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어서 좋다 야성의 계곡
‘계곡 트레킹 1번지’ 울진 왕피천
험준한 산·절벽으로 둘러싸인 청정지역
맑은 물길 따라 자갈 밭·바위 오르거나
산자락에 조성된 생태탐방로 걷거나 …
수심 5m 넘는 검푸른 빛 용소 최고 비경
경북 울진은 깊은 골짜기와 푸른 동해를 품고 있다. 태백산맥 준령에 가로막혀 도서지역을 제외하고 서울서 가장 먼 곳이기도 하다. ‘등허리 긁어 손 안 닿는 곳’이라는 옛말이 있을 정도.
경상북도 동북단에 자리한 울진은 우리 땅의 대표적인 험지 중 하나다. 도로 사정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서울에서 출발하면 쉬지 않고 달려도 꼬박 5시간이 걸린다. 주변에 고산준령이 즐비한 탓에 질러가는 직선 도로를 잇기 어렵기 때문이다.
울진은 이같이 접근성은 떨어지지만, 거칠고 험한 환경 속에 보전된 때묻지 않은 자연은 번잡한 현대문명에 시달린 도시인들에게 매력 넘치는 여행지가 된다.
울진의 자연 중에 손꼽히는 비경이 바로 야성미 넘치는 계곡이다. 울진의 계곡이라면 명승 제6호로 지정된 불영계곡을 먼저 떠올리게 되지만, 오지 계곡의 대명사로 불리는 왕피천도 빼놓을 수 없다.
왕피천은 트레킹 마니아들이 최고의 명소로 꼽는 곳으로, ‘계곡 트레킹 1번지’, ‘계곡 트레커의 로망’이라는 별칭이 붙어 다닌다.
왕피천은 경북 영양군 수비면에서 발원해 울진군 서면 왕피리와 구산리를 지나 동해로 흘러드는 길이 61㎞의 물길이다.
왕피천이라는 이름은 지금의 강원도 삼척 땅에 있었던 삼한시대 실직국 왕이 전쟁에서 패해 피난왔다는 ‘왕피리(王避里)’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고려말 공민왕이 홍건적을 피해 이곳으로 몸을 숨겼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험준한 산과 깎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둘러싸여 접근이 쉽지 않은 왕피천은 우리 땅 최고의 오지이자, 청정지역으로 꼽힌다.
국내 최대 규모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전체 면적이 102.84㎢로, 북한산 국립공원의 1.3배에 이르는 왕피천 유역 보전지역에서는 지금도 산양, 수달 등 멸종위기 동물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트레킹의 시작점은 왕피천 중간쯤에 자리한 근남면 굴구지마을이다. 울진에서도 오지로 꼽히는 굴구지마을은 아홉 구비 산자락을 돌아가야 나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도 시내버스가 다니지 않아 군청에서 별도로 마련해준 승합차가 하루 세번 마을과 읍내를 왕복한다.
왕피천 트레킹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물길을 따라 자갈밭을 걷고 바위를 오르는 계곡 트레킹을 해도 되고, 계곡을 따라 산자락에 조성된 생태탐방로를 이용할 수도 있다. 물론 왕피천의 비경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물길 바로 옆을 걸어야 한다.
왕피천의 으뜸 절경은 용소. 굴구지마을에서 상류쪽으로 4㎞ 떨어져 있다. 왕복 8㎞를 걷는 게 부담스럽다면, 그 중간쯤인 상천 환경감시 초소까지 자동차로 올라가도 된다.
굴구지마을에서 상천초소로 올라가는 길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차 한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아슬아슬한 외길인데, 왕피천 물길이 흘러가는 아래를 내려다보면 까마득한 천길 단애다.
▲ 경북 울진의 깊은 산속을 흐르는 왕피천은 우리 땅의 대표적인 오지이자, 청정지역이다.
트레킹 마니아들이 최고의 코스로 꼽는 왕피천에서도 거친 절벽과 검푸른 심연이 어우러지는 용소는 으뜸 절경이다.
상천초소에서 용소까지는 왕복 2㎞ 정도로, 이 구간이 왕피천 계곡 트레킹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상천초소에서 가파른 벼랑을 따라 밑으로 500m쯤 내려오면 왕피천 물길에 다다른다. 여기서부터 물길을 따라 자갈밭과 바위 위를 걷게 된다.
일반인이라면 왕피천 트레킹은 용소에서 마무리하는 게 좋다. 구명조끼 등을 갖춘 전문 트레커들은 용소를 건너 속사마을 상류까지 올라가지만, 장비 없이 용소를 건널 수는 없다.
속사마을은 상천초소에서 4.5㎞, 굴구지마을에서는 6.5㎞ 떨어져 있어 왕복하려면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더구나 왕피천 트레킹은 산이나 둘레길을 도는 일반 트레킹보다 몇배 더 힘들다.
