 그 앞에 국내 부도탑비 중 가장 아름답다는, 11세기의 고승 지광국사의 부도탑비가 서 있다. 지광국사 현묘탑비(국보 59호)다. 거대한 몸체의 거북상과 점판암 비석, 지붕돌 모두가 섬세하고 화려한 조각으로 치장돼 들여다볼수록 눈부시다.

 

구름무늬 위에 놓인 거북의 머리는 용의 모습인데, 특이하게도 수염을 조각해 놓았다. 수염이 머리 무게를 지탱하는 형태다. 등껍질엔 승통·왕사·국사 칭호를 받은 고승의 비석답게 임금 왕(王) 자를 줄지어 새겼다. 압권은 비석 몸체 양 옆면에 새겨진 용의 모습이다. 쌍룡이 여의주를 놓고 다투며 몸틀임을 하는 형상이 매우 아름답다. 비석 앞면 위쪽은 봉황무늬, 삼족오, 비천상, 해와 달의 형상들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비석의 일부는 세월의 무게로 깨지고 부서져 나가 고색창연한 맛을 더한다. 비 앞면엔 지광국사의 행적이, 뒷면엔 국사의 제자 1370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탑비 앞에 짝을 이뤄 세워졌던(1085년) 지광국사 현묘탑(국보  101호)은 국내 부도탑 중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오사카로 빼돌렸던 것을 반환받아 지금은 경복궁 경내에 보관하고 있다. 건물터 한쪽에 모아놓은 석탑 일부와 광배, 연꽃무늬 받침대 등 각양각색의 석물들은 화려했던 법천사의 옛 모습을 보여준다. 높이 3.9m의 법천사 당간지주는 마을 안쪽 창고 옆에 서 있다.

 

 

유적지 답사  2010 · 2 · 28 · 일요일 ·흐림 [ 한국의산천 ] 

오늘 답사지 (지인 자제분의 결혼식에 참석한 후 충주 남한강 주변의 유적지 몇군데를 둘러보았습니다)

 

1. 중원 탑평리 칠층석탑

2. 중원 고구려비

3. 목계나루

4. 정토사법경대사자등탑비

5. 법천사지

6. 거돈사지

7. 손곡리 대보름달맞이 놀이.

 

▲ 법천사지에 자리한 고목이 세월의 무상함을 말하고 있다  ⓒ 2010 한국의산천 

▲법천사 당간지주 (泉寺幢竿支柱) ⓒ 2010 한국의산천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富論面) 법천리(法泉里) 법천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당간지주.
지정번호  강원문화재자료 제20호 
지정연도  1984년 6월 2일 
소재지  강원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620  
시대  통일신라시대 
크기  높이 3.9m 
분류  당간지주  
 
1984년 6월 2일 강원도문화재자료 제20호로 지정되었다. 통일신라시대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는 3.9m이다. 사찰에서 기도나 법회 등 의식이 있을 때 당(幢)을 달아 두는 기둥인 당간을 지탱하기 위하여 세운 두 개의 받침대를 말한다.

일반적인 형태는 지주 밑에 사각형의 대석이 놓이고, 지주 사이에 원형 간대(竿臺)를 놓아 지주를 고정시켰다. 지주 안쪽은 장식없이 수직으로 되었고,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해 중간에 2~3개의 구멍과 꼭대기에 1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양 측면도 수직으로 되어 있으나, 간혹 세로로 능선을 표시한 예도 있다. 내면은 대부분 수직으로 올라가다가 꼭대기에 1단의 굴곡이 있다. 현재는 당간이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지주만 몇 개가 남아 있을 뿐이다.

 

▲법천사 당간지주 (泉寺幢竿支柱) ⓒ 2010 한국의산천

국도에서 법천사지 발굴현장을 지나 계속해서 마을로 들어가면 마을 끝이 이정표가 보이며 오른쪽으로 50m를 더 가면 버섯재배 비닐하우스 옆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 법천사 발굴현장과 복원현장 ⓒ 2010 한국의산천 

  

▲ 산길을 올라서니 산 중턱에 자리잡은 지광국사현묘탑비 ⓒ 2007 한국의산천 

지광국사(智光國師)는 고려 성종 3년(984)에 태어났는데 속가명은 해린(海麟)이다. 목종 2년(999)에 용흥사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역대 왕의 우대를 받았으며 삼중대사(三重大師), 승통(僧統)이 된 후 문종 12년(1058)에 국사(國師)가 되었다. 1070년 이곳 법천사에서 세상을 떠났다.

