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사고 자동차를 바꿔도 왜 금새 허전해질까
[책과 지식] [정리 / 한국의산천 http://blog.daum.net/koreasan ]
세상은 꿈과 희망이 가득한 천국이 결코 아니기에...
크게 기뻐하기 위해서는 크게 슬퍼해야 합니다. 깊은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진정으로 웃을 수 없습니다. 희망은 절망과 서로 등을 맞대고 있어, 깊이 절망하는 자만이 진정한 희망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 '대하의 한방울' 본문 중에서-
11월의 주제 행복, 나의 선택
幸福, 누구나 소망하지만 실제로 이를 느끼고 사는 사람은 적습니다. 중앙일보와 교보문고와 함께하는 이달의 책 11월주제는 행복, 나의선택입니다. 나이도, 국적도 다른 세 저자가 자신의 체험을 들려주며 행복은 결단이요, 실천이라고 말합니다. 2012년도 벌써 11월. 한 해를 돌아보기에 길라잡이가 되는 책들입니다.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것은 행복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행복을 느끼는 마음의 문을 닫고 살기 때문이다
옷을 사고 자동차를 바꿔도 왜 금새 허전해질까
[일러스트=강일구]
선택의 조건
바스 카스트 지음
정인회 옮김, 한국경제신문
303쪽, 1만4000원
독일에 사는 30대 후반의 과학기자는 어느 금요일 저녁, 친구들과 바베큐 파티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질문을 던졌다. 왜 이렇게 사는 게 쉽지 않을까. 지금 우리들은 과거보다 더 큰 자유를 누리고 있고, 물질적으로 더 풍요로워졌는데 왜 더 행복해졌다는 느낌을 갖기 어려운 걸까. 그날 친구들과 허심탄회하게 일과 사랑의 어려움에 대해 대화를 나눈 끝에 생긴 의문이었다.
『선택의 조건』은 그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우리가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에 대해 탐구한 보고서다. 과학기자의 근성과 현시대를 살아가는 30대의 고민을 담았다. 불안과 갈등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까지 제시한 독특한 에세이다
그가 집요하게 매달린 질문은 우리에게 선택할 게 훨씬 많아졌는데 왜 더 행복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과학 논문을 뒤져보니, 선택할 게 많으면 처음엔 행복 곡선이 위로 치솟다가 가짓수가 일정 수를 넘어서면 만족도는 떨어지고 마음이 불안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그래프가 무지개 형태가 된다는 점에서 '무지개 현상'이라 불린다. 선택이 자유롭고 대안이 많을수록 책임도 무겁고, 선택 후 '다른 걸 선택했더라면' 하는 후회의 여지도 크단다. 이른바 '자유의 그늘'이다.
사회가 선택 가능성을 맘껏 열어줬다는 이미지를 강하게 심어줄수록, 오히려 개인들이 불행을 느낄 확률이 크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독재국가에서 꺾이고 좌절하는 사람은 때로 영웅이 되기도 하지만, 자유국가에서 패배하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루저'로만 통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뿐만 아니다. 선택할 게 많아지면서 사람들은 이전처럼 서로 자신을 온전히 열고 헌신하지 않게 됐다. 또 극도로 발달하게 된 서비스 산업 역시 불행의 트렌드에 일조하고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행복에는 친구와 가족 등과의 친밀한 관계가 결정적인 요소인데도, 사람들은 과거에 친분관계로 해결하던 일을 요즘엔 돈(서비스)으로 해결하게 됐다는 것이다.
경제적인 실패가 수치감과 연결되면서 지위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익명성이 심해진 사회에서 모르는 사람이라도 자신을 알아볼 수 있도록 지위 상징(옷이나 자동차)에 더 매달리게 된 것도 우리가 더 불행하게 된 또 다른 이유라고 한다.
저자는 결국 인간관계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결론을 제시한다. 우정·결혼·자녀·가족 등의 친밀한 유대관계는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지만, 오히려 그렇게 때문에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해준다는 것이다. 돈보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아름다운 구속'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게 마음에 평화를 준다는 제언이다.
