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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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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회루 교태전 자경전

by 한국의산천 2007. 7. 1.

경복궁

경회루,교태전,자경전 둘러보기

경복궁 답사 2007년 7월 1일 09: 00 ( 장맛비 내리는 일요일)  [한국의산천 ]

 

경회루 (국보 제 224호)

 

경복궁 창건시 태조는 서쪽 습지에 연못을 파고 경회루라는 다락집을 세웠다. 태종은 12년(1412)에 공조판서 박자청에게 연못을 넓히고 다락도 크게 짓도록 하명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연못 속에 큰 집을 짓는 일에 반대하였으나 박자청이 마침내 이룩하니, 네모 반듯한 섬을 장대석으로 호안(護岸)하여 경회루를 세우고 돌다리 셋을 가설하여 물가 연결시켰다. 48개의 돌기둥에 용을 새기고 못 속에 또 섬 두 개를 더 만들어 당주(當洲)를 삼았다.


임진왜란 때 불탄 자리엔 돌기둥만이 남아 있었는데, 고종 4년(1867) 경복궁 재건시에 경회루도 중건하였으나 옛날처럼 돌기둥에 용을 조각하는 장엄은 베풀지 못하였다. 연못 둘레에는 석연지, 연화대 등의 석조물과 이무기 형상을 새긴 석루조가 있고 경회루 난간과 돌다리 기둥에는 여러 가지 형상의 짐승들이 조각되어 있다. 다락집 건물로는 경회루가 국내에서 제일 규모가 큰 것에 속한다.


경복(景福)’이란 궁 이름은 ‘시경’ 주아(周雅)에 나오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만년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旣醉以酒 旣飽以德 君子萬年 介爾景福)’에서 따온 것이다.  

 


   ▲ 경회루 ⓒ 2007 한국의산천

 

경복궁 내 서북쪽의 물을 가두려고 파낸 경회루. 이곳의 흙으로 바로 옆 대궐 안 좌청룡을 잇고 아미산을 만들었다. 

경복궁의 경회루는 왕이 주재하는 잔치를 벌이던 곳으로 높은 누마루에 오르면 서쪽 인왕산의 풍경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경회루 2층 공간은 3겹으로 나누어 지는데, 중심부의 마루면이 가장 높고 바같으로 갈 수록 한단씩 낮아진다.

어린 시절 중학교 여름에는 사직공원 풀장에서 놀고 겨울이면 이곳을 개방하여 스케이트장으로 이용되었으며 몇번 이곳에 왔었다.

 

 

  ▲ 경회루 ⓒ 2007 한국의산천

 

 

  ▲ 경회루 ⓒ 2007 한국의산천

 

  ▲ 경회루 ⓒ 2007 한국의산천

 

교태전

 

   ▲ 교태전 ⓒ 2007 한국의산천

 

교태전 
조선 태조가 건국한 지 3년 후인 1394년에 지은 왕비의 침전으로 중앙에는 대청을, 동서 양쪽에는 온돌방을 두었다. 교태전 후원의 아미산 굴뚝은 조형미가 뛰어나 보물 811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  후원 아미산 ⓒ 2007 한국의산천  

교태전 안에 들어 뒷 창문을 통해 본 후원(아미산)과 아름다운 굴뚝. 

 

  ▲ 아미산 ⓒ 2007 한국의산천

 

 ▲ 아미산 ⓒ2006 한국의산천  

   

교태전 뒤쪽에는 인공으로 조성된 작은 언덕이 있는데 이곳을 중국의 가장 아름답다는 산의 이름을 빌어 '아미산'이라 하였다.

아미산에는 다양한 화초를 심어 화계를 꾸미고 교태전 온돌에서 나오는  연기가 빠져 나오는 굴뚝을세웠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마당에 화원을 꾸미지 않아 후원이 발달하였다.
 
아미산은 궁전의 깊은 후원으로 아무나 드나들 수 없는 곳이다. 경사면에서 길게 다듬은 돌을 4단으로 쌓아 화계(花階)를 만들고 단 위에는 매화, 모란,앵두,철쭉 등의 꽃나무와 소나무와 팽나무, 느티나무를 심어 원림(圓林)을 이루며, 이 사이에는 석분, 일경대, 석연지 세심정 등의 조형물을 두었다.  

 

  ▲ 아미산 ⓒ 2007 한국의산천

 

   ▲ 왕비가 산책을 즐겼던 교태전 후원 아미산  ⓒ 2007 한국의산천

 

 ▲ 아미산의 아름다운 굴뚝 (보물 811호) ⓒ2006 한국의산천    

  

왕비의 침전이었던 교태전 일곽의 구들과 연결되었던 굴뚝이다. 

