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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제천 금수산 정방사

by 한국의산천 2006. 4. 16.

제천 금수산 정방사  가는 길 [답사일 2006년 4 월 16일  한국의산천]

 

 

정방사 입구 계곡 능강천

능강천 옆에 ES 리조트

충주호를 바라보고 있는 ES리조트

정방사 입구

송림이 우거진 능강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정방사에 이른다.

 

 

정방사 

충북 제천시 수산면 능강리  (정방사 관리사무실 043-647-7399) 
 

정방사(淨芳寺)는 제천시 수산면 능강리 52번지 금수산(錦繡山)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 법주사의 말사이다. 금수산(1,016m)자락 신선봉(845m)에서 청풍 쪽 도화리로 줄기를 뻗어내린 능선상에 자리잡고 있다.

'청풍읍지'에 따르면 ‘정방사는 도화동에서 오리 허에 있으며, 전하여 오기를 신승 의상대사가 세운 절이라 하더라. 동쪽에 큰 반석이 있는데 동대, 또는 의상대라 부른다’라고 써 있다. 또 다른 기록인 '제천군지'에 ‘정방사에 전해오는 얘기에 의하면 신라 문무왕 2년(662) 임술에 의상조사가 견성 성불하기 위하여 절을 세우더니 당나라에 유학한 바 있다’ 라고 쓰여 있다.
금수산 정방사 법당 마루에 걸려있는 '정방사 창건연대기'는 1954년에 혜봉스님이 지은 것인데 이에 의하면 662년(신라, 문무왕 2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1969년에 발간된 '제천군지'에도 662년 창건설이 언급되어 있다. 하지만 이 시기는 의상이 중국에 건너가 화엄학을 공부하던 시기이므로 662년에 정방사를 창건했다는 창건설에는 의문이 있다. 하지만 의상이 창건한 절집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물이 귀한 깊은 산에 절을 지었다거나, 또는 관음신앙과의 밀접한 관련 등이 정방사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으로 보아 연대의 차이는 있지만 의상스님이 창건했다는 자체는 부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의상대사((義湘大師, 625∼702년)는 신라시대의 고승으로 우리 나라 화엄종의 시조이다. 19세에 출가하여 650년(진덕왕 4년) 원효와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가기 위해 요동까지 갔으나 첩자로 오인 받아 되돌아 왔다. 그 후 10년이 지난 660년에 다시 당나라로 가던 중 원효는 중도에서 돌아오고 의상만 들어갔다. 당나라에 간 의상은 중국 화엄종 제2조인 지엄 문하에서 현수와 함께 화엄을 공부했다. 그때 지은 '화엄일승법계도'를 본 지엄은 자신의 ‘73인(印)’ 보다 훌륭하다고 칭찬했다고 한다.

우리 나라 불교의식에서 빠지지 않는 '법성계'가 바로 '화엄일승법계도'의 내용이다. 그 뒤 현수는 중국 화엄의 제3조가 되고, 의상은 10년 만인 670년(문무왕 10년)에 귀국하였다. 그 해 낙산사 관음굴에서 관세음보살께 기도를 드렸는데 이 때 쓴 261자의 간결한 '백화도량발원문'에서 의상의 관음신앙을 엿볼 수 있다. 그는 676년 왕의 뜻에 따라 부석사(浮石寺)를 창건하고 화엄(華嚴)을 강론하고, 화엄대교를 선양하기 위하여 화엄사, 해인사를 비롯하여 화엄 십찰을 건립하기도 하였다.

정방사 창건 설화 

의상대사의 교화활동 중 가장 큰 업적은 3,000명이 넘는 제자들 양성이었다. 정방사 창건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설화에 의하면 아래와 같다. 신라 시대 의상대사의 문하에는 여러 제자들이 있었다. 그 중에 정원이라는 제자가 십여 년이나 천하를 두루 다니며 공부를 하여 세상사가 모두 무상함을 깨닫고 부처님의 법을 널리 펴고자 스승을 찾아다녔다. 수소문 끝에 스승이 원주에 있는 어느 토굴에서 수행하고 계심을 알고 대사를 뵈러가니 스승은 큰 반석 위에 앉아 정진을 하고 계셨다.

정원은 스승 앞에 나아가 절을 하고 여쭈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펴고자 하옵니다. ” 스승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정원이 다시 여쭈었다. “십여 년간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수행을 하여보니 부처님의 가르침은 세간을 떠나지 않았고,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정원이 이렇게 말씀 드리고 다시 삼배 합장하니, 그제서야 스승인 의상대사께서 “너의 소원이라면 이 지팡이의 뒤를 따라가다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지어 불법을 홍포하여라, 산 밑 마을 윤씨 댁을 찾으면 너의 뜻을 이루리라.” 하셨다. 정원이 고개를 들어 자리에서 일어나니 스승께서 던진 지팡이(석장)가 하늘에 둥둥 떠서 남쪽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며칠 동안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뒤를 따르니 지금의 정방사 자리에서 멈추어서는 것이 아닌가. 산세는 신령스러워 흡사 법왕국의 자리와도 같았다. 정원은 즉시 산 밑 마을의 윤씨 댁을 찾아 그 뜻을 전하니 주인은 “어젯밤 꿈에 의상이라는 스님이 흰구름을 타고 우리 집에 오셔서 ‘내가 그대의 전생을 잘 알고 있소. 불연이 있어 말하는 것이니 내일 어떤 스님이 오거든 절 짓는데 도와주길 바라오’ 하더니 구름을 타고 가셨습니다. ”하였다. 이러한 인연으로 창건된 사찰은 정원 스님의 ‘정(淨)’자와 아름다운 산세를 지녔다는 뜻의 ‘방(芳)’를 써서 정방사(淨芳寺)라고 하였다 전한다.