또 지나친 자기절제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부족함을 받아들이는 지혜도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행복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면, 행복의 과학을 깊이 있게 파헤친 『모나리자 미소의 법칙』(에드 디너·로버트 비스워스 디너 지음·2010)을 함께 읽으면 좋을 듯하다.
[중앙일보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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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11월의 주제 행복, 나의 선택
사막을 걸었다. 설원을 넘었다, 잃었던 나를 만났다
와일드
셰릴 스트레이드 지음
우진하 옮김, 나무의 철학
552쪽, 1만4800원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 하이킹 마니아라면 누구나 생애 한 번쯤은 종주해 보고픈 '악마의 코스'다.
멕시코 국경부터 캐나다 국경까지 미국 서해안을 종단하는 이 길엔 목숨을 위협하는 장애물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사막·화산·설원을 아우르는 극한의 환경, 야생동물의 습격, 걷는 내내 육체를 괴롭히는 식수 부족까지 악조건을 두루 갖췄다.
그런데 여기, 스물여섯의 한 여성이 자신의 몸집만한 배낭을 맨 체 홀로 길 위에 서 있다. 사람들은 "여자 혼자 종주에 도전하는 것은 처음 봤다"며 호기심의 눈길을 보낸다. 하지만 여자는 절실했다. 어머니를 암으로 잃고, 남편과 이혼한 후 마약과 섹스의 방탕한 생활을 거듭하던 삶이었다. PCT는 사회적 관계를 끊고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탈출구였다.
『와일드』는 이 여성이 석 달 동안 4285㎞를 걸으며 기록한 고행담이자 참회록이다. PCT는 듣던 대로 쉽게 인간의 발을 허락하지 않았다. 등산화는 금세 만신창이가 됐고, 새 신발을 살 수 없어 외부의 소포를 기다리며 맨발로 산을 넘었다. 씻을 물은커녕 마실 물이 없어 요오드 용액으로 더러운 물을 정화시켜 목을 축였고, 배낭의 무게에 엉덩이엔 흉한 상처가 생겼다.
하지만 저자는 난공불락의 산 정상에서 밤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머리 위로는 밝은 달이 떠올랐고 발 아래로는 저 멀리 마을들의 불빛이 반짝거렸다. 침묵은 거대했고 고독감은 엄청난 무게로 내려앉았다. (중략) 이것이 바로 내가 지금 손에 넣은 것이겠지.'(148쪽)
저자는 트래킹의 고통과 외로움을 처절하게 묘사하면서도 자신을 되찾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섬광처럼 내리꽂는 자기성찰의 한줄기를 놓치지 않고 기록했다.
책에서 인상적인 것은, 길에서 만난 인간군상이다. 이들은 곳곳에 걸린 방명록에 이름을 적고, 다른 이가 남긴 이름을 '부적'처럼 의지하며 트래킹을 계속해나간다. PCT를 걷게 된 사연은 제 각각이지만, 대자연 앞에선 이내 동지가 된다. 저자는 바라는 것 없이 자신을 돕는 PCT의 친구들로부터 '다른 모든 사람들의 인생처럼 나의 삶도 신비로우면서도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고귀한 것이었다(549쪽)'는 것을 깨닫는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직접 PCT를 완주한 것 같은 풍만함이 가슴에 차오를 것이다. 저자는 이제 두 아이의 든든한 엄마이자 베스트셀러 논픽션 작가가 됐다. 그 어떤 자기계발서보다도 자극을 주는 책이다.
김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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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11월의 주제 행복, 나의 선택
울면서 태어나는 우리, 고통과 희망은 동의어
대하의 한 방울
이츠키 히로유키 지음
채숙향 옮김, 지식여행
264쪽, 1만3900원
일본에서 총 2200만 부가 팔렸다는 장편소설 『청춘의 문』으로 유명한 작가 이츠키 히로유키(80). 그의 에세이집 『타력』(他力)이 올 7월 나오며 우리와 친숙해졌다. 『대하의 한 방울』은 그 책의 자매편이다. 삶에 대한 잔잔한 통찰을 보여주는 분위기가 닮은꼴이다.
