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비인해변 풍경

by 한국의산천 2022. 3. 8.

이른 아침

비인 해변 풍경

 

충청남도 서전 군 비인면 (지명유래)

 

어진 것을 감싼다는 비인

옛날부터 명문이 낙향하여 자리를 정한다 해서 비인(庇仁)이라 불러오던 곳이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비인현(庇仁縣)의 지역으로서 조선시대 말기에는 비인 군이 되었던 바로 군청 소재지라 군내면(郡內面)이라 불렀다.

비인은 백제 때에는 비중현(比衆縣) 또는 비상현(比象縣)이라 불렀으며 그 후에는 검성(劍城)이라고 부를 때도 있었다.

이 지역의 처음 고을은 종천면 지석리(鍾川面 支石里)이고 신라 때에 이곳에 옮겨왔다. 

옛날부터 명문이 낙향하여 자리를 정한다 해서 비인(庇仁)이라 불러오던 곳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에 비인면이 되어 서천군에 편입되었다. 

면내에 거주하는 성씨의 대성은 밀양 박씨(密陽朴氏) 110여 세대를 비롯하여 평산 신 씨(平山申氏) 100여 호 강릉 유 씨(江陵劉氏) 90여 호 기계유 씨(기溪兪氏) 60여 호 능성 구 씨(陵城具氏) 40여 호 창녕 조 씨(昌寧曺氏) 40여 호가 대성을 이루며 거주한다.

 

비인의 원 이름은 비중 (比衆)이다.

신라 경덕왕이 비인으로 고친 이후 지금껏 사용하고 있다. 1천여 년의 역사를 지닌 이름이다. 

굳이 지명의 의미를 캔다면 '어진 것을 감싼다'는 뜻이다.

조선조에 들어 서울의 사대부들이 이곳에 모여들었다.
고려 중엽 이후 서해안은 왜구의 노략질이 심했고 조선조 세종 때 (1418)는 비인 앞바다 마량진에 왜선 50척이 나타나 우리 병선을 불사르고 비인성까지 공격했다.

이 싸움 이후 평지에 있던 비인성은 현재의 위치인 산 위로 올라왔다. 그 뒤에도 비인은 전란이 비껴가지 않았다. 그런데도 서울 사대부들이 즐겨 낙향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택리지의 지적은 이렇다.

"여러 읍과 이웃해 있고 뱃길이 편리하여 서울과 가깝기 때문"이라는 것. 그런 점을 중시한다면 비인은 과거보다 미래를 위해 남겨진 땅이다. 한때 이곳에 공단을 유치하려던 정부의 발상도 지역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선비의 상징 인 (仁)을 숭상하는 비인 사람들의 '양반 기질' 이 이웃 한산면 (韓山面)에 뒤질 리 있겠는가.

중앙일보 서천 = 최영주 편집위원

 

 

 

"바다의 숨결은 건강하고 순수합니다. 

여기서 인간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사방에서 고동치는 생명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바다는 거대하고 초자연적인 존재가 살 수 있는 환경입니다. 

바다는 움직임과 사랑 그 자체예요."

 

- 해저 2만 리中 네모 선장

 

 

서천비인해변 >>> https://koreasan.tistory.com/15607890

 

서천 비인해변 당산바위

2023년 2월의 첫날 충남 서천 비인해변 당산바위 둘러보기 충남 서전 비인해변의 당산바위 오늘 부터 모 편의점에서 한달간 와인 세일 고군산군도 >>> https://koreasan.tistory.com/15607878 군산 고군산군

koreasan.tistory.com

서천 비인해변 >>> https://koreasan.tistory.com/15607997

 

서천갯벌 비인해변 부천 한옥마을 문화마당

충남 비인해변 귀가 후 라이딩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그치더니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가고 싶은 곳 내맘대로 훌쩍 떠나기 비인해변과 홍성을 둘러보고 귀가. 다음날 부천 한옥 체험마을 문화마

koreasan.tistory.com

서천 비인해변 >>> https://koreasan.tistory.com/15607722

 

비인해변 풍경

이른 아침 비인 해변 풍경 충청남도 서전 군 비인면 (지명유래) 어진 것을 감싼다는 비인 옛날부터 명문이 낙향하여 자리를 정한다 해서 비인(庇仁)이라 불러오던 곳이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비

koreasan.tistory.com

지족불욕(知足不辱)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지지불태(知止不殆)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가이장구(可以長久) 오래도록 편안할 것이다.  - 노자 도덕경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