   

▲ 폐사지의 오래 된 석물에서 오랜 역사를 읽을 수 있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산길을 걷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 2010 한국의산천

 

빛바래고 시든 것들, 떨어져 바람에 날리고 쌓인다. 쌓이고 뒹구는 게 나뭇잎만은 아니다. 무너지고 쓰러져 뒹구는 것들이 하늘 아래 허다하다. 빈 들에 버려져 굴러다니는 것들을 만나러 간다. 망한 옛 절터, 폐사지(廢寺址)들이다. 천년 세월을 잡풀 우거진 들판에 눕고 앉고 쓰러져 나뒹구는 보석들을 찾아 떠나는 시간여행이다.

 

'전 국토가 박물관'인 우리나라는 폐사지의 나라이기도 하다. 방방곡곡 3천여곳에 크고 작은 옛 절터가 흩어져 있다. 스러진 절터에 고인, 아득한 시간의 향기에 반한 이들은 이것을 '아름다운 폐허'라 부른다. 옛 절터를 찾는 일은 그래서 천년 세월 흥망성쇠의 허망함과 텅 빈 들판에 가득한 절절한 울림을 되새기며 위로받는 여정이 된다.

 

전 국토가 박물관, 아름다운 폐허 

옛 절터가 보여주는 건 짓밟히고 깨지고 불타고 남은 것들, 버려져서 더욱 단단해진 것들이다. 단단해질 대로 단단해진 것들이, 다져질 대로 다져진 폐허 위에 널렸다. 놀라운 건 폐허 속에 살아남은 보석 같은 유적들이다. 집도 절도 없는 빈터에 국보·보물급 문화재들이 깔려 있다. 천년 세월을 견딘 석탑과 부처상, 비석들은 현란한 조각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섬세하고 또 투박하게 새긴 글씨들도 나그네의 눈을 거듭 새로 뜨게 한다. 폐사지는 불교 유적 이전에 이미 이 나라 역사·문화의 토양이다. 잡초에 묻힌 주춧돌, 발끝에 차이는 기왓조각 하나까지 모두 조상들의 손자취·발자취가 서렸다.

 

삼국시대 이래 우리 땅에 번창하던 절들은 화재나 자연쇠퇴로 사라진 곳이 적지 않지만, 수많은 사찰이 몽고 침입과 임진왜란을 거치며 소실된 것으로 전해진다. 복원된 절들도 다시 육이오 때 불탄 곳이 많다.

 

일부 중요 절터들에선 발굴 및 정비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나, 대부분은 방치돼 있는 상황이다. 옛 절터 중 문화재나 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되는 곳은 100여곳뿐이다. 나머지는 집터로, 논밭으로, 야산으로, 잡목숲으로 남아 있다. 일부 절터의 발굴·정비 작업은 예산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옛 절터들의 문화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보호·보존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시민단체인 문화복지연대는 3년 전부터 '1폐사지 1지킴이' 운동과 옛 절터 순례행사를 펼치고 있다. 절터를 찾아가 여는 '달오름 음악회'도 올해로 4회째 진행했다. 국회에선 폐사지 보존을 위한 법안 제정을 추진 중이다.

 

무너져 내리고 바람에 쓸리기 쉬운 계절에, 폐사지 여행길에 마음의 보석 하나씩 건져 오자. 폐사지의 보석도 아는 만큼 보이는 법. 잠깐이라도 공부하고 떠나면 훨씬 풍성한 시간여행을 즐길 수 있다. -한겨레 신문에서-

 

 

▲ 국내 부도탑비 중 가장 아름답다는 11세기의 고승 지광국사 현묘탑비(국보 59호) ⓒ 2010 한국의산천  

임금 왕(王)자가 새겨진 귀갑문(龜甲紋). 국보 59호 높이 4m 55cm의 지광국사현묘탑비(法泉寺智光國師玄妙塔碑) 가까이 다가 설수록 정말 커다란 비입니다.

 

지광국사현묘탑비(法泉寺智光國師玄妙塔碑) 국보 59호

소재지  강원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74-2 
시대 고려시대

 

법천사터에 세워져 있는 지광국사(984∼1070)의 탑비로, 국사가 고려 문종 24년(1070)에 이 절에서 입적하자 그 공적을 추모하기 위해 사리탑인 현묘탑과 함께 이 비를 세워놓았다. 현묘탑은 현재 경복궁으로 옮겨졌고 탑비만이 옛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돌을 세우고 왕관 모양의 머릿돌을 올린 모습이다. 거북은 목을 곧게 세우고 입을 벌린 채 앞을 바라보고 있는데, 얼굴은 거북이라기보다 용의 얼굴에 가까운 형상으로, 턱 밑에는 길다란 수염이 달려 있고 부릅뜬 눈은 험상궂다. 독특한 무늬가 돋보이는 등껍질은 여러 개의 사각형으로 면을 나눈 후 그 안에 왕(王)자를 새겨 장식하였다. 비몸돌에서 눈에 띄는 것은 양 옆면에 새겨진 화려한 조각인데, 구름과 어우러진 두 마리의 용이 정교하고도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머릿돌은 네 귀가 바짝 들려진 채로 귀꽃을 달고 있는데, 그 중심에 3단으로 이루어진 연꽃무늬 조각을 얹어 놓아 꾸밈을 더하고 있다.