교태전 일곽의 뒤에 경회루의 연못을 판 흙을 쌓아 작은 산을 만들고 아미산이라 하였다. 여기에 2단씩의 장대석 석축을 네 층으로 쌓고 그 위에 괴석의 석분과 석지 등 석조물을 배치하였으며 주위에 화초들을 심어 후원을 조성했다.

가장 특징적인 요소는 4기의 육각형의 굴뚝이다. 굴뚝들은 화강석 지대석 위에 벽돌로 30단으로 쌓고 육각의 각면에는 네 가지 종류씩의 무늬를 구성하였다. 

 

제일 아랫부분은 벽사상을 부조한 사각형의 벽돌을 끼웠고, 그 위의 직사각형 회벽에 십장생, 사군자 또는 만자문을 조각했다. 그 위에 다시 봉황과 귀면 등이 부조된 네모 반듯한 벽돌을 끼웠고, 윗부분은 회벽에 당초문으로 구성하였다.

이들 무늬 위로는 목조 건축물의 소로와 창방, 첨차 형태로 만든 벽돌을 쌓고 기와지붕을 이었으며, 정상부에는 점토로 만든 연가를 두어 연기가 빠지도록 하였다. 물론 기능은 연기를 배출하는 굴뚝이지만, 그 형태나 위치가 마치 정원과 어울어진 환경조각품과 같이 뛰어난 조형미를 이루고 있다. 
   

   ▲ 아미산 ⓒ 2007 한국의산천

 

교태전 후원의 굴뚝 몸통이 이렇게 굵은 이유는 굴뚝 제일 상단에 있는 연가(燃家)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연가가 4개이므로 4군데의 아궁이에서 나오는 연기를 내보내는 것을 각각 한군데로 모아서 만들어 놓은것이다. 

 

불과 열기 연기의 이동 순서

아궁이에서 불을 지피면 열기와 연기가 부넘이(솥을 건 아궁이의 뒷벽)를 지나 구들 고래와 구들장을 지나가며 방이 뜨거워지고 방구들 윗목에 깊게 파놓은 개자리에서 한참을 머물다가 연도를 따라 굴뚝으로 가서 연가를 통하여 바깥으로 나간다. 

 

 

   ▲ 아미산에 있는 아름다운 굴뚝 ⓒ 2007 한국의산천

 

왕비의 침소인 교태전 아미산峨嵋山의 굴뚝 (보물 810호)     

 
조선 태종은 경복궁 서쪽에 큰 연못을 파고 경회루를 세우고 연못에서 파낸 흙으로 교태전 뒤뜰에 인공동산을 세웠는데 이를 아미산이라 하였다. 아미산의 굴뚝은 왕비의 생활공간인 교태전 온돌방 밑을 통과하여 연기가 나가는 굴뚝으로, 지금 남아 있는 것은 고종 2년(1865) 경복궁을 고쳐 세울 때 만든 것이다. 현재 4개의 굴뚝이 서 있는데 6각형으로 된 굴뚝 벽에는 덩굴무늬, 학, 박쥐, 봉황, 소나무, 매화, 국화, 불로초, 바위, 새, 사슴 따위의 무늬를 조화롭게 배치하였다.

 

각 무늬는 벽돌을 구워 배열하고 그 사이에는 회를 발라 면을 구성하였다. 십장생, 사군자와 장수, 부귀를 상징하는 무늬, 화마와 악귀를 막는 상서로운 짐승들이 표현되어 있다. 굴뚝의 위쪽 부분은 목조건물의 형태를 모방하였고 그 위로 연기가 빠지는 작은 창을 설치하였다. 굴뚝의 기능을 충실히 하면서 각종 문양 형태와 그 구성이 매우 아름다워 궁궐 후원 장식 조형물로서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 굴뚝의 십장생 문양 ⓒ 2007 한국의산천

누가 이것을 보고 굴뚝이라고 말하겠는가? 우리 선조께서 창조하신 위대하고 아름다운 예술품이 아닌가? 

 

 ▲ 출입문 기둥도 아름다운 꽃무늬로 장식되어있다. ⓒ 2007 한국의산천

 

 

  ▲ 교태전 담장 ⓒ 2007 한국의산천

 

자경전

 

 

▲ 자경전 ⓒ2006 한국의산천    

 

자경전 ( 보물 제 809호) 

자경전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재건하면서 교태전 동쪽 자미당 터에 조대비 (양어머니 신정황후)를 위하여 지었다.