메시지도 그러하다. 세상은 꿈과 희망이 가득한 천국이 결코 아니라는 얘기다. 삶의 고통을 먼저 인정할 때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는 역설이 이 책의 핵심이다. 그래야만 뜻밖의 작은 기쁨이나, 우정, 타인의 선의, 그리고 사랑이 갖는 의미와 제대로 접속할 수 있다. 저자는 그걸 논리나 원론이 아닌 자기 체험에서 들려준다.
“나는 지금까지 두 번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 첫째는 중학교 2학년 때이고, 두 번째는 작가로 일하기 시작한 뒤의 일이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세상이 원래 고통으로 가득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한다. 삶은 거대한 대하의 물 한 방울에 불과하다는 것, 그러니 겸손하라는 메시지도 된다.
강력한 자기 긍정의 마인드로 똘똘 무장해도 쉽지 않은 세상에 이렇게 한걸음 물러서거나, 템포를 늦춰 잡아도 될까 싶다. 실은 그게 현대인의 삶을 어루만져주는 『대하의 한 방울』의 힐링 메시지이다. 그에 따르면 자신감을 내세우고, 긍정의 힘을 과신하는 것은 현대인의 얕은 생각이거나, 지적(知的) 오만이다.
그래서 저자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 나오는 대사를 반복해 들려준다. “사람은 모두 울면서 태어난다.” 거대한 역설이다. “크게 기뻐하기 위해서는 크게 슬퍼해야 합니다. 깊은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진정으로 웃을 수 없습니다. 희망은 절망과 서로 등을 맞대고 있어, 깊이 절망하는 자만이 진정한 희망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21쪽)
물론 비관이나 운명론과는 번지수가 다르다. 우리 한국문화 정서와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보편적인 공감의 코드도 없지 않다.
『대하의 한 방울』은 에세이집으로는 정보량이 많고, 울림도 묵직하다. 읽고 난 뒤 이 풍진 세상을 버티고 견뎌내는 힘이 한 뼘 더 자란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이유도 그 때문이리라.
[중앙일보 조우석 기자]
▲ 속도를 버리고 나니 안보이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 2012 한국의산천
천천히 가면 안보이는것들이 보이는 새로운 경험도 하고 있다. 지금까지 빠르게 달리며 못보고 지나쳤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길가의 꽃, 들판, 농가, 학교, 야산 , 무덤 하나 하나가 시각과 후각, 청각을 자극하며 소중하게 다가온다.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강물이 생사(生死)가 명멸(明滅)하는 시간 속을 흐르면서 낡은 시간의 흔적을 물 위에 남기지 않듯이, 자전거를 저어갈 때 25,000분의 1 지도 위에 머리카락처럼 표기된 지방도·우마차로·소로·임도·등산로들은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오고 몸 밖으로 흘러 나간다.
흘러 오고 흘러 가는 길 위에서 몸은 한없이 열리고, 열린 몸이 다시 몸을 이끌고 나아간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은 낡은 시간의 몸이 아니고 생사가 명멸하는 현재의 몸이다.
이끄는 몸과 이끌리는 몸이 현재의 몸 속에서 합쳐지면서 자전거는 앞으로 나아가고, 가려는 몸과 가지 못하는 몸이 화해하는 저녁 무렵의 산 속 오르막길 위에서 자전거는 멈춘다. 그 나아감과 멈춤이 오직 한 몸의 일이어서, 자전거는 땅 위의 일엽편주(一葉片舟)처럼 외롭고 새롭다.
Let it be 그대로 두어라
Let it be 순리에 맞겨라
그래 네가 할 수 있다면 가고 싶은 길로 가거라! Let it be
행복과 慾望이라는 전차의 종점은 없다.
진실로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는 마음속에서 幸福이라는 단어를 잊을 때만이 진실로 '행복'할 수 있다. -한국의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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