자갈밭 위에서 균형을 잡으며 걸어야 하고, 바위를 만나면 기어 올라가야 하고, 바위와 바위 사이를 건너 뛰어야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수정같이 맑은 물길을 따라 정적이 흐르는 자갈밭과 모래톱, 그리고 하얀 바위 위를 걷는 맛은 아주 각별하다.
흙길을 걸을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힘이 들지만, 짜릿짜릿한 생동감이 넘친다. 절정의 감흥은 용소에서 맛보게 된다.
집채만 한 바위들이 늘어선 계곡 양 옆으로 사람 키 몇 배에 달하는 하얀색 절벽이 서 있는데, 단면이 야수가 할퀸 것처럼 거칠다.
그리고 그 아래 깊이 5m가 넘는 심연의 물빛은 검푸른 색이니 용소는 더없이 깊고 장중한 맛을 낸다.
우리 땅의 이름난 계곡 치고 용소가 없는 곳이 없지만, 왕피천의 용소는 그 규모나 분위기에서 최고라고 하겠다.
왕피천 제 1 탐방로
발가락에 힘을 꽈악 주고 가야 하는 길
1구간은 삼근리에서 박달재를 넘어 동수곡 입구 삼거리에서 시작됩니다. 동수곡 입구는 비교적 잘 닦여진 흙길입니다.
이 길목 옆에서는 버섯을 자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소담하게 피어있는 산수국, 봉긋한 모양의 꽃잎을 가진 도라지꽃들은 눈을 즐겁게 합니다.
왕피천 제1탐방로
길이 : 12.1 km - 왕피리 코스
소요시간 : 약 7시간탐방로
특성 :숲과 하천이 어우러진 생태환경 코스
구간경로 :동수곡삼거리 → 왕피천 → 거리고 → 왕피분교 → 실둑교 6.8km1.8km2.0km1.6km
역사문화자원: 은광 / 다락논/ 화전민 문화
자연생태자원: 굴참나무 군락지, 산양, 은어, 수달
동수곡
동수곡에는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광산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마을 곳곳에 남아있는 많은 동굴은 일제 치하에서 주석 광산을 운영했던 아픈 역사를 보여줍니다. 누리골로 이어지는 동수곡은 갈수록 험해지고 비탈도 심해지지만, 인간의 손이 닿지않은 자연 그대로의 생태관광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화전마을터
까치박달과 고로쇠나무, 오동나무가 우거져 습지로 변한 화전민 집터에는 구들장과 불을 넣었던 터와 사기 조각 등 화전민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숲 해설가에 의하면 왕피리 마을은 골짜기가 깊어 계곡 주변으로 화전민들이 많이 거주했다고 합니다. 이후 그들은 1968년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 대부분 몰살당하고, 육지로 내쫓기면서 그들의 자취는 맥을 잇지 못했습니다. 화전민 터는 조선 후기부터 피폐해진 육지를 떠나 깊은 골짜기에 삶을 꾸려온 그들의 역사가 한 순간에 사라진 흔적입니다.
왕피천본류
왕피천 본류로 내려와 거친 산행 후 왕피천 본류의 맑은 물을 눈에 담고 공기를 마시며 생태계를 느끼는 것. 이것이 왕피천 생태관광의 절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잘 닦아 놓은 아스팔트길 옆에 핀 노란 원추천인국과 왕피리 마을의 풍광을 구경하다 보면 ‘거리고’ 마을에 이릅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유기농 재배가 삶의 원칙이기에 대부분의 식당은 유기농 음식을 전문으로 합니다. 농약이 쓰이지 않은 건강한 음식을 맛볼 수 있습니다.
왕피천 제 2 탐방로
협곡으로 가는 탐사의 길
용소를 비롯해, 학소대, 거북바위 등 왕피천 협곡의 모습을 한 폭의 동양화로 펼쳐놓은 듯한 경관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굴구지 마을을 거점으로
접근해야합니다. ‘굴구지’는 굴같이 생긴 아홉구비를 넘는다는 뜻을 가진 구산 3리 마을의 고유 이름입니다.
왕피천 제2탐방로
길이 : 9.8 km - 굴구지
코스 ( 굴구지 마을 - 회귀 지점 4.6km ) ( 회귀 지점 - 굴구지 마을 5.2km )
소요시간 : 약3시간 30분
탐방로 특성 :협곡과 절경의 왕피천 탐사
구간경로 :굴구지마을 → 상천동 → 용소 → 회귀지점 → 굴구지마을
역사문화 자원 : 보부상길 / 용소 / 구산리 삼층석탑
자연생태자원 : 금강송, 은어, 수달, 산양
상천동
왕피길의 탐사 코스인 2구간은 굴구지 주민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굴구지 산촌펜션에서 시작됩니다.