 

비문에는 지광국사가 불교에 입문해서 목숨을 다할 때까지의 행장과 공적을 추모하는 글이 새겨져 있다. 비문은 정유산(鄭惟産)이 짓고, 글씨는 안민후(安民厚)가 중국의 구양순체를 기본으로 삼아 부드러운 필체로 썼다.

고려 선종2년(1085)에 세워진 작품으로, 거북등의 조각수법과 머릿돌의 모양이 새로운 것이 특징이다. 비앞면 가장자리에 덩굴무늬를 새기고, 양 옆면에 정교한 조각을 한 치밀함이 돋보여 형태와 조각이 잘 어울리는 고려시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 정교하고 섬세하게 조각된 국보 59호 지광국사현묘탑비 측면의 조각 ⓒ 2010 한국의산천

신의 손인가? 석공의 솜씨는 놀랍기만하다. 그 오래 전 옛날 한갓 정과 망치로 이렇게 정교하고 살아움직이는 듯한 조각을 할 수 있었다니...

 

▲ 정교하고 섬세하게 조각된 국보 59호 지광국사현묘탑비 측면의 조각 ⓒ 2010한국의산천 

이 탑을 세운지 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섬세하고 율동적인 조각은 변함없이 살아있다.   

 

▲ 언제봐도 웅장하고 아름다운 비입니다 ⓒ 2010 한국산천

 

 

▲ 정교하게 조각된 국보 59호 지광국사현묘탑비 귀두 ⓒ 2010 한국의산천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는 높이가 4.55m이며 고려시대 석비로서의 특징적인 양식을 보이는 걸작품으로 조각 또한 정묘하다.

귀부(龜跌)는 넓은 지대석 위에 놓였고 밑에는 구름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용두화(龍頭化)된 거북머리의 목은 길게 곧추서서 정면을 향하고 목에는 물고기 비늘을 표현했다.

 

등에는 네모 구획 안에 따로 귀갑문(龜甲紋)을 새겼으며 다시 그 안에 ‘와(瓦)’자를 양각했다. 등의 중앙에는 간결한 복련(覆蓮)의 비좌(碑座)를 마련하여 비신(碑身)을 세웠다. 비신의 바깥 둘레에 보상당초문(寶相唐草紋)을 조각하여 돌린 것이 특징이며 양 측면에 쌍룡을 조각한 것도 특이하다. 이수(이首)는 모자를 쓴 듯한 형태이며 네 귀에 전각(轉角)이 뚜렷하고 귀꽃이 있다. 이수 중앙에 상륜부(相輪部)를 두어 보주(寶珠)를 얹었다.

비문은 정유산(鄭惟産)이 짓고 안민후(安民厚)가 글씨를 썼다.  

 

▲ 이 마을 일대가 전부 절터였다고 합니다 ⓒ 2010 한국의산천   

▲ 느티나무 아래를 지나는 할머니 ⓒ 2010 한국의산천   

▲ 이곳 가까이에 손곡리와 흥원창지가 자리합니다 ⓒ 2010 한국의산천 

  

국보와 보물

 

국보

국보란 역사적·학술적·예술적·기술적인 가치가 큰 문화재로서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정한 문화재로서 보물로 지정될 가치가 있는 것 중에 제작연대가 오래 되고 시대를 대표하거나, 유례가 드물고 우수하며 특이하거나, 역사적 인물과 관련이 있는 것을 지정한다. 

 

보물

목조건축, 석조건축, 전적(典籍), 서적, 고문서, 회화, 조각, 공예품, 고고자료(考古資料), 무구(武具) 등 유형문화재(有形文化財) 중에서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기술적 가치가 큰 것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정부가 지정한 문화재로서 보물은 관보(官報)에 고시(告示)된 날로부터 효력을 발생한다.  

한편 국보처럼 시대를 대표하거나 특이한 것이 아니더라도 또 역사적 인물과 관련이 없더라도, 일반적인 지정의 수준에 이르면 보물이 된다. 그래서 보물의 수는 국보보다 많고 동형의 것들이 많다.

 

보물로 지정되면 문화재보호법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보물 지정의 연혁을 보면 일제강점기에는 ‘조선 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 보존령’에 의해 지정되어 1955년 이전에는 유형문화재는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었다. 이를 같은 국보(國寶)로 명칭을 바꾸었고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 공포되어 1963년 재지정하면서 728점의 지정문화재 중 386점을 보물로 지정하였다.  2001년 11월 현재 지정된 보물은 1,315점(해제 문화재 제외)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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