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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운양호 사건2

강화 초지진 초지돈대 강화 초지진 초지돈대강화 해양관방유적 5진 7보 53돈대​​ 둘러보기 출발!   강화도 53개 돈대 둘러보기 클릭 >>> 강화돈대 둘러보기 강화도는 겹겹이 항쟁의 역사로 점철된 땅이다. 바다를 통해 서울로 입성할 수 있는 지정학적 요충지로 외세의 침략을 가장 먼저 받은곳이다. 또한 육지와 섬 사이에 강처럼 흐르는 바다 '염하(鹽河)'라는 천혜의 자연방어선과 드넓은 농토가 있었기에 전란의 시대에는 늘 피난지 역할을 도맡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800년전인 1232년 고려왕조는 수도 개경(개성)을 떠나 강화로 수도를 옮기는 '강화천도'를 단행한다.고려가 강화도로 천도한 것은 기마병 위주의 몽골군이 해전에 약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강화도는 물살이 빠른 염하와 갯벌, 겨울철 유.. 2019. 4. 20.
일본군의 조선 침투, 운요호 사건 운양호 사건 [신명호의 동북아 삼국지] 일본군의 조선 침투, 운요호 사건 정한론(征韓論) 발톱을 드러내다 신명호 부경대 사학과 교수 ▎1875년 조선의 해안 탐측 명분으로 기습공격 감행… 조선 정복해 부국강병 이루려는 ‘야심’ 구체화돼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에 설치된 ‘초지진’. 사적 제225호로 1716년(숙종 42) 강화 해안을 지키기 위해 설치됐으며, 1870년대에 미국과 일본이 침략하였을 때 이들과 맞서 싸운 전적지다. 고종 11년(1874) 봄에 흥선대원군이 하야하고, 고종이 친정(親政)하면서 조선의 정치와 외교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흥선대원군의 대일 외교를 일선에서 주도하던 동래훈도(訓導) 안동준을 위시해 부산첨사, 동래부사가 모두 바뀌었다. 일본 신문에는 조선이 곧 개항할 .. 2019. 4.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