산촌펜션에서 전날 밤을 보내고 아침에 트래킹길에 오르면, 협곡을 끼고 절벽에 가까운 지대를 수평으로 횡단하는 듯한 길이 2km가량 이어집니다.
과거 대표적인 오지 마을이었던 상천동으로 가는 길입니다. 상천동에는 옛 모습의 원형이 일부 남아 있어 남한의 오지 마을이 2000년대 이전까지 어떠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 깊은 산골에 들어와서 살게 되었을까, 오지 마을의 삶을 상상해보며 탐방로를 걸어봅니다.
탐방로
생태경관보전지역 초소를 지나 탐방로로 접어들면, 마을 주민들이 다니던 옛길이 있습니다. 해설가에 의하면, 상류에 해당하는 왕피리의 거야마을, 속사마을의 할머니들은 시집 올 때 이 길로 가마를 타고 오셨다고 합니다.
지금 길을 넓혀도 탐방객들이 한 줄로 서서 갈 정도인데 두 사람이 짚신을 신고 가마를 메고 어떻게 이 험한 길을 걸어왔을지 힘겨운 한 걸음 한 걸음을 상상해보며 걸어봅니다.
이곳 탐방로에는 인조적 길을 최소화했습니다. 옛사람들의 발길이 느껴질 만큼 그대로 보존하고 비탈길에만 나무와 돌을 활용했습니다.
용소전망대
용소는 불영사를 지을 당시 용 세마리가 있었는데, 그 중 한 마리가 왕피천을 따라서 내려와 승천했다는 이야기가 담긴 곳입니다.
실제로 용이 어른 5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크기로 입을 벌리고 있는 모양의 용바위가 보입니다. 양쪽으로 깊은 암벽과 그 사이에 하천이 있는데, 과거에는 기에 눌려 사람들이 절대 지나다닐 수 없는 곳이었고, 굉장히 신성한 곳으로 기우제도 지냈습니다.
이 곳은 왕피천 수계 중 가장 아름답지만 깊은 협곡에 존재해 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곳이기도 합니다.
왕피천 제 3 탐방로( 탐방불가/현재 개통준비 중)
역사가 스며든 옛길의 정취에 흠뻑 취하다
왕피길 3구간은 수곡 2리 막금마을 왕피천 물가 정자에서 시작해 하원리까지 이어집니다. 이곳에는 딱딱한 아스팔트길은 없습니다.
오로지 폭신한 흙길이 자리하고 있을 뿐입니다. 산골의 정취를 온몸으로 담뿍 담아내겠다는 그 염원을 발길에 실어도 좋습니다.
왕피천 제3탐방로
길이 : 7.6km - 한티재 코스
소요시간 : 약 5시간
탐방로 특성 :옛길의 원형이 펼쳐지는 ‘문화 역사의 길’구간
경로 :수곡리→남사고선친 묘소 →샘물 →하원리
역사문화자원 : 남사고유적지/성황당/찬물내기
자연생태자원 : 금강송 군락지
성황당
왕피천의 맑은 물을 바라보며 몇 분 걷다보면 마을의 성황당이 나타납니다. 매미와 루사 등의 태풍에도 버티며 70년간 수곡리를 보듬어온 성황당입니다. 명당은 명당인 듯 모진 태풍과 세월을 지켜왔습니다. 성황당 외관에는 역사의 흔적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수곡리 주민들이 직접 기와를 보수하고, 정비했습니다.
한티재 옛길
성황당을 지나 산림 속 능선부를 따라 이어진 길로 접어들면, 한줄기 흙길이 드러납니다. 선조들의 발밑을 채워주던, ‘한티재 옛길’입니다. 비탈과 곡선의 자연요건을 활용해 만든 길에서 선조들의 지혜가 묻어납니다. 온전한 자연의 삶 그대로를 수용했던 선조들은 이 건강한 땅에서 노닐 수 있었습니다. 사월초파일마다 오손도손 오가던 이 길은 이제 소수의 사람만이 오가는 비좁은 소로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걷던 한티재 옛길엔 솔잎과 낙엽, 비옥한 흙들이 여전히 머물러있습니다.
남사고 선친 묘
옛길의 그윽함을 느끼며 비탈을 오르다보면 거대한 봉분과 마주합니다. 사방으로 탁 트인 산새의 모습에 가슴이 뻥 뚫리는 듯 합니다. 절경이 어우러진 이곳은 격암 남사고의 선친 묘입니다. 조선시대 최고의 풍수지리 대가로 불리었던 남사고 선친의 묘이기에, 많은 풍수지리 연구자들은 ‘명당 중의 명당일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이 곳을 찾는다고 합니다. (출처 : 울진왕피천계곡 에코투어 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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