 

 

현재 정방사 경내에는 법당, 칠성각, 유운당, 석조관음보살입상, 석조지장보살, 마애지장보살입상, 산신각, 종각 등이 있다. 관세음보살좌상을 주존으로 봉안한 법당은 팔작지붕에 앞면 6칸, 옆면 2칸의 규모로서 암벽에 거의 붙여서 지었다. 건축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지붕에 얹힌 기와의 명문을 통해 1838년에 중수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주존불인 관음보살의 크기는 높이 60㎝, 어깨너비 30㎝로 연대는 알 수 없다.

관음보살상은 목조로 조성되어 법당 주존불로 봉안되어 있었는데, 몇 해 전 개금불사 때 복장물이 나와 절의 역사를 밝히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복장물로는 관음상 봉안시 발원문을 비롯 '대불정수능엄신주'와 범어로 된 다라니경이 있었다. 그러나 발견 당시 이 지본들이 순서 없이 구겨진 채로 있었던 데다가 다른 복장물이 없던 것으로 보아서 나머지 복장물은 이미 도난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대불정수능엄신주'는 제천시 한수면 월광사지에서 발견된 남한지역에서는 하나밖에 없는 대불정수다라니석비와 똑같은 범자로 쓰여진 목판본으로 크기는 20×40㎝이다. ‘대불정수’는 부처님의 정수리를 뜻하는 말로 아주 신통력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능엄신주’는 불가에서 이를 외우거나 베껴쓰기를 많이 하면 큰 영험이 있다 하여 예로부터 많이 해오는 기도의 한 방법이다. 발원문은 1688년(조선, 숙종15년)에 작성된 것인데, 바로 이 해에 관음보살좌상을 봉안한 것으로 추정된다. 불화로는 후불탱화와 신중탱화가 있다.

후불탱화는 1928년에 금어 관하종인 스님이 광목 바탕에 그린 것으로서 크기는 가로 155㎝, 세로 123㎝로 된 채색화이다. 그림 중앙에 석가여래상을 비롯한 삼존불이 있고, 뒤로는 성자의 무리들이 있다. 이 불화를 그린 금어 관하종인 스님은 1901년(대한제국, 광무 5년) 순천 선암사에서 조성한 약사여래도의 편수로 참여한 분이기도 하다.

신중탱화는 법당 마루에 걸려 있는데, 조성연도 및 금어 등은 후불탱화와 같다. 크기는 가로 102㎝, 세로 121㎝로 역시 채색화이다. 그림 중앙에 동진보살이 크게 그려져 있고 그 앞에는 6명의 신장이 서 있으며 성자의 무리들이 있다. 신중탱화는 대승불교가 발달하면서 인도 재래의 토속신뿐만이 아니라 전파되는 지역의 토속신들까지 불교신앙으로 포용하여 불법수호신으로 묘사한 것이다. 따라서 신중탱화의 이해와 파악은 곧 그 지역 토속신앙의 이해이며 한국 신중탱화의 이해는 곧 한국 토속신앙과의 교섭에 대한 이해이기도 하다. 외부 처마 밑에는 ‘정방사’ 편액이 있는데 석종 안종원(1874∼1951)의 글씨다. 또한 4폭의 주련은 법당이 중수된 1825년 무렵의 작품으로 추정되지만 작자는 알 수 없다.

 

 

큰 근심 작은 근심 모두 버려라... 

 

 

▲ 하늘에 매달린 풍경, 소리 또한 청아하다. 

 

'내가 곧 부처'라는 명제야 말로 팔만 대장경을 단숨에 불태워버릴 수 있는 진리의 불쏘시개 일 것이다. 

선의 검객 임재는 말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이제 와서 생각하니 내게 있어 죽여야 할 부처도 없고 경허도 없다. 부처를 만난 적도 없고 경허를 만난 적도 없는데 어디에서 죽여야 할 부처를 애써 찾고 어디에서 죽여야 할 경허를 따로 찾을것인가? 

그렇다. 경허야 말로 나다. 내가 곧 경허인 것이다. - 길없는 길 중에서-      

 

정방사는 큰 사찰은 아니지만 주변경관이 빼어나고 특히 법당 앞에서 바라다보이는 청풍호는 매우 전망이 좋다. 또한 법당 지붕을 덥치듯이 앞으로 숙여진 '의상대'라는 높은암벽이 있는데, 그 웅장함과 기묘한 모습은 자연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능강교에서 2.5㎞가량의 들머리 숲길은 시멘트 포장길이나 울창한 숲 특히 송림이 매력적이다. 절 왼쪽 산길로 오르면 미인봉(저승봉596m) 등산로로 이어지며 왕복 약 1시간 30분 거리이다.

 

교통
1) 영동고속도로 만종분기점 - 중앙고속도로 남제천 I.C - 금성면(82번 지방도) - 수산면 능강리 - 정방사
2) 중부내륙고속도로 - 충주IC(수안보방향) - 살미삼거리(단양방면) - 월악산 - 청풍 - 정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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