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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맹씨행단 구괴정

by 한국의산천 2007. 4. 9.

맹씨행단 구괴정  

 

[2007. 4. 8일. 일요일 날씨 안개, 흐림    한국의산천 ]

 

05:00 성산대교 출발 

아산만 방조제 - 공세리 성당 - 광덕산(699.3m) - 강당사,관선제 - 외암마을 - 맹씨행단. 

 

九槐亭(구괴정 : 아홉그루의 느티나무가 있는 정각)  

 

 

▲ 구괴정 2007. ⓒ 한국의산천

 

구괴정(九槐亭)

이 정각은 조선시대 명상이신 고불(古佛) 맹사성(孟思誠) 정승이 방촌 황희, 독수와,권진 정승이 함께 느티나무 세그루씩 모두 아홉그루를 심어 구괴정이라 명명한 정각으로 일명 삼상당(三相堂)이라고도 한다. 

 

 

▲ 구괴정 편액 ⓒ 2007. 한국의산천 

 

 

▲ 구괴정 2007. ⓒ 한국의산천

 

600여년전 인적이 드믄 이곳은  설화산(448m)을 배경으로 앞에 북풍을 막아주는 배방산과 금곡천의 맑은 물이 만궁형으로 흘러 시인 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세 정승은 이곳에 정각을 세워 시문을 지어 읊으며 망중한을 들겼고 국정을 논의하기도 하였으며 농민들과 대화를 나누며 민정을 살피기도 하였다.

이곳에서 삼(三) 정승이 국정을 논의를 하였다고 하여 삼상당이라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600여년이란 세월이 흘러 아홉그루의 느티나무는 수명을 다하였고 그중 두어그루만이 쇠 받침대에 의지하여 흥망성쇠하였던 500년사를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 구괴정 가는 길  ⓒ 2007. 한국의산천 

 

맹씨행단, 맹사성 고택 답사시 자칫 빠트리기 쉬운 곳이다.

구괴정은 맹사성 고택 담 밖의 설아산 기슭에 위치한다. 고택에서 남쪽으로 난 문을 열고 나가면 풍요롭게 보이는 넓은 밭이 이어지며 앞쪽 산릉에 느티나무 숲과 정자가 보인다. (고택에서 약 200m 거리) 

 

 

▲ 구괴정 ⓒ 2007. 한국의산천

 

 

▲ 맹사성 고택 담자락 ⓒ 2007. 한국의산천

 

 

▲ 구괴정 ⓒ 2007. 한국의산천

 

 

▲ 구괴정앞의 느티나무  ⓒ 2007. 한국의산천

넓으며 얇은 몸체로 어떻게 지탱하며 살아가는지... 마치 미끄럼틀같이 생긴 형상이다.

 

 

▲ 구괴정 앞의 느티나무 ⓒ 2007. 한국의산천

 

지금으로부터 600여년이란 세월이 흘러 아홉그루의 느티나무는 수명을 다하였고 그중 두어그루만이 쇠 받침대에 의지하여 흥망성쇠하였던 500년사를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 구괴정 앞의 노쇠한 느티나무 ⓒ2007. 한국의산천 

 

 

▲ 구괴정 앞의 노쇠한 느티나무 ⓒ2007. 한국의산천 

 

 

▲ 구괴정 ⓒ2007. 한국의산천

바깥에는 삼상당이라는 편액이, 안쪽에는 구괴정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 구괴정에서 바라 본 맹사성 고택 ⓒ 2007. 한국의산천

 

 

▲ 구괴정 ⓒ 2007. 한국의산천

 

1435년(세종17년) 2월1일 76세때 늙어서 더 이상 나라 일과 왕을 모시는 일을못하겠다고 세종에게 간청하여 49년간의 벼슬살이를 마감하였다.

 

벼슬을 그만둔 뒤에 때로는 온양에 있는 집에서 태평한 민이 되어 산수와 벗을 삼아 한적한 생활로 노후를 달랬고, 세종이 나라 일을 의논하자고 부를 때는 한성에 올라가 국정 자문역할도 하였다. 이렇게 세월을 지내다가 벼슬을 그만 둔 3년 뒤인 1438년(세종20년)10월 4일 한성에서 병든 몸을 치료하다가 악화되어 향년 79세로 일생을 마감했다.

 

세종은 고불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슬퍼하며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거애하시고 조회를 정지시키고 관에 명하여 장사를 도와 주게 하는 등 특별대우를 하였다. 그리고 고불에게 시호를 문정(文貞)이라고 증시하였다. 즉 충신접례왈 문 (忠臣接禮曰 文]이오 청백수절왈 정(淸白守節曰 貞)이라 했다. 이는 거관생활에 있어서 청렴결백의 표상이었다는 바로 그의 청백리상이라고 할 수 있다.  

 

 

▲ 맹사성 고택 후문에서 바라 본 구괴정 ⓒ 2007. 한국의산천

 

세종은 고불의 성격을 평하기를 타고난 성격이 어질고 온후자애해서 무릇 조정의 과단성있는 큰일이나, 거관처사에 과감하게 결단하는데 단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고불은 비교적 학술과 교육이 요구되는 판서를 역임한 셈이다. 즉 예조판서. 호조판서. 공조판서. 이조판서가 그것이고 병조나 형조는 역임한 일이 없다.  

 

 

 

▲ 구괴정에서 바라 본 맹씨행단 ⓒ 2007. 한국의산천

 

 

 

▲ 개나리와 봄 풍경 ⓒ 2007. 한국의산천

 

맹사성 고택에서 나오면 노란 개나리가 화창한 봄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온유하고 청렴결백하신 고불 맹사성 어르신의 고택과 구괴정을 돌아보고 그 분의 생애를 생각하며 나오는 길의 발걸음은 봄 나비처럼 가볍기만 하였다.

 

맹씨행단, 맹사성 고택 상세히 보기 http://blog.daum.net/koreasan/11226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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