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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전등사 나부상 전서

by 한국의산천 2009. 1. 14.

나에게도 할말은 있다 - 전등사 대웅전 나부상 (裸婦象)

 

▲ 양손으로 전등사 대웅전 처마를 떠 받치는 나부상 ⓒ 2009 한국의산천

 

전등사 나부상의 전서(傳書) 

 

노운미
 

- 도편수에게 보내는 -


아무때나 피고 떨어지지 않지요
꽃은 시기를 알지요

 

술이 넘치고
웃음이 넘치는 주막이라 해서 
연정(戀情)이 넘치는 주모는 아니옵지요
뭇 사내들이 흘리거나, 두고 간
마음을 다 품을 수 없는 노릇이지요
도편수 당신의 사랑, 당신의 것이기에
흐르고 넘치는 것 또한,
내 알바가 아니겠지요

 

어찌, 사내들은
없는 사랑을 짜내라 하는지
떼쓰는 어린아이와 무에 다른지
웃음을 판다 하여 분명,
실없는 여인네라 생각지 마라 했는데
허투루 들은 탓을 내게 돌리다니
내 떠난 것은,
도편수 당신의 마음을 알았기에
상처 될까 염려한 배려였거늘

 

그 투명했던 사랑을
처마 밑에 걸어두고 욕보인
당신의 어리석음이
내 몸뚱이, 내 마음이 걸린 것 보다
더, 안타까울 뿐이지요
사백년을 처마 밑,
허울좋은 하눌타리 사랑으로 버텨! 야 하다니요

 

 

  

 

▲ 전등사 ⓒ 2009 한국의산천 

 

▲ 보물 제 178호전등사 대웅보전 ⓒ 2009 한국의산천

전등사 대웅보전 (傳燈寺 大雄寶殿 :보물 제178호)

1621년(광해군 13)에 지은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八作)지붕이다. 1916년 수리할 때 발견된 양간록(樑間錄)에는 1605년(선조 38) 불에 타버리고 1614년에 다시 불이 나 전소된 것을, 1615년에 개축하기 시작하여 1621년에 완성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 전등사 대웅전 지붕 네 귀퉁이를 떠 받들고 있는 나부상의 위치 ⓒ 2009 한국의산천  

 

▲ 전등사 대웅전 기둥 ⓒ 2009 한국의산천   

 

▲ 400여년간 전등사 대웅전 처마를 떠 받치고 있는 나부상 ⓒ 2009 한국의산천 

 

전등사의 대표적인 건물인 대웅보전은 그 자체만으로도 조선 중기의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전등사 대웅보전이 세상에 더욱 유명하게 된 것은 대웅보전의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나부상(裸婦像) 때문이다.


대체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신성한 법당에 웬 벌거벗은 여인인가 하고 궁금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나부가 아니라 원숭이로 간주하는 경우도 있다. 원숭이는 사자나 용과 마찬가지로 불교를 수호하는 짐승으로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의 사찰에 모셔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등사 대웅전의 조각상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나부상이라는 데 의견이 더 많다.

 

 

▲ 오른손으로 처마를 떠 받치는 나부상 ⓒ 에코마운틴 한국의산천 

 

이 나부상과 관련해서는 유명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전등사는 160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한 가운데 여러 차례 화재를 겪고 이 때문에 대웅보전도 여러 번 중건되었다. 그 중 지금의 나부상이 만들어진 것은 17세기 말로 추측된다.
당시 나라에서 손꼽히는 도편수가 대웅보전 건축을 지휘하고 있었다. 고향에서 멀리 떠나온 그는 공사 도중 사하촌의 한 주막을 드나들며 그곳 주모와 눈이 맞았다.
사랑에 눈이 먼 도편수는 돈이 생길 때마다 주모에게 모조리 건네주었다.
“어서 불사 끝내시구 살림 차려요.”
“좋소. 우리 그림 같은 집 한 채 짓고 오순도순 살아봅시다.”
도편수는 주모와 함께 살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대웅보전 불사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사 막바지에 이른 어느 날 그 주막으로 찾아가보니 여인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 왼손으로 처마를 떠 받치는 나부상 ⓒ 2009 한국의산천 

 

“며칠 전에 야반도주를 했수. 찾을 생각일랑 아예 마시우.”
이웃집 여자가 말했다.


도편수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여인에 대한 배반감과 분노 때문에 일손이 잡히지 않았고 잠도 오지 않았다. 그래도 도편수는 마음을 다잡고 대웅전 공사를 마무리했다. 공사가 끝나갈 무렵 대웅전의 처마 네 군데에는 벌거벗은 여인이 지붕을 떠받치는 조각이 만들어졌다.
이것이 전등사 대웅보전에 얽힌 전설이다.

    

 

▲ 양손으로 처마를 떠 받치는 나부상 ⓒ 2009 한국의산천 

 

이 나부상이 더욱 재미있는 것은 네 가지 조각이 제각각 다른 모습이라는 점이다. 옷을 걸친 것도 있고 왼손이나 오른손으로만 처마를 떠받든 조각도 있으며 두 손 모두 올린 것도 있기 때문이다.
이 전등사 대웅전의 나부상은 희랍의 시지프스 신화를 연상케 한다. 그런가 하면 부처님을 모신 성스러운 전각이지만 그런 조각상을 세운 당시 도편수의 익살과 풍자, 그런 파격을 기꺼이 받아들일 줄 아는 전등사 스님들의 자비로운 마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 왼손으로 처마를 떠 받치는 나부상 ⓒ 2009 한국의산천 

 

과연 그 대웅전을 중건했던 도편수나 스님들은 무슨 뜻으로 나부상을 올려놓았던 것일까?
단순히 사랑을 배신하고 욕심에 눈 먼 여인을 징계하고자 하는 뜻만은 아닐 것이다. 도망간 여인이 잘못을 참회하고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라는 염원도 들어있는 것이다. 또 그런 조각상을 보게 될 후대의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자비로운 마음을 본받으라는 뜻도 담겨 있으리라.
그렇기에 전등사 대웅보전의 나부상은 보면 볼수록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전등사 - 고은 
 

강화 전등사는 거기 잘 있사옵니다
옛날 도편수께서
딴 사내와 달아난
온수리 술집 애인을 새겨
냅다 대웅전 추녀 끝에 새겨놓고
네 이년 세세생생
이렇게 벌받으라고 한
그 저주가
어느덧 하이얀 사랑으로 바뀌어
흐드러진 갈대꽃 바람 가운데
까르르
까르르
서로 웃어대는 사랑으로 바뀌어
거기 잘 있사옵니다.

 

 

 

 

▲ 세월 그것은 바람 ⓒ 2009 한국의산천 

 

지족불욕(知足不辱)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지지불태(知止不殆)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가이장구(可以長久) 오래도록 편안할 것이다.  - 노자 도덕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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