고종10년(1873) 에 화재로 그 일대 건물들과 함께 불타 없어졌다. 이 화재 직후 곧 다시 지었으나, 1년 반쯤 뒤인 고종13년 (1876) 또 불이나서 타 버렸다. 현재의 건물은 고종 25년(1888)에 다시 지은 것이다.

 

자경전은 44칸 규모이며 서북쪽에 필요할 때만 불을 때서 난방을 할 수 있는 침방인 福安堂과 낮 시간에 거처하는 중앙의 자경전과 여름에 시원하게 지낼 수 있는 동남쪽의 다락집인 淸연樓로 구성되어 있다. 둘레에 긴 집채인 行閣수십 칸과 一角門들이 있다. 

 

자경전 후원에 십장생 무늬를 새기고 집모양을 한 굴뚝이 있는 담과 서쪽의 꽃담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담이다.

주변에는 수십 개의 집과 담장, 문들이 있었으나 대부분 없어졌다. 지금은 장수를 기원하는 뜻을 가진 글자와 꽃·나비·대나무 형태를 흙으로 구워 새겨 넣은 아름다운 꽃담장과 동식물 무늬인 십장생을 조화있게 새겨 넣은 집 모양의 굴뚝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정궁이라 할 수 있는 건물로 경복궁 안에 남아 있는 유일한 대비전이다.  

 

 

 ▲ 청연루 ⓒ 2007 한국의산천

궁에서는 드물게 누각 멋을 첨가한 자경전의 청연루

 

 ▲ 자경전 서쪽의 꽃담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담이다.  ⓒ 2007 한국의산천

 

  ▲ 자경전의 섬세한 꽃담 ⓒ 2007 한국의산천

 

 ▲ 십장생 굴뚝  ⓒ2007 한국의산천     
 

경복궁 자경전 십장생굴뚝(보물 제 810호)

자경전의 뒤뜰에는 실용적인 시설물인 굴뚝을 아름답게 꾸며놓은 십장생 굴뚝이 있어 궁중 여인네들의 침소를 아름답고 따스하게 꾸며주고 있다. 

 

담의 한편을 한 단 앞으로 나오게 하여 전벽돌로 굴뚝을 만들었으며 굴뚝 벽면 중앙에 십장생 무늬를 조형전으로 만들어 배치하고 그 사이에는 회를 발라 면을 구성하였다. 무늬의 주제는 해,산,물,구름,바위,소나무,거북,사슴,학,불로초,포도,대나무,국화,새,연꼿 등이며 둘레에는 학,나티,불가사리,박쥐,당초무늬 등의 무늬전을 배치하였다. 배,바위,고북등 십장생은 장수, 포도는 자손의 번성, 박쥐는 부귀,  나티/불가사리 등은 악귀를 막는 상서로운 짐승이다. 
 
굴뚝 윗부분 역시 모양을 낸 벽돌로 목조 건물의 형태를 모방하였고 꼭대기에는 점토를 빚어서 만든 집 모양의 장식인 연가(煙家)를 10개를 올려놓아 자경전 건물의 10개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 연기가 빠지도록 하였다. 굴뚝의 기능을 충실히 하면서 꽃담의 조형미도 살려 조선시대 궁궐 굴뚝 중 가장 아름답다.

 

 ▲ 자경전 서쪽의 꽃담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담이다.  ⓒ 2007 한국의산천

 

자경전의 서쪽 담은 주황색의 전(塼)으로 축조한 꽃담이다. 담 내벽에는 만수의 문자와 격자문(格子紋), 육각문(六角紋), 오얏꽃 등이 정교하게 장식되었고, 외벽에는 매화, 천도(天桃), 모란, 국화, 대나무, 나비, 연꽃 등을 색깔이 든 조형전(造形塼)으로 구워 배치하였다. 조선 시대 꽃담의 높은 수준을 엿보게 한다.

 

자경전 서쪽의 꽃담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담이다.  ⓒ 2007 한국의산천

 

자경전 후원에 십장생 무늬를 새기고 집모양을 한 굴뚝이 있는 담과 서쪽의 꽃담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담이다. 

 

▲ 교태전을 둘러보고 향원정으로 가는 관광객들 ⓒ 2007 한국의산천

 

경복궁 향원정 열상진원 풍기대 둘러보기 http://blog.daum.net/koreasan/11892852 

경복궁 전체 둘러보기 http://blog.daum.net/koreasan/11892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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